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79)
78화
먼저 죽이냐의 싸움이 아닌 누가 오래 버티냐의 싸움. 그만큼 독인들의 사투는 처절한 면이 있었다.
만독전 주변에는 십여 가지의 독무가 퍼져나가 하나의 작은 지옥도를 자아냈다.
하나하나의 독무가 어찌나 독한지 주변을 날던 새들은 땅으로 떨어졌고, 관상용으로 심어진 초목은 노랗게 말라갔다.
챠앙
챙
사슬과 비도가 부딪치는 쇳소리가 연달아 울리는 도중에도.
푹
쇠붙이가 살을 파고드는 파육음이 조용히 났다. 허나 비명이나 신음은 없었다.
모든 생명이 침묵하는 그 공간에서 독인만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독공(毒功)의 특성상 성취가 오를수록 독의 위력은 물론이고 독에 대한 저항력도 올라갔다.
이는 처음 접하는 독에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독제독(以毒制毒)이 무엇인지 독인들은 몸소 보여주는 중이었다.
쐐애액
독연을 뚫고 날아오는 암기. 힘과 속도가 대단한 듯 요란한 파공음이 들렸다.
까가강
쌍겸을 교차시키며 여섯 개의 어린표를 가볍게 튕겨낸 독마군은 순간 등이 시려웠다.
그에 대경한 독마군은 급히 등을 돌리며 겸을 크게 휘둘렀다.
카앙
후미로 선회하여 무음으로 날아든 어린표 두 개는 튕겨냈으나 나머지 하나가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저 스쳤을 뿐임에도 어린표의 예기 때문인지 살이 제법 깊게 베였다.
“이제 서로 한 번씩 주고받았네요.”
그 순간 독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당화련의 허벅지에는 붉은 얼룩이 져 있었다. 독마군의 겸이 베고 지나간 자리였다.
육안으로도 상당한 고통에 다리를 가누기 힘들 것인데, 당화련은 멀쩡하게 걷고 있었다.
‘지독한 년.’
그로 미루어 독마군은 당화련의 고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꼼수가 통하는 것은 이번 한 번이다.”
독마군이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맞받아치자 이에 당화련이 도발하듯 눈웃음을 보였다.
“꼼수가 아니라 기예죠.”
그 도발에 독마군이 쌍겸을 날렸고 당화련은 다시 독무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차락
당화련을 쫓아 독무로 들어온 독마군의 앞에는 독질려(毒疾藜)가 가득 뿌려져 있었다.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갔다면 발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이딴 어린애 장난이 통할 것 같으냐.”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독마군은 발목을 튕겨 신형을 띄웠다. 그 순간, 독마군은 섬뜩한 바람이 불어옴을 느꼈다.
쏴아악
독마군을 향해 날아드는 수십의 어린표. 쇄도하는 어린표의 수는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 독마군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용린폭풍비 용주풍륜(龍珠風輪).
독마군을 가두어내는 어린표의 향연.
제각기 다른 속도와 궤도로 유영하는 어린표는 실제보다 숫자가 많아 보이는 착시를 일으키고 있었다.
단순히 암기를 많이 날린다고 하여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시도조차 힘든 초식. 그러나 당화련은 아주 능숙하게 펼쳐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데는 비본결이 있었으며, 비본결은 당화련의 암기술을 다른 경지로 이끌어주었다.
“감히!”
그에 독마군이 급히 흑당쌍참(黑螳雙斬)을 펼쳐냈다. 그 찰나에 독마군의 쌍겸을 수십 번이나 휘두르며 사방을 베어냈다.
촤자자자작
베고 또 베어도 마치 바람을 베듯이 어린표는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더구나 허공이라 발판이 없어 쌍겸에 실리는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쯧.”
짧게 혀를 찬 독마군은 결국 마기를 끌어올렸다.
쏴악
용주풍륜을 가르는 기다란 참격. 사선으로 교차되어 쌍겸이 지나가자 두터웠던 암기의 벽이 갈라지고 말았다.
용주풍륜을 빠져나온 독마군의 몸에 어린표가 서너 개 정도 박혔지만, 치명상은 없었다.
“곱게 죽지는 못할 거다!”
양팔에 묶인 사슬을 최대로 풀어낸 독마군은 마치 채찍처럼 휘둘렀다.
독기가 섞여 갈색의 빛을 띠는 마기는 사슬을 타고 끝에 달린 쌍겸까지 뒤덮었다.
촤아악
콰아앙
적아를 가리지 않은 난폭한 공세에 주변에서 싸우던 독왕대는 물론이고 독연대 마저 급히 몸을 빼내야만 했다.
독마군은 사슬로 인해 늘어난 사정거리를 이용해 당화련이 암기를 날릴 틈조차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실제로 당화련은 사슬을 피해내기에 바빴다.
촤악
낫을 피해냈음에도 뒤이어 불어오는 칼바람에 팔다리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허나 독마군의 전신을 비추고 있는 당화련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노리는 듯 빛나고 있었다.
