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45)
44화
안산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둥글게 솟아있고 그 안에는 분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산영의 안내를 받는 팽무성은 그 분지로 향하는 중이었다.
팽무성은 길게 자란 풀을 헤치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짐승이 다니는 길만 간혹 보일 뿐,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외부의 유입이 거의 없어 보였다.
“천살택문은 아직 드러나서는 안 돼.”
“걱정 마십시오. 정체를 발설할 자는 한 명도 남지 않을 겁니다.”
혈루문이 상대임에도 산영의 목소리는 은은한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어느 길목에 다다랐다.
“저쪽인가 보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산영은 팽무성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졌다.
산영이 사라지고, 안산의 안쪽으로 들어가며 분지에서 가까워지니 저 멀리 불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법 크네.”
분지가 넓어서 그런지 마을의 규모도 꽤 큰 편이었다.
한쪽에는 농사를 짓는 땅도 보였고, 마을 뒤쪽에는 제법 커다란 전각도 자리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거리를 돌아다니는 마을 주민들은 팽무성을 쓱 보며 지나쳤다.
그에 팽무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람이 많은 도시라면 모를까, 도를 찬 무인을 보고도 저런 태연한 반응이라.’
담이 큰 건지, 그도 아니면 무림인이 익숙한 걸까.
팽무성은 마을 주민들의 반응을 살피며 마을 한 바퀴를 쭉 돌아보았다.
객잔, 도박장, 철방, 노점상.
후미진 곳에 있었음에도 있을 것은 다 갖추었고 마을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데 딱 한 가지가 없었다.
활력.
마을이 있고 사람이 모이면 당연히 느껴져야 할 사람들의 생기와 활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귀신들이 들끓는 유령마을에 온 기분이었다.
팽무성은 잠시 멈춰 서더니 객잔으로 들어섰다.
객잔의 탁자에는 손님이 몇 있었지만, 간혹 말소리만 들릴 뿐 대체로 조용했다.
마치 객잔이 아닌 절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팽무성이 자리에 앉자 객잔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접시와 술병을 차려 왔다.
“우리 객잔은 안주와 술이 이것뿐이오.”
야채볶음과 백주.
강호의 객잔에서 흔히 선보이는 음식들이었다.
팽무성은 야채볶음을 몇 번 집어먹고는 그대로 술을 들이켰다.
그 모습에 저들끼리 술을 즐기던 손님들의 시선이 모조리 팽무성에게 향했다. 객잔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객잔 주인의 솜씨가 괜찮네. 피눈물이 나는 맛이야.”
팽무성의 중얼거림에 그릇을 닦던 객잔 주인의 손길이 일순 멈추었다. 팽무성이 말한 피눈물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팽무성이 먹은 백주에는 혈루독(血淚毒)이 녹아있었다.
혈루독은 중독되는 순간 두 눈의 핏줄이 터져나가며 다섯 구멍으로 피를 쏟으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맹독이었다.
혈루문의 이름을 딴 독인 만큼 강호의 절독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 혈루독을 먹고도 팽무성이 멀쩡하니 객잔 주인은 내심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객잔 주인으로 위장하고 있던 오혈(五血)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쳐라!”
오혈은 접시 밑에 감추어 놓았던 두 자루의 비도를 꺼내 들었고 다른 살수들도 각자 숨겨놓았던 무기들을 선보였다.
팽소혁을 습격한 살수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듯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살수들은 별다른 신호 없이도 능숙하게 팽무성을 에워쌌다.
직도, 검, 비수, 강침.
살기를 머금은 병장기들이 팽무성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있었다.
채채챙
팽무성의 도가 살수들의 틈을 한 번 휘젓고 지나가자 모든 공격이 튕겨남은 물론이고 덩달아 목이 베인 자들도 있었다.
바로 옆의 동료가 피를 뿜고 쓰러져도 남은 살수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팽무성을 몰아붙였다.
