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55)
54화
무신총으로 인해 시끄러웠던 무림이 간신히 잠잠해지려던 차에 다시 파문이 일고 있었다.
팽가에서 보낸 두 장의 서신 때문이었다.
한 장은 무림맹 본성, 다른 한 장은 백가회주가 있는 남궁세가로 향했다.
이윽고 무림맹에서 서신의 내용이 공론화되며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오대세가 중 하나인 명문세가라는 작자들이 어찌 다른 가문의 반란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명문정파라는 이름이 부끄럽군.”
“허허, 말세로구만. 세가의 대공자가 무엇이 아쉬워서 반란을 일으켰을까. 외가의 힘까지 빌려서.”
“이리 가까이 와보게. 내가 무림맹에 아는 친우가 있어서 물어봤는데…”
호사가들의 입에서 팽가와 언가의 이름이 내려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언가는 정파라고 볼 수 없는 행동을 저질렀기에 정사지간이었던 옛 과거까지 들춰지며 무림인들에게 지탄받고 있었다.
보통 사안이 아닌 만큼 무림맹과 백가회의 대응은 빨랐다. 곧바로 언가에게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래서 이 두 서신이 무림맹과 백가회에서 왔단 말이냐.”
“예, 아버님.”
언가후는 자신 앞에 놓인 두 장의 서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서신을 내려다보는 두 눈은 업화 마냥 타오르고 있었다.
만약 매서운 눈빛만으로 불을 붙일 수 있다면 서신은 이미 불이 붙어 재가 되었을 것이다.
언사인은 언가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무림맹에서 서신과 함께 보내온 증좌들을 봤는데 한둘이 아니라 언가와 상관없음을 부정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반란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이렇게 빨리 움직이다니. 미리 준비했던 건가.”
팽가는 지금도 한참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을 터, 어떻게 이런 상세한 증거들을 모을 수 있었을까.
덕분에 꼬리를 자르고 모르쇠로 일관할 준비를 하던 언가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보내온 증좌들은 시작에 불가합니다. 팽가 뇌옥에 본가와 관련된 이들이 상당하고 유령대도 몇몇 생포되었다 합니다.”
언가후의 눈썹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이번 일에 가담한 이들 중에는 충성으로 움직이는 이들도 있으나 그저 돈 때문에 행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놈들이 목 밑에 칼이 들어오는데 끝까지 침묵할 리가 없었다.
“거기에 오늘 대혁이의 무공을 폐하는 형벌이 집행되었다고 합니다.”
팽 씨 성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언가의 피가 섞여 있지 않은가. 사사롭게는 언사인의 조카이기도 했다.
그탓에 언사인의 입맛은 제법 썼지만 언가후는 다른 모양이었다.
“이제 그놈이 어찌 되든 내 알 바가 아니다.”
대계를 실패하고 언가에 피해 입힌 자손 따위, 언가후에게 더는 가치가 없었다.
언가후는 팽대혁에 대한 걱정 대신에 앞날을 가늠하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본가에 불리하겠군.”
“반란을 실패한 것도 문제지만 그 이후에 제대로 당했습니다. 설마 팽가가 먼저 공론화시키는 대담한 행동을 벌일 줄은…”
꽈드득
무릎 위에 올려진 언가후의 주먹이 말아지며 살벌한 소리가 났다.
‘팽무성, 아마 네놈이 벌인 일이겠지. 팽가의 행보에서 네놈의 냄새가 나는구나.’
문득 언가후는 팽진연과 자신의 딸을 정략혼인을 시키며 훗날을 기약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허나 그때는 이런 상황을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던 팽가였다.
그런 팽가가 어느 순간부터 예측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팽무성이라는 새롭게 나타난 눈엣가시 때문이었다.
언가후는 자신이 몇십 년 동안 준비했던 대계가 삐걱거리며 기울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무림맹과 백가회가 아니더라도 여러 문파에서 본가를 지탄하며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대세가의 남궁세가, 사천당가, 황보세가가 나섰고 구파일방에서도 소림, 무당, 개방이 목소리를 높이며 언가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언가후라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언사인은 물론이고 언가후조차도 이만한 대문파들이 일제히 팽가를 두둔하고 나섰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오대세가는 그렇다 치고 구파일방 이것들은 왜 팽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냐.”
