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63)
62화
그저 귀동냥으로만 들었던 하북팽가의 숨겨진 비동.
“오호동이라는 이름이었군.”
전생에서는 오호동에 들어간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나 지금 이렇게 발을 들이고 있으니 팽무성은 감회가 새로웠다.
안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들어가자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구석에 돌을 깎아서 만든 침상이 있었고 식수를 위해 만들어진 작은 샘이 있었다.
공간을 살피던 팽무성은 무언가를 발견하곤 침상으로 다가갔다.
회백색의 돌을 깎아서 만든 침상인데 위쪽만 색이 불그스름했다. 그에 손을 갖다 대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호오.”
처음 보는 것이지만 팽무성은 이 물건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지양온석(地陽溫石).
간단히 말해 막대한 양기를 머금은 돌이었다.
화산지대에서나 간혹 발견되는 귀물인데 가만히 두어도 온기가 흘러나왔고, 돌 위에서 극양의 심법을 운기 하면 보다 많은 양기를 쌓을 수 있었다.
폐관수련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 있었다. 지양온석을 살피던 팽무성은 안쪽으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갔다.
거대한 지하 연무장이 펼쳐져 있고 중간중간 박힌 야명주가 연무장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야명주의 빛 아래에 보이는 도흔에 팽무성은 벽면으로 다가갔다.
“벽과 바닥이 전부 흑강석이네.”
흑강석(黑强石)은 철의 강도를 뛰어넘어 대문파에서 고수들을 위한 수련동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광물이었다.
벽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레 도흔을 살피던 팽무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곤 이내 짧은 감탄을 터트리고 말았다.
‘도기(刀氣)나 도강을 쓰지 않고 도기(刀技)로 베어냈다.’
내공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수한 도로 흑강석을 베어낸다는 것.
어지간한 고수도 엄두 내지 못할 힘든 일이었다.
팽무성은 직접 도흔을 남겼다는 초대 가주의 경지가 짐작이 갔다.
“그 시대의 천하제일도로 불리셨다더니.”
팽무성은 고개를 들었다.
연무장의 드넓은 벽면을 가득 채운 도흔들. 이를 눈에 담은 팽무성은 도흔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게 혼원벽력도의 도흔.’
벽면을 따라 길게 늘어진 번개 줄기의 도흔. 어찌 보면 수십 년을 자란 나무를 그린 수묵화를 보는 듯했다.
도흔을 살피는 팽무성의 눈이 깊어졌다. 벽에 그어진 도흔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투로를 그려내던 팽무성은 불현듯 적아도를 뽑아 하단으로 내려그었다.
적아도가 잘게 떨리며 세 줄기의 도영을 떨구자 저들끼리 꼬아지던 도영은 이내 수십 줄기로 갈라지며 바닥을 들쑤셨다.
쿠릉
작은 울음과 함께 마치 세 줄기의 낙뢰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팽소혁이 첫 비무에서 펼쳐냈던 삼뢰낙산(三雷落山)의 초식이었다.
허나 그 당시 팽소혁이 펼쳤던 초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상당한 위력에 바닥이 잘게 떨렸으나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과연 흑강석이었다.
“흐음.”
삼뢰낙산을 펼쳐낸 팽무성은 만족스럽지 않은지 바로 도를 집어넣었다.
대충 투로는 일치하나 온전치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초식이라는 것이 그대로 형(形)을 흉내 낸다고 끝이 아니었다. 초식에 담긴 의(意)에 따라 내공 운용, 힘의 가감이 달라졌다.
실제로 벽의 도흔도 자세히 보면 그 깊이와 형태에 차이가 있었다.
‘쉽지는 않겠어.’
벽의 도흔을 쭉 살피던 팽무성은 살짝 난해함을 느꼈다. 벽의 도흔은 친절하게 일 초식부터 차례대로 남겨진 것이 아니었다.
오호동의 도흔은 초대 가주가 혼원벽력도를 창안했던 곳이기에 혼원벽력도의 도흔이 난잡하게 남아 있었다.
초대 가주는 떠오른 심득을 모조리 다 쏟아내며 그 많은 초식을 쳐내고 다듬어서 혼원벽력도를 창안했을 것이다.
분명 오호동에 혼원벽력도가 남아 있는 것은 맞지만 모래사장의 바늘 찾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대를 걸쳐 가주들이 오호동에 매달렸음에도 지지부진한 성과를 얻은 것은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련주의 말씀대로 무작정 혼원벽력도의 복원에 힘을 쓸 수는 없다.’
