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48)
47화
“방금 팽무성이 출발했다고 합니다.”
언지환의 보고에도 팽대혁은 대꾸 없이 무언가 고심에 빠져있었다.
“아직도 망설이십니까.”
“당연하지. 이런 일이 애초에 성공확률이 높은 것도 아니지 않나.”
살짝 높아진 팽대혁의 목소리에 언지환은 내심 안도했다.
혹여나 갑자기 팽가에 대한 정이나 소속감 때문에 망설이는가 했더니 온전히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번 일에 가장 큰 변수인 팽무성. 그리고 저희에게 속하지 않은 타격대를 두 개나 딸려서 보냈습니다. 그만큼 팽가의 전력은 줄어든 셈입니다.”
언지환이 천천히 달랬음에도 팽대혁은 여전히 뚱한 표정이었다.
“전력이 더해진 만큼 빨리 돌아올 수도 있지 않나.”
상대는 흑랑대를 비롯한 마랑문의 무인들.
팽무성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그 뒤로 따라오는 두 개의 타격대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자칫하다가는 하루 만에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약을 쳐두었더니 마랑문에서 추가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마랑문도 팽가에 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언지환이 일을 크게 벌여놓았으니, 팽무성도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흐음.”
팽대혁은 찻잔을 매만지며 고민이 섞인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태상가주께서 유령대를 보내실 것입니다.”
“유령대를?”
유령대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팽대혁의 말이 밝아졌다.
진주언가의 대계를 위해 언가후가 직접 비밀리에 키운 무인들. 언가후의 말이라면 어떤 명령이든 수행하는 이들이었다.
언가 내에서 이름이 존재하지 않기에 이런 일에 나서기에 제격이었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니 대공자께서는 마음만 다잡으시면 됩니다.”
“그래. 자잘한 것에 고민을 하면 안되겠지.”
팽가를 장악할 미래를 떠올리는 팽대혁의 입가에 그려진 호선은 더더욱 짙어졌다.
* * *
흥륭은 제법 규모가 있는 도시였기에 팽가에서도 분타를 만들어 무인을 파견해 놓은 상황이었다.
팽중혁은 그 분타의 대청에서 부상 당한 수하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대체로 상태가 호전되었습니다. 중상인 자들도 이제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다행이군.”
마랑문도들은 흥륭의 상인들을 마구잡이로 핍박하거나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며 흥륭의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흥륭 분타가 나섰지만, 괜한 충돌과 분란을 만들지 말란 본가의 지침이 있었기에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마랑문도의 소행은 더욱 과감해졌다.결국,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일에 인력조차 분산되며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예기치 못한 흑랑대의 이번 습격은 커다란 위기였다.
다행히 때를 맞춰 도착한 이공자가 아니었다면 흑랑대가 흥륭 분타의 문턱을 밟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본가는 몸을 사리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팽중혁은 대공자와 그 세력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마땅히 나서야 할 일에도 나서지 않는다면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팽중혁의 말에 공감하는 듯 옆에 있던 가솔들이 살짝 흥분하여 입을 열었다.
“일 년 전에도 적성(赤城)에서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결국 분타를 철수시켰습니다. 이대로라면 마랑문이 조금씩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적성은 흥륭보다 위쪽에 있는 지역으로, 원래는 팽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완전한 마랑문의 땅이었다.
“뺏긴다면 모를까 지금의 팽가는 내어주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너희들의 말이 옳다.”
가솔들의 말을 듣던 팽중혁이 주먹을 쥐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무인들을 더 많이 데려왔어야 했는데 아쉬운 면이 있었다.
“본가의 소식은?”
“지원을 보냈다고 서신이 당도했으니 오늘, 아니면 내일 아침에 도착할 것입니다.”
“지원 병력이 도착하면 곧장 마랑문을 몰아낼 것이다.”
“알겠습니다.”
회의가 갈무리될 그때, 분타의 무인이 황급히 대청으로 들어왔다.
“이공자, 흑랑대를 필두로 마랑문도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에 팽중혁은 얼굴을 굳혔지만, 옆에 풀어놓은 도를 집으며 벌떡 일어섰다.
“준비해라!”
“예.”
팽중혁을 필두로 분타의 무인들은 밖으로 나섰다.
쾅
닫아두었던 대문이 입을 벌리고 마침내 흑랑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흑랑대의 행태에 팽중혁이 고함을 질렀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그 더러운 발을 들이미는 거냐!”
이에 흑랑대주가 흠칫거리며 귀를 막았다.
“목청 한번 더럽게 크네.”
흑랑대주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수하들에게 적당히 지시를 내리고 기루에서 놀고 있던 차에 위에서 명령이 떨어진 탓이었다.
소문주를 비롯한 추가 지원이 내려오는 중이니 흥륭 분타를 미리 정리해 놓으라는 명령이었다.
‘소문주도 어지간히 급한가 보구나. 이곳까지 직접 내려오다니.’