콰악
어떤 살수는 몸에 도가 박혔는데 쓰러지기는커녕 두 팔을 뻗어 팽무성의 두꺼운 팔을 휘감았다.
제 몸을 바쳐 팽무성의 팔을 잡아 도를 휘두르는 것을 막아보려 한 것이다.
하지만 팽무성의 바위 같은 팔뚝을 보고 깨달았다.
팽무성의 힘은 고작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는 걸.
팽무성은 보란 듯이 팔에 사람을 매단 채로 살수를 베어냈다.
도의 속도와 위력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콰앙
살수가 매달린 팔을 팽무성이 위아래로 흔들자 살수는 그대로 날아가 천장을 뚫었다.
객잔을 빠져나오자 밖에는 검붉은 야행복을 걸친 살수들이 잔뜩 모여 팽무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살수들이 암기를 날렸고 팽무성도 곧장 도풍을 쏟아냈다.
팽무성이 암기를 모조리 튕겨내며 살수들에게 달려들자 살수들은 방진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팽무성 주위로 원을 겹겹이 만들어내서 도망칠 곳을 없애버렸다. 전형적인 차륜의 형태였다.
촘촘하게 짜진 형태를 보아하니 고수 하나를 단체로 사냥하는 데 많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살수들이 쇄도했으나 되려 팽무성이 이를 뚫고 솟구쳤다. 휘둘러지는 도의 궤적은 이전보다 다채로워졌다.
콰자작
팽무성의 도가 움직일 때마다 살수들은 비명도 지르지 않고 조용히 죽어갔다.
그런데도 살수들은 차례를 기다리듯 전혀 망설임 없이 팽무성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팽무성은 살수들의 눈을 살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기보다는 죽어도 상관없는 생기가 사라진 눈빛들이었다.
살문마다 살수들을 훈련 시키는 방식이 다르다지만 천살택문의 살수들을 떠올리면 그 차이가 컸다.
살수들은 서로가 살행 도구였다.
동료의 시체를 이용해 공격하는 놈도 있었고 팽무성이 동료를 죽이는 틈을 노리는 놈도 있었다.
살수들의 시체가 쌓여나갔지만 팽무성을 둘러싼 원의 크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객잔 앞에 있는 살수의 절반 이상이 줄었을 무렵.
철방의 지붕 위에는 제법 지위가 높아 보이는 살수들이 나타났다.
방금 공격을 명령한 오혈도 그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혼자 온 거냐.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마라.”
낮게 울리는 오혈의 목소리가 마을을 울렸다.
팽무성은 앞을 가로막는 살수를 베면서 초승달 형태의 도기를 쏘아냈다.
제법 빠른 속도였지만 지붕 위의 살수들은 도기가 오기 전에 흩어져 피해냈다.
쾅
도기는 철방의 지붕 일부를 날려버리고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았다.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이라 도기는 환한 붉은 빛을 자랑하다 허공에 흩어졌다.
팽무성도 잠시 그 빛을 감상하더니 오혈을 보면서 웃었다.
“너희를 놓치면 안 되는데 혼자 왔을 리가 없지.”
이에 오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곳에서 혈루문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있을…”
오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부지불식간에 주변의 살수들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오혈의 말을 끊었다.
그에 오혈은 급히 입을 다물곤 어둠을 살폈다.
팽무성의 뒤쪽 그늘에서 소리 없이 날아온 암기를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팽무성이 쏘아 올린 도기.
그것은 살수들을 맞추기 위함이 아닌 약속된 신호였단 걸 오혈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스윽
“소왕.”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산영의 목소리에 팽무성은 도로 오혈을 겨누었다.
“시작해라.”
암중에서 서서히 인영을 드러내는 천살택문의 살수들.
지척에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살수들의 모습에 오혈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살수의 입장에서 그 누구도 쉽게 침입할 수 없는 혈루문의 경계를 직접 구상한 장본인이 오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서 쉽게 뚫리는 것을 목격했으니 오혈은 내심 충격이 심했다.
