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64)
63화
혼원벽력도의 도흔이 새겨진 좌측 벽, 말년의 심득이 새겨진 우측 벽과 달리 안쪽의 가운데 벽은 단 하나의 도흔도 남겨져 있지 않고 깨끗했다.
쉬익
아명주의 빛 아래에 간혹 허공에 반짝거리는 물방울이 비쳤다.
웃통을 벗은 채 팽무성은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에 머리칼이 흔들릴 때마다 땀방울이 흩날리고 있었다.
쏴아앙
도가 궤적을 그릴 때마다 근육의 힘줄이 거세게 꿈틀거리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럴수록 무공에 적합하게 단련된 전신의 근육은 태초적인 미를 뽐내고 있었다.
팽무성은 내공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육체의 힘과 도기(刀技)만으로 도법을 펼치고 있었다.
벽을 두들기는 다섯 방향의 투로.
각 투로에 실린 패력은 오호동의 대기를 떨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섯 줄기의 도격은 서로 얽히며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다섯 호랑이가 저들끼리 어우러지는 광경을 보는 듯했다.
그 변화 속에도 그 안에 담긴 힘이 흩어지지 않고 더욱 증강하니, 강호의 내로라하는 고수들도 쉽게 받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카카카카칵
꼬아진 다섯 개의 도격이 벽을 연달아 베어내자 작은 불똥이 튀었다.
허나 벽에는 아주 옅은 도흔만 남길 뿐, 초대 가주처럼 온전하고 깊은 도흔을 남기지는 못했다.
아직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천종혈을 거치는 것이 내공의 수발에 수월하네.”
잠시 도를 내려놓은 팽무성은 바닥에 놓인 붓을 들고 종이에 뭔가를 써 내려갔다.
전박자여(剪撲自如)라는 초식의 옆에 쓰인 여러 혈도의 이름 중 고황혈을 지우고 그 자리에 대신 천종혈을 채워 넣었다.
주저앉은 팽무성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긴 폐관으로 인해 자란 수염의 까칠함이 느껴졌지만, 기록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종이에는 쓰고 지운 흔적이 가득했는데 팽무성이 그동안 겪은 수련과 연구의 과정이었다.
단순히 초식을 만드는 것을 넘어 거기에 맞는 내공 운용마저 찾아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팽무성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빈번하게 내상을 입을 정도였다.
보통 무인이었다면 수련 도중에 혈맥이 꼬여 주화입마에 빠질 위험이 컸다.
그러나 철혈맹호도를 창안한 경험이 있었고 경이로울 정도로 튼튼한 혈맥이 받쳐주었기에 팽무성은 주화입마는 면할 수 있었다.
되려 찢어지고 수복하는 과정에서 전신의 혈맥은 더욱 넓고 강해지고 있었다.
“잔박자여는 이걸로 충분하겠어.”
팽무성은 혼원벽력도를 복원하는 중이 아니었다.
오호동에 남아 있는 혼원벽력도와 무명의 도흔, 거기에 철혈맹호도를 낱낱이 분해했다.
거기에 도본결을 비롯하여 미리 준비한 팽가의 비급을 통해 새로운 도법을 다듬고 있었다.
뿌리가 도본결을 비롯한 팽가 기본 무공이라면 중심을 지탱한 줄기는 철혈맹호도와 무명의 도흔이었다.
막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저 부순다.
같은 의를 지녔기에 조화롭게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끝없이 뻗어나갈 가지에 혼원벽력도의 도흔을 더해내고 있었다.
패(覇)와 강(强)에 환(幻)과 변(變)의 묘리까지 더해내려 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더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더해 난잡해 보였지만, 조금이라도 필요 없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가차 없이 쳐내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나무토막으로 작은 조각을 공들여 만들어 내는 조각사의 모습과 같았다.
두르륵
기록을 정리하던 팽무성은 위쪽에서 난 소리를 듣고 계단을 올랐다.
