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95)
94화
팽무성 뿐 아니라 당화련도 일상을 알아보자 눈매가 둥그레졌다.
“그때는 금련이라고 소개하셨던 것 같은데.”
“후후. 그때는 금련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드렸었지요.”
낙양에서 흑상의 경매를 맡았던 금련.
금련(金連)은 일상(一商)이 가진 여러 이름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이쪽으로.”
일상은 사패를 차를 끓이던 다탁으로 안내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팽 소협의 경고를 들었을 때는 충분히 흑상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부끄럽군요.”
“현재 흑상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경매 이후로도 마교의 습격은 계속되었습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무림 전역에서 마교와 습격은 계속되었습니다.”
일상의 말에 사패는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흑상의 저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교가 대놓고 움직일 수는 없다곤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림문파가 아닌 흑상이 이를 감당해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괜히 긴 역사 동안 무림의 음지에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일상의 말씀을 들어보니 지금은 마교가 공격을 멈춘 모양이군요.”
팽무성의 말에 일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일차적인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일상은 김이 새어 나오는 다기를 기울여 사패의 찻잔을 채워주었다.
“흑상을 움직이는 구상을 찾은 것이로군.”
남궁혁의 혼잣말에 일상이 고개를 까닥였다.
“구상의 위치는 극비 중의 극비라 마교도 허탕만 쳤는데 이 년 정도 지나니 점점 좁혀지더군요. 집요한 놈들입니다.”
수시로 바뀌는 구상의 위치를 무림 전역의 흑상을 있는 대로 들쑤시며 쫓은 마교.
셀 수 없는 교인을 갈아 넣는 무식한 방법으로 마교는 기어코 구상의 꼬리를 잡아냈다.
“마교의 끊임없는 병력도 놀랍지만, 마이각(魔耳閣)이라는 곳의 힘도 대단합니다. 이미 무림에 상당한 이목을 펼쳐 놓은 듯하더군요.”
일상의 말을 듣던 팽무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 흑상이라고 당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전생에서 정마대전 중반쯤에나 드러났던 마교의 정보 조직, 마이각.
흑상은 그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마교가 흑상에게 파고들었듯이 흑상도 마교에 역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칠상과 팔상은 그럼 마교의 손에?”
팽무성의 물음에 일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버텨냈지만 극심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더 이상의 손실은 막고자 하는 것이 구상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구상의 회담이 열리는 것이군요.”
흑상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손실을 막고자 했고 마교도 허울뿐인 흑상은 필요 없으니 두 진영은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회담을 이끌어 낸 것만으로도 절반은 마교에 먹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흑상을 그만큼 궁지에 몰았다는 것이고 회담이라 하여 마교가 평화롭게 해결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일상도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상인답게 언변과 금력으로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상은 상대편과 똑같은 방식으로 판을 뒤엎을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역전만 시킨다면 흑상 내의 불순분자를 한꺼번에 제거할 좋은 기회였다.
구상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일은 흔하지 않으니.
“이번 회담으로 어떻게든 끝이 나겠지요. 그래서 그대들을 부른 것입니다.”
당화련은 웃음기가 사라진 채 입을 열었다.
“상인들의 회담인데 이번에는 다른 것이 회담의 결과를 결정하겠군요.”
이에 일상도 쓴웃음을 지었다.
“흑상의 앞날을 결정하는 것이 금력이 아닌 무력이라… 이럴 때는 흑상도 결국 무림에 발 담그고 있다는 게 실감 납니다.”
무각은 팽무성을 보며 물었다.
“이런 일이면 마교에서도 강한 놈이 나오겠지?”
“그래, 쉽지는 않을 거다. 당가 때보다 위험할 수도 있어.”
일상은 사패끼리 상의하는 모습을 보더니 물었다.
“팽 소협. 가능하겠습니까?”
“흑상이 마교에 넘어가는 것을 막겠습니다. 대신 흑상도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
일상도 이미 예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을 도우면 되는 것입니까.”
허나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확언할 수는 없으나 무림맹, 사도천, 무천궁 이 세 곳이 함께 싸우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말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표정을 유지하던 일상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거의 불가능한 얘기였으나 팽무성의 힘이 실린 목소리에 일상은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실현된다면 무림 전체가 마교와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군요.”
“그리고 이들을 지원할 능력을 지닌 것은 무림 전역에 뻗어있는 흑상 뿐이겠지요.”
이런 대대적인 침공이 벌어지는 것은 무림의 긴 역사에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니었다.
