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85)
84화
“너희는 누구냐.”
사천(邪天)의 부름에 의해 이곳까지 온 팽무성 일행이었다. 그런데 이리 물어보는 것은 궂은 장난일 수밖에 없었다.
[저거 치매냐?]상대를 가리지 않는 무각도 사천 앞에서 입을 열기는 뭐 했는지 전음으로 일행에게 속삭였다.
“푸하하하! 재밌는 놈이 숨어있었군!”
사천이 돌연 앙천광소를 터트리자 간부들은 어리둥절하며 팽무성 일행을 쳐다봤고, 일행의 낯빛은 노래졌다.
팽무성은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삼천쯤 되면 전음도 들을 수 있다는 건가.’
사천은 태사의가 흔들리도록 한참 껄껄거리더니 손잡이에 턱을 괴며 말했다.
“거기 땡중아, 사파가 제일 재밌어하는 게 뭔지 아느냐?”
“소승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미타불.”
갑자기 점잖은 흉내를 내는 무각에 사천은 다시 터지려는 웃음을 막았다.
“너희 정파 놈들이 당황해하는 얼굴이다. 특히 구파의 장문인이 그럴 때는 며칠이고 웃을 수 있지. 그런데.”
사천은 팽무성 일행에게 시선을 돌려 주변의 사도천 간부들을 보며 말했다.
“기껏 유치한 장난을 쳐봤더니 사파 놈들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군. 이건 썩 보기 좋지 않은데 말이지.”
이에 대경한 간부들은 급히 안색을 바로 했다. 질린 표정을 지은 사천은 다시 팽무성 쪽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나저나 너희는 용케 왔군. 큰 기대는 안 했는데 말이지. 정파의 기개, 뭐 그런 건가?”
“그런 거창한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천주께서 굳이 저희를 왜 부르셨는지 말입니다.”
팽무성이 나서서 대답하자 눈을 좁힌 사천은 입꼬리를 올렸다.
“네놈이 팽무성이라는 놈이구나. 도천이랑 무슨 사이냐.”
“잠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도천이 본좌에게 처음으로 서신을 보냈더군. 네놈에게 변고가 생긴다면 곤륜의 노물과 함께 쳐들어간다며 말이다.”
도천의 비호를 받는다는 말에 팽무성을 보던 사도천 간부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련주께 걱정을 끼쳐드렸네.’
팽무성은 푸근한 마음에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도천이 이리 신경을 써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도천이 본좌에 대해 뭐라고 말하더냐.”
“젊을 때는 태산 같은 무거움을 보였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가벼워져 애새끼와 다를 바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사도천 간부들이 저마다 침을 삼켰고 팽무성 일행은 조금 전 무각의 일로 마음을 놓은 듯 초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푸흐흐. 다음에 도천을 만나면 찢어 죽여야겠구나.”
날것 그대로 말하는 팽무성이 마음에 든 사천은 곧바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너희를 부른 이유는 별거 없다. 이 나이를 먹으니 해원투전도 시시하더군. 그래서 신선함을 가미시킬 새로운 말이 필요했을 뿐이다.”
사천의 말은 즉, 팽무성 일행을 해원투전에 참가시키기 위해 불렀다는 뜻이었다.
“그런 이유로 사천지부를 포기하셨단 말씀입니까.”
믿기 힘들다는 남궁혁의 말에 사천이 코웃음 쳤다.
“사천지부? 그까짓게 뭐라고.”
사천의 눈이 금빛 탁자에 있던 호리병을 향했다. 그러자 술이 사방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이내 뭉쳐서 거대한 물방울을 이루었다.
그러면서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를 팽무성 일행은 벙찐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허공섭물이라 해도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액체를 다루기는 쉽지 않은 일.
이를 눈짓만으로 가볍게 해낸 사천은 입을 벌려 물방울을 삼키곤 말을 이었다.
“하늘을 오시할 무력, 물욕을 사라지게 만드는 금력, 수많은 군중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 이것들이 본좌의 손안에 있으니.”