‘슬슬 승부를 내야 해.’
당화련은 간헐적으로 떨리는 자신의 손끝을 보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독에 노출된 지 시간도 꽤 지났고 내공도 상당히 소모했다. 그동안 억눌러 놓았던 독이 슬슬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전투의 첫 시작부터 노려온 한 수를 터트리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사이 쌍겸이 좌우로 바닥을 쓸며 솟구쳤고, 중간에 출렁이는 움직임은 타격점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마치 두 마리의 독사가 덮치는 형국에 당화련은 독운비보(毒雲飛步)를 밟았다.
여인 특유의 가벼움과 유연함을 살린 미려한 움직임.
순식간에 그 긴 거리를 좁히는 당화련을 본 독마군은 기다렸다는 듯 양팔을 뒤로 당겼다.
촤르륵
뒤를 노리고 날아오는 쌍겸에 당화련은 그 자리에서 도약함과 동시에 허리춤의 유엽비도를 잡았다.
두 사슬의 홈이 겹치는 그 짧은 순간, 당화련은 이를 놓치지 않고 유엽비도를 날렸다.
퍼억
두 개의 사슬을 정확히 관통한 유엽비도는 바닥에 깊숙이 박혔다.
말뚝처럼 박힌 유엽비도에 사슬이 움직이지 않자 독마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촤락
마기를 끌어 올려 두 팔을 거세게 털자 사슬이 들썩이더니 쐐기 역할의 유엽비도가 땅에서 뽑혀나갔다.
그 사이에 당화련은 선수를 잡을 수 있었다.
생사가 결정되는 순간.
당화련의 손에 들린 것은 어린표가 아닌 비침이었다.
이것을 어린표로 펼칠 수 있을 만큼 성취가 높지 않은 탓이었다. 당화련은 한 줌의 내공을 남기고 이 한 수에 털어 넣었다.
허공을 가득 메운 비침에 독마군의 눈이 커졌다.
하늘에 꽃비가 가득 찼다.
꽃잎은 그저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곧게 떨어지다 휘어지기도 했고, 바람을 만나 곡선을 그리며 치솟기도 하니.
무수히 떨어지는 꽃잎의 길을 아는 것은 오직 바람뿐이었다.
사천당가 암기술의 총집합.
만천화우(滿天花雨).
한 차례 꽃비가 휩쓸고 갔지만 독마군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급히 두 겹의 기막을 펼쳐내 막아낸 덕분도 있지만 당화련의 만천화우가 완성되지 않은 탓도 있었다.
“쿨럭.”
검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낸 독마군의 얼굴색은 파랬다가 노래지기를 반복했다.
“이제 슬슬 독이 드나 보네요.”
“무슨 독이냐, 이렇게 금방 독이 들 리가 없는데.”
당화련은 독마군의 상처, 그리고 이번에 꽂힌 비침들을 봤다.
“독공이 재밌는 게 강한 독에는 바로 반응하면서 약한 독에는 느리게 반응한단 말이죠.”
그 말에 독마군은 곧바로 눈치챘다.
당화련은 자신의 몸에 상처를 하나씩 남기며 다른 종류의 독을 중독시켰을 것이다.
아주 약한 것들로.
“일곱 가지 독을 배합한 것인데. 먹혀서 다행이네요.”
“일곱 번의 공격을 성공시켜야 하건만. 배짱도 좋은 계집이군.”
말은 쉽지만,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무림인에게 한 상대에게 일곱 번이나 공격을 허용하는 전투는 극히 드물었다.
은밀히 시간을 끈 독마군은 만독범마공(漫毒汎魔功)으로 독기를 몰아냈다.
그렇게 조금씩 전신의 마비가 사라질 때.
재빠른 눈치로 사태를 파악한 당화련이 곧장 머리에 꽂고 있던 옥잠을 뽑아냈다.
팽무성이 이번에 선물해준 옥잠이었다.
한쪽에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어처구니없는 옥잠이지만, 당화련은 그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들었다.
찰랑거리는 머리를 흩날리며 역수로 잡은 옥잠으로 당화련은 독마군의 목을 베어갔다.
독마군도 뒤늦게 겸을 뻗었지만, 마비가 덜 풀려 힘이 부족했다. 이대로면 목을 찔러도 얕게 들어갈 뿐이었다.
순간, 독마군의 눈이 번득였다.
‘네년도 무인이기 이전에 여인이겠지.’
독마군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틀었다. 목젖을 노리던 겸이 비틀어지며 당화련의 얼굴로 향했다.
여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흉터, 특히 얼굴에 남은 흉터였다.
독마군은 당화련이 겸을 피하기 위해 공격을 멈추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싸악
두 줄기의 붉은 선이 그어졌다.
하나는 독마군의 목에, 다른 하나는 당화련의 뺨에.
독마군이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부여잡자 당화련은 이를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여인이기 이전에 무인이거든요.”
독마군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당화련은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미친년.”
