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80)
79화
채앵
두 자루의 검이 서로를 튕겨내며 남궁혁과 검마군이 거리를 벌렸다.
‘검마군, 이 자도 벽을 보고 있구나.’
남궁혁은 몇 번의 검격을 교환하고 검마군이 자신과 비슷한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았다.
검마군도 이를 파악한 듯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서로 한 걸음씩 걸으며 원을 그리던 두 검수.
검마군이 먼저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한 호흡에 일곱 번을 베어냈다.
이에 두 손으로 검을 잡던 남궁혁의 손목이 틀어지며 검이 눕혀졌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남궁혁의 검. 여유로웠다.
거기에 실린 힘은 흔들림 없이 진중하니 단 한 번의 검격으로 연달아 덮쳐 오는 검기를 베는 데 충분했다.
꺼엉
“흠.”
검에 실린 중후함에 뒤로 밀려날 뻔했던 그 순간, 검마군은 천근추의 수법을 펼쳐 자리를 지켰다.
마치 검이 아니라 망치로 후려친 느낌에 검마군은 지잉 떨리는 자신의 검신을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 검법은?”
“제왕검형. 타인에게 선보이는 것은 자네가 처음일세.”
지난 삼 년, 검본결을 깨우치며 창궁무애검법의 극성에 다다른 남궁혁이 새롭게 익힌 검법이었다.
키아아아
귀곡마검이 펼쳐지자 마기를 흘려내는 검이 귀곡성을 토해냈다.
귀곡성은 듣는 이의 평정심을 흩트리고 심상 깊은 곳의 두려움을 자극했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마음(魔音)이었다.
검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귀곡성은 더욱 크고 스산해졌다. 이는 심지가 굳건한 남궁혁조차 미간을 좁힐 정도였다.
남궁혁의 검이 미세하게 흔들릴 때, 검마군은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두 줄기로 쏟아진 검영이 명치와 단전을 찔러냈으나 남궁혁은 검을 회전시켜 검영을 베어냈다.
재차 요혈 열네 곳을 찔러 오는 검은 검기에도 남궁혁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검로를 그려냈다.
까가강
튕겨난 검은 검기가 애꿎은 바닥만 갈라내고 있었다.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것에 귀곡마검의 날카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키아아악
지극히 단순한 초식의 연속인데 귀곡검법은 이를 뚫어낼 수가 없었다.
‘팽 아우의 오호단문도에 비하면 난잡할 뿐이군.’
남궁혁은 오호단문도의 번개 같은 변화를 떠올리며 귀곡마검에 빠르게 적응했다.
요사스레 회전하며 쏟아지는 마기를 뚫은 남궁혁의 검이 사선으로 베어졌다.
제왕검형 단류(斷流).
후웅
묵직한 파공음과 함께 솟구친 푸른 검기.
앞을 가로막는 마기를 갈라내고 검마군을 양단하려 들었다.
이에 검마군의 검은 어지럽게 움직였다.
초식을 연달아 펼쳐내 막아냈지만 검을 타고 흐르는 무게감에 검마군은 미간을 좁혔다.
“제왕검형. 그 명성이 헛되지 않았군.”
귀곡마검과 제왕검형은 정반대의 성향에 속한 검법이었다.
검마군은 예측 못 할 기이한 검격으로 남궁혁의 눈을 어지럽혔고, 남궁혁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전혀 흔들리지 않는 남궁혁의 검을 보며 검마군은 검의 파지를 바로잡았다.
‘한 수 아래인데, 직접 검을 나눠보니 전혀 그런 느낌이 없군.’
아주 미세한 차이였지만 검마군은 남궁혁의 위에 있기에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허나 남궁혁은 그 차이를 무언가로 메꾸고 접전으로 끌어냈다.
벌써 이백여 합이 넘어갔지만, 아직 단 한 번도 베어낼 수 없었다.
내심 백여 합이면 목을 벨 것이라 예상했던 검마군은 티가 나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키아아악
“창천무결, 진천수유, 극무사하.”
다시 귀곡성이 울리자 남궁혁은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의 구결을 외웠다.
이러니 어떤 미혹도 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오히려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검마군이었다. 검마군은 검을 겨루는 종종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풍마군, 저 한심한 놈.’
풍마군은 소림의 승려를 죽일 기회를 놓치고 되려 위기에 처했다.
팔마검객과 풍마종의 마인들도 당가의 장로들이 합류하자 열세를 보였다.
자신이 직접 가르친 팔마검객과 다수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풍마종의 마인이 아니었다면 진작 전멸했을 게 분명했다.
‘독마군,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냐.’
만독전을 털고 연회장에 합류하기로 한 독마군은 아직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귀곡성에 이번에는 자네가 홀린 모양일세.”
남궁혁은 검마군의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에 흠칫 놀란 검마군의 검에서 짙은 마기가 낭창하게 흘러나왔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 이곳을 벗어나야 해.’
결정을 내린 검마군은 귀곡마검의 절초, 혼려암사(混麗暗思)를 펼쳐냈다.
키아아악
사방팔방 어지럽게 요동치는 검은 검기.
이에 남궁혁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 검로를 읽으니 혼돈 그 자체였다.
