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87)
86화
“여기 적힌 것이 사실이더냐?”
청빙음마는 제자인 청빙수가 가져온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보고 이를 갈았다.
그러자 순간 청빙음마의 주변으로 한기가 돌았다.
“예, 이공자 측도 이제 알게 되었다고…”
우물쭈물하는 청빙수의 대답에 청빙음마가 쥐고 있던 종이는 단숨에 얼어 조각조각 부서졌다.
이번 해원투전에는 정파의 후기지수들도 참가한다. 다만 사파와 다른 방식으로 이미 상대가 정해져 있었다.
일 인당 다섯 명이 배정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배정된 인원들이 죄다 이공자 세력에 속한 이들이었다.
더구나 팽무성의 상대에는 청빙수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삼장로인 자신이 이 일을 이제야 알았다는 것은 사도천주가 직접 결정했다는 뜻이었다.
‘광마군을 놓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대공자에 힘을 실어주려는 건가.’
광마군을 추적하는 일은 이공자가 맡았다. 커다란 공을 세울 생각이었으나 되려 참담한 결과만 떠안게 되었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둘 다일지도 모르는 일. 청빙음마는 생각을 정리하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대공자와 이공자에게 천주께서 따로 명령을 내리셨다 합니다.”
“무엇이더냐.”
청빙수의 입이 움직일 때마다 청빙음마의 미간도 점점 좁혀졌다.
“천주의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군.”
청빙음마는 관람석의 제일 높은 곳. 적색 태사의에 앉아 있는 사천을 슬쩍 쳐다봤다.
사천이 바로 청빙음마의 눈길을 눈치채자 청빙음마는 고개를 숙이곤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군.’
사천은 자신을 보자마자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이를 본 청빙음마는 불길한 상상이 점점 맞아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청빙음마가 생각에 빠져있을 때 해원투전의 개막을 알리는 북이 울렸다.
보통 이런 커다란 행사에는 사도천주의 연설이 뒤따르지만 사천은 오른팔을 들어 휘젓는 것으로 연설을 대신했다.
“와아아아!”
해원투전의 개막에 관람석에 모인 사파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 함성엔 뜨거운 열기와 미약한 광기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남궁혁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치는 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뭔가 천룡대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군.”
“예, 절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입니다.”
팽무성 일행은 사도천 간부들이 있는 귀빈석 중 따로 마련된 자리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해원투전의 첫 사투를 시작할 자는 누구인가!”
사천을 대신하여 대장로가 내공을 실어 소리치자 넓은 관람석에 쩌렁쩌렁 울렸다.
환호성이 계속해서 퍼지고 북은 연달아 울리며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북소리가 열 번을 넘어갈 때 한 젊은 사내가 중앙의 비무대로 훌쩍 날아들었다.
“오오오오!”
“복룡당 부당주는 나와라!”
정파의 천룡대회였다면 먼저 자신의 소개 했겠지만, 사파는 그런 허례허식은 버린 지 오래였다.
“복룡당 부당주!”
“복룡당 부당주!”
사파인들의 연이은 호명에 가소로운 표정을 띤 복룡당 부당주가 비무대에 올라섰다.
“그 일로 칼을 갈았나 보군.”
“당신 덕에 내 인생이 제대로 꼬였다.”
“내가 누누이 말했지. 당한 놈이 병신이라고.”
부당주가 말을 하며 기습적으로 발검해 사내의 가슴을 노렸다. 허나 사내도 이미 예상한 듯 가볍게 피해내며 반격했다.
챠앙
두 사내의 사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살초에 관람객들은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사내는 오늘을 위해 부당주의 무공을 연구해왔는지 종종 부당주의 초식을 파훼하며 밀어붙이고 있었다.
허나 결정적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승부가 길어지자 다시 부당주가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채앵
육십여 합이 넘어갔을 때, 부당주의 검이 사내의 손목을 베어버렸다.
“크학!”
사내는 검을 쥔 채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손목을 보며 절망했다.
“겨우 이 정도로 나를 불러냈나. 그래서 네놈이 끝까지 버러지로 남는 거야.”
부당주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자신의 수하였던 사내의 목을 망설임 없이 쳐냈다.
“우오오!”
부당주는 관람하는 간부들에게 인사하곤 목이 떨어진 시신을 업으며 비무대를 벗어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이가 튀어나와 상대를 호명하기 시작했다.
두 사내는 서로에 대해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더니 결국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거 아귀다툼이나 다름이 없군.”
무각의 중얼거림에 당화련도 살짝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의 시선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게 많네요.”
천룡대회와 해원투전을 모두 본 당화련은 정파와 사파가 아닌 듯하면서도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환경부터 시작해서, 무공, 가치관. 여러 가지가 다를 테니.”
