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90)
89화
해원투전이 끝나고 팽무성 일행, 사패는 엿새에 거쳐 사천에게 받은 두 개의 영약을 복용했다.
영약이 담긴 보합을 열었을 때 사패는 깜짝 놀랐다.
사도천주가 직접 내린 영약인 만큼 뛰어난 영약임은 당연했으나, 사패가 놀란 이유는 제각기 받은 영약이 다른 탓이었다.
사천은 사패의 심법을 파악하고 그에 제각기 맞는 영약을 따로 내린 것이었다.
사천이 이런 세심한 배려를 보일 줄은 팽무성도 예상치 못했기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사패는 사도천에 들어서기 전보다 더욱 강해진 채 성문을 나설 수 있었다.
“잘들 가시게.”
사패의 배웅은 오장로가 나섰다.
본래 마중을 나온 철무련이 배웅도 할 줄 알았기에 사패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특히 무각은 마지막에 철무련을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철 시주는 바쁜 모양입니다.”
그에 오장로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대공자께서는 해원투전 당일 밤에 폐관에 드셨네.”
“그럼 다시 이공자가 기회를 노릴 수도 있을 텐데.”
팽무성의 중얼거림에 오장로는 동감했다.
“똑같은 걱정을 하는 이들이 많으나 대공자는 다시 빼앗으면 그만이라며 폐관을 강행하셨네.”
사파 특유의 패기가 묻어나오는 말에 남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철권다운 행보구나.”
오장로는 검은 서신을 꺼내 팽무성에게 건네주었다. 서신은 사도천주의 인(印)으로 봉해져 있었다.
“무림맹에 대화를 청하는 내용의 서신일세. 기간에 상관없이 무림맹에 들를 때 전하면 된다고 하셨네.”
오장로의 말에 팽무성이 눈을 반짝였다.
거래를 수락했다지만 당연히 무림맹이 먼저 대화 시도를 해야 받아줄 것으로 예상했던 탓이었다.
‘이렇게 사천이 먼저 손을 내밀 줄이야.’
놀라긴 다른 사패도 마찬가지인지 오장로의 손에 들린 서신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어떻게 천주를 설득했는지 모르겠으나 무림맹의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것을 팽 소협이 해낸 것이지.”
오장로도 신기한 듯 서신과 팽무성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천주께 많이 양보해주셔서 감사하다 전해주십시오.”
오장로와 사파 무인들이 들어가고 성문이 닫히는 것을 보곤 사패도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일개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지만, 무림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물건인 만큼 팽무성은 품속에 소중히 갈무리했다.
“결국 팽 아우가 해냈구나.”
남궁혁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하자 팽무성도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가 모두 힘쓴 덕택입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사천이 팽무성에게서 천하제일의 가능성을 보았다면 다른 사패에게서는 정파의 가치를 봤을 것이다.
마교라는 적에 맞서 동맹을 맺을 가치를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천이 거래를 수락했다곤 하나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사도천에 온 목적을 이루어서 다행이네요.”
당화련은 홀가분한 얼굴로 사도천의 본성을 한 번 뒤돌아보며 말했다.
그때, 무각이 일행들을 보며 물었다.
“이제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일단 서신 때문에 무림맹으로 가긴 해야겠는데, 천천히 가자. 요새 큰일을 많이 겪었으니 여유도 가져야지.”
팽무성의 말에 남궁혁도 맞장구쳤다.
“팽 아우의 말이 옳다. 성을 하나 넘을 때마다 고생했으니 우리도 쉬어야지.”
“주유강호라… 좋네요. 오랜만에 여유 좀 가지겠어요.”
사패는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그저 걸음 닿는 대로 나아갔다.
나아가는 그들의 걸음에는 편안과 여유가 있었다.
* * *
사패는 감숙에서 섬서를 거쳐서 무림맹이 있는 호북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다만 경공을 펼치거나 말을 타지 않고 느긋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주변에 유명한 맛집이나 여행지가 있다면 들러서 한껏 즐기기도 했고, 길을 가다 너른 공터가 보이면 사패끼리 비무를 벌이기도 했다.
마음 가는 대로 나아가며 강호를 구경하니 그동안 쌓아온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군.”
사패의 길잡이 역할을 하며 앞장서서 가던 남궁혁은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중간에 만났던 소나기가 금방 그쳐서 다행이었습니다.”
사패는 오후에 비구름을 만나서 한 시진 정도를 관제묘에 머물며 비를 피했었다.
그 탓에 제때 마을에 닿을까 걱정했는데 간신히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팽무성 일행이 도착한 곳은 섬서 남쪽의 석천(石泉).
감숙과 사천, 두 성으로 향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기에 근방에서 제일 규모가 큰 곳이기도 했다.