이치에서 벗어난 혼돈이기에 약점이나 파훼할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통째로 베어내야 할 터.
우우웅
상단으로 올려진 남궁혁의 검이 맑은 검명을 흘려냈다.
내공이 더해지며 검에 두른 푸른 검기는 더욱 밝아지고 커다란 검명이 들렸다.
맑은 검명과 빛이 귀곡성과 마기를 밀어냈다. 남궁혁의 검이 궤적을 그리자 대기가 가라앉았다.
한 자루 검에 범접할 수 없는 무게, 높이, 위엄이 담기니 제왕의 검이었다.
제왕의 검은 올곧은 질서를 그려내니 이것이 곧 제왕검형(帝王劍形)이었다.
“제왕의 덕목에 혼돈은 없는 법일세.”
제왕검형 성류(星流).
수직으로 그어지는 남궁혁의 검격이 혼돈 안에 질서를 새기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는 푸른 빛줄기에 혼려암사의 검기가 녹듯이 사라졌다.
어둠을 뚫고 나오는 환한 빛에 검마군이 눈을 찌푸리며 검을 찔러넣었다.
빛이 스치고 지나가자 검마군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쨍그랑
검마군의 검이 두 동강이 나서 땅에 처박혔다.
가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상에 검마군은 피를 울컥 토해냈다.
마지막 순간에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면 그대로 절명했을 터였다.
검마군은 떨리는 손을 뻗어 가슴의 검상을 만졌다. 상처는 깊지 않아 빠르게 조치하면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검마군의 눈은 침울했다.
“수치로군.”
무공의 고하가 승부의 완전한 우열을 띠는 것은 아니었다. 하수가 고수를 이기는 일은 무림에 제법 빈번하게 일어났다.
허나 검마군은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강자존의 마교에서 한 번의 패배는 곧 도태와 죽음으로 이어졌으니.
“자네에게 감사하네, 나는 이로써 벽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으니.”
남궁혁이 이 전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몸을 날렸을 때, 검마군의 머리를 넘어 검은 권풍이 쇄도했다.
콰앙
남궁혁은 눈을 부릅뜨고 급히 검을 휘둘렀지만 그대로 뒤로 날아가 땅을 굴렀다.
쿠우웅
연회장을 뒤덮는 거대한 마기.
그 가공할 기세에 정마에 상관없이 무인들은 싸움을 멈추고 등을 돌렸다.
담장 위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괴세마왕.
마기에 반쯤 가려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형형하게 도출된 붉은 안광만으로 군중을 짓누르고 있었다.
무림인들은 단순히 그 기세에 압도되어 몸을 떨었지만 당백을 비롯한 장로들은 다른 이유로 몸이 굳었다.
‘초월경!’
‘본가 전체에 뿜어지는 기파에 설마 했더니 정말 초월경의 마인이 있었나.’
비틀거리는 검마군과 어깨가 부서진 풍마군. 나란히 한심한 작태를 보이는 모습에 괴세마왕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마군이라는 이름이 아깝군.”
괴세마왕의 손짓에 두 마군의 신형이 두둥실 떠올라 괴세마왕의 곁으로 이동했다.
허공섭물을 펼치는 괴세마왕의 모습에 무림인들의 눈이 잘게 떨렸다.
범접할 수 없는 무위에 당백과 당명조차 입을 열지 못할 때.
“어이, 커다란 마귀! 그놈은 놓고 가라고, 대가리를 뽀개기 직전이었는데!”
손가락질하며 소리치는 무각을 본 괴세마왕의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괴세마왕의 팔꿈치가 꿈틀거리나 싶더니 거대한 권력이 무각의 머리 위를 덮쳤다.
콰앙
벽력탄이 터진 듯 무각이 서 있던 주변의 바닥이 들썩이며 짙은 먼지구름이 솟구쳤다.
“이, 빌어… 먹을. 마귀놈이…”
무각은 검은 피를 토해내면서도 꾸역꾸역 일어 괴세마왕을 노려봤다.
‘찰나의 반응으로 쌍장을 날렸나.’
이에 눈썹을 꿈틀거린 괴세마왕이 다시 손을 들다가 문득 다른 방향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팔마검객, 풍마종. 이 자리에서 순교하라.”
“존명!”
자비 없는 명령에도 마인들은 군말 없이 명령을 이행했다. 마인들이 일제히 무림인에게 달려들자 다시 전투가 벌어졌다.
채앵
“막아라!”
그 틈에 괴세마왕은 두 마군을 어깨에 들쳐메고 자리를 벗어났다.
“가주!”
멀어지는 괴세마왕의 등을 보며 장로들이 소리쳤지만 당백은 단호하게 제지했다.
“안됩니다. 괜히 피해만 커질 겁니다.”
당백은 빠드득 이를 갈았지만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작정하고 도망치는 초월경의 고수를 잡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당가타에 짜놓은 포위망도 괴세마왕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은 상황을 정리하고 가솔들의 추가적인 피해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알겠소. 늙은이들이 흥분했구려.”
그때 담장을 넘어 새로운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엉망으로 망가진 팽무성이었다.
