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43)
42화
언지환은 음침한 웃음을 흘리더니 가월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수족을 잘라버리려 했지만, 여유가 있다면 목을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어떻게?”
언지환은 서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팽대혁은 그 서책을 잘 알고 있었다.
“일전에 막내의 암살 건을 위해 조작된 증거가 아닌가.”
본래대로라면 막내는 죽고 팽대혁은 이 증거를 묵혀놨다가 좀 더 효과적일 때에 터트렸을 것이다.
예를 들어 팽소혁이 정신을 차리고 소가주 후보로서 조금씩 두각을 보이는 이런 시기에 말이다.
“이 서책을 사공자 측에 흘리려고 합니다.”
“어부지리를 노릴 셈인가.”
그러면 팽무성은 자연스레 팽소혁과 맞붙게 될 것이다. 절대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었으니.
“어부지리가 아니라 삼공자가 먹힐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사공자를 돕게 될 테지요.”
여기까지 듣자 팽대혁도 언지환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 나쁘지 않군. 잘만 하면 둘을 한꺼번에 보내버릴 수 있겠어.”
언지환이 내놓은 계략이 팽대혁은 만족스러웠다.
“좋군. 역시 이만한 능력이 있으니 외조부께서 자네를 나에게 보내셨겠지.”
팽대혁의 칭찬에 언지환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자네의 구상대로 계획을 짜보게.”
* * *
전날의 연회로 쌓인 주독을 가볍게 떨쳐내며 팽무성은 장서각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난 방문처럼 장서각의 삼 층으로 향하기보단 장서각의 일 층에 머물렀다.
소림사에서 얻은 깨달음을 기반으로 팽가의 무공을 처음부터 되돌아보기 위함이었다.
[맹호도결] [소호심법] [삼호권]장서각의 책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비급.
팽무성은 기본 무공부터 시작하여 종류에 상관없이 책장에 있는 비급들을 차례차례 독파하기 시작했다.
“흐음.”
비급을 넘기던 팽무성은 불현듯 침음을 흘렸다. 전생에서도 일 층의 비급은 거의 봤었다. 최대한 주어진 것 내에서 답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더는 얻을 것이 없으리라 판단했었건만, 이렇게 다시 비급을 탐독하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부분들이 하나씩 발견되고 있었다.
시야의 방향과 높이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어려울 게 없는 무공들임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비급을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삼초식과 사초식 사이에 왕사자도(王獅子刀)의 이초식을 더했다면 더 자연스럽게 연결이 됐겠네.’
전생에 철혈맹호도를 창안했을 때는 고칠 것이 없는 완성된 도법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살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철혈맹호도는 나름의 장점도 있으나 단점과 약점이 존재했다.
개선점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철혈맹호도를 한 차원 더 높은 경지로 이끄는 것은 고차원적인 깨달음이 아닌 팽가의 기본 무공들이었다.
이전까지는 한 가지 길만 보였다면 이제는 여러 길목이 보였다.
“기본이 이런 것이었나.”
그저 단순하고 쉽게 익힐 수 있는 간단한 초식들이 새로운 경지를 비추는 횃불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무공임에도 새롭게 익히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팽무성은 식음을 전폐하며 비급을 읽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흐음. 왜 저러시지.”
한편, 장서각을 관리하는 무인들은 경지에 오른 팽무성이 일 층에만 머무는 것에 의아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정작 비급을 보는 팽무성의 눈은 생기로 이채를 띠고 있었다.
장서각에 틀어박히고 칠주야가 지나서야 팽무성은 바깥의 햇볕을 맞이할 수 있었다.
“사공자. 괜찮으십니까.”
“볼살이 빠지셨습니다. 무공도 좋지만, 몸도 챙기셔야죠.”
장서각에서 지내는 동안 벽곡단 한 알과 물 몇 모금을 마시는 것으로 요기를 채웠으니 무인들이 팽무성을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팽무성은 오랜만에 보는 햇빛에 거뭇해진 눈가를 찌푸리며 걸어갔다.
무공의 성장이나 깨달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팽무성의 눈빛은 한껏 짙어졌다.
사주각을 향해 걸어가던 그때, 팽무성은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곤 눈앞의 상대에게 포권을 취하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원로원주를 뵙습니다.”
“오오, 사공자. 정말 오랜만이군. 몇 년 만인가.”
원로원주. 팽가호.
전대 가주의 동생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 원로원의 수장 자리를 맡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그다지 접점이 없어서 잘 아는 인물은 아니었다. 다만, 팽가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것 하나는 확실한 인물이었다.