팽무성의 답을 듣던 남궁혁은 서로의 몸에 도검을 박아넣는 사내들을 보며 말했다.
“정파의 길이 있듯이 사파의 길이 있는 것이지. 저들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거다.”
어찌 보면 사파는 잔혹무정한 무림의 민낯을 꾸밈없이 보여내는 것뿐일지도 몰랐다.
팽무성 일행이 말을 하는 사이에도 비무대에서 누군가는 피를 뿌리며 삶의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야. 저걸 이겼네.”
“일개 조장에서 단번에 대주가 되었군.”
“대주가 조장에게 죽었으니 할 말 없지.”
누군가는 원한을 풀며 원하는 바를 얻었고 누군가는 그저 덧없이 죽었다.
이를 보며 사파는 즐거워하기도 하고 한탄하기도 했다.
열 번의 사투로 비무대가 피로 흥건하게 물들었을 무렵, 해원투전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관람하던 사파 무인들은 이를 예민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음, 슬슬 시작하는 것 같은데.”
“역시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해원투전의 묘미는 이긴 상대의 직위를 뺏어올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이를 이용해서 권력 구도를 바꿔내는 일은 사도천의 역사에서 보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공자와 이공자의 경쟁 구도도 거의 막바지에 달하고 있었다.
확실히 승리의 쐐기를 박으려는 대공자와 역전의 발판을 만들고자 하는 이공자.
이번 해원투전은 두 공자의 암묵적인 권력다툼의 투기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새롭게 비무대에 올라오는 두 사람을 보고 관람객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복영대주랑 참사대주로군.”
“복영대주는 부대주에게 자리를 넘기고 온 건가.”
“그렇지. 이기면 참사대주가 되는 거고 아니면 죽는 거고.”
복영대주는 대공자, 참사대주는 이공자의 세력에 속한 인물들이었다.
이 싸움에 무력대 하나가 걸려있었다.
본격적으로 벌어질 권력 싸움의 시작에 사도천의 간부, 오대장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채채채챙
이제까지 승자에 환호하던 해원투전의 관객들은 자연스레 두 패로 나뉘어 응원하게 되었다.
팽무성 일행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현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런 식으로 권력을 장악해도 사람들이 남아날까요?”
“아무래도 거대연맹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 무림맹도 빈자리가 생기면 금방 채워지니까.”
사도천의 입장에서 해원투전은 전력을 깎아 먹는 것이 아니라 비대해진 살집을 과감히 잘라내고 정예화한다는 개념이 강했다.
실제로 수많은 사파 무인은 해원투전이 열리기 일이 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하니 말이다.
‘역시 대공자가 승세를 보이는군.’
사천은 지난 싸움의 승패를 헤아렸다.
대공자의 수하들이 대략 칠 할의 승률을 보였다.
실제로 이공자와 청빙음마의 얼굴은 어두웠다.
“슬슬 시작하지.”
대장로에게 사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천은 저 멀리 태사의에 앉아 있었지만,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명확하게 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예정된 싸움을 시작하겠다. 정파 후기지수는 앞으로 나서시오.”
대장로의 목소리에 사파의 이목이 팽무성 일행에게 쏠렸다. 고작 후기지수가 귀빈 대우를 받는다는 소식에 다들 관심이 많았다.
“제가 먼저 갈게요. 몸이 찌뿌둥하네요.”
비무대로 당화련이 나서자 사파 무인들의 눈이 커졌다.
여우를 닮은 화려한 외모와 백옥같은 피부. 녹빛 경장 위로 보이는 아름다운 곡선은 사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저 여인이 그 사천제일미인가.”
“별호가 독화였지. 잘 어울리는 별호군.”
“감숙에는 왜 저런 여인이 없는지.”
“자네는 그냥 숙향이로 만족하게.”
관객들이 당화련의 미모에 집중할 때 반대편에서 당화련의 첫 상대로 보이는 사내가 등장했다.
일정한 걸음걸이를 보아 제법 실력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사내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당화련의 위아래를 훑었다.
“정파에서는 어쩔지 모르겠으나 사파는 여인이라고 봐주는 것이 없소. 침상 위라면 또 모르겠지만.”
노골적인 시선에 당화련의 눈매가 휘어졌다. 어여쁜 곡선을 그리던 당화련의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글쎄요. 저는 약한 남자에게는 눈길을 주는 편이 아니라서요. 당신같이 허약해 보이는 사내는 더더욱 말이죠.”
보통 여인이라면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겠지만 당화련은 되려 맞받아쳤다.
도발에 당한 사내는 얼굴을 붉힌 채 주먹을 뻗어냈다.
“이년이!”
주먹이 얼굴을 노렸지만, 당화련은 턱선을 비트는 것으로 가볍게 피해냈다.
