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8)
7화
절도 있는 움직임.
포권을 하는 동작에서 기개와 무게감이 느껴졌다. 정면을 향한 팽무성의 시선은 군중의 시선을 자연스레 받아내고 있었다.
이를 본 가솔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지금 이 사내가 정말 우리가 알고 있던 방구석의 둔재 팽무성이 맞는가.
“허허, 사공자가 많이 사내다워졌어. 이제야 좀 팽가의 자손 같구나.”
“요새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더니 보기가 좋군.”
정치와 입장을 떠나서 그동안 혀를 차게 만들었던 자손이 건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른들에게 기쁜 일이었다.
반면 대놓고 쏘아보는 이도 있었다.
“네놈이 여기는 무슨 자격으로 들어온 것이냐.”
팽무성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저번 비무에서 처맞고 아직도 얼굴이 부어있는 팽소혁이었다.
이에 팽무성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아직 덜 맞았군.
팽무성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움직였다. 팽소혁은 그 의미를 알아차린 듯 바로 입을 다물었다.
팽무성은 팽소혁은 신경 쓰지 않고 회의장의 가솔들을 둘러보았다.
팽소혁의 말이 맞긴 맞았다.
팽무성이 소가주 경합에 참여한다는 것을 가솔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런 반응도 당연했다.
“내가 불렀으니 그만하거라. 이미 숙부께 말씀을 드린 사항이다.”
나긋나긋한 목소리.
팽무성을 향해 있던 가솔들의 시선이 정반대로 향한다. 상석의 바로 옆자리.
여유롭게 차의 향기를 맡으며 입을 여는 사내. 대공자 팽대혁.
팽소혁은 듣기 싫은 것을 들은 듯 바로 인상을 구겼다. 팽소혁은 팽무성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
팽대혁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팽무성을 바라보았다.
“막내야, 어서 와라.”
팽대혁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고 팽무성은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갖추었다.
턱을 숙일 때 표정은 싸늘했지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입꼬리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젊어진 낯짝을 보니 새롭군. 가주.’
다시 한번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전생에 팽지혁과 팽호대를 버린 가주.
그 가주가 바로 전생의 팽대혁이었다.
팽대혁의 숨겨진 그 음습한 심성은 겪어서 잘 알고 있었다.
팽대혁의 눈에 하북팽가는 없다.
그저 자신의 안위와 성공만 있을 뿐, 팽대혁에게 하북팽가는 그저 수단에 불과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웃는 낯으로 기꺼이 가문과 가솔을 버릴 수 있는 그런 인간이었다.
“후우.”
팽무성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쥐었던 주먹이 펴지고 눈이 다시 빛을 발했다.
묵은 원한은 잠시 뒤로 미룰 때였다.
팽무성은 끝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이번 회의도 가주가 안 계시니 본인이 주관하겠소.”
가주 대리 팽연후가 회의장의 상석에 앉자 회의는 시작되었다.
월말 회의라고 매번 대단한 안건을 논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가의 주요 기관에 대한 실적.
주변의 정세를 읽고 내리는 임무의 성패.
그리고 달에 발생한 특이점.
이런 순서로 회의는 진행되었다.
재정각을 시작으로 각 요직의 실적보고가 이루어지고 감찰각의 차례가 도달했다.
“감찰각의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감찰각주는 이번 달의 실적을 보고하고는 특이사항에 대한 보고를 진행되었다.
이번 달의 특이사항은 사공자 암살시도 사건.
몇 달 전에 일어난 일의 조사 결과가 이제야 나오는 것이다.
이에 몇몇 가솔들이 팽무성의 표정을 살폈다. 팽무성은 무표정으로 보고를 들었다.
내용은 역시나 형식적이었다.
“살수들의 정체는 본가에 원한이 있던 무인들로 판명. 개인들의 원한을 풀기에 본가 자체와 싸울 수는 없기에 호위와 세력이 부족한 사공자를 노린 것으로 판단됩니다.”
감찰각주의 짧은 보고가 끝나고 팽연후가 팽무성을 향해 말했다.
“어떤가, 사공자. 이번 건에 대해 더 할 말이 있느냐?”
“아무리 제가 존재감이 없는 막내라지만 습격을 받았는데 본가는 조용하더군요.”
조용히 회의장을 울리는 팽무성의 목소리.
불편한 침묵이 회의장을 덮었다.
팽무성의 지적이 옳기 때문이다.
만약 사공자가 아닌 다른 공자가 습격을 받았다면 팽가가 지금처럼 조용했을까.
팽무성은 이런 상황을 보고 확신했다.
‘이 시점에서 이미 감찰각주는 대공자의 세력에 들어갔군.’
