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91)
90화
정협문도를 이끌고 온 중년인은 문도가 손끝으로 가리킨 이들을 보며 눈살을 구겼다.
‘새파란 후기지수들이 아닌가.’
중년인, 이초립은 오늘 상납금 회수를 맡았던 문도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팽무성이 앉아있는 탁자로 걸어갔다.
그 뒤를 정협문도들이 뒤따라 줄줄이 늘어서니 자연스레 탁자를 둘러싼 상황이었다.
경험이 적은 후기지수라면 이런 상황에 위축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이놈들은!’
쩝쩝
이초립의 치솟은 눈초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 쓰지 않고 탕초리척을 먹는 민머리의 뒤통수에 향했다.
그뿐만 아니라 거구의 후기지수를 제외하곤 각자 식사에 충실했다. 마치 저 커다란 놈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은 듯 말이다.
“정협문의 이초립이네. 자네들이 좀 전에 본문의 행사를 방해한 자들인가?”
“양민을 겁박해 돈을 뺏으려는 한심한 짓을 말하는 것이면 맞습니다.”
팽무성이 곧이곧대로 말하자 당황한 이초립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깔았다.
“소협은 입조심을 하는 게 좋겠군. 누가 들으면 정협문을 오해할 터이니.”
일류의 경지를 밟고 있는 이초립은 슬며시 기세를 흘려내 팽무성을 위협하려 했다.
그러나 팽무성의 입장에서는 같잖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에 팔짱을 끼고 있던 팽무성이 한숨을 내뱉었다.
“집어넣어라, 당장 바닥에 처박히고 싶지 않으면.”
단번에 돌변한 팽무성이 으르렁거리자 이초립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어린놈한테 순간 위축되었나!’
창피함에 귓불이 붉어진 이초립은 홧김에 검병으로 손을 가져갔다. 바로 발검하여 팽무성의 목에 겨누려 했지만.
철컥
이초립은 검을 뽑지 못했다. 어느새 뻗어진 남궁혁의 손이 검두를 잡아서 검이 뽑히는 것을 막고 있었다.
“검을 뽑으면 돌이킬 수 없음을 아실만한 분이 발검을 쉽게 하시는군.”
슬쩍 고개를 돌려 이초립을 흘겨보는 남궁혁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크읍.”
이초립의 손등에 힘줄이 솟았으나 검이 뽑히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 마치 검과 검집이 달라 붙어버린 느낌이었다.
남궁혁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자 이초립은 어찌할 줄 모른 채 구경하는 정협문도들을 질책했다.
“뭣들 하는 게냐!”
이초립의 날 선 목소리에 놀란 정협문도들은 일제히 발검하여 사패를 겨누었다.
이에 가만히 구경하던 객잔의 무림인이 나섰다.
“이보시오. 들어보니 저 후기지수들이 잘못한 것 같지는 않은데 너무 성급한 것 아니오.”
이에 이초립은 무림인의 행색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전웅표국에 속한 듯한데 앞으로도 석천을 통행하려면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정협문은 원래 석천에 있던 소문파 하나와 세 개의 무관을 통합하여 제법 덩치가 커진 상황이었다.
이러니 석천에서는 정협문을 쉽게 건드릴 수가 없었다.
일초립의 협박에 항의하던 전웅표국의 표사가 무어라 입을 열려 하는 순간.
빠악
무언가 뽀개지는 듯한 찰진 소리와 함께 팽무성 옆에 있던 정협문도가 힘없이 허물어졌다.
정협문도의 이마에 커다란 혹을 만들어낸 팽무성의 손에는 나무 숟가락이 들려있었다.
이를 본 표사와 이초립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 가벼운 숟가락으로 무인을 기절시키는 것도 대단했지만, 어떻게 힘을 실어내야 저런 둔탁한 소리가 나는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빠바바박
둔기인 양 이마를 찍어내는 숟가락에 정협문도들은 차례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정협문도들이 제압되고 멀쩡히 서 있는 것은 이초립 혼자였다.
“지금 숟가락으로 무인들을 제압한 거지?”
“철도 아니고 나무 숟가락인데 가능하나?”
말없이 구경하던 객잔의 무림인들도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그때 팽무성은 남궁혁에게 슬쩍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남궁혁은 이초립의 검두에서 손을 놓았다.
챠앙
“이 건방진 놈이!”
이초립은 기다렸다는 듯 검을 뽑고 팽무성을 덮쳤다.
거칠게 뻗어오는 이초립의 검에는 조급함과 분노만 가득했다.
이래서는 정파 무인이 펼치는 검이라 할 수가 없었다.
