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72)
71화
무림인은 대체로 평범한 양민보다 수명이 긴 편이었다. 평생 육체를 단련하며 내공을 쌓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허나 무림인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했다.
죽음을 피할 순 없으나 그저 때를 늦출 뿐. 그것은 검성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의 기를 받아들이는 그릇인 육체가 수명이 다해 더는 그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검성이 평생을 쌓아온 내공이 있으니 당분간은 버티겠지만 내공이 줄어들며 점점 육체는 쇠약해질 것이다.
종래에 내공이 떨어지는 순간 검성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이런 탓에 전생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신 건가.’
전생에서도 검성은 정마대전 이후에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훗날 검성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문이 들렸으나 헛소문으로 치부되곤 했었다.
‘헛소문이 아니라 무림맹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화산파가 숨겼던 거로군.’
십대고수 한 명의 이탈은 무림에 있어서 커다란 손실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되짚던 팽무성은 조심스레 물었다.
“앞으로 몇 년이나 남으신 것입니까.”
그 질문에 검성의 수염이 흔들렸다.
“버티고자 한다면 버틸 수 있으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결국, 천리에 따라야 하는 것이지.”
활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온종일 운기를 한다면 시간을 벌 수 있으나 검성에게 있어 그런 삶은 부질없었다.
이미 검성은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팽무성은 별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검성은 땅에 소복이 쌓인 매화 꽃잎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이내 꽃잎을 한 움큼 줍더니 손을 가볍게 흔들어 꽃잎을 뿌려냈다.
꽃잎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모습을 보던 검성은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의 매화를 눈에 담았다.
“화려하게 핀 매화의 꽃잎은 땅에 떨어져 다음 꽃을 위한 양분이 되는 것이 순리.”
검성 또한 선대의 유산으로 만개하였으니 이제 후대를 위해 자신의 꽃잎을 뿌릴 때였다.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겠느냐.”
“말씀하십시오.”
“네가 나의 검을 받아주었으면 한다.”
검성의 말에 팽무성은 침을 삼켰다.
검성의 검을 상대한다는 기대와 호승심에 손이 불끈 쥐어졌다.
“비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지금 화산에 내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이가 너밖에 없구나. 다만, 제자 몇을 참관시키고자 하는데 괜찮으냐?”
단순히 검성이 펼치는 검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산 제자들은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허나 검성은 팽무성을 만나고 한 가지 작은 욕심이 생겼다.
본디 무공은 겨루기 위한 것.
홀로 펼치는 검무(劍舞)가 아니었다.
받아줄 수 있는 상대가 있을 때 무공은 빛을 발한다는 것을 검성은 알고 있었다.
홀로 펼치는 검과 상대를 만나 펼치는 검은 보이는 모습과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팽무성 또한 검성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그 의미를 어렴풋이 파악하고 흔쾌히 수락했다.
“고맙다, 이제 걱정되는 것은 제자 녀석 하나인가.”
검성의 중얼거림에 팽무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성께서 제자를 두셨던가?’
검성의 제자라면 무림에 소문이 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전생에 검성의 제자라 불리던 화산파 제자는 없었다.
“제자가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차기 화산제일검이 될 것이야. 어쩌면 나를 뛰어넘을지도.”
검성의 말에서 제자에 대한 자부심이 듬뿍 느껴졌다. 그와 반대로 팽무성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검성 이후로 무림에 명성을 날린 화산 제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적의 약탈로 초토화된 마을에서 기적적으로 홀로 살아남은 아이다. 갓난아기였던 것을 내가 발견해서 직접 키웠지.”
“인연이 깊은 제자로군요.”
제자를 떠올리며 웃던 검성의 낯빛은 순간의 걱정으로 어두어졌다.
“그놈이 제법 재능은 있지만, 심성이 여려서 소심하고 정이 많아, 생각도 쓸데없이 많고. 내가 죽으면 그 녀석이 마음을 제대로 다잡을지 걱정이 되는구나.”