이는 벽에 난 구멍을 통해 벽곡단이 떨어지며 나는 소리였다.
팽무성은 벽곡단 사이에 있는 접힌 종이를 펼쳐보았다.
一年.
벽곡단은 한 달 주기로 보급되었는데 오늘로 팽무성이 폐관을 시작한 지 일 년째 된 날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도 별일 없나 보네.”
팽무성은 가월에게 벽곡단을 부탁하며 팽가에 큰일이 생기면 바로 알리라고 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으니 이것이야말로 희소식이었다.
“에휴.”
종이를 펴며 벽곡단을 씹던 팽무성은 미간을 구기며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폐관수련을 하며 가장 힘든 것은 온종일 도를 휘두르며 쌓이는 육체의 피로, 혈맥을 찢는 내상의 고통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매 끼니를 텁텁하고 거친 목 넘김을 선사하는 벽곡단으로 때워야 하는 점이었다.
아무리 먹어도 적응되지 않는 벽곡단에 팽무성은 제법 힘들어하고 있었다.
첫 두 달 정도는 그냥 인상을 구기며 벽곡단을 먹었지만, 지금은 아예 똥 씹은 표정이었다.
입안을 맴도는 벽곡단의 칙칙한 맛을 느끼며 팽무성은 그동안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떠올렸다.
이렇게 하면 벽곡단의 끔찍한 맛을 잠시 잊을 수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보타산의 검각을 노리던 마인을 쓸어버린 뒤에 먹었던 용정하인(龍井蝦仁, 볶음 새우요리).
무림맹 앞, 의천객잔의 명물인 열간면(?干面, 중국식 비빔면).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법 많은 음식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덕분인지 팽무성의 입에는 제법 침이 고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낙양에서 당화련과 함께 먹었던 만두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화련과 같이 먹은 것들이구나.’
당화련이 떠오르자 이내 무각과 남궁혁의 얼굴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다들 잘하고 있겠지.”
팽무성이 도본결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듯이 다른 사패도 적잖은 도움을 얻었을 게 분명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얼마나 강해져 있을까. 다시 사패와 만나게 될 그 날이 기대되었다.
잠시 웃음을 머금고 그때를 상상하던 팽무성은 벽곡단을 꿀꺽 삼키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곡단을 먹으며 썩어가던 얼굴은 어느새 생기가 가득했다. 팽무성은 힘차게 도를 뽑아냈다.
잠시 쉬었으니 다시 수련 시작이었다.
* * *
언제나 돌이 긁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던 지하 수련장이 웬일로 조용했다.
간혹 바람이 이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수련장의 중앙에서 팽무성은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느리게 펼쳐지는 초식들은 확실히 철혈맹호도와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사패가 지금 휘두르는 도의 움직임을 봤다면 매우 놀랐을지도 몰랐다.
거칠고 투박하기만 했던 팽무성의 도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섬세함이 스며들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도법을 익혔다고 여길 정도였다.
도천이 봤다면 흐뭇한 웃음을 보이며 이리 평했을 것이다.
“극(極)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중도(重刀), 쾌도(快刀), 환도(幻刀) 등의 불필요한 구분과 한계에서 벗어나 오직 도(刀)의 궁극(窮極)에 향하는 외길에 드디어 발을 디딘 것이었다.
쉬쉬쉭
초식이 반복될 때마다 적아도는 점점 속도가 오르더니 마지막은 절정에 달한 쾌속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곤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도법을 펼쳐내곤 했다.
마지막 초식을 펼쳐낸 팽무성은 적아도의 흔들림 없는 도극을 잠시 바라보더니 도갑에 넣어 갈무리했다.