귀를 후빈 흑랑대주는 대원들 사이에서 튀어나와 팽중혁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이보시오, 이공자. 시간을 드리겠소. 가솔들을 데리고 이곳을 비우시오.”
흑랑대주의 말에 팽중혁의 눈썹이 치솟아 올랐다.
“뭐라고?”
“머릿수 차이를 보시오. 괜한 고집 부리지 마시고 원래 하던 대로 하시오.”
확실히 마랑대만 해도 팽중혁이 데려온 인원보다 많았다. 거기에 다른 마랑문도들이 있으니 숫자의 차이가 컸다.
팽중혁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흑랑대주의 뒷말이 팽중혁의 가슴을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하던 대로 하라고?’
팽중혁은 마랑문이 하북팽가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확인했다.
샤앙
현재 심정을 대변하듯 팽중혁은 거칠게 도를 뽑아냈다. 뒤이어 양옆으로 포진해있던 가솔들도 도를 뽑아 마랑문도를 겨누었다.
“더는 팽가가 물러설 일은 없을 것이다.”
“하아.”
흑랑대주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흑랑대주는 흑랑대원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까닥거렸다.
챠앙
이에 흑랑대도 검을 뽑아내자 양측을 서로를 겨누며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왜 하필 우리가 왔을 때 이러는지 모르겠군.”
흑랑대주는 건들거리며 검을 뽑아내 하단으로 내렸다.
“이래서 정파 새끼들은 말이 안 통한다니까. 치워!”
흑랑대주의 명령에 마랑문도는 일제히 팽가 가솔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방진을 구성하고 자리를 유지해라!”
한차례 몰아치는 공격에 팽중혁은 명령을 내리며 도를 찔러넣었다.
팽중혁의 도는 팽가 가솔들이 보통 사용하는 면이 넓은 유엽도와 달랐다.
도병은 짧아서 한 손으로 잡게 되었고 도신은 얇고 긴 직도(直刀)였다.
전형적인 쾌도를 펼치기 위해 사용하는 도였다.
팽중혁의 도극을 끝으로 열 줄기의 도영이 쏟아졌다.
“칵.”
“아악!”
그 속도가 매우 빨라서 도영을 인지했을 때에는 이미 몸 한쪽이 베이거나 뚫려있었다.
스스스슥
마랑문도 중에 팽중혁의 도를 따라갈 눈을 지닌 이는 없었다.
마랑문도들은 눈앞에 갑자기 직도가 나타나는 광경에 혼이 쏙 빠지고 있었다.
팽중혁은 순식간에 다섯이 넘는 마랑문도를 베어내고 있었다.
이를 뒤에서 지켜보던 흑랑대주는 살짝 놀라서 팽중혁을 쳐다보았다.
“연환탈백도인가. 제법 하는 놈이었군.”
연환탈백도(連環奪魄刀).
팽가의 도법 대부분이 중도(重刀)인 만큼 쾌도(快刀)는 드물었다.
연환탈백도는 팽가의 몇 없는 쾌도 중에서도 상승 도법이었다.
팽중혁도 혼원벽력도를 수련한 적이 있었으나 점점 깊게 파고들수록 대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팽가 최강의 도법이라는 이름에 미련이 남았으나 팽중혁은 미련 없이 털어놓았다.
그 대신에 선택한 것이 연환탈백도였다.
촤악
마랑문도의 목에 도를 찔러 넣자 팽중혁의 얼굴에도 핏물이 뿌려졌다.
‘이놈, 나서지 않는구나.’
팽중혁이 무지막지한 기세로 밀어붙이고 있으나 흑랑대주는 수하들의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좀 더 힘이 빠지면 잡아야겠군.’
흑랑대주의 입장에서는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이번 일은 소문주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 피해가 얼마나 나던지 그저 명령을 완수하면 그만이었다.
그 과정에서 흑랑대원이 죽으면 조금 아깝겠지만 말이다.
“둘러싸서 쳐라!”
마랑문이라고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마랑문도들이 속절없이 죽자 뒤에 있던 흑랑대가 나섰다.
확실히 일반 무인과 타격대는 다른 면이 있었다.
채채챙
거침없이 들어오던 팽중혁의 발걸음이 다섯 자루의 검에 막혀 멈추었다.
팽중혁은 이내 좌측 무인의 허리를 베어내며 옆으로 빠졌지만 그런 팽중혁의 얼굴로 돌과 흙이 뿌려졌다.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파의 모습이 엿보였다.
“큭.”
팽중혁은 급히 손을 휘둘러 막아냈지만, 그 틈에 흑랑대원이 팽중혁의 허리를 후려 찼다.
이에 팽중혁은 옆으로 밀려났지만, 직도를 땅에 끌어 균형을 잡았다.
내공이 실린 각법에 당해 고통이 심했지만 팽중혁은 곧바로 흑랑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자신에게 시선이 끌려야 뒤에서 싸우는 가솔들이 조금이나마 더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팽중혁은 흑랑대 속을 누비며 전력으로 도를 휘둘렀지만, 점점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놈, 느려졌다. 쉬지 말고 밀어붙여!”