전생에서는 감찰각의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세가는 한참이나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 당시에 곧바로 흉수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삼공자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지금 보다 더 미래, 소가주 경합이 과열되던 시기였다.
삼공자는 끝까지 누명이라고 주장했지만.
끝내 삼공자는 모든 자격을 박탈당한 뒤에 본가의 감옥에 갇히며 서서히 잊혔다.
자연스레 소가주 경합은 대공자와 이공자의 양강구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평온했다.
감찰각의 조사도 그저 형식상 이루어졌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거릴 흉수도 발견되었다.
무엇이 사건의 흐름을 바꾸었을까.
전생과 다른 점은 팽무성이 살아남았다는 것. 단 하나였다.
“사공자의 오해입니다. 감찰각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형식적인 대답이다.
그래도 팽무성은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감찰각주는 이미 팽대혁의 사람.
어떤 말을 하던 흐지부지 끝날 것이다.
뻔뻔하게 대답하는 감찰각주의 얼굴을 팽무성은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팽무성은 알고 있었다.
전생의 팽소혁은 정말 누명에 당한 것을.
그저 삼공자와 사공자를 동시에 처리하는 편리한 계획임을 알고 있었다.
팽무성은 잠시 눈을 감았다.
전생에 이 진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치가 떨렸는지. 술에 취해서 자랑하듯 떠드는 팽대혁의 목을 그 자리에서 칠 뻔했다.
하지만 그때 팽대혁은 이미 가주였고 마교와 전쟁 중이었다. 전생에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정리를 하겠다는 다짐뿐이었다.
그 후 뒤통수를 맞고 죽었지만 말이다.
‘때가 아니다.’
좀 더 화려하고 확실하게 터트릴 기회를 노려야 했다.
지금은 패를 아끼고 힘을 키워야 했다.
기다리고 잠시 몸을 숙일 때.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지만 팽무성은 그리 오래 묵힐 생각이 없었다.
십 년이 지나면 칼날도 무뎌졌다.
‘조금만 즐기고 있어라. 팽대혁.’
결국 감찰각주의 보고는 어색한 분위기만 남기고 끝나게 되었다. 공기는 살짝 가라앉았지만,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그럼 이제 임무를 배당하도록 하지.”
실적의 평가가 끝나면 새롭게 편성된 임무의 배당이 이루어진다.
여기서부터 세 공자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조금이라도 공이 되고 좋은 실적이 될만한 임무를 가져가기 위해 힘 싸움을 벌였다.
“그렇다면 막내는 자격이 없으니 나가도 되겠군요. 자신을 노린 놈들의 정보도 들었으니 말입니다.”
팽소혁은 팽무성을 보며 말했다.
“막내가 듣는다고 무슨 도움이 될는지.”
팽소혁의 말에 회의에 모인 이들의 눈이 팽무성에게 쏠렸다. 팽연후는 이 상황을 중재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팽연후의 눈에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가솔들은 대공자가 부른 덕분에 사공자가 회의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대공자가 사공자를 회의에 참가하게 해달라 청을 올렸다.
하지만 그전에 사공자가 먼저 찾아왔다.
용건은 똑같았다. 회의의 참가를 원했다.
‘가솔들 앞에 모습을 보이길 꺼렸던 너다. 이런 자리에 스스로 찾아온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
팽무성은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고맙게도 판을 제대로 만들어 줬다. 팽무성은 의기양양한 얼굴을 한 팽소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판을 깔아주었으니 춤을 추어야겠지.
“경합에 참가하겠습니다.”
덤덤한 목소리지만 회의장의 그 누구도 이 말을 놓치지는 않았다.
회의장은 조용해졌다.
갖가지 감정이 섞인 눈빛이 팽무성을 꿰뚫었다. 팽무성은 그 누구의 눈빛도 피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팽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특유의 웃음이 옅어진 미묘한 얼굴.
심기가 거슬릴 때 보이는 표정이다.
“막내야, 경합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우리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방구석에서만 살던 네가 감당할 수 있을까. 네가 쥔 칼끝을 우리를 향해 겨눌 수 있겠느냔 말이다.”
부드럽게 말하지만, 실상은 경고였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주제에 자신들을 감당할 수 있냐는 뜻.
이때만은 한편인 듯 팽소혁도 소리쳤다.
“아무것도 없는 놈이 무슨 소가주.”
아까부터 뱁새처럼 조잘거리는 팽소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간에 말을 멈췄다.
자신을 쳐다보는 팽무성의 눈.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한기를 느꼈다.
산속에서 홀로 호랑이를 마주한 느낌.
계속 시선을 마주하려 했지만 팽소혁은 결국 시선을 떨구고야 말았다.
“형님들. 제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뭐?”