“사공자의 얘기는 잘 듣고 있네. 요즘 늙은이들이 입만 열면 사공자의 이름이 흘러나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인자한 눈빛을 띠던 팽가호의 눈이 일순 날카로워졌다. 그야말로 무인의 눈빛이었다.
팽무성을 쓱 훑은 팽가호는 한 손으로 수염을 꼬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잠시 걷겠나.”
팽가호가 방향을 틀자 팽무성도 그 옆에서 따라 걸었다.
“요새 원로원에 조금 일이 많네. 빈객들이 많이 오거든.”
강호를 떠도는 수많은 고수 중에서는 나이를 먹고 정착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꽤 많았다.
그렇기에 다양한 고수를 빈객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 문파로선 또 다른 힘이 되기도 했다.
팽가에서는 원로원이 빈객들을 소일거리 삼아 관리하고 있었는데, 관리라고 해봤자 같이 바둑을 두거나 술을 마시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새로운 분들이 많이 오시니 원로분들도 좋아하시겠군요.”
“빈객들이 별생각 없이 그저 몸을 맡기러 온 것이라면 우리야 환영이지만.”
하늘을 보며 걷는 팽가호의 얼굴은 묘하게 주름이 접혀있었다.
“빈객들이 묘한 행적을 풍기나 봅니다. 예를 들어 언가라던가.”
팽가호는 고개를 틀어 팽무성을 쳐다봤다.
팽무성의 말대로였다.
언가의 빈객이었던 자도 있었고, 과거 행적마다 언가가 등장하는 자도 있었다.
대공자의 추천으로 데려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것을 제하더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명문 정파에 머무를 정도의 빈객이라면 저마다 영향력과 인연이 제법 있는 편이기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팽가호는 권왕과 같은 세대의 무인.
그만큼 권왕의 숨겨진 욕망을 잘 알기에 괜한 노파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굳이 빈객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언가의 무인이 팽가에 드나드는 횟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에 팽가호는 요즘 심사가 불편한 편이었다.
그런 와중에 팽무성이 콕 집어서 말을 하니 팽가호는 순간 기묘할 수밖에 없었다.
팽가호는 의미 모를 웃음을 흘리더니 손가락을 들었다.
“사공자는 원로원의 위치를 아는가?”
팽가호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에 바로 원로원이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팽가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팽무성을 지나쳤다.
“언제 한번 놀러 오게.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을 보면 좋아하거든.”
그 한 마디에 팽무성은 고개를 돌려 휘적휘적 걸어가는 팽가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 가벼운 한마디가 절대 가볍지 않음을 팽무성은 알고 있었다
원로원은 아무나 왕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다른 공자들도 일 년에 한두 번 불려갈 뿐이었다.
멀어지는 팽가호의 뒷모습을 보며 팽무성은 고개를 숙였다.
“나쁘지 않네.”
원로원을 출입할 기회.
예상치 못한 소득이었다.
* * *
사주각의 연무장에서는 한참 비무가 벌어지고 있었다.
팽무성은 사주각의 일원들을 상대로 차례대로 비무를 펼쳐내고 있었다.
벌써 일곱 번째 비무였지만, 팽무성은 땀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에 사내들은 이를 악물고 덤벼들고 있었다.
“하압!”
덕삼은 호기롭게 날아서 팽무성의 어깨를 노렸다. 그에 반해 팽무성은 느릿하게 손을 뻗었다.
늦게 뻗은 팽무성의 우장이 어느새 덕삼의 가슴을 튕겨내고 있었다.
“커컥.”
가슴에 장법을 제대로 얻어맞은 덕삼은 순간 호흡이 막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콜록콜록.”
덕삼은 몇 번 기침하곤 주먹으로 입가를 쓱 닦고 다시 일어섰다.
“아직도 가슴이 빈다. 도를 내려칠 때 동작이 너무 커.”
“다시 해보겠습니다.”
사주각의 연무장에서 사내들이 수련할 때는 팽무성도 나와서 함께 했다.
그러면서 비무를 하며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고 있었다.
덕삼이 다시 왕사자도를 펼쳐냈고 초식에서 빈틈이나 자세가 어긋났을 때는 어김없이 팽무성의 손이 움직였다.
덕삼은 계속 팽무성의 조언을 떠올리며 도를 휘둘렀다.
‘팔꿈치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팔은 더 앞으로.’
덕삼은 왕사자도의 사자비상(獅子飛上)이라는 초식을 펼쳐냈다.
