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68)
67화
“맛있겠다.”
일현은 자신을 보고 한 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정신이 멀쩡한 인간이라면 사람을 보고 맛있다는 소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양민 놈들은 더럽게 맛없었는데. 너희는 조금 다르겠지.”
사람을 마치 음식처럼 대하는 사내의 말에 일현의 손이 떨렸다.
“역시 네놈들의 짓이었구나.”
일현은 화산 근처 작은 마을 네 곳의 사람들이 사라진 것을 쫓아 이 동굴까지 도달했다.
허나 흉수였던 마인들의 무공은 예상 이상으로 강하고 악랄했다.
“네놈들을 유인하려고 적당히 흔적을 남기느라 귀찮았다고.”
잇따른 양민들의 실종, 그러나 사내의 목적은 처음부터 화전민이 아닌 화산파 제자들에 있었다.
양민도 정혈을 흡수하면 도움이 되지만 무림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거기에 정순한 대문파의 내공을 익혔다면 더더욱 그랬다.
“제법 정혈을 빨아먹었는데 아직도 배가 고프네. 화산파는 무슨 맛일까.”
일현은 자신들이 흉수들을 쫓은 것이 아니라 유인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를 악물었다.
저 악랄한 놈들이 왜 사제들을 바로 죽이지 않고 굳이 혈도를 제압했는지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괜히 네놈들을 마인이라 하는 게 아니었군.”
일현은 손을 뒤집어 파지를 바로 잡았다. 땅에 박혔던 매화검의 검극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가볍게 휘둘러 흙을 털어낸 일현은 피를 핥던 사내, 식마군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에 피를 맛보던 식마군의 미소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뭐 어쩌려고? 약한 주제에.”
“화산의 매화는 본디 엄동설한을 버티며 피어나는 법이다.”
일현의 단호한 말과 함께 매화검에는 청명한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에 식마군은 구역질하는 척을 하곤 일현을 비웃었다.
“정파 놈들, 약하면서 입만 번지르르 살아있다더니 정말이구나.”
식마군이 오른손을 서서히 오므리며 걸어왔다. 때를 노리던 일현은 식마군이 자신의 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곧장 몸을 날렸다.
구궁보(九宮步)를 밟으며 호기롭게 신형을 날린 일현은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劍)을 펼쳐냈다.
꽃봉오리가 피듯 일곱 줄기의 검영이 만개했지만 식마군은 손을 한 번 휘저은 것만으로 검영을 찢어냈다.
카카캉
파리를 쫓듯 가벼운 식마군의 손짓에도 일현은 온 힘을 다해서 막아내야 했다.
식마군의 조법이 매화검을 두들길 때마다 매화검이 크게 흔들렸다.
첫수의 선공을 제외하고는 수비에 치중해서 식마군의 조법을 버텨내는 데 급급했다.
일현의 달라진 태도에 미간을 찌푸린 식마군은 곧바로 일현의 의도를 파악했다.
“시간을 끄는 거냐? 부질없는 짓이다.”
동시에 식마군의 두 손에 마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곧장 손을 긋자 허공에 검은 선이 그려지더니 검영을 찢어놓았다.
칠절매화검이 단숨에 뚫리자 일현은 기겁하여 매화검을 들어서 막아냈다.
카카칵
조기(爪氣)를 막아낸 매화검이 비명을 질렀고 일현은 그 충격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리하지 마. 내가 먹을 양이 줄어드니까.”
하는 말과 달리 식마군은 철저하게 일현을 농락하고 있었다. 손톱이 꿈틀거릴 때마다 일현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씩 늘어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처는 치명적이지 않아 일현은 고통을 감내하며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애묘와 비슷하군.”
식마군은 처음으로 탐정마공을 사용해 정혈을 흡수했던 어릴 적의 애묘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단번에 제압할 수 있음에도 식마군은 여전히 장난을 치듯 일현을 농락하고 있었다.
도복에 생긴 손톱자국이 십여 개를 넘길 즈음 식마군도 질렸는지 얼굴의 웃음을 바로 지워냈다.
그 이변을 눈치챈 일현은 내공을 끌어올려 저항했지만, 그가 펼쳐내는 칠절매화검은 식마군의 앞에서 너무나 무력했다.
촤아악
탐정식마조(貪精食魔爪)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며 일현의 전신에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크헉!”
끝내 무릎을 꿇은 일현의 도복은 여기저기 찢겨 넝마가 된 상태였다.
“제자가 여덟이나 실종되었는데 이제 곧 화산의 매화검수가 나서겠지?”