한쪽 벽을 다 살핀 팽무성은 등을 돌려 반대쪽의 벽도 보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혼원벽력도와 완전히 다른 도흔이 남겨져 있었다.
혼원벽력도의 도흔이 새겨진 벽이 도흔으로 거의 채워져 있었다면 이 벽은 그 절반 정도였다.
허나 팽무성은 이 도흔들을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다섯 방향의 투로.”
혼원벽력도는 후반 초식으로 갈수록 지닌 변화의 수가 수십 가지로 늘어났다.
그런데 이 도흔들은 어떠한가.
전반부터 후반까지 다섯의 투로를 고집하지만, 그 투로 안에서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고 도격 하나하나에 패도의 기세가 담겼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이쪽 벽의 도흔의 깊이는 전체적으로 혼원벽력도의 도흔보다 깊었다.
“철혈맹호도와 비슷한 맥락이 있다.”
이쪽의 도흔은 상대의 공격을 막거나 흘리는 것은 없었다. 그저 베어내기만 할 뿐이었다. 극단적으로 공세에 치중된 도흔들이었다.
팽무성은 이를 보고 철혈맹호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누가 알려주지는 않았으나 팽무성은 본능적으로 이 도흔들이 초대 가주가 남긴 말년의 심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심득일 뿐, 완성된 도법은 아니라 이대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초대 가주의 심득을 눈에 담으며 한참 고민하던 팽무성은 두 시진이 지나고 나서야 생각을 멈췄다.
결정을 내린 팽무성은 방향을 잡은 듯 개운해 보였다.
“폐관을 준비해야겠다.”
가문의 일을 병행하며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팽무성은 온전히 무공을 쏟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팽무성은 다시 한번 벽의 도흔을 눈에 담고는 오호동을 빠져나왔다.
본격적으로 폐관을 들기 위한 준비를 할 셈이었다.
* * *
팽무성은 폐관에 들기 전에 팽가가 돌아가는 상황을 다시 확인했다.
가솔들은 팽무성이 원하는 바를 완전히 이해했고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각 조직을 맡은 수장들도 부족하거나 믿음직하지 못한 이가 없으니 걱정이 없었다.
특히 새롭게 만들어진 대무각도 팽중혁과 일도, 삼도를 중심으로 별 차질 없이 굴러가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원로원도 커다란 힘이 되고 있었다.
올바른 방향을 잡은 채 쉬지 않고 나아가고 있으니 짧은 시간에도 팽가는 큰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본가는 그럴 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
팽무성은 들어온 보고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각의 문을 나서자 철호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진행 중이지?”
“예, 가시지요.”
팽무성은 철호의 호위를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대주각의 거대한 연무장에는 여덟 개의 비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각 비무대에서는 치열한 비무가 벌어지고 있었다. 팽무성은 단상 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비무를 벌이고 있는 무인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지원자들은 어때.”
“제법 뛰어난 이들이 많습니다. 다른 타격대에서 온 가솔도 있습니다.”
팽호대는 새로운 인원을 뽑기 위해 입대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오늘은 칠주야에 걸친 시험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이들을 평가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새로운 입대 인원을 평가하는 이들은 물론 기존의 팽호대였다.
콰콰칵
“이봐, 이 정도로 팽호대에 들어오기는 힘들다고!”
상대를 거침없이 몰아치고 있는 덕삼의 도를 유심히 보고 있던 팽무성이 웃음을 보였다.
“덕삼은 벌써 사성을 이루었나, 성취가 제법 빠르네.”
“밤낮으로 쉬지 않고 도만 잡고 있어서 제가 말려야 할 정도입니다.”
인원이 적어 이십 명으로 하나의 조를 이루던 팽호대였지만 그간 많은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거기에 금용만이 영약과 무기 등을 비롯하여 풍족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니 팽호대의 전력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했다.
이를 인정받아 팽무성에게서 철혈맹호도의 수련을 허락받은 무인도 팽호대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각 타격대를 대표하는 도법이 있듯이 팽호대를 대표하는 도법은 자연스레 철혈맹호도가 되었다.
물론 팽호대뿐만 아니라 팽가에서도 고수 측에 속하는 가솔들은 장서각 삼 층에 새롭게 비치된 철혈맹호도와 호왕투법의 비급을 수련하고 있었다.
