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71)
70화
팽무성 일행은 연화봉의 중턱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남궁혁이 건네준 연향주로 목을 축인 팽무성은 탁트인 화산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산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니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장관이군요.”
신장(神將)의 칼을 박아놓은 듯 날카롭게 솟아오른 기암괴석이 하늘을 뚫고 우람하게 솟아있었다.
그와 함께 선인봉(仙人峯), 연화봉(蓮花峯), 낙안봉(落雁峯)의 세 봉우리를 푸른 녹림과 울긋불긋한 매화가 피어나 회백색의 화산을 생기있게 그려내고 있었다.
“괜히 중원오악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지. 너는 이거나 마셔라.”
무각이 자신도 술병을 주라는 시늉을 했지만, 남궁위는 이를 무시하고 물이 담긴 죽통을 건네주었다.
식마군과 싸우며 얻은 상처 때문이었다.
이에 무각이 미간을 구길 때 일현이 대화에 참여했다.
“화산파에 도착하면 다시 한번 놀라실 겁니다. 올해는 유독 매화가 예쁘게 피었더군요.”
“저번에 봤는데 확실히 아름다웠지.”
남궁혁의 칭찬에 일현을 비롯한 화산 제자들은 뿌듯해하며 어깨를 폈다.
갈증을 달래며 휴식을 취하던 팽무성 일행은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화산파가 점점 가까워짐을 알려주듯 바위를 깎아 만든 돌계단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산파의 산문이 보이자 일행들의 걸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음?”
그러던 중, 팽무성은 이상함을 느끼곤 고개를 들어 산문 쪽을 바라보았다. 산문에 상당히 많은 기척이 느껴진 탓이었다.
아닐까 다를까 산문은 이미 열려있었고 그 앞에 이십여 명의 도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광경에 계단을 다 오른 팽무성 일행은 의아해했고 뒤따르던 화산 제자들도 기겁하여 소리쳤다.
“장문인!”
그 소리에 팽무성과 무각이 서로를 보며 놀라워했다. 이미 화산파에 방문해서 장문인을 만난 적이 있던 남궁혁도 마찬가지였다.
화산파 장문인이 누구이던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이는 많아도 아무나 만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이였다.
그런 화산파 장문인이 몸소 산문까지 나와 일개 후기지수를 만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직접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
화산파 장문인, 건륜 진인은 무사히 돌아온 제자들의 면면을 살피더니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시선을 틀어 팽무성 일행을 쳐다봤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세 사람의 인사에 건륜 진인은 고개를 끄덕이곤 감사를 표했다.
“자네들 덕분에 본문의 제자는 물론이고 양민 수십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네. 정말 고맙네.”
건륜 진인이 먼저 포권을 취하자 그 뒤에 있던 화산 제자들도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건륜 진인이 먼저 고개를 숙이며 포권하자 팽무성과 무각도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에 그나마 안면이 있는 남궁혁이 입을 열었다.
“장문인, 이렇게 과한 예를 보이시면 후배들이 불편합니다. 거두어 주시지요.”
허나 건륜 진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네들이 아니었다면 본문은 물론이고 양민들의 피해가 더욱 커졌을 걸세. 나중에 어찌 수습한다 한들 화산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겠지. 이를 생각하면 전혀 과하지 않아.”
건륜 진인은 무공은 고강했으나 지극히 도인에 가까웠다. 그런 탓인지 장문의 권위와 위치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인물이었다.
“화산은 오늘의 은을 잊지 않을 것이네.”
남궁혁도 건륜 진인의 그 소박한 성품을 알고 있었기에 더는 말하지 않고 그저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를 모두 차치하더라도 일개 후기지수가 화산파 장문인에게 먼저 감사 인사를 받은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일화 또한 무림으로 퍼져나갈 터, 팽무성과 무각의 명성이 한 층 더 드높아질 것이다.
남궁혁은 꾸준히 커가는 두 아우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건륜 진인은 피 묻은 붕대를 감고 있는 무각을 보며 말했다.
“이번에 부상을 당했다지, 급한 것이 아니라면 화산에서 몸을 정양하고 가게.”
“장문인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팽무성의 인사에 건륜 진인은 웃으며 몸을 틀었다. 매화가 만발한 화산파의 전경이 팽무성 일행을 맞이했다.
* * *
팽무성 일행은 화산파의 귀빈이 사용하는 전각 하나를 배정받아 머물고 있었다.