“마을을 대충 둘러보니 저 전각을 보호하는 형태이던데.”
팽무성은 고개를 까딱여 마을 제일 안쪽에 있는 오 층 전각을 가리켰다.
“예. 마을의 건물을 진법에 따라 배치한 듯합니다. 삼 중의 저지선이 있습니다.”
산영의 말을 들은 오혈은 입술이 더 무거워졌다.
팽무성과 산영이 있는 객잔은 마을 전체로 따지면 첫 번째 저지선에 해당하는 위치였다.
“살수들의 수는 제법 줄여놨는데, 맡겨도 되겠지.”
팽무성은 이곳을 산영에게 맡기고 바로 두 번째 저지선을 돌파할 생각이었다.
팽무성의 명령에 산영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허공에 맴돌았다.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팽무성은 혈루문의 살수들을 무시하고 곧장 앞으로 쏘아졌다.
채앵
챙
“팽무성은 뒷줄에 맡기고 저놈들을 막아라!”
오혈도 곧장 건물 사이의 그림자로 몸을 날렸다. 어디론가 뛰어가던 오혈은 갑자기 등을 돌리며 직도를 휘둘렀다.
까앙
무기가 부딪치며 작은 불똥이 튀었을 때 산영의 얼굴이 잠깐 드러났다. 산영은 팽무성을 상대할 때와 달리 가면을 쓰고 있었다.
예전에 가월이 쓰던 가면과 똑같은 형태였다. 그 가면을 보고 오혈의 눈이 갸름해졌다.
살문에 몸을 담으면 저 가면을 모를 수가 없었다. 살왕을 비롯한 그 휘하 십영(十影)의 상징이었으니.
“어째서 네놈들이…”
산영은 대답 대신 소매를 휘둘러 암기를 쏘아냈다.
까가강
혈루문의 살수들은 어둠 속에서 밀려오는 천살택문의 살수들에게 맞섰다.
객잔 주변은 가끔 쇳소리와 파육음만 들릴 뿐이었다.
살수들의 고요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팽무성이 두 번째 저지선에 달하자 마을의 불이 하나씩 꺼졌다.
빛이 빠르게 물러나고 금세 고요한 어둠이 그 빈 자리를 차지했다.
오늘 밤은 구름이 짙어서 달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 뒤편에서는 빛이 사라지자 한층 더 치열하게 싸우는 듯 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왔다.
팽무성은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수는 대개 살기를 감추기 마련인데 이곳에 모인 살수는 보란 듯이 농밀한 살기를 흘려내고 있었다.
음산한 어둠에 칙칙한 살기까지 더해지니 팽무성의 기분도 절로 가라앉는 듯했다.
잠시 멈춰 섰던 팽무성이 오른발을 막 뗀 그 순간, 서 있던 자리에 암기가 수북이 꽂혀왔다.
쉬시쉬시식
샤샤샥
촤르륵
두 번째 저지선의 살수들은 팽무성에게 섣불리 접근하지 않았다.
어둠을 방패 삼아 사방에서 암기가 쏟아지고 중간중간 쇠그물이 팽무성의 머리 위로 펼쳐졌다.
투투퉁
팽무성이 펼쳐낸 도막을 암기들이 쉴새 없이 두들겼다.
내공이 실려있는 암기가 비처럼 쏟아지자 도막을 통해 올라오는 반탄감이 상당했다.
도막에 튕겨 나간 암기들이 땅에 박히며 팽무성의 주위로 가시밭이 만들어졌다.
이때 팽무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팔방에서 소나기가 내리듯 쏟아지던 암기가 조금씩 줄어드는 방향이 있었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팽무성은 이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마냥 암기만 날리지 않는 듯 공백인 방향으로 살수들이 접근해왔다.
