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44)
43화
팽무성은 홀로 경공을 펼치며 남쪽으로 남하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하북의 창주(滄州).
산동성의 경계에서 살짝 떨어진 도시로 길이 잘 닦여있기에 성의 경계를 넘는 상단이 애용하는 곳이었다.
아울러 산동에서 상행으로 큰 이문을 얻은 팽소혁이 귀가 중 쉬어갈 곳이기도 했다.
혈루문도 창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이니 창주에서 살행이 벌어질 것이 확실히 되는 상황이었다.
-삼공자를 죽인 다음 제가 살수임을 폭로하며 삼공자의 암살을 엮을 가능성이 있어요.
가월의 보고를 다시 떠올리던 팽무성의 얼굴에는 살기가 맴돌았다.
전생에서도 소가주 경합이 뜨거워질 때, 보인 팽대혁의 행동도 그와 비슷했다.
일부러 묵혀놨던 사공자 암살 자료를 터트려 삼공자를 보내버렸지 않았던가.
사공자 암살사건 이후, 한참을 지나 갑작스레 드러난 조작된 자료에 팽소혁은 제대로 대응도 못 하고 누명을 써버렸다.
“역시 네놈은 거리낌이 없구나.”
홀로 중얼거리는 팽무성의 가라앉은 목소리는 호랑이가 낮게 울음을 흘리는 듯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혈육마저 망설임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팽대혁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팽가의 핏줄에서 어쩌다 팽대혁 같은 놈이 튀어나왔는지 정말 기이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혈루문.’
가월의 말에 의하면 언지환이 혈루문과 접촉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은 사공자 암살사건에 혈루문이 관여한 확률이 지극히 높다는 뜻이었다.
‘빚을 갚을 때가 왔구나.’
전생에 죽은 사공자, 현생에 죽은 팽지혁.
팽무성은 몇 배로 갚아서 빚을 청산해줄 셈이었다.
콰앙
이번에도 팽대혁의 술수대로 자신의 사람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러며 속도를 올리기 위해 내공을 폭발적으로 터트리자 작은 구덩이가 생겼다.
거침없이 뻗어지는 팽무성의 신형에 주위의 나뭇가지나 부러지거나 나뭇잎이 흩날렸다.
마치 분노한 맹호가 산을 휘젓는 모습이었다.
* * *
줄지어 늘어진 상행의 중앙에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마차가 유독 눈길을 끌고 있었다.
마차에 난 작은 창문이 열리자 피곤한 듯 살짝 감긴 눈을 한 팽소혁이 얼굴을 드러냈다.
“장 호위. 얼마나 남았어?”
“창주까지 반 시진이면 도착합니다. 미리 선발을 보내 객잔을 수배했으니 오늘 저녁은 그곳에서 편히 쉬시면 됩니다.”
“그래. 아오, 오래 앉아있었더니 뻐근해.”
팽소혁은 엉덩이와 허리를 잠시 들썩이더니 창문을 닫았다.
마차 옆에는 오랜 시간 말을 타고 팽소혁을 호위를 하는 무인들이 있었다.
그런 무인들 앞에서 불평하는 팽소혁의 철딱서니 없는 행동에도 호위 무인들의 얼굴은 사뭇 밝았다.
본래 망나니 시절의 팽소혁이라면 장 호위의 대답을 듣고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유 불문하고 화부터 내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팽소혁은 많이 달라졌다.
주색을 그만두고 자신의 장점을 찾으며, 눈에 보이는 성과를 일구어낸 탓일까.
항상 옆에 붙어있는 장 호위는 팽소혁이 이전보다 한결 여유로워지는 게 눈에 보였다.
이전에는 나잇값을 못 하는 망나니였지만 지금은 가끔 철이 없어도 제 몫은 하는 인간으로 변해있었다.
최근 들어서야 장 호위는 애를 보는 느낌에서 정말 호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정말 사공자 덕분일지도.’
삼공자가 사공자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장 호위였다.
확실한 이유야 본인만이 알겠지만, 장 호위는 팽무성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창주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장 호위를 비롯한 무인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드디어 끊임없이 흔들리는 안장에서 벗어나 잠시 쉴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
“여기는 괜찮네. 다음에도 이쪽으로 숙소를 잡으라 해야겠네.”
팽소혁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창주는 상단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인만큼 규모가 큰 객잔이 많았는데 팽소혁이 머무르는 객잔도 그중 하나였다.
팽소혁은 객잔의 별채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사용 중이었다.
“후우. 어디까지 처리했더라.”
팽소혁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하는 일이 탁자에 앉아서 붓을 잡는 것이었다.
팽소혁은 침상 옆에 둔 짐에서 서책과 서류를 꺼내더니 둘을 번갈아 보며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었다.
붓을 든지 일 다경이 지났을까.