“제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겁니까.”
“아니, 장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후우.”
방금까지만 해도 별다른 미련 없이 죽음을 준비하던 것처럼 보이던 검성이었다.
하지만 제자의 얘기가 나오자 검성은 없던 걱정도 생기는 듯 짧은 한탄과 함께 제자의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하나뿐인 손자의 자랑을 하듯 즐겁게 이야기하던 검성은 고개를 들어 팽무성 너머를 바라보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 녀석이다.”
팽무성도 이곳으로 향하는 기척을 느꼈기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내를 쳐다봤다.
“스승님, 손님과 함께 계셨네요. 나중에 다시 올까요?”
“괜찮다. 신경 쓰지 말고 수련을 시작해라.”
아직 일이 년은 더 지나야 약관이 될법한 앳된 얼굴. 어린 나이지만 과연 검성의 제자라 그런지 또래에 비해 성취가 월등했다.
팽무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사내의 얼굴을 살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팽무성이 기억을 살피는 사이에 사내가 먼저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일향이라고 합니다.”
“하북팽가의 팽무성입니다.”
“팽 소협 덕분에 사형들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인사를 나눈 일향은 수련하기 위해 군락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일향… 취화검?’
걸어가는 뒷모습을 뚫어지라 보던 팽무성은 드디어 전생의 일향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저 사내가 그 한심한 술주정뱅이라고…’
취화검(取花劍).
같은 전장에서 몇 번 함께 싸워봤지만 그리 대단한 검수는 아니었다.
언제나 술에 빠져 살면서 마인이 보이면 귀신같이 일어나 술 냄새를 흘리며 베어냈기에 취화검이라 불렸다.
그러나 전장이 술을 마시며 살아남을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취화검이라는 별호는 어느샌가 더는 불리지 않고 서서히 잊혔다.
검성의 제자였던 자가 고작 취화검이라 불리며 이름 없는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니. 검성이 알았다면 탄복할 일이었다.
“한 번 내 제자의 실력을 보겠느냐.”
타 문파의 수련을 보는 것은 엄연한 무림의 금기였지만 검성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상관없었다.
“예.”
더구나 전생의 취향검이 일향이었던 것을 알게 되자 팽무성은 관심이 가고 있었다.
차앙
시원하게 매화검을 발검한 일향은 허공에 검을 찔러넣으며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극이 잘게 분화하며 그려내는 화려한 궤적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웠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매화검수들을 비롯해 화산의 고수들이 평생을 매달리는 검법이다. 그만큼 난해하고 대성하기가 어려워 입문하기조차 어려운 검법이라 알고 있었다.
그런 검법을 일향은 어린 나이에 익히고 있으니 이것만으로 스스로의 재능은 증명한 셈이었다.
촤라락
매화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불어오는 바람에 연무장에 쌓인 꽃잎이 솟아올라 하늘에 흩날렸다.
그중 하나가 검극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일향의 검이 쾌속하게 질주하며 수십의 선을 그려내자 허공에 나풀거리던 꽃잎이 죄다 절반으로 갈라졌다.
그 와중에도 검극에 붙은 단 하나의 꽃잎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검극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검신은 조금의 낭비도 없이 힘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지금 일향이 펼치는 검을 보고 있으니 취화검의 검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이런 기재가 어찌 취화검이 되었을까.’
정마대전이 벌어지면 고수 한 명, 한 명이 절실했다. 그랬기에 지닌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일향이 아깝고 안타까웠다.
검성이 일향에 대해서 하던 말을 떠올리던 팽무성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향 도장도 준비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충격이 클 것입니다.”
