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9)
8화
“도착이다.”
팽무성은 두 개의 봉우리를 지닌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쌍귀산.
산세가 험하고 음기가 매우 강한 산이다.
울창한 나무와 특유의 음기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었다.
“쌍귀산이라더니, 그럴 만하군요.”
아직 대낮이라 산의 녹음이 푸르게 보일법한데 쌍귀산은 그 색채가 거무죽죽했다.
보는 이들이 발을 돌리게 하는 풍경이다.
“이런 곳에 백음마가 정말 오겠습니까.”
철호는 걱정이 되고 있었다.
사공자는 임무를 받은 다음 날에 간단한 준비만 하고 바로 출발했다.
색마의 이동 경로, 마지막 위치 등을 고려해볼 때 쌍귀산은 살짝 동떨어진 곳이다.
“괜찮다. 백음마는 반드시 이곳으로 올 테니까. 나만 따라와.”
전생에서도 팽소혁은 철호처럼 이동 경로를 분석해 추적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한발 늦었고 결국 또 다른 피해자마저 발생했다. 뒤늦게 팽소혁은 백음마가 겁탈한 여자들의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조건에 걸맞은 여자를 찾아냈다. 하지만 간발의 차로 늦고야 말았다.
‘사릉문의 차녀.’
사릉문은 쌍귀산의 근처에 터를 잡은 작은 문파다.
사릉문주는 두 딸을 슬하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차녀를 백음마가 노리고 있었다.
백음마는 마치 여행에서 방문할 명소를 미리 고르듯이 겁탈할 여인을 미리 정하고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놈이었다.
그리고 사릉문의 차녀는 짜인 계획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여인이었다.
‘음마 주제에 여인을 가리다니.’
백음마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서 아무 여자나 노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눈에 들인 여자는 무조건 노리는 놈이다.
전생에서도 팽소혁의 추적을 알고 있으면서 기어코 사릉문의 차녀를 겁탈했다.
하지만 그 탓에 꼬리를 물려 근처의 쌍귀산으로 도주했었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여인을 겁탈하려는 보통 집착을 가진 놈이 아니었다.
현재 백음마에게 당한 피해자는 여섯. 전생에서 일곱 번째 피해자는 사릉문의 차녀였다.
백음마는 반드시 쌍귀산으로 온다.
팽무성과 철호는 쌍귀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향했다.
그러던 차에 팽무성의 고개가 확 돌아갔다. 이에 철호도 도병에 손을 올렸다.
“사공자.”
“아니다. 그냥 가자.”
풀숲을 보던 팽무성은 철호를 데리고 다시 길을 따라 걸어갔다.
두 사람이 점이 되고 나서야 풀숲에서는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의복에 코밑까지 얼굴을 가리는 검은 가면을 쓴 괴이한 행색을 하고 있었다.
전신에 달라붙은 의복은 매혹적인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설마 눈치챈 것은 아니겠지.”
흑의인은 좀 더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팽무성과 같은 방향이었다.
* * *
객잔에 거구의 두 사람이 들어오자 자연스레 시선이 끌렸다. 팽무성은 말할 것도 없고 철호도 나름 한 덩치를 자랑했다.
하북팽가의 무복을 입고 오지 않았기에 쏠린 시선은 자연스레 흩어졌다.
팽무성과 철호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서 잘 나가는 것으로 네 개. 그리고 탁주 한 병. 부탁한다.”
“예이. 저희 객잔에서 맛있는 것들로만 준비하겠습니다.”
팽무성이 동전을 건네주자 점소이는 고개를 숙이며 뛰어갔다.
자연스러운 모습에 철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객잔에서 주문하는 것 하며 점소이를 부리는 것까지.
강호 초출인 후기지수로 보이지 않았다.
“사공자. 탁주라니요. 마셔본 적이 있으십니까.”
탁주는 향이나 맛이 썩 좋은 술은 아니다.
그저 싼 맛에 만족스럽게 즐기는 술이다.
돈을 적게 들이고 취하기 위해 돈이 궁한 이들이 마셨다.
아무래도 하북팽가의 사공자가 마실 법한 술은 아니었다. 게다가 사공자는 술을 입에 댄 적이 거의 없었다.