식마종의 마인들이 교묘하게 흔적을 남겨 두었으니 매화검수들이 아둔하지 않다면 이 동굴까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 섬뜩한 웃음에 일현의 손이 잘게 떨렸다.
‘매화검수라도 이놈은 힘들다.’
그에 일현이 다시 한번 일어나고자 힘을 줄 때였다.
콰앙
이를 눈치챈 식마군은 곧바로 발로 차서 일현을 벽에 처박았다. 정신을 잃은 듯 일현의 손에서 매화검이 떨어졌다.
“적당히 지혈해서 가둬놔. 나중에 먹을 테니.”
“존명,”
일현을 끌고 가는 것을 보던 식마군은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빨아 먹고 싶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화전민이 있었다.
그들을 먼저 다 먹어 치우고 화산 제자들을 먹을 셈이었다. 식마군이 동굴의 벽을 깎아내 만든 곳에 앉자 대기하던 마인들은 알아서 화전민을 끌고 왔다.
식마군이 이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식사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마인들은 젊은 남녀 한 쌍을 데려와 식마군의 발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식마군은 탐정마공(貪精魔功)을 사용할 때 언제나 나이대가 비슷한 남녀를 함께 먹었다.
그래야만 음양의 균형이 얼추 맞아서 효과적으로 정혈을 흡수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음?”
남녀를 보던 식마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점혈이 되어있어 입을 열지 못함에도 눈빛으로 서로를 다독이며 진정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투툭
식마군은 지풍을 날려 남녀의 아혈을 풀어주곤 물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피가 섞이지는 않았는데, 연인 사이인가?”
식마군이 흥미를 보이자 사내는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저는 상관없으니 이 여인은 제발 살려주…”
“시끄러.”
눈살을 구긴 식마군은 발로 턱을 차서 위로 튕기는 사내의 목을 붙잡았다.
탐정마공을 펼쳐내자 식마군의 손에 검붉은 힘줄이 무수하게 솟아났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정혈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끄으억.”
“으음.”
고통에 찬 신음과 환희에 찬 탄성이 동시에 동굴을 울렸다.
사내는 점점 몸이 마르고 줄어들며 백발이 된 머리카락이 땅에 우수수 떨어졌다.
이내 목내이가 되어 뼈만 남은 사내는 그대로 숨이 끊겼다.
방금까지 연인이었던 사내가 흉측한 목내이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자 여인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울지 마라. 저놈이 슬퍼하지 않겠냐.”
가증스럽게도 식마군은 뺨을 타고 흐르는 여인의 눈물을 손수 닦아주었다.
소름 끼치는 손길에 여인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에 눈매를 휘던 식마군은 돌연 여인의 목을 잡았다.
“컥.”
“지옥에서 못다 한 사랑을 나누거라. 하하하.”
콰아앙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여인의 정혈을 흡수하던 식마군의 눈이 빛났다.
* * *
“팽 시주, 이쪽이다.”
반야대능력을 익힌 무각은 마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마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향하자 곧바로 동굴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동굴 앞을 지키는 이들이 없었기에 팽무성과 무각은 곧바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팽무성과 무각은 걸음을 멈췄다.
마인들이 자리를 잡은 지, 시간이 지난 듯 동굴에는 여러 시설이 만들어져 있었다.
팽무성과 무각의 앞에는 작은 석굴을 이용해 만들어진 감옥이 있었다.
“누구냐!”
감옥을 지키던 마인들이 팽무성과 무각을 발견하곤 곧바로 살초를 뿌려냈다.
펼치내는 마공을 살피던 팽무성이 무각에게 언질을 주었다.
“식마종의 마인으로 보인다. 조법과 흡성대법과 비슷한 마공을 쓰는 놈들이야.”
“그렇군. 그럼 이 시주들은…”
무각은 굵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창 안에 갇혀있는 화전민들을 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곧 열이 넘는 마인들이 두 패로 나뉘어 두 사람을 덮쳤으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
팽무성은 가로로 도를 베어내어 마인들을 단번에 베어버렸다.
무각으로 향했던 마인들도 거대한 아라한신권의 권풍에 휩쓸렸다.
팽무성과 무각은 마인들은 신경 쓰지도 않고 양쪽으로 나누어서 감옥의 창을 박살 내어 사람들을 빼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갇혀있다니.’
감옥은 총 여덟 개로, 감옥마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갇혀있었다.
그렇게 창을 부수며 수감자들을 살피던 중 팽무성은 맨 끝의 감옥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의 내쉬었다.