이내 팽무성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폐관을 시작하고 이 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삼 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년째가 되는 날, 팽무성은 폐관을 오호동을 나서려 했다. 만족스럽지 않은 성과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허나 언가의 봉문도 풀렸을 터, 팽가와 언가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만연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 자신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여느 때와 같이 벽곡단과 함께 떨어진 쪽지가 팽무성의 발목을 잡았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테니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거라.-
보낸 이의 이름은 없었으나 필체로 팽진연이 보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팽진연이 가주로서 팽무성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팽무성은 팽진연을 믿고 계속 폐관을 이어왔다.
그리고 팽진연의 배려 덕분에 그 결실을 보려는 중이었다. 다만 바로 눈앞에 있지만, 손을 뻗으면 멀어지는 형국이었다.
최근에 도를 잡는 시간이 줄어들고 하루 대부분을 명상에 투자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폐관 수련을 하며 팽무성은 단순히 도법을 창안하는 것이 아닌 도에 대해서 많은 깨달음을 얻어낼 수 있었다.
혼원벽력도의 도흔과 말년의 심득에 더불어 그동안 쌓아 왔던 모든 것을 분석하고 해체했고 다시 집약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새로운 깨달음으로 크고 작은 벽들을 하나씩 부숴 나갔고 팽무성은 어느새 초절정의 마지막 벽을 보고 있었다.
이미 지나왔던 길인 덕분도 있지만, 전생에 얻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 컸다.
팽무성은 명상을 통해 끊임없이 사색하며 아른거리는 그 무언가를 잡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심상 속에서 펼쳐지는 도법을 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그런데 왜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 걸까.’
마음 구석에 남은 작은 찝찝함이 팽무성을 오호동 밖으로 못 나가게 하고 있었다.
“정말 최선이냐? 철혈맹호도를 뛰어넘었다 자신할 수 있는 거냐.”
갑자기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팽무성은 일순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이 잘게 떨렸다.
곧바로 고개를 휙 돌렸으나 시커먼 어둠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홀로 폐관 수련 중이었고 더구나 이곳은 자신의 심상 안이었다.
팽무성은 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둠을 노려보는 팽무성의 얼굴은 복잡했다. 방금 들려 온 목소리는 팽무성이 잘 아는 목소리였던 탓이었다.
팽무성은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심마(心魔)에 빠진 건가.”
심마에 대해서는 무림인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주화입마의 전조 현상이라 하기도 했고,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심상의 어둠이 만들어 낸 마음의 시험이라 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팽무성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이 심마를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어떤 대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팽무성은 마음을 가라앉히곤 낮게 깔린 목소리를 흘려냈다.
“언제까지 어둠 속에 있을 거냐. 나와라.”
어둠 속의 존재는 의외로 팽무성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칠흑 속에서 먼저 드러나는 것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유엽도와 팽가의 붉은 무복.
굳은 지 오래된 피 얼룩 때문에 무복은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 검붉은 무복의 주인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로 전생의 팽지혁이었다.
전장을 떠돌며 쉬지 않고 사선을 넘어온 도왕의 모습 그대로였다.
팽지혁의 모습이 보이자 비릿하고 지독한 혈향이 스멀스멀 올라옴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익숙한 듯하면서도 적응이 안 되는 이 냄새. 오랜만이야.”
이미 예상했던 바였기에 팽지혁을 바라보는 팽무성의 두 눈에는 조금의 파문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더는 입을 열지 않고 서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피 칠갑을 한 팽지혁을 보며 팽무성은 말없이 적아도를 뽑았다. 이에 팽지혁의 눈썹이 살짝 가라앉았다.
“바로 도부터 뽑는 건가?”
“그렇다면 선문답을 할 생각이었나? 우리에게 그런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단호한 팽무성의 태도에 표정이 없던 팽지혁의 입이 좌우로 벌어졌다.
“맞다, 우리는 이 한 자루 도로 자신을 증명하는 삶을 살았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지.”
더는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서로에게 도를 겨누자 순간 붉은빛과 주홍빛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차앙
주변의 어둠마저 밀어내는 강맹한 두 줄기의 도격이 서로를 교차했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