따악
팽무성은 자신의 목젖을 노려오는 검을 숟가락으로 가볍게 튕겨내며 이초립을 관찰했다.
‘역시 이상하다.’
일류의 경지에 올랐으면 정사에 상관없이 어느 정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초립은 감정에 쉽사리 휘둘려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듯 했다.
쉽게 평정을 잃고 감정에 휘말리는 정신과 감정이 격해질수록 붉어지는 저 눈.
정파 무공을 익힌 무인치곤 눈빛이 탁했다. 그것은 무공을 펼쳐낼수록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는 팽무성의 눈빛도 덩달아 차가워지고 있었다.
팽무성은 알고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되려 자극하여 내면의 욕망과 악(惡)을 끌어내 사람을 탈바꿈시키는 무공을.
‘마공!’
어째서인지 이초립에게서 마공을 익힌 흔적이 느껴졌다.
확신이 내려지자 그저 검을 흘려내기만 했던 숟가락이 곧장 검을 위쪽으로 후려쳤다.
밀려오는 거대한 반탄감에 이초립은 검을 놓치고야 말았다.
까앙
거센 쇳소리와 함께 이초립의 검이 객잔 천장에 박혔다. 그럼에도 팽무성의 숟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뻐벅
숟가락이 이초립의 전신 곳곳을 찍어냈다. 숟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이초립의 몸은 들썩거렸고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크허헉!”
막고 싶어도 전혀 보이지가 않으니 이초립은 온몸으로 얻어맞아야 했다.
“숟가락으로 처맞는 기분은 어떠려나?”
팽무성은 일부러 바로 기절시키지 않고 이초립의 화를 돋우고 있었다.
이십여 대를 맞았을 때 이초립의 인내심은 한계에 직면했다.
“죽여 버리겠다!”
결국 숟가락에 얻어맞는다는 치욕감과 무력감에 이초립은 이성의 끈을 놔버렸다.
스으으
눈이 완전히 붉어진 이초립은 희미한 검은 기운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마기의 등장에 객잔에 있던 무림인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병장기에 손을 가져갔다.
“저 검은 기운은 설마!”
“마기!”
마기를 확인하자 팽무성은 생각한 가정이 사실임을 확신했다.
“크아압!”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이초립의 미간으로 숟가락이 꽂혔다. 단숨에 이초립을 제압한 팽무성은 고개를 돌렸다.
그때 사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기절한 정협문도의 맥문에 내공을 흘려내며 몸 안의 마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확인이 끝난 사패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전원이 마공을 익히고 있군.”
“어떻게 할까요?”
“아미타불… 그냥 쳐들어가자고. 해도 저물었고 딱 좋네.”
팽무성은 기절한 이초립을 어깨에 들쳐 매며 말했다.
“나머지는 점혈해놓고 이놈만 데려가자.”
객잔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마기의 등장에도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팽무성 일행을 황당하게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보통 후기지수들이 아니었다.
“거구. 미인, 민머리에 짧은 수염… 설마 사패?”
“사패라고?”
잘 보니 인상착의가 거의 들어맞았다.
한 명이 사패라는 이름을 꺼내니 다른 이들도 들은 소문을 떠올리며 눈앞의 후기지수들과 맞추어 봤다.
바로 정협문으로 나서려 했던 사패도 자신들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모른 척할 수 없어 인사했다.
“하북팽가의 팽무성입니다.”
다른 사패도 연달아 소개하자 무림인들의 눈이 반짝였다.
“허허. 진짜 사패라니.”
“옆에 두고도 몰라봤다니 내 눈이 옹이구멍이었네.”
“이보시오. 이대로 정협문에 쳐들어갈 생각이오?”
팽무성은 어깨의 이초립을 보며 말했다.
“정파라 불리던 정협문도들이 마공을 익혔으니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수작을 못 부리게 당장 정협문으로 향할 것입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팽무성을 보며 무림인들은 놀라워했다.
마공이 얽혀 있는 문제라면 보통 일이 아닌데 침착하고 과감히 행동하는 모양새에서 노련함이 느껴졌다.
이때, 객잔에 있던 중년인 몇몇이 팽무성에게 다가왔다.
“강호에 호연검이라 불리고 있소. 방해가 안 된다면 동행해도 되겠소? 유사시에는 마기를 목격한 증인으로 나서겠소.”
“마공이라면 마교와 관계가 있을 터. 후배들에게 맡기고 뒤로 빠지기엔 체면이 서지 않는군. 본인도 한 손 거들겠소.”
“엇? 그럼 나도 가겠소이다.”
마교의 심각함을 알기에 무림인들도 사패를 돕고자 자발적으로 나섰다.
