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89)
88화
“다섯 명이 동시에 와라.”
원래였다면 광오하다 여길 발언이었다.
그러나 팽무성 일행이 앞서 보인 무위에 관람객들은 야유를 보낼 수 없었다.
방금 남궁혁이 연달아 보인 십초지적의 승부도 사파 무인의 자존심을 갈라놓기에는 충분했다.
하찮게 보았던 정파 후기지수가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사파 무인의 기세를 눌러내고 있는 형국이었다.
대장로의 허락이 떨어지자 함께 올라온 다섯의 무인은 팽무성을 노려봤다.
이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자연스레 팽무성을 둥글게 둘러쌌다. 이 모습을 팽무성은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사방을 점한 채 찔러 오는 네 자루의 검. 팽무성은 손가락을 들어 검결지를 취할 뿐이었다.
까가가강
네 번의 쇳소리가 연달아 울리고 반 토막이 난 검날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팽무성은 검결지를 한 번 휘두른 것으로 네 자루의 검을 부러뜨렸다.
그와 동시에 틈을 노리고 쇄도하는 청빙수가 있었다. 청빙수의 양손에는 푸른 한기가 맺혀있었다.
청빙음마의 청빙음령공이었다.
“커억!”
팽무성의 빈틈을 노린 것이 무색하게 청빙수는 바로 팽무성의 손에 목덜미를 잡혔다.
청빙수는 당황하지 않고 팽무성의 팔뚝을 잡고 청빙귀장의 한기를 흘려보냈다.
“쿨럭.”
허나 되려 내상을 입은 것은 청빙수였다. 혼원벽력신공의 양기가 음기를 가볍게 밀어내고 되려 침투한 것이었다.
‘엄청난 양기!’
팽무성은 한 손으로 청빙수를 번쩍 든 채 가소로운 듯 쳐다봤다.
“네가 청빙음마의 제자구나.”
팽무성은 청빙수를 보며 무림에 처음 나와서 상대했던 백음마를 잠시 떠올렸다.
“끅.”
무지막지한 악력에 청빙수는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팽무성은 붉어진 청빙수의 얼굴을 보더니 사천에게 전음을 날렸다.
[보니까 재미있는 장난을 하고 계시더군요.]팽무성은 지금까지 관람객들이 하는 얘기를 놓치지 않고 들은 덕택에 이 해원투전에 사천의 꼼수가 섞여 있음을 알아차렸다.
[내가 네놈의 허락까지 받아야 하느냐.]사천의 전음에 팽무성은 입꼬리를 올렸다.
[이런 잔챙이들을 줄인다고 깨끗하게 끝나겠습니까. 제가 뱀의 머리를 잡겠습니다.]이에 사천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아무래도 팽무성은 자신의 목적을 꿰뚫어 본 듯싶었다.
그러나 사천은 모른 척 되물었다.
[무슨 소리냐?] [청빙음마는 제가 잡아드리죠.] [재미있는 제안이군.]사도천은 천주가 다음 후계자를 지목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후계자 경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일인이 자연스레 후계자로 등극되는 구조였다.
이러니 사도천주는 직접 경쟁에 관여할 수 없으니 뒤에서 손을 쓰는 상황이었다.
‘사장로는 요양 중이고 삼장로도 나가떨어진다면 이공자는 재기하기 힘들겠지.’
세력이 많이 움츠려진 상황에 자신을 지지하는 두 장로마저 힘을 잃는다면 이공자는 버틸 수가 없었다.
세 장로의 지지와 이번 해원투전으로 막강한 세력을 지닌 대공자를 감당해낼 리가 없었다.
‘어차피 둘째 녀석은 그릇이 안 된다.’
지금까지 사천은 후계 구도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팽무성에게 마교의 얘기를 듣고 생각을 바꾸었다.