마지막 방에는 화산 제자들이 갇혀있었다.
도복을 확인한 팽무성은 곧바로 창을 부수곤 화산 제자들의 점혈을 풀어주었다.
실의에 빠져있던 화산 제자들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팽무성을 보고 눈을 빛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협은 누구십니까?”
“하북팽가의 팽무성입니다. 이 산을 지나다 다른 화산 제자분을 만나 오게 되었습니다.”
하북팽가라는 말에 화산 제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생각지도 못한 우군을 만난 셈이었다.
“아, 일전이 해냈구나.”
“일전은 무사한지요, 몸을 뺄 때 부상을 당했습니다.”
“동료가 돌보고 있습니다. 일단 모두 나오시죠.”
콰앙
다시 한번 들리는 폭음에 팽무성이 고개를 돌리자 무각이 또 다른 마인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이 마두 놈들!”
일현을 투옥 시키기 위해 끌고 오던 마인들이었다.
무각은 양손으로 대력금강장의 장력을 뿜어내 마인들의 가슴을 짓이기며 뒤로 날려버렸다.
“일현 사형!”
감옥을 빠져나오던 화산 제자들은 정신을 못 차리는 일현을 보고는 기겁하여 달려갔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습니다. 피를 좀 흘렸을 뿐입니다.”
일현을 살피던 팽무성은 간단한 조치를 취하곤 웃음을 보여 화산 제자들을 안심시켰다.
“감사합니다, 팽 소협.”
일현의 치료가 끝날 무렵 무각의 어두운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팽 시주, 여기 봐야 할 것이 있어.”
팽무성은 무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뒤따라온 화산 제자들은 무각 앞에 있는 것을 보곤 곧바로 얼굴을 굳혔다.
“이런 간악한 놈들!”
“실로 사람이 아닌 놈들이구나.”
“아미타불…”
얼굴이 붉어진 무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불호를 욀 뿐이었다.
무각 앞의 석굴에는 다른 감옥과 달리 대나무 창이 없었다. 석굴 안에 살아있는 이들이 없는 탓이었다.
구석의 석굴 안에는 정혈을 다 빨려 목내이가 된 사람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얼추 그 수가 오십이 넘어 보였다. 시신의 표정은 하나같이 고통에 가득 차 있었다.
‘이 참상을 또 보게 되는구나.’
양민, 무림인 할 것 없이 살아있는 것의 정혈은 모조리 먹어 치우는 식마종의 행태는 전생에서도 참으로 끔찍했었다.
“후우.”
팽무성은 격정이 섞인 한숨을 짧게 내뱉고는 무각의 어깨를 잡았다.
무각의 어깨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진정해라, 무각.”
팽무성의 말에 무각은 한참 뒤에야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 팽 시주. 이놈들을 쳐 죽이려면 그래야겠지.”
다시금 불호를 외며 마음을 다스린 무각은 이내 몸의 떨림을 멈추었다. 이에 팽무성이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두들겼다.
“동굴의 안쪽에 마기가 밀집된 곳이 있어. 아마 그곳에 다 모여있는 모양이다.”
어느새 팽무성은 기감을 동굴 안으로 넓게 퍼트려 마인들의 위치를 색출해내었다.
‘식마군. 이놈도 있는 것 같군.’
팽무성은 마인들 중에서도 유독 방대한 마기를 지닌 이들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식마군과 좌우사자들로 보였다.
‘이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이렇게 빨리 만난 것은 행운이구나.’
식마군은 무림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무림인을 잡아먹고 종래에는 식마종주마저 먹어치우는 괴물이었다.
훗날, 십대고수와도 자웅을 겨루며 무림에 엄청난 피해를 끼칠 놈이니 크기 전에 잡는다면 큰 이득이었다.
“화산 분들은 사람들을 데리고 먼저 빠져나가십시오. 마인들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팽무성은 화산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피난을 맡겼다.
“흠, 조심하십시오. 소협들.”
자신들도 당해내지 못한 마인들을 고작 둘이서 상대한다는 것에 화산 제자들은 걱정이 앞섰다.
허나 두 사람이 은연중에 풍겨내는 그 무거운 기세에 화산 제자들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곤 동굴 밖을 빠져나가야 했다.
화산 제자들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눈앞의 두 사람이 자신들과 다른 경지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팽무성은 동굴 안쪽으로 몸을 틀었다.
“가자, 이 사람들의 넋을 위로해야지.”
무각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팽무성의 뒤를 따랐다.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농밀한 마기가 흘러나와 두 사람을 휘감으려 하고 있었다.
식마군.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