당가의 생일잔치 날짜까지 아직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무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 때까지 화산파에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팽무성 일행은 오늘 열릴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화산파의 상궁(上宮)으로 향하고 있었다.
상궁은 연화봉의 꼭대기에 있어 화산파 어디에 있던지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별다른 안내가 필요 없었다.
“사방이 매화로군요.”
“마치 이곳이 전설 속의 무릉도원 같지 않나.”
“이제 꽃이 피는 거면 열매는 한참 멀었네. 쩝.”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화산을 대표하는 이십사무매화검법의 마지막 초식.
화산파 경내에는 그 매화만리향이 펼쳐진 듯 어디를 가든 매화향을 맡을 수 있었다.
화산파 내부에 심어진 나무의 대부분이 매화나무인 덕분이었다. 걸음이 닿는 곳곳마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덕분에 백매와 홍매가 사방으로 만개하여 어여쁜 자태를 뽐내니 그야말로 매해(梅海)였다.
팽무성 일행은 중간중간 만나는 화산 제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화산 제자들도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저마다 상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상궁과 그 앞에 맑은 물이 고여있는 못인 옥녀지(玉女池). 화산파가 시작된 곳으로 화산파에 있어서 성지인 장소였다.
막 상궁에 들어서며 팽무성 일행이 적당히 자리를 잡자 그들을 발견한 일현이 아는 체를 하며 다가왔다.
“아무래도 장문인께서 이번 일을 중히 여기시는 듯합니다.”
화산파는 도교 문파였기에 문파 내에 도관은 얼마든지 있었다.
굳이 상궁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도관 하나를 정해서 위령제를 지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 때문에 상궁에서 위령제를 치른 적은 화산파의 긴 역사에서도 손꼽는 일이었다.
장문인이 굳이 상궁을 위령제의 장소로 정한 것은 그만큼 무거운 사안으로 여기고 있다는 의중이었다.
일현의 설명을 들은 세 사람의 표정은 절로 진중해졌다.
“마교의 손에 희생된 이들을 위한 위령제를 시작하겠다.”
건륜 진인의 엄숙한 선포를 시작으로 위령제가 시작되었다.
두우웅
넋을 위로하기 위한 주악이 울리고 학도인(學道人)들이 저마다 두 손으로 위패를 들고 줄줄이 걸어왔다.
이번에 희생된 양민들을 위해 준비된 위패로, 옥녀지 앞에 마련된 제단에 위패들이 자리를 잡았다.
“화산의 부족함으로 인해 생겨난 한(恨). 잊지 않으리. 화산이 그대들을 기억하니, 넋이여 고이 잠들라.”
위로문이 적힌 종이를 태운 건륜 진인이 매화검령(梅花劍令)을 쥐고 검례를 취했다.
착착
뒤에 도열 해 있던 화산 제자들도 일제히 매화검을 들고 검례를 취해 넋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팽무성과 남궁혁도 예를 갖추었고 무각은 염주를 굴리며 법문을 작은 소리로 외우고 있었다.
위령제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폐식을 알리는 장문인의 선포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건륜 진인은 제단에 옥녀지의 물을 담은 잔을 바치고 뒤돌아서서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억울하게 발생한 예순일곱의 넋, 흉수는 마인이나 화산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고저 없는 담담한 목소리가 상궁 주변을 맴돌았다. 잠시 말을 멈춘 건륜 진인은 매화검령을 천천히 뽑아냈다.
이에 상궁에 모여있던 화산 제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매화검령(梅花劍令).
화산파 최초의 매화검이자 지금은 장문인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문령부인 매화검령.
화산파의 역사를 함께한 신물이었다.
매화검령을 하늘 높이 치든 건륜 진인은 내공을 실어 말을 이었다.
“금일 부로 화산의 폐화령을 해체한다.”
이에 고개를 숙인 화산 제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폐화령(閉花令).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의적으로 하는 봉문이나 다름없었다. 폐화령이 내려진 화산파는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고 무림이 평화로울 때의 구파는 대개 이러했다. 무림인 이전에 도인이었으니 그에 충실했던 것이었다.
이번 일처럼 대량의 양민이 실종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화산 제자들이 무림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세상에 다시 마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혼세가 도래할 조짐이 보이니 화산의 검수들은 파사멸마의 뜻 아래에 검을 잡아야 할 것이다.”
“장문인의 명을 받듭니다!”