팽무성은 곧바로 풍마종 마인들의 뒤를 치며 전투에 가담하자 마인들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그자가 급히 몸을 뺀 이유가 자네 때문이었군.”
급히 다가와 팽무성의 몸을 살피는 당백이 중얼거렸다.
괴세마왕이 연회장의 인원들을 죽이지 않고 급히 마군만 빼낸 것이 팽무성을 의식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괴세마왕이라는 자입니다. 그자도 부상을 입었으니 과감하게 나서지 못할 겁니다.”
“팽 아우, 괜찮은가.”
남궁혁이 다가오자 팽무성은 피식 웃었다.
“전신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남궁 형님은 깔끔하게 이기셨군요.”
“훗, 자네가 이리 망가진 것은 처음 보는군.”
남궁혁은 팽무성의 옆으로 다가와 자연스레 부축을 해주었다. 두 사람은 장로에게 조치를 받은 뒤에 누워 있는 무각에게 향했다.
“무각, 살아있냐?”
팽무성의 장난스런 물음에 인상을 쓰던 무각도 피식 웃었다.
“크흐흐, 지금 속이 너무 쓰린데.”
“다들 엉망인데 즐거워 보이네요.”
무각이 미친 듯이 웃을 때 당화련도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화련아.”
당화련은 팽무성이 자신의 뺨을 보는 모습에 아무렇지 않게 눈매를 휘었다.
“괜찮아요. 본가의 금창약을 바르면 금방 사라져요.”
당화련의 씩씩한 모습에 걱정스레 보던 팽무성도 결국 웃었다.
‘다들 각자 잘 싸워줬구나.’
각자 주어진 사선을 넘고 한자리에 모인 네 사람은 서로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네 사람은 서로의 유대감이 강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 * *
동굴 속에서 운기를 하던 괴세마왕의 눈이 번뜩 떠졌다.
“사천당가의 독도 만만치 않군.”
운기를 통해 내상을 다스리고 몸 안의 독을 모두 빼낸 괴세마왕이 중얼거렸다.
당영주를 위시한 사천당가의 포위망은 촘촘했다. 거기에 두 마군을 지키며 뚫어야 하니 괴세마왕도 제법 힘이 들었다.
“그 상처는 팽무성에게 당하신 것입니까.”
검마군은 웃옷을 벗고 있는 괴세마왕을 보며 물었다.
상반신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도상.
그리 깊지는 않았으나 거력금고공을 뚫고 몸에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 놀라웠다.
“……”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나 검마군은 이를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팽무성을 비롯한 네 명의 후기지수, 포위망에서 잠시나마 괴세마왕을 막아섰던 검은 불꽃의 사내.
내심 중원 무림을 만만히 여기던 검마군은 생각을 정정해야 했다.
‘소교주의 말씀대로 무림의 숨겨진 저력이 뛰어나다. 무림을 분열시켜야 한다는 소교주의 판단이 옳구나.’
“여기에 다들 있었군.”
갑작스레 느껴지는 기척에 모두의 고개가 동굴 입구 쪽으로 틀어졌다.
백옥같은 피부에 조각된 이목구비를 지닌 미모의 청년. 그 외모는 남자마저 눈을 돌릴 묘한 요기(妖氣)를 띠고 있었다.
이에 검마군은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소교주.”
“그래, 다쳤구나, 검마야.”
갑작스러운 소교주의 등장에 풍마군은 눈이 가늘어졌다.
“소교주, 설마 당가에 있었소?”
“맞다, 제법 재밌는 구경을 많이 했지.”
느긋한 소교주의 대답에 풍마군이 역정을 냈다.
“그 진절머리나는 구경질은 언제 끝나는 것이오. 마군들이 벌써 셋이나 죽었소.”
그에 소교주가 건조한 웃음을 내보였다.
“암마, 식마, 독마, 풍마. 이렇게 넷이구나.”
“지금 무슨 소릴!”
풍마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할 때 소교주가 손을 내밀었다.
화악
“커억!”
소교주의 내공에 몸이 끌려간 풍마군은 속절없이 목을 잡혔다.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며 풍마군의 목을 졸랐다.
풍마군은 어찌 대항하려고 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풍마야, 네가 지나온 길에는 실패뿐이구나.”
방금까지 풍류공자의 얼굴을 하고 있던 소교주의 얼굴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두 눈은 깊은 심연처럼 끝을 알 수 없는 광기와 현묘하고 진중한 현기(玄機)가 기묘한 공존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 패기와 위엄이 넘실거리고 있어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만들어냈다.
그저 눈빛의 변화만으로 사람의 인상이 뒤바뀌니, 마치 삼면(三面)의 아수라와 같았다.
“그 하찮은 목숨, 마도천하를 위해 헌신해라.”
소교주의 손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왔다.
* * *
사도천 본성.
끼이익
황토색의 드높은 성벽에 자리 잡은 붉은 성문이 열렸다.
두두두두
붉은 갑옷에 장창을 든 기마대.
사도천의 적철혈랑대였다.
적철혈랑대주가 말고삐를 틀며 명령을 내렸다.
“사천으로 간다.”
사파의 하늘.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