예상치 못한 흐름에 사패는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든든함을 느끼곤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에 감사합니다. 같이 가시죠.”
* * *
정협문주의 침실.
늦은 밤에 남녀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여인의 풍만한 몸매는 뱀처럼 요사스레 움직이며 중년인의 몸을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주. 큰일 났습니다!”
중년인의 몸 곳곳을 탐하던 여인의 손길이 우뚝 멈추었다. 이에 중년인, 정협문주는 노성을 터트렸다.
“야밤에 무슨 큰일이란 말이냐!”
“당주가 기절한 채 끌려왔고 일단의 무리가 문주를 뵙기를 청합니다.”
수하의 보고에도 정협문주는 여인의 허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 예의를 모르는 놈들이 누구냐.”
“호연검에 미풍사, 전웅표국의 표사까지. 하나같이 출신이 다양합니다. 문주께서 나올 때까지 버티겠다고 합니다.”
이에 눈이 가늘어진 정협문주는 여인의 몸에서 손을 떼고 옆에 있던 검집을 잡았다.
“기다리고 있거라.”
“예. 나으리.”
정협문주는 의복을 정돈하곤 방을 빼져 나갔다. 정협문주가 나가고 침실에 혼자 남은 미녀의 눈빛이 돌변했다.
순한 눈매에 진득한 요기가 차올랐다.
“왠지 불길하구나.”
빠르게 위에 윗옷을 걸친 미녀는 침실을 빠져나가 정문 쪽으로 향했다.
벽을 밟고 가볍게 지붕에 올라가 신형을 날리는 그녀의 움직임은 무공을 익힌 무인의 것이었다.
정협문의 정문 쪽에는 한창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잠을 자던 무인이 모두 일어나 정문 쪽에 모여서 야밤에 정협문을 찾은 불청객과 대치하고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야밤에 본인을 찾는단 말이오?”
정협문주의 등장에 팽무성 일행을 에워싸고 있던 문도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 사이로 나아가던 정협문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땅에 나뒹굴며 정신을 잃은 사내는 이초립이었다.
‘왜 저런 꼴로 쓰러져 있단 말인가.’
“당신들이 본문의 당주를 이렇게 만든 것이오?”
정협문주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리자 불청객 중 하나가 대표로 나섰다.
횃불 때문에 얼굴에 그림자가 졌지만 제법 젊어 보였다. 영락없는 후기지수였다.
“하북팽가의 팽무성이라 합니다.”
“패호도?”
정협문주는 바로 팽무성을 알아봤다. 요새 명성이 끊이질 않는 후기지수인 탓이었다.
그와 동시에 정협문주는 방금 보고를 한 문도를 째려봤다.
호연검이나 미풍사 따위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 왜 말을 하지 않았냐는 의미였다.
이에 문도는 당황하여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사패는 의도적으로 별호를 밝히지 않았다.
정협문주가 경계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패호도셨군. 반갑소이다.”
정협문주는 일단 만면에 웃음을 지었지만 팽무성은 딱딱한 표정 그대로였다.
“저는 말을 돌리는 재주는 없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이 자를 비롯한 열 명의 정협문도가 왜 마공을 익히고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마공이라니.”
정협문주는 일단 시치미를 뗐지만, 속으로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팽무성은 그런 정협문주를 보고는 눈이 가늘어졌다.
‘이 자도 눈빛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팽무성은 정협문주도 마공을 익혔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초립을 비롯한 정협문도들이 마공을 익힌 티가 나지 않는 것은 그저 단순히 성취가 모자란 탓이었다.
‘마공을 익힌 지 최소 일 년은 넘은 것 같군.’
팽무성은 일 년 전부터 정협문이 변했다는 노인의 말을 떠올렸다.
마공을 익히며 생겨난 마성(魔性)이 조금씩 무인의 심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노인은 정협문이 달라졌다고 느꼈을 테고 말이다.
정협문주를 보며 잠시 고민하던 팽무성의 신형이 느닷없이 솟구쳤다. 그 모습은 사냥감을 발견한 호랑이의 도약과 같았다.
“허어.”
“놀랍군.”
서 있던 자세 그대로 치솟아 올라 전각의 지붕까지 떠오른 팽무성의 뒷모습에 이를 보던 무림인들은 제각기 탄성을 질렀다.
전각의 지붕에 다다른 팽무성은 그 위에 숨어있던 쥐새끼 한 마리를 잡아냈다.
“끅.”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팽무성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목을 잡힌 미인은 팽무성의 형형한 안광에 반항할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여인의 눈에 서린 요기를 확인한 팽무성의 입이 열렸다.
“요마종의 계집인가.”
주유강호(周遊江湖).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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