화산 제자들의 우렁찬 대답에서 그 힘과 자부심을 느껴졌다. 잠들었던 거룡이 몸을 꿈틀거리는 순간이었다.
‘화산이 보다 빠르게 활동하게 되었구나.’
이를 보던 팽무성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전생의 화산파는 무림맹주의 요청에야 폐화령을 거두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랬던 화산파가 훨씬 빠른 시기에 무림에 나섰으니 산중에 은거하던 다른 구파도 서서히 잠에서 깨어날 것이 분명했다.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전생에서 정마대전의 발발 이후에 본격적으로 나섰던 구파였다. 그때는 마교의 선제적인 공작으로 무림이 많은 피해를 입은 뒤였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흐름으로 구파가 훨씬 일찍 무림에 나선다면 커다란 이점이 될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미약한 변화가 나중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것을 팽무성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무각은 삼 인분의 식사를 해치우고 낮잠을 자고 있었고 남궁혁은 찾아온 화산 제자들과 비무를 벌이고 있었다.
특히 매화검수들은 창천검호라 불리는 남궁혁에게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전에 남궁혁이 화산파를 방문했을 때는 비무를 할 시간이 없었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팽무성은 홀로 화산파 경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별다른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화산파를 처음 방문했기에 길을 알지 못했지만 팽무성은 그저 걸음이 가는 대로 걷고 있었다.
‘오늘도 못 뵙는 건가.’
팽무성이 매일 화산파 경내를 활보하는 것은 검성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남궁혁에게서 검성이 매일 화산파 경내를 산보한다는 것을 들은 탓이었다.
허나 화산파 경내는 드넓었고 팽무성은 화산파의 길을 알지 못했기에 다른 길에서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기세를 뿜어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화산파와 검성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만 돌아갈까.”
“무엇을 찾기에 이리 돌아다니는 것이냐.”
인자한 목소리가 쓱 들어와 돌아가려는 팽무성의 발끝을 붙잡았다.
팽무성의 뒤에서 기천 진인이 뒷짐을 지고 걸어오고 있었다.
희게 물든 백발과 가슴까지 내려온 흰 수염. 도천과 달리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어 정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거기에 미혹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맑은 눈빛을 보였다.
도천이 광오한 절대자와 장난기 넘치는 아이의 경계에 서 있었다면 검성은 가히 신선의 풍모였다.
“말학 후배가 검성을 뵙습니다.”
팽무성은 기천 진인을 처음 봤으나 단번에 검성임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격이 다른 분위기를 보일 수 있는 이가 검성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흐음.”
팽무성이 검성을 살폈듯이 검성도 팽무성을 읽어내고 있었다. 검성은 팽무성을 보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립(而立, 30세)이 되기도 전에 초월경에 오른 무림의 상식을 벗어난 자들.
“마치 후기지수 시절의 삼천을 보는 듯하는구나.”
방금의 말은 검성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였다.
강호의 절대자로 군림하며 천하제일을 겨루는 세 개의 하늘.
도천(刀天), 용천(龍天), 사천(邪天).
그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는 수식어조차 부족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무인들의 우상이자 절망의 대상이었던 존재들.
화산제일검이라 불리던 검성도 삼천 앞에서는 천외천을 체감하며 한 번도 넘어설 수 없었다.
“잠시 걷겠느냐.”
“예.”
검성은 발걸음을 돌렸고 팽무성은 조심스레 그 뒤를 따라붙었다.
검성은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화산파의 풍광을 눈에 담거나 간혹 흩날리는 꽃잎을 잡아서 만지작거렸다.
검성이 팽무성을 데리고 온 곳은 그저 매화나무가 모여있는 군락지였다.
무수하게 떨어지는 꽃잎 덕분에 땅과 하늘은 물론이고 온 세상이 희고 붉었다.
검성은 나무 사이에 있는 납작한 바위에 앉았다.
“이곳은 내가 화산파에 입문 이후로 쭉 운기를 하던 곳이다.”
“마치 별세계와 같은 장소입니다.”
팽무성의 탄성에 검성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최근에는 운기를 해도 단전의 내공이 흩어지더구나.”
덤덤하게 내뱉는 검성의 말에 팽무성의 얼굴이 굳었다. 노고수의 내공이 이유도 없이 흩어진다, 그 원인은 하나뿐이었다.
“나의 천수가 거의 다한 모양이다.”
겨울이 지나면 매화는 언제나 피어났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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