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53)
52화
팽영대.
오직 하북팽가 가주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무인들.
이들이 도를 들고 본연의 무위를 선보이는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삼 열 후퇴. 사 열 앞으로. 반보씩 진형을 좁혀서 상대하라.”
팽영대주의 명령에 따라 팽영대는 자로 잰듯한 움직임을 내보였다.
명령과 기합에 맞추어 일제히 쏟아지는 도기.
촤자자작
콰아앙
이윽고 고작 삼십 명이 전원인 팽영대가 백여 명의 무인들을 밀어내는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들이 팽영대…”
“정말 놀랍군.”
팽영대의 뒤쪽에 있던 이들은 감탄을 연달아 흘려냈다. 특히 팽소혁은 입을 쩍 벌리며 경악하는 수준이었다.
원래는 이들도 전투에 합류하려 했으나 질풍처럼 몰아치는 팽영대의 연격에 차마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쉴새 없이 교차하는 팽영대의 넓은 등이 이곳은 우리의 전장이라 대변하는 듯했다.
“과연 팽영대… 더럽게 강하군.”
“예상 이상이군요.”
그에 팽대혁의 진영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오묘한 반응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팽영대의 무위는 실로 대단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팽대혁은 손에 들어간 힘을 빼며 중얼거렸다.
“빈객과 핵심 병력은 빼고 나머지를 끊임없이 투입하시오. 저들의 힘을 뺍시다.”
애초에 팽영대는 유령대의 상대였다.
팽대혁은 예상 이상의 무공을 지닌 팽영대에 놀라기는 했지만,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팽영대가 제아무리 강하다 한들 유령대가 도착하기만 한다면 다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이제 한 걸음만 남았다.’
여유를 가장했지만, 팽대혁의 눈에는 한 줄기 조급함이 담겨있었다.
“계속 밀어붙여라.”
“쉴 틈을 주지 마라!”
거세게 압박을 요하는 팽대혁의 지시에 무인들은 끊인없이 도를 휘둘렀고, 곳곳에선 비명과 살생이 자아졌다.
한차례 몰아치는 인해전술이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지 팽영대의 진형이 조금씩 뒤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삼공자의 세력도 결국 손을 거들었지만, 중과부적임은 마찬가지였다.
“허억.”
“후우.”
팽영대원의 턱선을 따라 땀이 방울져서 뚝뚝 떨어졌다.
시간이 지나자 철벽같던 팽영대의 방진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샤악
“조심해라!”
“예.”
자잘한 부상을 입는 팽영대원이 하나둘 속출하기 시작했다.
“쓰읍.”
그러한 궁지 속에서 팽영대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그래야 도를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넓었던 가주전 앞이 시체와 부상자로 채워지고 있었다.
팽영대의 분전으로 팽대혁 세력의 피해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에 드높은 사기를 보이던 처음과 달리 무인들도 조금씩 몸을 사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이를 보며 팽대혁은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팽영대도 지치는 기색이 보였고 조금씩 가주전에 가까워지고는 있으나 이대로라면 손해가 너무 컸다.
이에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인내의 끈이 뚝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유령대는 왜 아직도 당도하지 않은 건가. 이미 약속 시각을 넘겼는데!”
가주전의 문턱만 넘으면 모든 것이 끝나거늘, 여기서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팽대혁이 아껴놓았던 핵심 전력을 사용하기 위해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그런데.
쾅
고함을 지르는 팽대혁의 앞에 무엇인가 떨어졌다. 시체를 살피던 팽대혁을 비롯한 무인들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뭐야.”
“사람, 아니 시체인가.”
붉게 물든 백의를 입고 있는 노인의 시신.
난발이 된 백발 때문에 얼굴의 일부가 가려졌지만, 그 형체를 알아보긴 어렵지 않았다.
‘유령대를 이끌고 팽가를 휩쓸어야 할 장본인이 왜 시체가 되어서 왔단 말인가.’
팽대혁의 뒤에서 이를 확인한 언지환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게 네가 그렇게 찾던 유령대냐?”
담장 위로 모습을 드러낸 팽무성을 보고 팽대혁과 언지환의 얼굴이 굳어졌다.
‘팽무성이 유령대주를 벨 정도의 무공을 지녔었다고? 예상치 못한 일이다.’
언지환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팽대혁의 눈치를 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아아. 살았다.”
팽소혁은 낮은 탄성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살짝 주저앉았다.
팽무성을 본 안도감 때문인지 전신의 긴장이 풀려 몸에 힘이 빠진 탓이었다.
“이 새끼. 정문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병력을 겹겹이 배치해놨던데 덕분에 고생 좀 했다.”
실제로 그 병력을 뚫고 타격대와 같이 오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팽중혁에게 타격대를 맡기고 팽무성만 먼저 가주전에 온 상황이었다.
“팽대혁. 이제 어떻게 할 테냐.”
팽무성이 허리를 펴자 전신에서 위압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갈무리했던 기세도 마음껏 풀어내자 금세 주변의 공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그극
팽무성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쏟아지는 기세에 담장의 기와들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피부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찌릿함.