문득 팽소혁은 등이 닿은 오싹함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억.”
그와 동시에 깜짝 놀라며 그 자리서 벌떡 일어났다.
붓을 놓쳐 오른손과 소매가 먹에 흠뻑 젖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침상에 앉아있는 복면인 때문이었다.
그 거대한 덩치는 팽가의 자손인 팽소혁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장 호위!”
팽소혁은 바로 소리쳤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막으로 소리를 차단했다고? 어느 틈에?’
자신보다 윗줄임을 확인하자 팽소혁은 금세 식은땀을 흘렸다.
“에이.”
팽소혁은 허전한 허리춤을 느끼며 미간을 구겼다. 도 대신에 붓과 주판을 잡은 지가 오래되었다.
자신보다 무공이 뛰어난 형제들 덕분에 미련 없이 도를 놓았었지만, 지금만큼 후회되는 적이 없었다.
“나다.”
그러나 후회도 잠시뿐이었다.
복면인의 익숙한 목소리에 팽소혁의 떨림이 멈추었다.
“너 설마?”
팽무성이 복면을 벗어 얼굴을 보여주자 팽소혁은 잠시 노려보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깜짝 놀랐잖냐. 이 빌어먹을 놈아.”
습관처럼 욕을 내뱉으려 했던 팽소혁의 미간이 아까보다 더 좁아졌다.
“그런데 너, 여기에는 왜 있는 거냐.”
팽무성이 침상에서 일어나자 팽소혁은 일순 움찔했다. 그러나 노려보는 눈길만은 거두지 않았다.
그에 팽무성은 일관된 표정으로 팽소혁을 내려봤다.
“너를 살리러 왔다.”
뜬금없는 소리에 팽소혁은 코웃음을 터트렸다.
“풋. 뭐래.”
* * *
“그래. 첫째 형님, 아니 팽대혁 그 새끼가 이런 일을 꾸몄단 말이지.”
팽무성에게 전후 사정을 들은 팽소혁은 발목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좀 전에 팽소혁이 코웃음을 칠 때 발목을 걷어차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암살당할 뻔한 소식을 들으면 절로 감정이 격해졌을 터인데, 팽소혁은 의외로 침착했다.
“뭐야. 반응이 이상한데.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미리 안 것은 아니지만, 평소의 팽대혁을 생각하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일단 너도 형제니까 알잖냐? 웃으며 우리에게 칼침 놓는 인간이란 걸.”
팽소혁은 잠시 팽무성을 바라보더니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가 망나니였고 예전부터 너를 괴롭혔지만, 죽여도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어지간한 사파 놈들도 형제를 죽일 생각은 안 할걸.”
그 이후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마 이 형제가 이렇게 길게 대화한 적은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바뀐 거지?”
팽무성은 정말로 궁금했다.
사실 팽무성은 팽소혁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방 안에 있었다.
그런데도 팽소혁을 바로 부르지 않은 이유는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붓을 드는 모습이 신기함을 넘어서 기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팽소혁은 뭐라 말하려다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자신보다 어린 동생에게 자극을 받아서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달려들었다는 말을 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놀 만큼 놀았을 뿐이다.”
어색한 팽소혁의 표정을 바라보던 팽무성의 눈이 일순 번득였다.
이에 팽소혁은 움찔거리며 물었다.
“뭐야?”
기억은 잊어도 몸은 기억한다고, 예전에 얻어맞은 경험에 팽소혁은 저도 모르게 두 팔을 올리고 있었다.
“왔다.”
팽무성의 말에 팽소혁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말로 들었을 때는 제법 침착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쳤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졸인 탓이었다.
불안감에 주위를 살핀 팽소혁은 바깥을 보고 놀랐다. 어느새 밖에는 뿌연 안개가 껴있기 때문이었다.
“설마 독무?”
독무임을 알아채자 팽소혁은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고는 내공을 운용했다.
그러곤 팽무성이 아무 말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팽소혁은 급히 그 뒤를 쫓았다.
독무는 이미 일 층을 집어삼키고 계단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팽소혁은 이 광경을 보며 침을 삼켰다.
팽무성이 아니었다면 방에 독무가 들어온 지도 모르고 잠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하아.”
팽소혁은 아찔함에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후웅
소매에 내공을 실어 빳빳하게 만든 팽무성은 그대로 팔을 휘저었다.
그에 내공이 실린 바람에 독무는 뒤로 밀려나며 별채 바깥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팽소혁은 그 틈에 쓰러진 호위들의 맥을 집었다.
“그냥 잠들게 하는 독무였나. 다들 맥은 뛰고 있다.”
팽무성은 바닥에 쓰러진 다섯 명의 호위를 보며 눈가를 좁혔다.
“왜 호위가 다섯 명뿐이야.”
“나머지는 객잔의 본채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거다. 내가 그렇게 지시했어.”