허나 흑상은 무림의 일이라 선을 그으며 관여한 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제가 살아남는다면 최우선 안건으로 올리지요.”
* * *
일상이 머무는 평리의 근처에는 무명의 협곡이 있었다. 일상과 합류한 팽무성 일행은 그 협곡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협곡에 들어서며 이미 두 개의 진법을 거쳤다. 정해진 생문을 지나지 않으면 처음 위치로 되돌아오는 진법이었다.
“협곡을 들어가는 길도 복잡한데, 진법까지 펼쳐져 있군요.”
“어지간한 문파보다 보안 수준이 뛰어나다. 과연 흑상의 안가라 이건가.”
팽무성과 남궁혁의 말을 듣던 일상은 살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하하. 흑상의 모든 안가가 이런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길고 좁은 협곡의 틈을 계속 들어가자 점점 협곡의 너비가 넓어지더니 거대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났다. 마치 그 지세가 호리병과 같았다.
그 중앙에는 거대한 산장이 지어져 있었고 앞에는 무수한 천막이 처져 있었다.
무각은 천막을 채우고 있는 많은 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부분이 무공을 익혔군.”
“구상의 호위무인입니다. 다만 저번과 달리 분위기가 제법 삭막하군요.”
일상은 천막의 무인들을 눈으로 대충 훑으며 말했다. 회담에 참여하는 구상은 서른 명의 호위를 대동할 수 있었다.
그 규칙에 맞춰서 일상도 서른 명의 무인과 함께했다.
본래 정상적인 회담이라면 구사의 회담이 진행될 동안 호위 무인들은 준비된 천막에서 가볍게 회포를 풀며 술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허나 오늘의 회담에서 술을 입에 대는 무인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언제든 병장기를 뽑을 수 있도록 허리나 무릎에 손을 올린 상태였다.
그런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일상의 무리가 천막의 물결을 지나서 산장으로 향했다.
“감 호위, 일행들을 이끌고 대기하고 있게.”
“알겠습니다.”
산장에 들어설 수 있는 이는 회담에 참여하는 구상과 호위 한 명뿐이었다.
이번에 호위로 들어갈 이는 팽무성으로 결정이 났기에 감석태는 남은 일행들을 이끌고 빈 천막으로 향했다.
“고생들 하네.”
“어서오십시오. 일상.”
일상이 금패를 꺼내서 보여주자 산장의 입구를 지키던 무인들은 옆으로 비켜주었다.
산장의 내부는 아주 화려했다.
산장 내부는 곳곳이 금빛으로 번뜩였고 갖가지 자기와 미술품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평범한 양민들은 산장에 있는 것을 아무거나 하나 챙겨도 평생 먹고살 듯싶었다.
“이쪽입니다. 팽 소협.”
일상은 팽무성을 이끌며 삼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삼 층은 하나의 대청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중앙에는 커다란 원형 탁자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일상.”
“일 년만이군요. 별고 없으셨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이도 있었고 그저 앉아서 관망하는 이도 있었다.
흑상이 두 패로 갈라져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팽무성은 대청의 아무것도 없는 벽 쪽을 잠시 응시하더니 고개를 틀었다.
일상은 빈자리에 앉으며 이제 막 중년에 들어서 보이는 사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이상(二商).”
일상의 인사에도 이상은 답하지 않고 일상의 뒤에 서 있는 팽무성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평소에 같이 다니던 감 호위는 어디 가고 새로운 이를 대동하셨소이다.”
그에 일상은 그저 느긋한 미소를 보이더니 비어있는 두 자리를 보며 말했다.
“제가 꼴찌였군요. 구상이 다 모였으니 바로 회담을 시작하지요.”
회담의 시작부터 분위기는 미묘하게 삐걱거렸다.
“회담이라 할 것이 있는지 모르겠소. 그냥 마교와 손을 잡으면 되는 부분이 아닐지.”
이상의 말에 오상은 바로 미간을 좁히며 반발했다.
“이상, 말을 너무 쉽게 하십니다. 그동안 흑상이 싸워온 이유를 모르십니까.”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사상이 받아쳤다.
“흑상의 존재 목적은 돈이 아니요. 돈을 이전보다 더 잘 벌게 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요.”
“마교가 지금껏 해온 행동을 보고도 그 말을 믿으시오?”
구상은 두 패로 나뉘어 곧장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때 팽무성은 구상의 호위 자격으로 참여한 무인들을 살피고 있었다.