당화련은 암기는 꺼내지 않고 권장법으로 응수했다.
파파팡
주로 사내가 공세를 이어갔고 당화련은 막기만 했다. 이에 자신이 유리하다 여긴 사내는 당화련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귀빈 대우를 받는다고 하여 기고만장하군. 네년의 옷을 찢어 수치를 남겨주지.”
당화련이 귀빈 대우를 받는 것은 상관없었다. 사내가 받은 주의사항은 죽이지 말라는 것 단 하나였다.
“그래요?”
사내의 말에 당화련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십여 합이 넘어갈 때 사내의 주먹이 멈춰 섰다.
“으음?”
얼굴이 하얘진 사내는 몸의 이상함을 느꼈다. 권법을 펼치느라 넓게 벌렸던 다리는 바로 좁혀졌다.
“슬슬 반응이 오나 보네요? 배가 아주 난리가 났을 텐데.”
당화련의 말대로 사내는 지금 당장 측간에 가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식은땀을 흘리던 사내는 당화련의 상큼한 미소를 보며 중독을 확신했다.
“대체 어떻게? 독장도 펼치지 않았는데.”
사내는 물으며 한 손을 뒤쪽으로 슬쩍 가져갔다. 이를 본 당화련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독장을 펼치지 않아도 당신 따위 얼마든지 중독시킬 수 있어.”
그 말과 동시에 당화련의 발끝이 사내의 낭심에 꽂혔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속도로 펼쳐진 각법에 사내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빠악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관람하던 사내들이 일제히 눈살을 구겼다. 곧이어 사내들은 한마음으로 낭심을 맞은 사내를 측은하게 쳐다봤다.
“꺼억!”
가랑이 앞뒤를 부여잡은 채 쓰러진 사내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어어!”
“저거 뭐야!”
사내의 후방에 위치한 관람석에 앉아 있던 사파인들이 소리쳤다.
백의 무복을 입고 있던 사내의 엉덩이 쪽에 갈색의 얼룩이 생기고 있었다.
“저거 설마…”
“똥을 지린 건가. 설마 독 때문에?”
“지독한 년이로군.”
피에도 꿈적하지 않던 사파 무인들은 난데없이 등장한 똥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당화련은 거품을 물고 쓰러진 사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누가 이 똥쟁이 좀 데려가 주세요.”
당화련은 첫 싸움부터 사파에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연달아 네 명을 상대했지만, 암기를 꺼내게 하는 상대는 없었다.
다섯 명은 전원 절정에 오른 고수였으나 이들로 당화련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역시 상대가 될 리가 없지요.”
이장로는 당화련의 싸움을 지켜보며 말했다.
다른 간부들은 몰라도 오대장로는 팽무성 일행의 무위를 대략 가늠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공을 갈무리해도 초절정에 오른 장로들의 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팽무성 일행의 무위는 제대로 읽기가 쉽지 않았으니 네 명 전원이 초절정에 올랐다고 짐작할 따름이었다.
“아무래도 천주께서 대공자에게 힘을 실어주시려는 것 같군요.”
패배한 놈들이 죄다 이공자 측에 속한 이들이라 이장로는 살짝 들떠있었다.
하지만 철무련은 진득한 표정으로 당화련을 바라보았다.
천주가 자신과 이공자에게 내린 명령.
굳이 내릴 필요가 없는 명령을 왜 내렸는지 철무련은 아직도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잘 모르겠소.”
그때, 비무대로 한 사내가 올라섰다.
이미 예정된 다섯 번의 싸움이 끝났는데 누가 올라서는 것일까.
새롭게 등장한 이의 얼굴을 확인한 사파 무인들은 할 말을 잃었다.
전혀 의외의 인물, 사도천의 이공자였다.
당화련도 그 사내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사도천의 이공자요. 당 소저, 한 판 붙읍시다.”
이공자를 보던 당화련은 문득 태사의에 앉아있는 사천을 올려다봤다.
[일전처럼 엉망진창으로 밟아도 좋다.]사천의 허락이 떨어지자 당화련은 손목을 꺾었다.
“이공자나 되는 분이 치졸한 면이 있으시네요.”
다섯의 무인이 꺾이고 나서 등장한 이공자를 비꼬는 말이었지만 이공자는 철면피 마냥 웃었다.
“이해하시오. 나는 정파가 아니라 과정이 아니라 결과를 중시하오. 그저 이기면 그만 아니겠소.”
“그런가요? 안타깝네요. 이공자가 이길 일은 없을 테니.”
그와 동시에 당화련의 손이 녹빛으로 물들었다. 당가의 녹연독장(綠演毒掌)이었다.
쾌속하게 허공을 가로지른 독장이 이공자의 가슴을 강타했다.
떠오르는 사패(四覇)의 명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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