본래라면 후계 경쟁이 빨라도 이 년 후에야 끝났을 터. 그사이 분열된 사도천에 언제 마교가 스며들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전에도 마교의 농간에 사파가 세 갈래로 나뉘었던 전례가 있지 않았던가.
‘그 치욕을 나의 대에서 반복할 수는 없지.’
외부에 위협적인 적이 있다면 빠르게 내부를 결집하고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결정을 내린 사천은 팽무성에게 전음을 보냈다.
[허락하마. 대신 원하는 것이 있겠지?] [이미 제 거래를 들어주셨는데 큰 것을 바랄 수는 없지요. 저희가 원래 받을 영약에서 하나씩 더 챙겨주십시오.]사천은 그 이후로 전음을 보내지 않았다.
이를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인 팽무성은 청빙수를 바라봤다.
“너에게 딱히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니.”
팽무성은 목덜미를 잡은 채로 청빙수를 그대로 던져 버렸다.
콰앙
빠르게 솟구쳐 날아간 청빙수는 청빙음마의 바로 옆쪽의 벽에 처박혔다.
청빙음마는 유일한 제자가 벽에 박혔음에도 오로지 팽무성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렇게 노려보지만 말고 내려오지. 청빙음마. 은원의 끝을 맺도록 하지.”
무려 오대장로의 한 사람을 불러내는 팽무성의 모습에 관람객들은 경악했다.
“삼장로를 불러낸다고?”
“그런데 정파도 불러내는 게 가능한가?”
관람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던 사천이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이 싸움을 허락한다!”
이에 청빙음마가 사천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허나 천주. 정파가 해원투전에서 상대를 불러낸 전례는 없습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정파가 해원투전에 참여한 적이 없는데.”
관람석 전체에 울리는 사천의 목소리가 살짝 차가워졌다.
“본좌가 허락했는데 뭐가 문제이지? 저 하북팽가의 핏덩이가 두려운가?”
이에 고개를 숙였던 청빙음마의 얼굴이 구겨졌다. 사천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자신도 언제까지 뒤로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명을 받잡습니다.”
청빙음마는 표정 관리를 하곤 비무대로 몸을 날렸다. 그러곤 바로 앞에 선 팽무성을 죽일 듯 노려봤다.
“설마 네놈과 이렇게 대면할 날이 올 줄이야.”
“예전에 흑적쌍사를 보낼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오리라 상상도 못 했겠지.”
팽무성의 말이 맞았다.
그저 눈엣가시로 여겼던 후기지수가 이렇게 클 줄 누가 알았겠나.
“당신, 최근까지 금적상단을 방해하고 있다던데. 이전 것까지 해서 오늘 값을 치러야 할 거야.”
팽무성은 여전히 가월의 서신을 받으며 정세를 틈틈이 확인하고 있었다.
하북팽가의 비호를 받고 금적상단 자체도 덩치가 배로 커져서 건들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청빙음마는 끈질기게 금적상단을 음지에서 방해하고 있었다. 팽무성에 대한 원한이 금적상단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팽무성은 이번 기회에 청빙음마를 정리하려고 사천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건방진 놈.”
청빙음마가 서 있는 주변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파앙
청빙음마는 기습적으로 청빙귀장을 펼치며 거리를 좁혔다. 낮게 쏘아진 장력이 지나간 자리에는 길게 서리가 남았다.
펑
팽무성에게 도달하기 전 청빙귀장의 장력이 터지더니 응축된 냉기가 팽무성의 다리에 쏟아졌다.
쩌적
이에 팽무성의 다리가 바닥에 붙은 채로 순식간에 얼었다. 이것이 청빙음마의 노림수였다.
무릎 위까지 얼음에 뒤덮였음에도 팽무성은 머리 위로 솟구친 청빙음마를 차분히 보고 있었다.
청빙음마는 그간 쌓아온 경험과 감으로 알 수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팽무성이 자신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청빙음마는 초장부터 청빙귀장 최후의 절초를 준비했다.