철호의 눈에는 당연히 이상하게 보였다.
“그냥 한번 마셔보고 싶었다.”
팽무성은 옅게 웃으며 대충 둘러대었다.
아마 팽가에서 처음 나온 자신이 자연스레 술을 시키니 의아할 것이다.
팽무성은 소매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열어보았다. 동전과 은자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 상당한 금액이다.
“사공자라는 신분이 좋긴 좋구나.”
이 돈은 이번 임무를 위해 재정각에서 지원이 나온 활동비다.
임무에 다 쓰기에는 과한 금액이지만 사공자라는 신분 덕택에 이리 나왔을 것이다.
일반 무인들은 임무의 기한과 위치에 맞춰 딱 떨어지게 계산되어 나왔다.
점소이가 음식과 술을 가져왔다. 시골의 작은 객잔이라 그런지 특별하거나 고급스러운 음식은 없었다.
팽무성은 술병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철호가 먼저 잡아서 팽무성의 잔을 채워주었다. 자신의 잔은 스스로 채우는 철호를 보며 팽무성은 피식 웃었다.
“흠.”
톡 쏘면서도 물을 탄 듯 맹한 맛.
전생에서 임무를 끝내고 남은 활동비를 모아 동료들끼리 탁주를 나눠 마신 기억이 떠올랐다.
팽무성은 익숙한 탁주의 맛을 느끼며 술병을 기울였다. 이번에는 팽무성이 철호의 잔을 채워주었다.
“호위는 신경 쓰지 말고 마셔.”
철호는 임무와 팽무성의 호위, 두 가지를 신경 써야 했다. 호위를 핑계로 더는 마시지 않으려 했지만 팽무성이 선수를 쳤다.
“대신 이 한 잔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집은.”
팽무성도 두 잔을 끝으로 더는 마시지 않았다. 탁주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을 뿐 아직 취하기에는 일렀다.
“사나흘 뒤에나 오겠군.”
객잔에서 여독을 푼 팽무성은 본가에서 건네준 정보를 살피며 말했다.
백음마의 마지막 출몰 장소를 고려하면 빠르면 사흘, 늦으면 나흘에 이곳에 도착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사릉문으로 가자.”
이 마을에 있는 문파는 사릉문이 유일했다. 그렇기에 찾기도 쉬웠다.
철호는 사릉문을 살피며 말했다.
“생각보다 작은 문파군요.”
애초에 사릉문은 중소 문파라 하기에도 부족했다. 무관에서 시작해서 사릉문이라는 현판을 달고 정식으로 문파로 출범한 지 채 5년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러니 백음마, 그놈이 제집처럼 다녔겠지.’
팽무성과 철호는 사릉문의 대문을 넘어섰다. 한적한 곳에 생긴 소문파라 그런지 수문 무인도 없었다.
팽무성과 철호를 보고 수련을 하던 사릉문도가 다가왔다. 거구의 두 사내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런 시골에 있을 무인들이 아니었다.
사릉문도는 살짝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지나가던 객인데 문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 * *
“허어.”
팽무성의 얘기를 들은 사릉문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들고 있는 찻잔에는 계속 파문이 일고 있었다.
백음마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요새 하북에서 활동하는 색마였으니까.
하지만 그 백음마가 자신의 딸을 노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솔직히 딸들은 객관적으로 그리 미모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생각에 잠겨있던 사릉문주는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 차렸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팽무성을 마주하는 사릉문주의 눈에는 결연함마저 느껴졌다.
“저희 두 사람은 사릉문의 제자인 것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준비만 해주시지요.”
“알겠소.”
“아, 그리고 저희의 정체에 대해 함구해주십시오.”
제자들에게는 행인이라 말했지만 사릉문주에게는 진짜 신분을 말했다.
그렇게 해야 당연히 말에 대한 설득력이 생길 테니 말이다.
사릉문주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팽무성은 사릉문도에게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사릉문주가 입단속을 할 수도 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다.
이제 백음마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 *
사릉문의 별채.
별채는 사릉문주를 비롯한 그 가족들만 머무는 곳이다.
그 별채 앞에는 소박한 정원이 있었다.