팽소혁은 어이가 없어 되물었고 팽대혁은 그저 입꼬리가 전보다 내려왔을 뿐이다.
팽무성은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화악
회의장에 있던 가솔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지며 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의 끝에는 팽무성이 앉아있었다.
“으음.”
누군가 침음을 흘리자 유독 크게 들렸다.
공기가 짓누르는 듯 어깨가 욱신거렸다.
만물을 억압하는 패도적인 기세.
기세를 내뿜는 자의 기질이 녹아드는 것.
어떤 이는 유하고 허허로운 기세.
어떤 이는 패악하고 흉포한 기세.
사람마다 그 기세의 성질이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팽무성이 이미 기세를 내뿜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것과 팽가의 중진마저 압박을 느낄 정도로 패도적인 기세를 내뿜는 것까지.
“재미있군.”
그동안 묵묵히 입을 닫고 있던 이공자 팽중혁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우리 막내, 간만에 마음에 드는구나. 계속해봐라.”
이에 팽무성은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간단히 감사를 표하는 팽무성을 보며 팽연후는 손에 깍지를 꼈다.
‘제 형들을 상대로 여유롭군.’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형들의 기에 눌려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막내. 그래서 특히 삼공자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은근한 기 싸움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팽무성은 팽연후를 보며 말했다.
“팽가의 직계라면 당연히 소가주 자리를 노려야 하는 법이 아닙니까.”
팽연후는 미소를 지었다.
팽무성이 구태여 자신에게 물어보는 의도를 알고 있었다.
“물론이다.”
팽연후는 회의장에 모인 가솔들을 보며 소리쳤다.
“부재중인 가주를 대신해 가주 대리 팽연후가 공표한다. 이 시각 이후 사공자 팽무성은 소가주 경합에 도전한다. 사공자는 본인이 원할 때 실력을 증명하고 협호행을 떠날 수 있다.”
팽무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장의 가솔들을 향해 포권을 하고 예를 갖추었다.
“사공자, 팽무성. 소가주 경합의 네 번째 후보가 되었음을 가솔들께 알립니다.”
* * *
팽무성의 소가주 경합 참가 선언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지만, 회의가 임무 배당으로 넘어가자 여느 때와 같이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삼공자는 비무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임무를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대공자와 이공자가 주로 임무를 가져가고 있었다.
“이번 임무는 백음마의 추적인가.”
팽연후의 말에 귀 기울이던 팽무성의 눈이 반짝였다. 기다리고 있던 임무였다.
“제가 하겠습니다.”
회의에서 처음으로 입을 연 팽무성.
이러니 시선이 팽무성에게 쏠렸다.
“이 임무로 협호행을 떠날 실력을 지녔음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전생에서는 삼공자가 맡은 임무다.
쉽게 생각하고 이 임무를 선택했지만 팽소혁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하북팽가는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팽무성은 실패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흐음.”
팽연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가주 대리, 한 번 맡겨보시지요. 이 정도면 괜찮은 수준입니다.”
팽연후에게 말을 한 중년인은 무후각주.
팽가의 무력대를 총괄해서 관리하는 곳의 우두머리였다.
팽가의 무력을 책임지는 곳인 만큼 본신의 무공도 엄청났다. 아직까지 중립을 지키고 가주에게 충성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무후각주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팽연후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공자가 하는 것으로 하지. 임무에 성공하면 협호행을 떠나는 것으로 하지.”
“감사합니다.”
예상대로 손쉽게 가져올 수 있었다.
대공자와 이공자도 별 반응이 없었다.
이런 임무는 손은 많이 간다. 반면 성공에 따르는 성과는 별로 없는 종류였다.
추적하는 악인의 명성이 높은 것이 아니라면 자잘한 범죄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임무의 대상인 백음마만 해도 하북에서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음마였다.
백음마라는 별호만 해도 백색 의복을 입고 일곱의 여인을 겁탈해서 붙여진 별호였다.
이를 팽가에서 모른 척할 수는 없다.
하북팽가의 영역에서 설치는 범죄자를 그대로 둔다면 명성이 깎이고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다.
성공하는 것이 당연하고 실패를 하면 망신을 당하기 마련인 임무였다.
하지만 이번 임무는 두 가지 변수가 있었다. 그 변수는 오직 팽무성만 알고 있었다.
“데려갈 수 있는 인원의 최대가 두 명이니 참고하거라.”
시험의 목적을 가지는 임무인 만큼 인원수의 제한이 있었다. 팽무성에게는 상관없는 조건이었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대답에 팽연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마.”
팽무성과 철호는 준비를 마치고 바로 출발했다.
목적지는 쌍귀산이었다.
쌍귀산의 백음마.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