날렵하게 뛰어오른 채 무게를 실어 내려 베는 초식이었는데 동작상 빈틈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지지대가 없는 공중에서 제대로 무게를 실어낸 도격을 날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덕삼은 일종의 편법으로 전신에 힘을 주어 해결하려 했지만 그런 방식은 자칫하면 상대에게 반격의 여지를 주기가 쉬웠다.
결국은 전신의 무게를 자유롭게 실어낼 수 있는 기교를 익혀낼 수밖에 없었다.
카앙
팽무성의 주먹이 처음으로 막혔다.
덕삼이 팽무성의 조언대로 올바른 동작을 해냈다는 뜻이었다.
이에 덕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지만, 그도 잠시였다. 한 번 동작을 제대로 했다고 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팽무성의 좌각에 허리를 걷어차인 덕삼은 다시 한번 연무장 바닥을 굴렀으나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덕삼은 그 후 스무 번 정도를 더 구르고 나서야 비무가 마무리되었다.
덕삼은 꼴이 엉망이 되었지만 그 얼굴의 미소만은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오늘만 해도 팽무성이 꼬집어준 나쁜 버릇을 다섯 가지나 고쳤기 때문이었다.
잠시 쉬면서 비무를 지켜보던 사내들은 덕삼의 얼굴을 보며 저들끼리 낄낄거렸다.
“덕삼, 요즘 잘 웃네. 저렇게 웃음이 헤픈 놈이었던가.”
“왜, 나도 요즘 매일 실력이 늘어나는 게 느껴져서 재밌고만.”
그동안 철호도 자신들의 무공을 열심히 봐주었지만 팽무성에 비하면 아무래도 손색이 있었다.
단순히 빈틈이나 허점을 짚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익히고 있는 무공 그 자체에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지도를 해주고 있었다.
이러니 덕삼은 물론이고 다른 사내들은 팽무성과 비무를 할 때보다 조금씩 더 강해지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더구나 자신들보다 어린 나이에 팽가의 여러 무공에 정통하니 무인으로서 존경심마저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사주각의 일원들은 팽무성에게 빠른 속도로 스며들고 있었다.
덕삼은 무복의 먼지를 털며 걸어오더니 슬쩍 물었다.
“사공자. 보니까 새로운 권장법을 펼치시는 것 같던데요.”
덕삼도 처음에는 몰랐으나 여러 번 맞아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팽가의 여러 권장법과 비슷한 면을 보이면서도 한층 더 다듬어진 것을 본 느낌이었다.
덕삼은 철호가 익히고 있는 철혈맹호도처럼 팽무성이 개인적으로 다듬은 무학이 아닌가 싶었다.
덕삼의 눈썰미에 팽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왕투법이라는 것이다.”
“철호 형님은 철혈맹호도를 가르쳐 주셨던데 저희는 언제쯤 배울 수 있습니까?”
팽무성과 덕삼의 대화에 주변의 사내들은 아닌 척하면서도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무작정 상승의 무공을 익힌다고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되었다고 여겨질 때 내가 먼저 너에게 가르칠 거다.”
팽무성의 말은 간단했다.
철혈맹호도와 호왕투법을 온전히 펼칠 수 있을 바탕과 실력을 키워오라는 뜻이었다.
그에 사내들은 수련에 더 성심성의를 쏟아낼 수 있었다.
노력해서 나아가기만 한다면 더 강해질 수 있는 명확한 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주각에서는 언제나 수련, 비무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조금씩 가솔들 사이에서 사주각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 * *
팽무성은 야밤에 홀로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간혹 도가 휘어지게 보일 정도로 빠른 쾌도를 펼치기도 했고, 한 번에 수십의 도영(刀影)을 허공에 뿌려보기도 했다.
팽무성의 도는 강맹하고 직선적이다.
힘과 위력에 쏠려있던 팽무성의 도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도본결을 읽을 때마다 어떤 화두를 얻고 있었고 팽무성은 그럴 때마다 답을 얻기 위해 도를 잡았다.
‘무신의 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평생 한 무기에 집중해도 극에 달한 무인이 극소수에 불과하거늘.
백 년도 채 살지 않은 인간이 여덟 가지 무기의 극에 달해 무신이라 불렸으니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도가 유려한 선을 그려냈을 때 문득 팽무성이 입을 열었다.
“가월, 늦었네.”
팽무성의 뒤편에 모습을 드러낸 가월은 평소와 다른 야행복을 걸친 모습이었다.
“공자님. 혈루문이 움직였습니다.”
팽무성은 가월의 말을 들으며 계속 도를 움직였는데 달빛에 반사된 도신이 순간 번쩍거렸다.
“그래. 우리도 움직이자.”
야밤의 빚 청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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