그런 청빙음마의 두 손 사이에는 빛나는 푸른 빛의 구가 형성되어 있었다.
음한청옥(陰寒靑獄)
푸하학
구가 깨져나가며 엄청난 음기가 사방으로 폭사하며 푸른 눈보라를 일으켰다.
쩌저적
단숨에 비무장 전체를 얼려버린 것으로 모자라서 관람석의 벽마저 푸른 서리로 물들이고 있었다.
발밑으로 올라오는 싸늘한 한기는 겨울이 다시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팽무성은?”
“눈보라에 가려서 보이지 않아.”
관람객들은 청빙음마과 보여준 놀라운 무위에 감탄하며 한 줄기 기대를 품었다.
“걷혔다!”
음한청옥의 여파가 사라지고 드러난 두 사람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청빙음마는 방금의 청빙수처럼 팽무성에게 목 아귀를 잡힌 채 들려있었다.
게다가 이미 팽무성의 주먹에 당한 듯 청빙음마의 가슴은 둥글게 파여있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팽무성의 모습이었다.
팽무성의 전신에는 붉은 번개가 끊임없이 찌지직거리며 꿈틀거렸다.
유형화한 혼원벽력신공의 내공은 붉은 뇌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붉은 번개 탓인지 팽무성이 서 있는 주변은 얼음이 전부 녹은 상태였다.
‘이전에 광풍소를 깨며 얻은 깨달음 때문인가. 기의 운용이 뭔가 다른 느낌이다.’
아무리 초월경의 고수라도 초절정 고수가 전력을 다한 공격을 경시할 수는 없었다.
이전의 팽무성이라면 무리 없이 막기는 해도 적아도를 뽑았어야 했다.
그런데 팽무성은 도를 뽑지 않고도 가볍게 막아냈다. 그리고 그런 팽무성의 성장을 사천은 제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얻은 깨달음이라도 일단 몸으로 체화하고 있군.’
팽무성이 지금 해낸 공부를 좀 더 발전시키면 그것이 바로 호신강기(護身剛氣)였다.
팽무성의 뒷모습을 보던 사천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이번 해원투전은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기대되는구나. 훗날 네놈이 찾아올 날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사천과 달리 청빙음마의 낯빛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이미 혈맥을 타고 들어온 팽무성의 내공에 의해 내상이 점점 커져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크륵, 네놈이 감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듯한 청빙음마의 행태에 팽무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리 해원투전이라지만 사도천 한가운데에서 후기지수한테 오대장로가 죽는 그림은 아무래도 좋지 않겠지. 그렇지 않나.”
더구나 향후에 무림맹과 사도천의 동맹을 생각하면 불필요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팽무성은 청빙음마의 양팔을 보며 말했다.
“당신의 첫 제자인 백음마는 나에게 양팔을 잃었는데 똑같이 가지.”
팽무성은 수도(手刀)로 청빙음마의 오른팔을 베어냈다.
“크아아악!”
팽무성이 놓아줘 바닥에 주저앉은 청빙음마는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오른팔은 나의 목숨을 노린 값.”
푸학
뒤이어 어깨를 부여잡던 왼팔도 바닥에 떨어졌다.
“왼팔은 금적상단과 이를 지키던 팽가 가솔을 건드린 값.”
단숨에 두 팔을 잃어버린 청빙음마는 이전의 백음마와 똑같은 모습이 되었다.
“네놈을… 죽여버릴 것이다.”
청빙음마가 한 맺힌 목소리로 외쳤지만 팽무성은 차분히 할 말을 이어갔다.
“나와 내 주변을 노렸던 네놈을 죽이는 게 마땅하나 사도천주의 얼굴을 봐서 여기서 끝내지.”
팽무성은 지풍을 날려 청빙음마를 지혈함과 동시에 수혈을 짚어 정신을 잃게 했다.