보통은 해가 지면 시장을 닫기 마련인데 석천의 시장은 곳곳의 등불이 켜지며 야시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곳은 유동인구가 많은 덕분인지 저녁이 되면 야시장이 열린다네.”
야시장의 여러 가지 먹거리와 장신구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의 오감을 유혹하고 있었다.
어느새 사패는 코를 벌렁이게 하는 양념 냄새에 이끌려서 잘 구워진 양꼬치를 들고 있었다.
당화련은 혼자서 양꼬치를 두 개씩 들고 양 볼을 빵빵하게 채워서 우물거리고 있었다.
“으음.”
당화련은 달달하면서 살짝 톡 쏘는 양꼬치의 양념이 마음에 든 듯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석천은 정협문이라는 문파가 자리하고 있네. 규모가 작지만 협의지심을 지닌 훌륭한 곳이지.”
남궁혁이 정협문에 대해 설명할 때 갑자기 앞쪽에서 짜증이 섞인 고함이 들려왔다.
“아 진짜 말귀를 못 알아먹네!”
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네 명의 무인이 한 늙은 상인을 겁박하고 있었다.
“하 노인. 상납금이 두 달이나 밀렸는데 무슨 낯짝으로 장사하는 거야?”
“아니, 이 사람들아, 이런 나무 조각품을 팔아서 그리 큰돈을 어찌 낸단 말인가.”
노인을 둘러싼 무인들의 등에는 정협(貞俠)이라는 두 글자가 큼지막하니 수놓아져 있었다.
이를 본 사패의 눈이 일제히 남궁혁을 향했다.
“저게 남궁 형이 말한 협의지심을 지닌 훌륭한 놈들?”
“흐음. 내 기억이 왜곡되었나?”
무각의 추임새에 남궁혁은 어색한 얼굴 하더니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휘익
정협문도의 발이 노인의 얼굴을 밟으려 할 때 갑자기 먹다 남은 양꼬치가 튀어나왔다.
양꼬치가 작은 원을 그리자 발이 방향을 바꿔 위로 솟구쳤다. 그 탓에 정협문도는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뭐냐. 네놈은!”
“감히 정협문의 행사에 끼어들다니.”
남궁혁은 창천의가 아닌 평범한 푸른 무복을 입고 있었고 기세도 흘리지 않았다.
이에 정협문도들은 남궁혁을 그저 지나가던 평범한 무인으로 생각하고 바로 발검하려 했다.
그 순간 남궁혁의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등불의 그림자가 진 상태에서 두 눈만 호랑이처럼 번쩍거리고 있었다.
“히익.”
팽무성의 눈빛에 압도당한 정협문도들은 그저 눈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꼼짝하지를 못했다.
마치 호랑이를 마주한 토끼를 보는 듯했다.
“꺼져라.”
그 말에 정협문도들은 그대로 사람들의 틈을 뚫고 달아났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사패는 엉망이 된 노인의 좌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어르신, 원래 저 사람들이 저렇게 험악하게 굴었나요?”
당화련이 조각품을 주워주며 묻자 노인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원래 양민을 아끼고 보살피던 분들이었는데 일 년 전부터 조금씩 변했습니다. 갑자기 상납금을 받고 폭력을 휘둘렀지요.”
이를 들은 사패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무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가서 털어볼까?”
“일단 확실한 것이 없으니 좀 더 알아보자.”
팽무성의 말에 사패는 일단 객잔으로 향했다. 이윽고, 방을 잡은 일행은 객잔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가졌다.
근래 사흘을 밖에서 노숙하며 끼니를 때웠기에 저녁은 푸짐하게 주문했다.
면 요리가 유명한 섬서인 만큼 이곳의 객잔도 면 요리가 장기였다.
춘장에 고기와 채소를 볶아서 만든 작장면(炸醬麵). 면을 칼로 썰어 만든 매콤한 도삭면(刀削麵). 거기에 달달한 탕초리척(糖醋里脊)까지.
여러 음식으로 사패의 식탁은 가득 채워졌다.
후루룩
남궁혁은 작장면의 면발을 입으로 빨아들이더니 만족스레 젓가락을 흔들었다.
“여전히 면발이 살아있군. 숙수가 역시 면을 잘 뽑아. 자네들도 어서 먹어보게.”
이 객잔은 남궁혁이 추천한 곳이었다.
몇 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객잔이라 남궁혁은 자신 있게 권했다.
“이 객잔, 맛있는 매운맛을 잘 아네요.”
새빨간 도삭면의 국물을 한 숟가락 먹은 당화련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적당히 혀를 자극하면서도 젓가락을 움직이는 끌림이 있었다. 거기에 같이 들어간 야채의 맛이 국물에 스며들어 뒷맛은 개운했다.