바로 한 걸음만 잘못 걸어도 온몸에 수십의 암기가 박힐 텐데 놀라운 담력이었다.
파공음을 내며 화려하게 날아오는 암기와 다르게 살수들은 소리를 죽이며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정면에서 하나, 후방으로 둘.
살수들은 일검으로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살수들은 순간 바람이 분다는 느낌을 받았다.
샤악
암살 대상이 죽는지도 모르게 암살하는 것이 우수한 살수의 덕목이었다.
그러나 정작 살수들은 그 덕목을 직접 몸으로 느끼며 칼을 찔러내던 자세 그대로 고꾸라졌다.
살수들이 기울어지며 팽무성 대신 몸으로 암기를 받아냈고 팽무성은 그에 도를 땅에 그어냈다.
바닥이 폭발에 비산하며 잠시 상황이 어수선해졌다.
쿠과과강
암기 세례가 잠시 약해진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팽무성은 도를 내질렀다.
도막을 펼쳐내며 암기들이 날아오는 방향과 소리를 놓치지 않기에 가능한 한 수였다.
도격과 함께 붉은빛이 끊임없이 번쩍였다.
내공 조절은 하지 않았다.
아예 주변을 초토화시킨다는 일념으로 도기와 도풍을 마음껏 쏟아냈다.
쿠르릉
도를 좌우로 연달아 그어내서 건물을 기둥째로 무너트렸다.
그 여파에 건물에서 빠져 나온 살수들은 여지없이 팽무성의 도를 감당해야 했다.
팽무성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진한 독무가 퍼져 올랐다.
독무를 가르고 갖가지 암기가 쏟아졌지만 팽무성은 끊임없이 전진하며 앞을 막는 것을 모조리 박살 내고 있었다.
이러니 포위망이 흐트러지고 살수들이 팽무성을 쫓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미친놈이.”
두 번째 저지선을 책임지고 있던 삼혈은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쿠릉
벌써 다섯 번째 건물이 무너지며 사방으로 먼지를 토해냈다.
‘저런 무식한 방법으로 본문의 포위망을 무너트릴 줄이야.’
그러나 실상은 팽무성이 단순하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비교적 살수들이 뭉쳐있는 배치와 건물의 위치를 눈에 담으며 효율적인 경로를 택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러면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니 두 번째 저지선은 반쯤은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삼혈은 순간 놓쳐버린 팽무성을 찾기 위해 안력을 끌어올렸다.
“네가 제일 강해 보이는데.”
팽무성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살수가 등 뒤를 잡히다니 치욕이었다.
하지만 삼혈은 그 찰나에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칼을 잡는 대신 연막을 터트리며 도망치는 것을 택한 것이다.
팽무성에게 모습까지 보인 마당에 정면으로 꺾을 수는 없단 판단 때문이었다.
“이미 어두운데 연막은 왜 터트리는 거야.”
삼혈이 바로 몸을 날렸지만 도망치는 방향에는 이미 팽무성의 손이 있었다.
이에 기겁한 삼혈이 급히 몸을 틀었으나 반원을 그리며 따라오는 팽무성의 손에 삼혈의 목이 쏙 들어갔다.
“컥.”
호왕잔연의 수로 삼혈의 목을 잡아챈 팽무성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뚜둑
삼혈의 목이 부러지는 소리를 끝으로 주변에의 어둠은 침묵했다.
“마지막 저지선을 뚫고 있습니다. 길을 열 테니 바로 전각으로 가시지요.”
“그래.”
천살택문의 살수들은 빠른 속도로 두 개의 저지선을 정리하고 마지막 저지선을 돌파 중이었다.
고작 분타의 살수들이건만 혈루문의 살수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 중이었다.
팽무성은 든든한 날개를 가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지하고는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혈루문주. 기다리고 있어라.”
팽무성은 오 층 전각의 꼭대기에 서 있는 인영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밤은 점점 깊어져 가고 있었다.
야밤의 빚 청산.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