팽대혁은 팽무성의 기세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분노하지도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팽대혁은 침착하게 팽무성을 올려다보았다.
“네놈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이 많은 팽가 가솔들을 죽이기라도 할 셈이냐?”
실제로 팽대혁의 뒤로는 그를 따르는 가솔들이 즐비해 있었다.
팽대혁은 손을 들어 팽무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란의 수괴 중 하나인 사공자가 이곳에 있다. 생포가 어렵다면 죽여도 좋다!”
팽대혁의 눈짓에 팽영대의 전투를 지켜보며 내공을 아끼던 빈객들도 일제히 나섰다.
빈객들도 팽무성이 만만치 않은 적임을 알았기에 긴장한 얼굴들이었다.
수십의 빈객이 팽무성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다른 병력들도 다시 팽영대를 향해 움직이려고 했다.
다시 진영 간의 충돌이 벌어지려는 그 순간.
끼이익
경첩 소리와 함께 가주전에 있는 세 개의 문이 연달아 열렸다.
그에 모두의 시선이 순간 가주전으로 쏠렸다.
정리되지 않은 산발과 구겨진 의복.
병자 같은 허연 피부와 푹 패인 볼살은 그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하는 불꽃 같은 안광은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여 그 누구도 이 중년인을 쉽게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가주전에서 홀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팽진연.
그 뒤로는 시비 몇 명과 가월이 뒤따르고 있었다. 시비들이 팽진연을 부축하려 했지만 팽진연은 손을 휘저었다.
“형님!”
“가주!”
팽연후와 무후각주는 경악과 감격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근 이십여 일 동안 거의 눈을 뜨지 못한 팽진연이었다.
이런 위기에 갑자기 정신을 차리다니. 팽연후로서는 감정이 울컥할 따름이었다.
가주전은 다른 전각보다 높은 지대에 지어져 팽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지어져 있었다.
팽진연은 하늘을 한 번 보고 팽가 전역을 한 번씩 눈에 담았다.
주화입마에 빠졌다 하여 완전히 무공을 잃는 것은 아니었다.
팽진연은 대략이나마 팽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지할 수 있었다.
“가문의 꼴이 말이 아니군.”
마른 입술이 쩍 갈라지며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팽진연의 눈이 아래를 향했다.
정확히는 팽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월에게 얘기는 다 들었다. 첫째야. 언가를 선택한 것이냐.”
팽진연의 입에서 언가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반란의 실상을 모르고 그저 가주패에 의해 명령을 따랐던 가솔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팽진연은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저 타이르듯이 팽대혁에게 물었다.
그에 팽대혁의 입술이 비틀어지더니 결국은 일그러졌다.
“정말 아버님은 도움이 안 되시는군요. 계속 전처럼 누워계시지 그러셨습니까.”
팽대혁은 속사포로 말을 뱉어냈다.
“아버님의 책임도 큽니다. 아버님이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고 멀쩡했다면 언가에서 이리 노골적으로 팽가를 노렸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망해가는 가문. 저는 실리를 택했을 뿐입니다.”
이를 옆에서 듣고 있던 팽무성이 일갈을 내질렀다.
“미친 새끼. 네가 욕망에 중심을 못 잡고 언가의 꼬임에 넘어간 게 아버님의 탓을 하려는 거냐!”
“네놈 따위가 뭘 알겠느냐!”
팽대혁과 팽무성의 말을 듣고 있던 팽진연은 미간을 좁혔다.
“그런가.”
잠시 사그라들던 팽진연의 안광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욱 영롱했다.
“들어라!”
팽진연의 쩌렁쩌랑한 외침이 팽가를 울렸다. 내공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팽진연의 목가에는 핏줄이 올라 붉어진 상태였다.
팽무성조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팽진연의 목소리에 전율이 일었다.
“스스로 팽가의 가솔이라 여기는 자. 이 가주패 앞에 무릎을 꿇어라!”
팽진연의 손에서 등장한 붉은 가주패.
이를 본 가솔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가주패가 두 개일리는 없는 일.
그것은 하나가 가짜일 것이 자명해진 순간이었다.
가주가 방금 언급한 언가. 그리고 두 개의 가주패.
이제 명확한 진실을 모르던 가솔들도 사태가 어떻게 흐르는 중인지 깨달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가짜였나.”
“우리가 농락당했군.”
“대공자! 우리의 충심을 당신의 욕망에 이용한 것이오!”
여기저기서 가솔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쿵
팽진연은 진각을 밟으며 다시 외쳤다.
그 목소리에는 무시 못 할 힘이 담겨있었다.
“무릎 꿇지 않는 자! 반란에 동조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팽진연의 위엄이 가문을 흔들자 가솔들은 급히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팽진연의 시야에서는 마치 파도가 치는 광경을 보는 듯했다.
팽무성을 비롯한 인원들도 무릎을 꿇자 서 있는 것은 대공자를 비롯한 심복들과 일주각에 소속된 무인, 그리고 빈객들이었다.
“대공자. 선택할 기회는 줬음이다.”
“제가 무릎을 꿇는다고 무엇이 달라집니까.”
팽진연은 팽대혁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결정을 내린 듯 억눌린 목소리로 외쳤다.