팽무성이 독무를 몰아냈지만, 반응이 없고 조용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실제로 팽소혁의 눈알은 쉬지 않고 굴러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릴 거냐.”
투투투투투툭
팽무성이 입을 열자마자 천장을 뚫고 암기들이 쏟아졌다.
팽무성은 팽소혁을 걷어차 구석으로 날려버리고는 장력을 천장으로 쏟아냈다.
콰앙
장력은 암기를 튕겨내며 날아가 천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냈다.
부서진 천장으로는 나무 파편과 먼지구름이 팽무성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한 차례 먼지구름이 일자 팽무성의 주위가 뿌옇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때, 천장과 별채의 창문으로 살수들이 난입하기 시작했다.
혈루문의 살수들은 팽무성에게 살행이 들켰다고 판단되자 과감하게 움직였다.
열 명이 넘는 살수가 동시에 움직임에도 별채에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서걱
퍽
간혹 무언가 썰리거나 부서지는 소리만 들려오니 참으로 으스스했다.
그러나 살수들이 네 방향을 점한 채 동시에 달려드니 팽소혁은 당황스러운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놈들이.”
팽소혁은 살수 네 명이 접근하자 호기롭게 주먹을 들었다. 도가 없는 것이 아쉬웠으나 괜찮았다.
근래에 붓과 주판을 들었다고는 하나 자신 역시 하북팽가의 삼공자였다.
불의의 습격도 아니고 정면 대결에서 살수에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큭.”
살수들이 네 방향을 점한 채 동시에 달려들자 팽소혁은 당황스러운 신음을 흘려냈다.
기세는 제법이었으나 상대는 닳고 닳은 살수들이었다. 실전은커녕 비무 경험조차 적은 팽소혁이 당해낼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팽소혁은 십여 초를 채 견뎌내지 못하고 비도에 잘려 허공에 날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봐야 했다.
운 좋게 간발의 차로 비도를 피해냈지만, 자세가 흐트러져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 틈에 살수들의 비도가 팽소혁의 각기 다른 급소를 노리고 꽂혀 들었다. 이에 팽소혁은 팔과 다리로 최대한 몸을 가리며 웅크리는 수밖에 없었다.
촤악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소리와 함께 살수 네 명의 목이 동시에 떨어졌다.
팽무성은 한 손으로 도풍을 날리면서 남은 손으로 살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삼공자 암살에 파견된 살수들의 지휘자이자 마지막 생존자였다.
죽기 직전임에도 살수의 눈은 지극히 건조했다.
“시시하군. 하북제일이라 해도 중원 삼대살문에는 못 드는 이유가 있었나.”
팽무성의 말에 살수의 눈꺼풀이 살짝 흔들렸다.
“오늘은 본문의 실수임을 인정하지. 삼공자와 사공자가 같이 있었을 줄이야.”
살수는 어금니의 독단을 씹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혈루문 전체가 너희를 노릴 것이다.”
살수의 저주에 팽무성은 그저 웃었다.
“걱정 마라. 너희가 올 필요 없이 내가 찾아갈 테니.”
살수는 눈을 부릅뜬 채 숨이 끊어졌다.
팽무성은 살수의 시체를 던져버리고는 팽소혁에게 다가갔다.
“또 다른 습격은 없을 거야. 최대한 빨리 본가로 돌아가.”
팽소혁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팽무성이 살수에게 내뱉은 말을 팽소혁도 들은 탓이었다.
“너 정말 찾아갈 거냐? 그것도 혼자서?”
걱정 어린 팽소혁의 물음에도 팽무성은 단조롭게 고개를 끄덕이며 별채를 나섰다.
“미친놈들이 팽가의 가솔을 겁도 없이 두 번이나 건드리는데 쓸어버려야지.”
어둠이 깊어지는 밤 속으로 팽무성은 경공을 펼쳐내며 사라졌다.
* * *
팽무성은 창주에서 한 시진 거리에 있는 안산(?山)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팽무성은 안산에서 살짝 떨어진 관제묘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반 각도 채 되지 않아 어둠 속에서 흑의인 하나가 튀어나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왕. 하북을 담당하는 산영(散影)이라 합니다.”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놀랐네. 가월이 갑작스럽게 연락해서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했는데.”
“하북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살수들은?”
팽무성이 느끼기에 산영의 기척 말고는 다른 살수들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배치를 마쳐놨습니다. 명령대로 모든 퇴로를 차단했습니다.”
팽무성이 관제묘를 벗어나자 산영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저벅
걷는 사람은 둘인데 발소리는 하나만 나고 있으니 양민이 보았다면 귀신을 봤다고 할 모습이었다.
팽무성은 팔짱을 끼며 안산의 정경을 눈에 담았다.
“하북제일살문. 얼마나 대단한지 봐볼까.”
야밤의 빚 청산.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