“저번 무림총에 파견된 제자들의 대부분이 이 세 문파 출신입니다. 팽무성 덕에 무신총의 일이 순탄하게 마무리되었으니 감사를 표하는 것이겠지요.”
“흐음.”
언가후는 매우 언짢은 듯 수염을 만지는 손길에서 짜증이 묻어나왔다.
“주동자는 원래 진행하던 대로 언자한으로 내보이고 언가는 꼬리를 끊어라.”
“하오나 그 정도로 무림의 이목을 돌리는 것은 어려울 듯합니다. 무림맹 하북지부에서 언가로 보낼 조사단까지 준비시키고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도 실패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언가후의 말에 언사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불길한 예감이 든 탓이었다.
“본가는 이 년간 봉문한다. 가문의 가솔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봉문을 한다면 무림맹도 더는 얘기를 꺼내지 못할 것이다.”
“흐음.”
언사인은 턱을 만지며 빠르게 셈을 했다.
봉문을 하면 그 기간 외부 활동을 할 수가 없기에 언가는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무림맹과 백가회를 중심으로 다수의 명문이 언가를 눈에 불을 켜고 노리는 이상 봉문은 그리 나쁜 수는 아니었다.
이 년이라는 시간이라면 세인들의 관심을 돌리기에도 좋았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본가도 유령대를 비롯해 많은 손해를 입었으니 내실을 다지는 기간으로 여겨야겠군요.”
언사인은 명령을 행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언가후 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후우웅
언가후의 전신에서 거센 기세가 흘러나오자 마치 전각 안에 작은 태풍이 이는듯했다.
기세에 견디지 못한 전각의 기둥이 갈라지며 쩍 소리를 냈고 전각 전체가 잘게 흔들리며 먼지를 털어냈다.
“팽무성, 팽가는 앞으로 이 년을 알차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언가가 봉문을 풀고 다시 무림으로 나설 때 팽가는 다시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하북팽가 사주각에 세 명의 공자들은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팽중혁과 팽소혁, 그리고 팽무성.
좀처럼 모이기 힘든 조합이었다.
머리가 어느 정도 자라고 서로가 경쟁 상대라 여기며 자연스레 거리가 벌어진 탓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고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번 일에 모두 고생했다. 마시자.”
팽중혁은 손수 동생들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예, 둘째 형님.”
“야, 막내야. 이번에 얼마나 받은 재물들은 어디다 쓸 셈이냐.”
팽무성은 커다란 공로를 세운 덕분에 일주각의 재물 대부분을 상으로 얻었다.
변변찮은 재력을 지닌 사주각이 이주각과 삼주각을 제치고 단번에 부상한 순간이었다.
“흠. 일단 팽호대에 좀 투자를 해야겠지.”
“함께 싸워보니 대단한 녀석들이더군. 제대로 된 지원을 받고 수련을 거듭하면 팽가의 타격대 중에서도 손에 꼽게 될 거다.”
팽중혁은 팽호대가 싸우는 모습을 떠올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주제로 입을 텄으나 차츰 술자리가 익어가니 자연스레 언가에 대한 쪽으로 이야기가 틀어졌다.
“언가 놈들, 싹 꼬리를 자르고 튀었던데.”
술잔을 들이켠 후 팽소혁은 오늘 오전에 들었던 소식을 떠올리며 얘기를 풀어냈다.
진주언가가 이 년간의 봉문을 선언했다.
언가에서 직접적으로 계획한 일은 아니나 태상가주의 동생이라는 자가 몰래 일을 벌인 일에 책임을 통감하며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는 내용이었다.
언가는 빠르게 외부에 파견된 무인들을 복귀시키고 언제나 열려있던 대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이제 언가의 대문은 이 년이 지나고 나서야 열릴 것이다.
“교묘하구나.”
팽중혁은 개운치 않은 얼굴로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예상했던 바입니다. 언가가 쉽게 인정할 리가 없지요.”
팽무성의 말에 팽소혁이 안주로 나온 탕초리척을 씹으며 말했다.