독마군은 그대로 앞으로 허물어졌고 당화련도 천천히 주저앉았다.
뺨에 난 따끔한 상처를 느끼며 당화련은 중얼거렸다.
“따끔하긴 하네.”
당화련은 피 묻은 옥잠을 꼭 쥐었다.
* * *
팽무성의 허리가 회전하며 적아도가 커다란 원을 그려냈다.
고개를 뒤로 젖힌 괴세마왕의 앞머리 일부가 베여 휘날렸다.
괴세마왕은 허리를 튕겨 자세를 바로 했다. 터질 듯 부푸는 상완과 함께 주먹이 치솟아 팽무성의 단전을 노렸다.
쩡
적아도를 하단으로 내려 주먹을 막아낸 팽무성의 몸이 붕 떴다.
이를 노렸던 팽무성은 자연스레 뒤로 밀려나며 오호월아(五虎月牙)를 펼쳐냈다.
초승달을 본뜬 굵직한 도기가 다섯 방향에서 일제히 날아들었다.
덩치를 키운 자신을 능가하는 크기에 괴세마왕은 연달아 주먹을 내질렀다.
꽝꽝꽝
오호월아는 박살 냈으나 괴세마왕도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주먹에서 올라오는 반탄감을 느끼며 괴세마왕은 굳게 다문 입술을 꿈틀거렸다.
괴천마권에 거력금마공(巨力金魔功).
괴세마왕은 분명 전력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팽무성을 죽이려 했다.
허나 팽무성은 목숨을 건 줄다리기를 끈질기게 이어냈고 기어코 지금까지 버텨냈다.
“방금으로 삼백 합을 겨루었군.”
“꽤 오래 버티는군. 정말 놀라워.”
팽무성의 상태는 엉망이었으나 저 불꽃 같은 안광은 꺼지지 않고 더욱 빛나고 있었다.
주먹을 뻗으려던 괴세마왕은 순간 움찔거렸다.
‘엉망? 그런데 왜 나는 저놈을 못 죽이는 거냐.’
이상함을 느낀 괴세마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신도 추가적인 부상을 당했으나 팽무성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본신의 무위까지 생각한다면 지금쯤이면 팽무성은 이미 죽었어야 했다.
순간적으로 지난 삼백 합의 공방을 복기하던 괴세마왕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서서히 강해지고 있나?’
합이 늘어날수록 팽무성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괴세마왕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치 자신이 명검을 제련하기 위한 담금질을 해주었다는 생각이 미친 탓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괴세마왕이 나서지 않자 팽무성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지금의 일전으로 도왕으로서의 감을 서서히 살려내는 중이었다.
“음?”
팽무성을 노려보던 괴세마왕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졌다. 이변을 알아차린 탓이었다.
이에 팽무성도 기감을 넓혀 사천당가의 상황을 확인했다.
‘화련이가 상대를 꺾어냈구나.’
당화련이 상대하던 마군의 기척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연달아 연회장의 상황을 확인한 팽무성의 눈이 반짝였다.
‘다들 예상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네.’
각자 선전하고 있는 사패에 팽무성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러곤 보란 듯이 괴세마왕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나와 싸울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이에 괴세마왕의 팽팽한 근육이 꿈틀거리며 굵은 힘줄이 솟았다. 분하지만, 팽무성의 말이 맞았다.
허나 팽무성은 괴세마왕을 최대한 붙잡아둘 생각인 듯 되려 몸을 날렸다.
‘낭패로군.’
설마 상정했던 여러 상황 중 최악의 상황이 실현될 줄이야.
괴세마왕은 이 한 수로 상황을 정리하기로 결정 내렸다.
쿵쿵
뿌리를 내리듯 두 다리가 땅에 깊숙이 박혔다. 마보를 하듯 무게중심을 하단으로 내린 괴세마왕.
그그극
땅에 굴러다니던 작은 돌멩이들이 괴세마왕 쪽으로 굴러갔다.
괴세마왕의 쥐어진 두 주먹을 중심으로 주변의 대기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듯 적아도가 붉게 물들었다.
‘나를 죽이거나, 최소 전투 불능으로 만들 셈이로군.’
괴세마왕이 이 전투를 마무리 짓고 현장을 벗어나려는 게 눈에 보였다.
‘이 애송이에게 이것을 선보이다니.’
괴세마왕은 두 주먹을 동시에 내질렀다.
파앗
나선형으로 꼬아진 두 줄기의 마기는 서로 맞물려 회전하며 거대한 권력으로 화했다.
괴천흑륜(壞天黑輪).
괴천마권의 마지막 절초에 팽무성은 적아도를 중단으로 가져갔다.
단 한치의 기교도 들어가지 않는 단순한 베기. 다른 것들은 잠시 내려놓았다.
팽무성은 적아도에 벤다는 일념 하나만 담아냈다.
촤악
벽력일섬(霹靂一閃).
간결한 붉은 선이 그어졌다.
고수는 사선(死線)을 넘으며 탄생한다. (4)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