이 장면을 보던 관람객들을 포함한 사도천 간부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해원투전은 본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곳.
청빙음마는 그런 무대에서 싸워 목숨을 건졌으니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사도천의 무인들은 두 팔을 잃고 무인의 인생이 끝난 청빙음마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것이 사도천이 패자(敗子)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 대신에 비무대 한가운데 오연히 서 있는 팽무성에 주목했다.
눈보라 때문에 정확히 보지는 않았지만 사도천의 삼장로를 삼 초식 내에 제압한 것으로 보였다.
경탄을 보내는 이도 있었고 경계의 시선으로 보내는 이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팽무성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사파에 확실히 박힌 것이었다.
특히 같은 또래인 철무련의 표정은 침중했다. 무각에 이어 남궁혁과 팽무성까지.
무림에 자신을 상대할 후기지수는 광도(光刀)뿐이라 여겼건만 자신의 착각이었다.
* * *
해원투전이 끝나고 사천은 재미있는 사투를 펼친 이들을 뽑아 포상을 내렸다.
열 명의 사파 무인이 포상을 받았는데 전원이 대공자의 세력임을 감안하면 이공자의 미래는 어두웠다.
열 번째 무인이 비무대에서 내려갔고 다음으로 올라오는 것은 팽무성 일행이었다.
“너희는 그저 심심풀이로 참가시켰는데 기대 이상의 재미를 본좌에게 선사했다. 사파인들이여. 본좌의 말에 동감하는가?”
“그렇습니다!”
“와아아!”
“예!”
여러 종류의 대답이 쏟아졌지만, 대부분이 긍정이었다.
팽무성 일행을 한 명씩 바라본 사천은 손가락을 들었다.
나른한 손짓에 여덟 개의 상자가 두둥실 떠올라 팽무성 일행 앞에 놓였다.
“약속했던 영약에 너희들의 노력이 가상하여 하나씩 추가했다.”
이에 팽무성의 입가가 씰룩였다.
“감사합니다.”
팽무성 일행은 일제히 포권을 하며 예를 갖추었다.
“어이 땡중.”
갑작스레 사천이 부르자 무각은 반장을 하며 답했다.
“말씀하시지요. 천주.”
“다른 놈들은 모두 별호가 있던데 네놈은 별호가 없더구나.”
“소승의 부덕함입니다.”
“본좌가 네놈에게 친히 별호를 내리지. 쇄철권과 광승. 무엇이 좋더냐.”
이에 팽무성 일행은 물론이고 듣고 있던 사파인들은 깜짝 놀라 사천을 올려다봤다.
정작 철무련은 무심한 얼굴로 사천을 응시했다.
광승(狂僧)이라는 별호는 그렇다 치고 쇄철권(碎鐵拳)이라니.
이는 철권이라 불리는 철무련에게 평생 패배자라는 낙인이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제자인 동시에 후계자인 철무련인데. 가혹하군.’
팽무성은 사천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상식에서 상당히 벗어난 사내였다.
“소승은 광승이라는 별호를 선택하겠습니다.”
“왜지? 광승보다는 쇄철권이라는 별호가 너의 명성을 더욱 드높일 것이다.”
사천의 질문에 얌전하던 무각은 비로소 낄낄거리며 본색의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미친놈이니 그런 별호를 원하는 겁니다.”
무각의 대답에 사천은 껄껄 웃더니 태사의에서 벌떡 일어났다.
“독화, 광승, 창천검호, 패호도.”
사천은 팽무성 일행의 별호를 하나씩 불렀다.
“너희는 적진에 망설임 없이 들어왔고 해원투전에서 고강한 무공을 증명했다. 너희들은 정파답지 않은 패기를 지녔으니.”
사천의 목소리가 사도천 본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본좌와 더불어 사파는 너희 네 사람을 사패(四覇)라 부르리라.”
이를 들은 팽무성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사천의 선언은 사패의 부활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유강호(周遊江湖).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