정원의 꽃과 나무를 직접 돌보는 한 여인.
사릉문주의 차녀였다.
“햇볕이 뜨겁네.”
차녀는 귀밑의 땀을 훔치며 잠시 고개를 들었다. 찡그린 눈으로 해를 보던 차녀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나쁘지 않아.”
차녀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두 눈이 휘어졌다. 만족스럽다는 뜻이었다.
사릉문의 차녀는 백음마에게 겁탈당한 여성들과 비슷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백음마는 미모도 뛰어나고 몸매도 좋은 그런 평범한 미인에게서는 욕정이 솟지 않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작은 눈. 뭉툭한 코.
얼굴만 본다면 그저 농사를 짓는 평범한 아낙과 같았다. 하지만 얼굴과 상반되는 굴곡적인 몸매는 사내들의 눈길을 끌 만했다.
유명한 기루의 기녀들도 이 몸매를 따라가는 이는 드물 것이다.
“이곳까지 오길 잘했군.”
듣던 소문대로였다.
하북에서도 슬슬 자신의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백음마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같은 지역에서 계속 활동하면 꼬리가 길어지기 마련.
백음마는 산동성으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릉문의 차녀를 찾아온 것이다.
‘흐흐, 밤에 보자, 귀여운 것.’
백음마는 바로 사릉문을 뜨지 않았다.
사릉문의 전체적인 구조를 확인했다.
규모가 작아 본채와 별채가 전부였다. 전각의 위치를 외우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역사가 짧고 작기는 해도 무림 문파다.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사릉문의 수준을 확인해야 했었다.
사릉문도들이 수련하는 것을 보며 백음마는 소리 없이 웃었다.
사십여 명의 문도들, 이들이 전부 덤벼도 자신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개중에도 한 덩치를 자랑하는 두 사내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백음마는 그리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그 어떤 고수의 풍모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겠어.”
백음마는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자연스레 사릉문도의 틈에 섞여 있던 팽무성이 내지르던 주먹을 멈추었다.
백음마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자 그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딱 맞춰서 왔군.”
오늘은 딱 사흘째였다.
팽무성은 백음마가 사릉문의 차녀를 살필 때부터 그 음산한 기책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 평범한 사릉문도처럼 행동했다.
사실 당장이라도 뛰어가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백음마가 경계를 하고 있어 아마 추격전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결국에는 잡겠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몰랐다. 팽무성은 백음마가 덫을 확실히 밟을 때 확실하게 잡을 생각이었다.
낮의 뜨거운 햇볕이 수그러들고 사릉문에도 어둠이 찾아왔다.
시커먼 밤에 어울리지 않는 순백의 무복은 소리 없이 사릉문의 담을 넘었다.
* * *
대공자의 거처.
팽대혁은 누군가에게 보고를 듣고 있었다.
다만 보고를 하는 이는 팽가의 무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육체가 균형 있게 단련되어 있었다. 주먹을 쓰는 권사로 보였다.
“쌍귀산? 백음마의 마지막 목격 장소는 정주가 아닌가.”
팽대혁은 방 안의 지도를 펼쳐보았다.
쌍귀산은 정주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이었다.
거리상 멀지는 않지만, 갑자기 그곳으로 향한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놈만 알고 있는 게 있는 건가.”
중얼거리는 팽대혁은 고개를 저었다.
따르는 세력도 없는 놈이다.
독자적으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팽대혁은 팽무성 따위가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자신이 못 얻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의외군요. 다른 형제들은 신경도 쓰지 않던 분이 막내를 주시하다니.”
“주시라니, 그냥 작은 관심일세.”
권사는 지도의 쌍귀산이라는 단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팽대혁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냉정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안정적이지 못하다. 팽대혁의 뒤를 지키며 처음 보는 모습이다.
“가주께서는 손자의 활약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실망하게 하지 마십시오.”
당부인지 경고인지 그 선을 알 수 없는 말에 팽대혁은 그저 무표정이었다.
권사는 거처를 나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팽무성이라, 신경 쓸 생각조차 없었는데.’
권사는 조용히 몸을 어둠 속에 감추었다.
쌍귀산의 백음마.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