“이 자리에 모인 팽가 가솔들은 반란을 모의한 자들을 진압하라!”
“가주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통일된 우렁찬 목소리가 전각을 흔들어냈다.
촤라랑
팽가 가솔들은 신속하게 일어나며 도를 뽑아냈다. 이는 안쪽의 팽연후를 비롯한 무후각주도 마찬가지였다.
“후후후.”
팽대혁은 뒤쪽을 보며 처량하게 웃었다.
방금까지는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벽이 이제는 도망칠 길을 막는 절벽이 된 상황이었다.
“도망칠 길은 없다. 다 죽여라.”
채챙
파파팡
콰앙
팽대혁의 명령이 떨어지자 충돌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도망도, 목숨을 구걸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탓일까. 팽대혁의 세력은 한 명이라도 더 길동무로 데려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비켜라.”
촤아악
도사를 머금은 팽무성의 도가 사정없이 그어지며 빈객들을 사방으로 흩어놓았다.
“크아악!”
“이놈이라도 죽여야 언가의 일이 수월해진다!”
빈객들도 몸을 불사르는 불나방처럼 팔다리가 잘려나가면서도 도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팽무성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굽이치는 도기와 도풍으로 빈객들을 휩쓴 팽무성은 팽대혁을 향해 쏘아졌다.
앞을 가로막는 일주각의 무인들을 쳐내고 그 뒤에 숨어있는 팽대혁의 목을 향해 도를 날렸다.
꽈앙
팽대혁은 이를 악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놈!”
도를 막아내는 팽대혁의 팔다리는 쉴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팽무성의 파괴력은 팽대혁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이 질긴 악연의 끝이 보이는구나.”
팽무성의 혼잣말에 팽대혁이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팽대혁은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려 팽무성의 도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팽무성의 도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자신의 도가 밀려나고 있었다.
“하나만 묻지. 대체 무엇 때문에 언가의 지시를 받는 거냐. 아무리 외가라도 너는 결국 팽 씨 성을 가진 팽가의 대공자가 아니냐.”
팽대혁은 특유의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큭. 기울어 가는 가문의 대공자가 무슨 자랑이냐. 나는 팽가보다 언가가 나를 더 강하고 높게 이끌어줄 수단이라 여겼을 뿐이다.”
이에 팽무성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래. 너는 그 정도 인간이었지.”
그렇기에 서슴없이 형제의 암살을 의뢰하고 가문을 위해 수많은 전장에서 헌신한 타격대를 손쉽게 버릴 수 있었으리라.
쩌적
격앙되는 감정 속에 팽무성의 도가 붉어지기 시작하자 팽대혁의 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엇?”
금이 점점 커지자 팽대혁의 눈동자도 이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쨍그랑
마침내 팽대혁의 도가 반으로 갈라지고 팽무성은 수직으로 도를 베어냈다.
푸학
“끄아아악! 내 팔!”
팽대혁의 오른팔이 땅에 떨어져 꿈틀거렸고 피분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투투퉁
고통에 몸부림치는 팽대혁의 몸으로 지풍이 날아들었다.
지풍이 잘린 팔 주위의 혈을 막자 서서히 지혈되기 시작했다.
“목을 치고 싶지만 팔로 대신하마.”
팽무성은 팽대혁의 앞머리를 잡아끌어 고통에 초점 없는 눈을 자신의 호안에 가져갔다.
“일을 이렇게 크게 벌렸으니 네가 다 짊어져야 하지 않겠냐.”
* * *
“제기랄! 일이 망하려니 이렇게까지 망해버리는 건가.”
언지환은 홀로 몸을 숨기며 다급히 팽가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팽무성에 뒤이어 정신을 잃은 팽진연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언지환은 더는 가망이 없다고 여겼다.
언지환은 빠른 상황판단으로 팽대혁은 내버려 두고 몰래 살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후우. 장강 이남으로 도망가야겠군.”
언지환은 언가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유령대까지 동원했음에도 대계를 실패한 자신을 언가후가 살려둘 리가 없었다.
설령 살려둔다 한들 언가의 꼬리를 자르기 위해서 쓰일 것이 분명했다.
언지환은 평소에 팽가를 드나들 때 자주 애용하던 통로로 향하고 있었다.
“누구냐.”
언지환은 누군가 앞길을 지키고 있자 걸음을 멈추었다.
그늘 속에서 드러난 인물은 가월이었다.
이에 언지환도 살기가 섞인 웃음을 내보였다.
“그래. 네년 때문에 일이 틀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 네년을 죽이고 가면 속이 조금은 편하겠구나.”
냉기를 내뿜는 가월은 나직이 말했다.
“내가 살수임은 알고 있겠지.”
“그래. 출신은 모르겠지만 정황상 거의 확실하더군.”
“그거 아나? 살수는 먼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 순간 언지환은 시야가 흔들림을 느꼈다.
“살수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이미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다.”
어느새 언지환의 뒤에 있는 가월의 손에는 휘어진 단도 두 자루가 들려있었다.
“어…”
텅
언지환의 머리는 이미 땅을 구르고 있었다.
수습과 준비.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