“괜찮겠냐, 이대로는 언가의 사과나 보상, 아무것도 받지 못할 텐데.”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저놈들이 그렇게 쉽게 인정할 리 없지. 인정하는 순간 끝이니까. 그리고 어중간한 사과나 보상보다 봉문이 더 팽가에게는 값진 결과지.”
가월의 정보에 의하면 마랑문도 한참 숙청으로 인해 시끄러웠고 언가마저 봉문에 들어갔다.
“언가가 봉문한 이 년이 팽가에게도 아주 중요한 시간이 될 거다.”
팽가가 아무런 견제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팽가의 향방이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팽무성의 말에 팽중혁이 동감하며 호골주를 들어서 술잔을 채웠다.
“음… 막내가 왜 우리를 불러 모았는지 알 것 같구나.”
팽소혁도 눈치가 있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대신 따로 입을 열지 않고 팽무성을 쳐다봤다.
“이제 팽가는 하나로 뭉칠 때입니다.”
소가주 경합이 진행되던 팽가는 그간 여러 세력이 난무하고 있었다.
가주, 공자들을 지지하는 세력도 있었고 중립을 표방하는 세력도 있었다.
그러나 그 방황도 그리 멀지 않았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팽가가 이제 다시 하나가 되어 한 방향만을 보고 달려갈 때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소가주를 뽑는 게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로구나.”
“그렇다면 가솔들도 하나로 뭉치겠지.”
팽중혁의 말을 팽소혁이 받았다.
팽진연이 정신을 차렸으나 긴급한 정리만 하고 다시 가주전에 칩거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가솔들이 믿고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했다.
“셋째 형님은 저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직설적인 말에 팽중혁은 살짝 놀라 팽소혁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이미 막내의 편에 섰었나. 용케 그런 선택을 했구나. 셋째야.”
“흥.”
팽소혁은 달리 대꾸하지 않고 괜히 젓가락으로 안주를 뒤적거렸다.
“그럼 이제 나와 막내의 싸움이구나.”
“맞습니다.”
“흠.”
팽중혁은 취기 때문에 살짝 붉어진 얼굴로 술잔을 흔들었다.
그러곤 찰랑이는 맑은 술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팽중혁은 나직이 말을 꺼냈다.
“나는 솔직히 소가주 자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사는 무공이니까.”
팽중혁이 무공광이라는 것은 팽가에서도 유명했다. 이를 듣고 있던 두 사람도 잘 알던 사실이기에 별말 하지 않고 경청했다.
“다만 다른 형제들이 소가주가 되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나와 비교해서 그리 잘난 것 같지 않았거든.”
팽중혁은 형제 중에 뛰어난 이가 있다면 소가주의 자리를 바로 양보했을 터였다.
애석하게도 공자 중에 그런 이는 없었고 팽중혁도 소가주 경합에 나서게 되었다.
능력이 되지 않는 이가 소가주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이 되는 게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둘째 형도 은근히 제 잘난 맛에 산단 말이지.”
“하하,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셋째야.”
팽소혁의 핀잔에 팽중혁은 그저 쓰게 웃기만 했다. 팽무성은 팽중혁의 잔에 술을 채워주며 물었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어떻습니까.”
“후후. 막내라…”
팽중혁은 나날이 달라지는 팽무성의 모습을 보며 더는 막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연달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팽무성의 시원시원한 행보에는 감탄이 일었던 적이 많았다.
게다가 그 존재감은 흥륭에서부터 같이 싸워오며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형제 중 그 누구도 내보이지 못했던 존재감과 기백을 팽무성은 은연중에 지니고 있었다.
탁
짧지만 무수한 고심 끝에 다다라서야 팽중혁은 술자리 내내 놓지 않았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막내야.”
구부러졌던 팽중혁의 등이 점점 펴졌다.
얼굴은 여전히 취기로 붉었으나 눈빛은 한점의 흐림 없이 맑은 이채를 띠고 있었다.
“예. 둘째 형님.”
“소가주가 될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꺾어야 할 것이다.”
“그리 하겠습니다.”
담담한 팽무성의 대답에 팽중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네가 협호행에서 돌아오면 비무를 하기로 했었지. 내일 이주각으로 오거라.”
팽중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일이 소가주 경합의 마지막 날이다.”
경합의 끝.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