팽무성은 일향이 취화검이 된 이유가 검성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컸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향에 대해 팔불출처럼 칭찬을 아끼지 않던 검성이 심성이 여리다고 평할 정도이니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라 하여 모두 심지가 굳고 흔들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림인도 결국 사람이었고 그런 탓에 무공에서 마음에 대한 공부가 중시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런 팽무성의 의중을 깨달은 검성은 쉬이 대답하지 않고 침음을 흘릴 뿐이었다.
“나이를 이렇게 먹고 평생 수행을 했음에도 사람의 마음은 아직도 모르겠구나.”
원래 일향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천명에 따르고자 했던 검성이었다.
일향은 화산파의 제자이나 평생 검성에게 기대어 의존하며 자라온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것은 검성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검성은 입을 다물고 그저 일향의 수련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일향을 바라보는 검성의 눈빛은 복잡했다.
* * *
검성이 팽무성에게 비무를 부탁한 날의 밤은 유독 보름달이 크게 뜨고 있었다.
그 덕분에 휘황한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달빛은 햇빛과 다른 부분이 있어 밤에 보는 매화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본래라면 모두 잠들었을 시간이건만, 화산파의 대연무장에는 일단의 무리가 모여들고 있었다.
보통 화산파 제자들의 도복에는 백매를 수놓지만, 이들의 도복에는 홍매가 자리 잡고 있었다.
홍매가 수놓아진 화산파 도복을 입을 수 있는 제자는 오직 매화검수 뿐이었다.
매화검수들을 필두로 각 배분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이는 제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 틈 사이에는 남궁혁과 무각도 껴있었다.
“다들 모였느냐.”
한 줄기 바람과 함께 검성이 대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제자들은 일제히 예를 갖추었다.
검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뒤에 서있는 팽무성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검성으로서 마지막으로 검을 잡는 날이 될 것이다.”
검성의 발언에 화산 제자들은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특히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일향은 검성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검성은 이를 못 본척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검을 이 자리에 있는 팽무성이 받아낼 것이니라.”
화산 제자 중에 패호도의 명성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어느덧 패호도는 후기지수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명성을 자랑했다.
‘아무리 그래도 팽 소협이 어찌 스승님의 검을 상대한다는 걸까.’
일향을 비롯한 화산 제자들은 비슷한 의문이 들었으나 가만히 검성의 말을 기다렸다.
“팽무성의 배려로 너희들이 비무를 참관하지만, 이 비무에 대하여 외부에 발설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예!”
이는 검성이 팽무성에게 할 수 있는 배려였다. 팽무성이 초월경에 오른 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산 제자들의 다짐을 받아낸 검성은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팽무성에게 향했다.
“나의 억지를 들어주어서 고맙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검성은 비무를 최대한 빨리하기를 원했다. 내공이 흩어지기 시작하면서 검성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기에 찰나의 시간조차도 아까웠고 조금이라도 강할 때에 전력을 다한 검을 펼쳐내어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었다.
검성과 팽무성은 거리를 벌리고 서로를 마주 봤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매화노방부터 매화만리향까지, 스물넷 초식을 연달아 펼칠 것이다.”
“하북팽가의 새로운 도법, 오호단문도로 상대하겠습니다.”
“호오.”
새로운 도법이라는 말에 검성은 흥미를 보였고 숨죽이고 지켜보는 참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도법이라, 무각 아우는 본 적이 있나?”
“아니, 그때는 다른데 신경 쓸 틈이 없어서.”
남궁혁과 무각도 자세를 곧게 펴고 비무에 집중했다.
스릉
촤악
적아도와 매화검이 동시에 휘광을 뽐내며 모습을 보였다.
이십사수매화검법 일 초식.
매화노방(梅花路傍).
공간을 격하고 나타난 한 송이의 매화.
매화가 길가에 있다는 초식의 의미처럼 원래 있었던 듯 팽무성의 옆에 매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콰릉
적아도가 울음을 터트리며 빛을 발하자 비무를 보던 이들의 눈이 커졌다.
겨울이 지나면 매화는 언제나 피어났다.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