흑랑대주의 명령에 흑랑대는 더욱 격력하게 팽중혁을 물고 늘어졌다.
그 귀신이 휘두르는 듯한 면모를 보이던 연혼탈백도도 점점 느려져서 마랑문도의 눈에도 그냥 빠른 도격으로 보일 정도였다.
“크합!”
등 뒤로 흑랑대원이 검을 찔러넣었지만, 팽중혁의 도가 더욱 빨랐다.
“후우.”
팽중혁은 도를 박아넣은 채로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흑랑대주는 팽중혁이 도를 뽑을 생각도 못 하고 호흡을 고르는 모습에 이 때다 싶어 몸을 날렸다.
“어이, 많이도 죽였구나!”
흑랑대주는 그대로 뛰어올라 팽중혁의 머리를 내려쳤다.
꺼엉
급히 도를 뽑아 막아냈지만 자세가 비틀어져 팽중혁은 땅을 굴러야 했다.
“이 정도면 팽가의 의기는 충분히 봤다고. 이제 끝을 내지.”
흑랑대주가 비아냥거리며 팽중혁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후웅
그 순간 대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이, 이건!’
팽중혁은 변화를 감지했다.
쿠웅
커다란 발구름 소리.
소리만 듣는데도 누군가의 분노가 느껴졌다.
흑랑대주는 순간 왜인지 숨을 멈춰야만 할 것 같았다. 숨소리만 들려도 소리의 주인이 자신을 노릴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쿵
“컥.”
“어억.”
마랑문도들은 누군가 위에서 깔고 누른 듯 쓰러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압력이 마랑문도의 전신을 압박하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대부분은 신음조차 내지 못했고 개중에서 뛰어난 일부만이 입을 열었다.
반면 이를 상대하던 가솔들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의아할 따름이었다.
입에 들어간 흙을 뱉어내고 숨을 고르던 팽중혁만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이 무공을 수련 중이기 때문이었다.
‘성취가 다른 탓인가. 내가 펼치는 산왕군림보와 전혀 다르구나.’
여기저기서 흑랑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주.”
“살려주십쇼.”
하지만 흑랑대주는 흑랑대원의 애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끄윽.”
흑랑대주 자신조차 압력을 이겨내지 못해 두 무릎을 꿇은 상황이었다.
머리는 간신히 들고 있었으나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대문 사이로 홀로 들어오는 거대한 사내.
크게 떠진 호안에는 짙은 살기가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흑랑대주는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 저 사내임을 짐작했다.
“너희들이냐. 둘째 형님을 저렇게 만든 것이?”
압력에 버텨내느라 얼굴이 붉어진 흑랑대주에게 팽무성의 시선이 향했다.
흑랑대주와 팽중혁을 보던 팽무성은 곧장 흑랑대주에게 향했다.
팽무성이 가까워질 때마다 흑랑대주의 머릿속에서는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쿵쿵
심장은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로 거칠게 뛰고 있었다.
팽무성이 다가오자 흑랑대주는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려 입을 열었다.
“본문의 소문주가 오는 중이오. 나를 죽이면 좋은 꼴은 못 볼 것이오.”
흑랑대주의 말에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흑랑대주의 얼굴에는 살았다는 안도감이 서렸다.
“소문주와는 내가 따로 얘기한다.”
콰직
팽무성은 그대로 흑랑대주의 목을 밟아 목뼈를 부러뜨렸다.
“팽호대.”
팽무성의 외침에 담장 위로 팽호대가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리해라.”
“존명!”
철호와 덕삼을 기점으로 팽호대는 서릿발 같은 기세를 흘려내며 도병을 잡았다.
이에 산왕군림보에 벗어나지 못한 마랑문도들의 눈알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둘째 형님. 괜찮으십니까.”
팽무성은 일어서는 팽중혁의 한쪽 팔을 잡아주었다.
“됐다. 내가 막내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구나.”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아니. 조금 지쳤을 뿐이야.”
팽무성은 팽중혁의 몸을 살피며 말했다.
“오면서 정보를 받았는데 마랑문에서 추가 병력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팽중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점점 일의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랑문과 전면전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풍도대와 흑호대는 먼저 보내서 마랑문이 오는 길목에 배치를 명령했습니다.”
팽중혁은 팽무성의 등을 두드리며 웃었다.
“잘했다. 우리도 바로 합류하자.”
“예. 둘째 형님.”
팽중혁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팽무성의 옆모습을 올려다봤다.
‘이 녀석이 이렇게 컸었나.’
마랑문의 추가 병력이 내려온다고는 하나 팽중혁은 전혀 근심이 없었다.
팽무성과 함께라면 옆이 든든했기 때문이었다.
팽가의 병력은 분타를 빠르게 정리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팽호대.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