대개 수준이 뛰어났다. 절정의 극에 달한 무인이 대부분이었고 초절정에 도달한 무인도 두 명이나 있었다.
‘마인은 보이지 않는군.’
팽무성이 다른 이들의 무공을 살폈듯이 다른 호위들도 자신들에 비해 많이 젊은 팽무성의 무공을 살펴보았다.
‘흐음? 기도를 알 수가 없군,’
‘얼굴을 보면 후기지수인데 나보다 강하다는 건가.’
‘대체 누구지?’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지닌 무위를 전혀 가늠할 수 없는 팽무성에 놀라는 중이었다.
이들도 사패에 대한 명성은 들은 바가 있지만, 이곳에 팽무성이 갑자기 홀로 나타날 것이란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탁
이상은 찻잔은 신경질적으로 내려놓더니 일상을 보며 말했다.
“마교를 찬성하는 게 넷. 반대하는 게 셋이니 아쉽지만 일상께선 인정해야 되지 않겠소?”
그에 일상은 품속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는 감석태가 목숨을 걸고 가져온 칠상과 팔상의 도장 조각이 들어있었다.
“이것들을 포함하면 우리가 한 표를 앞섭니다.”
이를 본 이상의 눈이 찌푸려졌다.
저 조각 하나가 구상 회담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손에 넣으려 하던 것인데 결국 실패해 이 사달을 만들어냈다.
“일상, 상인답게 좋게 설전으로 끝내면 좋을 것을 기어코 피를 볼 작정이구려.”
그 말에 회담 내내 웃음을 잃지 않던 일상의 얼굴도 점점 무표정해졌다.
“이상, 지난 이 년 사이에 많이 변하셨습니다. 여유가 사라지고 급해지셨습니다.”
꽈앙
이상은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탁자의 끝부분을 내려쳤다.
“닥치시오! 언제까지 나를 가르치려 들 셈이오.
이제 흑상은 나의 손에 새롭게 개편될 것이오. 구상(九商)이 아니라 흑상주(黑商主)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에 움직일 것이니.”
그 말에 일상은 왜 이상이 마교에 가담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구상의 서열은 쌓아온 실적에 의해 오르내리곤 했다. 종종 구상의 서열이 바뀌곤 했으나 일상은 이십 년째 그 위치를 공고하게 유지해 왔다.
이것이 이상에게는 커다란 벽으로 느껴졌을 게 분명했다.
일상도 더는 이상을 존대하지 않았다.
“이런 하찮은 이유로 흑상을 갈라놓은 것이냐. 상인은 욕심을 추구하되,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거늘.”
이상을 처음 가르친 것이 일상이었던 만큼 일상의 눈에는 찰나지만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크큭. 인간이 탐욕에 몸을 맡기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탐욕이 없다면 인간은 시체나 다름없지.”
갑자기 기이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며 이상의 뒤에 있던 공간에 일그러짐이 생겼다.
채앵
그에 호위로 나선 무인들이 놀라서 병장기를 뽑았지만 팽무성은 가만히 뒷짐을 진 채 관망하고 있었다.
일렁이는 공간에서 튀어나온 중년인은 기괴했다.
한쪽 눈을 제외하곤 전신에 검은 붕대를 감고 있었다. 붕대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문자가 핏빛을 띠고 있었다.
거기에 붕대 위에 걸친 붉은 장포에도 문자가 빼곡했다.
그 해괴한 중년인이 만들어내는 오싹한 분위기에 그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더는 혀를 놀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중년인의 말에 이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뜻대로 하시지요.”
유일하게 드러난 중년인의 보랏빛의 띤 눈동자는 팽무성을 향했다.
“네놈, 내 존재를 알고 있더구나. 그저 운으로 괴세마왕을 물린 것은 아니었군.”
중년인의 말에 팽무성은 입꼬리를 비틀며 적아도를 잡았다.
팽무성은 이 중년인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전생에 이놈과 하루 내내 싸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혼세마왕.”
* * *
흑상의 회담이 벌어지는 협곡 위에 두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교주와 검마군이었다.
“흠. 정말 이곳에 있으려나.”
소교주는 멀리 보이는 산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마이각에서는 팔할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도 쉽지는 않겠어.”
“혹시 직접 나설 생각이십니까.”
검마군의 물음에 소교주는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의 성패는 상관없다. 다만 혹시 떨어질지 모를 콩고물이나 잘 살펴야겠다.”
소교주와 검마군은 산장을 향해 좀 더 가까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혼세마왕(混世魔王).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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