“자네들, 들었는가. 사도천에 들어간 네 명의 후기지수들이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하네.”
“정말인가? 무사히 나왔다니 놀라운 일이군.”
“그뿐이 아니라 사패라는 새로운 별호까지 얻었다고 하네.”
객잔에는 어김없이 사패에 대한 얘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요새 객잔만 들어가면 무조건 나오는 얘기가 사패였다.
사패의 명성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퍼져서 가는 곳마다 팽무성 일행을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특히 감숙에서는 사파 무인이 먼저 찾아와 비무를 요청하는 일도 잦았다.
팽무성 일행이 가문의 무복을 행낭에 넣고 평범한 무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내가 듣기로 사패가 사도천의 무인 이백 명을 때려눕혔다고 들었소.”
“아니, 그런데 어찌 살아서 나왔단 말이오.”
“그 뛰어난 무공에 사도천주조차 감탄한 것이지.”
사패에 대한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점점 부풀어지고 있었다.
한 식탁에서 사패의 얘기가 튀어나오자 객잔에 있던 이들은 사패라는 하나의 주제로 저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벌써 섬서에도 알려졌나 보네요.”
당화련은 자신들의 얘기가 들려오자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팽무성에게 속삭였다.
“사파에 사도천주의 명령으로 알려졌으니 무림 전체에 알려지는 것은 식은 죽 먹기겠지.”
“자자, 다들 술잔을 채우거라.”
지금껏 많이 겪은 일이지만 어딜 가나 무림인들이 사패의 얘기를 하니 일행들은 어깨가 으쓱이는 느낌이었다.
“이번에 광승이라는 승려가 철권을 꺾었다고 하더이다.”
“광승? 처음 듣는 별호인데 그게 누구요.”
“소림의 제자인데, 사도천 한가운데에서 불법을 설파하며 철권을 혼을 내줬다 하더군.”
“호오. 역시 소림인가.”
탕초리척을 집어 먹으면서도 무각의 귀는 쉴새 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크큭.”
별호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무각이지만 막상 유명해지니 제법 즐거운 모양이었다.
무각의 입꼬리는 객잔에 들어온 이후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후기지수들이 무림에 이렇게 명성을 떨치는 것은 처음이로군.”
“정파 후기지수를 대표하는 사룡이 있지 않소이까.”
“사룡이랑 사패가 어디 비교나 되겠소? 줄 세우기로 정해진 사룡과 달리 사패는 스스로 얻어낸 명성이 아니오.”
중년인의 말에 이를 듣고 있던 이들이 모두 인정했다.
“이것이 다 정파의 홍복이지. 나중에는 사파가 꼼짝 못 할 거요.”
“제발 정사대전이 다시 발발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객잔에 모인 중년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있어 이십 년 전의 정사대전을 직접 경험한 이가 많았다.
후기지수 시절에 전쟁을 겪었기에 그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사패에 대한 이야기에서 정사대전 시절로 자연스레 주제가 넘어갔고 이를 직접 겪지 못한 사패는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전쟁은 불경의 지옥보다 무서운 것이로군.”
정사대전의 경험담을 엿듣던 무각이 조용해 내뱉었다.
“그래, 나는 그때 어려서 잘 모르지만 많은 가솔들이 돌아오지 못했지.”
남궁혁도 그때를 떠올린 듯 씁쓸한 얼굴이었다.
“마교는 피할 수 없겠죠?”
당화련이 조심스레 묻자 팽무성도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였다.
“언젠가 전쟁은 일어나겠지. 그때 나는 앞장설 생각이다. 내가 베는 만큼 무림인이 살 테니.”
이에 남궁혁의 팽무성의 두꺼운 팔뚝을 가볍게 잡았다.
“팽 아우 혼자가 아니라 사패가 함께 나설 것이다. 그렇지 않나.”
남궁혁의 물음에 팽무성은 웃음을 지었다.
“맞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다 박살 내면 되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그렇네요. 우리 뭔가 마교랑 인연이 깊은 것 같기도 하고.”
팽무성이 술잔을 들자 다른 일행들도 각자 술잔을 들어 내밀었다.
사패의 술잔이 식탁 중앙에 모일 때 객잔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갑자기 객잔 안으로 쏟아진 십여 명의 정협문도들은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한 곳에서 멈추었다.
그 끝에는 팽무성의 거대한 등짝이 있었다. 눈에 띄는 거구인 만큼 정협문도는 빠르게 팽무성을 찾아냈다.
“저놈입니다!”
자신을 가리키는 정협문도를 보며 팽무성은 일행들에게 말했다.
“내가 뭐라 했어. 알아서 찾아온다니까.”
팽무성은 정협문도를 보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에 정협문도는 왜인지 소름이 돋았다.
주유강호(周遊江湖).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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