실제로 지닌 무공과 재능에 의해서 장서각의 제한이 결정되니 가솔들의 장서각 출입이 잦아졌고 자발적인 수련시간도 늘어났다.
자신에게 더 맞는 무공을 찾고 강해질 기회를 놓친다면 무인이라 할 수 없었다.
그 덕분에 팽가 곳곳에 있는 연무장에는 언제나 수련을 하는 가솔들을 빈번하게 볼 수 있었다.
가법 몇 가지를 바꿨을 뿐이지만 그 변화에 팽가에 부는 바람은 심상치 않았다.
“철호, 나는 폐관 수련에 들어간다.”
팽무성은 여전히 비무를 지켜본 채 입을 열었고 철호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말을 받았다.
“팽호대는 걱정 마십시오. 제대로 키워 놓겠습니다.”
철호는 언제 들어갈 것인지, 나올 것인지, 그런 흔한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며 팽무성이 자신의 빈자리를 걱정할 필요 없게 만들고 있었다.
믿음직스러운 철호의 대답에 팽무성이 머금고 있던 웃음이 진해졌다.
“이 년 뒤에 뽑는 팽가오호.”
팽가오호(彭家五虎)는 이번에 가솔들의 성장 동기를 자극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제도 중 하나였다.
실제로 실력이 뛰어난 가솔 몇몇은 이 년 뒤의 팽가오호를 노리고 수련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팽무성은 팽가오호를 단순한 동기 부여 용도를 넘어서 소림의 백팔나한과 화산의 매화검수와 같이 하북팽가의 무력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팽호대주가 팽가오호에 못 들어간다면 이것만큼 창피한 일도 없을 거야.”
이에 무미건조하던 철호의 두 눈에 불이 붙었다.
“팽가오호의 일좌는 제가 차지하겠습니다.”
팽무성은 소매에서 작은 반합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가월에게 따로 부탁하여 철호를 위해 구해온 영약이었다.
“얼마 전에 백호대주와 겨루다가 내공이 부족해서 결국 한 수 차이로 졌다며?”
백호대주는 팽가 타격대 대주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한 수 차이로 진 것도 대단한 일이었으나 앞으로 팽호대는 팽가 최강의 타격대가 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 대주도 타격대 대주의 정점을 찍어야 하지 않겠는가.
철호는 팽무성이 자신을 아끼는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양하지 않고 영약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소가주.”
* * *
가문의 일을 처리하고 가주 대리의 역할을 잠시 팽연후에게 맡긴 팽무성은 다시 오호동 안으로 들어섰다.
폐관수련을 미리 말해놓은 덕분에 오호동에는 벽의 구멍으로 넣어준 벽곡단이 가득 쌓여있었고 미리 준비를 부탁한 비급의 사본도 한쪽에 쌓여있었다.
팽무성은 직접 챙겨온 도본결도 품속에서 꺼내 비급들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지양온석의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현재 팽무성의 수중에는 세 개의 영약이 있었다.
소가주로 취임하며 받은 태양단과 금용만에게 받은 적영단, 그리고 염초단이었다.
팽무성은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복용할 생각이 없었다. 태양단은 혼원벽력신공에 있어 최적의 영약이었다.
좀 더 시의적절한 시기에 먹을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일단은 적영단과 염초단이었다.
두 영약 모두 양기 쪽의 영약에서 귀한 축에 속했으니 혼원벽력신공의 성취에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팽무성은 두 영약을 차례대로 복용하고 운기를 시작했다. 단전에 자리 잡은 혼원벽력신공의 내공이 일어나자 지양온석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팽무성은 운기 중이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불그스름했던 지양온석의 색이 더욱 짙어지며 빛을 발했다.
지양온석의 빛이 전신을 감싸자 운기를 하던 팽무성은 더욱 깊게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운기의 영향인지 오호동의 내부 공기는 살짝 후끈했다.
환기가 되고 있었지만, 지양온석 위에서 운기하는 팽무성의 양기가 그만큼 대단한 탓이었다.
“후우.”
호흡을 내쉬는 팽무성의 입가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지양온석 위에서 영약을 복용한 덕분인지 대부분의 약효를 흡수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정체되어있던 혼원벽력신공의 성취도 오를 수 있었다.
가볍게 소주천으로 몸상태를 점검한 팽무성은 침상에서 내려와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의 도흔을 보며 팽무성이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구나.”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