뒤이어 들려오는 사천의 목소리는 참으로 나른하게 느껴졌다.
“참으로 시시하구나. 이루어보고 싶거나 원하는 것은 거의 다 얻어냈음이야.”
그저 태사의에 몸을 맡긴 채 말을 하는 것뿐임에도 사천의 존재감은 만사전을 가득 채워내고 있었다.
“알겠느냐, 남궁의 아이야.
너희들이 활보하는 그 드넓은 무림.
본좌에게는 시골의 노인네들이 두는 작은 바둑판과 다를 바 없다. 돌 몇 개쯤 잃어도 상관없다. 여차하면 판을 엎어버리면 되는 것을.”
무림맹에서 중요시하는 사도천 사천지부를 겨우 바둑돌에 비유하는 사천.
이것이 사천이 무림을 바라보는 눈높이였다.
광오했으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 거인은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엄습하는 사천의 광활한 존재감에 남궁혁은 입 열지 못했다.
‘가볍던, 무겁던 결국 하늘이라 이거군.’
그저 사천이 하는 말을 듣고 있음에도 팽무성은 왜인지 호흡에 힘이 들었다.
초월경을 넘어 절대경에 도달한 초인은 그저 말을 하는 것만으로 주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경지였고 언젠가 팽무성이 도달해야만 하는 경지였다.
사천의 존재감에 잠식당해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할 때, 팽무성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귀빈 대우를 해주신다 들었는데 그 대우가 겨우 싸움질인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씩 드러난 팽무성의 존재감이 영역을 넓혔다. 이에 사천이 흥미를 보였다.
“그래서?”
“후배들이 해원투전에서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나의 작은 선물을 내려주십시오.”
이에 사도천 간부들은 물론이고 지금껏 무표정으로 고수했던 일장로마저 시선을 틀어 팽무성을 싸늘한 눈으로 노려봤다.
감히 사도천주께 무언가를 먼저 요구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만사전에서 사천이 발언을 허락하지 않으면 입을 열 수 없었기에 간부들은 그저 팽무성을 째려볼 수밖에 없었다.
“수는 네 명인데 하나의 선물이라…”
사천은 단순히 말실수한 것이 아님을 눈치챘다. 팽무성 일행이 무언가를 노리고 사도천까지 직접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정파의 위선자답지 않은 패기에 사천은 아량을 베풀었다.
“말해봐라.”
“독대를 청합니다.”
이에 사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흥미를 보인 사천은 수하들을 훑어보며 장난스레 말했다.
“본좌가 직접 명령내릴 생각은 없는데, 네놈이 이들을 내보내겠느냐?”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팽무성은 곧바로 허리춤의 도병을 잡아냈다.
슈슉
그 순간 네 명의 적의인이 사방을 점하고 나타나 팽무성의 목을 베어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천을 지키는 수신호위였다.
“그만.”
사천의 명령에 휘둘러진 네 자루의 검이 실 하나 지나갈 간격을 두고 목 앞에서 멈춰 섰다.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그저 웃는 팽무성의 모습에 사천은 손을 흔들어 수신호위들을 물렸다.
‘전혀 눈치 못 챘다.’
‘아미타불.’
마치 땅에서 솟아오른 듯한 귀신 같은 움직임에 경악한 당화련과 무각은 순간적으로 출수할 뻔했다.
반면 남궁혁은 대충 짐작했는지 차분히 팽무성과 사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다. 본좌와 독대할 기회를 주지.”
그때, 팽무성의 오른쪽 소매가 돌연 잘게 찢어져 꽃잎처럼 조각조각 흩날렸다.
팽무성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한 사천의 한 수였다.
“만약 시원찮은 얘기를 꺼낼 경우, 네놈의 오른팔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다른 이들이 빠져나가고, 만사전에 팽무성과 사천 단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마왕이라는 자를 상대하며 얻은 정보가 있습니다. 마교에는 천지마신이라는 이름을 지닌 절대경의 고수가 두 명이나 존재한다고 합니다.”
팽무성은 전생의 정보를 슬쩍 풀어냈다. 절대경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사천이 흥미를 보였다.
“무림도 겨우 세 명을 배출했는데 마교에서 두 명이나 배출했다? 믿기 힘든 정보군.”
“삼백 년이나 힘을 비축한 마교입니다. 거기에 초월경 고수도 네 명이나 배출했는데 절대경이라고 못 할 법은 없지요.”
무림을 몇 번이나 침공한 마교에 대한 기록은 사도천에도 남아 있었다.
그 기록으로 마교의 저력을 알고 있는 사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라.”
“마교를 막으려면 정사가 손을 잡아야 합니다.”
이에 사천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도입부는 괜찮았는데 결론이 시시하구나. 왼손으로 새로 도법을 익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결론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지?”
“사도천주께서 유일하게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게 도와드리겠습니다.”
팽무성의 말을 듣던 사천이 태사의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교와 무림의 전쟁이 끝나고 무림이 안정되면 천하제일인이 결정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얻어낸 사천이 유일하게 얻지 못한 것. 바로 천하제일의 이름이었다.
“용천과 도천을 본좌와 싸우게 하겠다는 뜻이냐.”
삼천이라 함께 불리고 있으나 오래전부터 사천은 확신했다. 용천과 도천보다 자신이 우위에 서 있음을.
이는 그들도 알고 있었다.
사천은 분명히 천하제일에 제일 가까운 사내였다. 현 무림에 정사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용천과 도천, 두 존재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그 둘은 나를 피했다. 아니면 둘이 힘을 합쳤지.”
용천과 도천은 알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쓰러지는 날이 곧 정파의 종극이 선언되는 날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무림의 평화를 지킨다는 대의를 위해 평생을 쌓아온 무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명예를 내려놓았다.
“무림에서 평화를 추구하다니, 시시한 놈들이야.”
말년의 사천이 인생에 권태를 느끼고 그저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루지 못할 천하제일의 꿈이 가져오는 공허함을 다른 방식으로 달랠 필요가 있었다.
“두 분은 나서지 않을 겁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정파제일은 제가 될 것입니다.”
사천의 눈에 서서히 불길한 주홍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가 본좌를 상대하겠다고?”
“그렇습니다.”
팽무성의 말은 진심이었다.
사세마왕과 천지마신. 거기에 교주까지.
산 넘어 산에, 그 뒤에 태산이 있는 형국이었다.
이를 모두 넘어서려면 남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팽무성도 절대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했다.
콰자자작
만사전의 바닥이 일제히 뒤집히며 그 파편이 쏟아졌다. 몰아치는 광풍에 팽무성도 손을 휘저어 막아냈다.
“미쳤구나. 네놈 따위가 감히 천하제일을 논하느냐. 주제를 알아야지!”
사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사천의 기세는 거대한 광풍과 같았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도 팽무성은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흉포한 기세에 머릿카락이 솟아올랐지만, 팽무성은 기어코 앞으로 나아갔다.
“헛된 말장난으로 속일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천하제일을 담보로 거래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팽무성은 적아도를 뽑아냈다. 그 어느 때보다 적아도는 선명한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위협에도 꼬리를 내리지 않는 팽무성의 패기에 사천이 눈을 좁혔다.
“무엇을 믿고 이리 오만방자하게 구는지 확인해 보지.”
사천이 뿜어내는 기세에 주홍빛이 섞여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사천의 손에 주홍빛 내공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일 초식이다. 이것으로 네놈이 감히 천하제일을 담보로 본좌에게 거래를 제안할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겠다.”
쿠르릉
사천이 그저 내공을 풀어내는 것으로 거대한 만사전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전부를 쏟아내야 할 것이다. 이제 네놈을 기다리는 것은 생과 사. 둘 중 하나이니.”
천하제일을 담보로 거래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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