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98)
97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심마.
팽무성의 날 선 한 마디에 심마들은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우우웅
팽무성의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나며 적아도가 맑은 도명을 토해냈다.
도명이 점점 크게 울려 퍼지며 심마의 속삭임은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적아도가 사방으로 휘둘러지며 팽무성을 둘러싼 심마들을 단칼에 베어냈다.
“심마들아. 이들을 모욕하지 마라.”
각자 싸운 이유는 달랐으나 마교로부터 무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불사른 이들이었다.
어둠 속에서 붉은 선이 끊임없이 그어지자 심마들은 단어 그대로 찢기고 있었다.
적아도에 조각난 심마들은 검은 연기로 화해 사라지면서도 팽무성을 원망하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팽무성은 그 눈빛들을 마주하면서도 당당히 적아도를 빼 들었다.
“고작 이까짓 것에 흔들릴 줄 알았냐.”
팽무성은 아무것도 없는 어둠을 통째로 베어냈다.
* * *
심마영청마공(心魔靈聽魔功)
이 마공의 법문을 듣게 된 이들은 환영과 환청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는 곧 심마가 되어 겪는 이의 정신과 마음을 서서히 무너트렸다.
겪게 되는 심마의 종류는 사람마다 달랐는데 대상의 마음과 기억을 토대로 환각이 만들어졌다.
혼세마왕은 이 마공을 믿고 팽무성에게 내공 싸움을 유도해낸 것이었다.
팽무성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다면 내공은 그에 영향을 받을 테고 혼세마왕은 손쉽게 승기를 잡아내리라.
‘내면의 상처를 끌어내는 것이니 네놈 같은 젊은 놈은 더욱 무너지기 쉽지.’
파르르 떨리는 팽무성의 눈을 보며 혼세마왕의 입술이 귀밑까지 올라갈 때였다.
“혼세마왕… 이 개자식이.”
눈을 번쩍 뜨자마자 욕을 내뱉은 팽무성에 혼세마왕은 깜짝 놀랐다.
“네놈, 심마영청마공을 이겨냈군.”
“덕분에 기분만 더러워졌다.”
본래 내공 싸움에 입을 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초월경에 오른 두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내도 길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 곧바로 입을 닫고 내공에 온 신경을 쏟았다.
‘크윽. 계획이 틀어졌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팽무성의 내공은 마치 활화산의 용암과도 같았다. 환환마공의 진득한 마기가 필사적으로 막아내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붕대 밑이 식은땀으로 조금씩 축축해지기 시작하면서 혼세마왕의 눈이 처음으로 다급함이라는 감정을 보였다.
애초에 팽무성보다 훨씬 많은 내공을 소비했던 혼세마왕이었다.
그러던 차에 심마영청마공이라는 노림수도 틀어졌으니 점점 불리해졌다.
‘이대로면…’
혼세마왕은 결국 내공의 운용 방식을 바꾸어냈다.
혈맥을 타고 흐르던 마기의 움직임이 바뀌자 적아도와 맹귀곤의 접점에서 엄청난 반발력이 일어났다.
파앗
막대한 내공이 흐르고 있던 만큼 팽무성과 혼세마왕은 서 있던 자리에서 열 보 이상 밀려나야 했다.
억지로 떼어진 두 병기를 보며 팽무성이 눈을 찌푸렸다.
본래 내공 싸움이 벌어지면 중간에 멈추는 것은 없고 결착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은 혼세마왕이 역행으로 운기 하는 마공을 익힌 덕분이었다.
“발악하는구나, 혼세마왕.”
팽무성의 한 마디에 혼세마왕은 이를 갈았지만 일단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내상으로 기세를 잃었던 혼세마왕의 기세가 다시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부작용을 감수하고 역천마공을 펼쳐내서 내공을 부풀린 혼세마왕은 마형혼을 만들어냈다.
다시금 팽무성과 세 명의 혼세마왕이 맞붙게 되었고 혼세마왕은 시간을 끌 생각이 없는지 곧바로 최후의 절초를 준비했다.
파형마곤 쌍주충마(雙主?魔).
좌우에서 동시에 펼쳐진 쌍주충마의 초식.
양쪽에서 보랏빛으로 쇄도하는 곤기가 사선으로 겹쳐졌고 그 중심에는 팽무성이 있었다.
본래 마형혼과 연계하여 두 명이 똑같은 초식을 펼쳐 위력을 증강하는 절초였다.
허나 혼세마왕은 쌍주충마를 모두 마형혼에 맡기고 뒤로 몸을 뺐다.
일그러진 공간 사이로 모습을 감춰가는 혼세마왕의 실체를 보며 팽무성은 도병을 쥐어짜듯 잡아냈다.
‘놓칠 것 같으냐.’
당장 혼세마왕의 실체를 쫓고 싶으나 눈앞에 쏟아지는 쌍주충마를 무시할 수 없었다.
마형혼이 펼친다 한들 초식이 지닌 위력은 진짜였다.
마형혼을 상대하고 혼세마왕을 쫓다가는 늦는다. 그렇다면 이 셋을 한 수에 끝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솨악
섭선이 펴지듯 부채꼴로 나아가는 다섯 줄기의 도격.
적아도의 도극이 진동할 때마다 도격이 수십 줄기로 파생되었다.
계속 분화하는 오호단문도의 도격은 마치 빠른 속도로 자라나는 나뭇가지와 같았다.
콰라라랑
셀 수 없이 나눠진 도격의 하나하나가 굵은 뇌전이 되어 거칠게 앞으로 쏘아졌다.
비처럼 끊임없이 쇄도하는 뇌전은 덮쳐 오던 마형혼을 삼켜내고 전방으로 멀리 뻗어 나갔다.
비정뇌우(非情雷雨)의 초식이 쏟아지고 환마계 전체에 붉은 벼락이 끊이질 않고 내리쳤다.
비정뇌우는 오호단문도의 다른 초식들과 달리 오로지 변(變)과 환(幻)에 치중된 초식이었다.
수십 수백 줄기의 뇌전이 뿜어져 나오는 그 광경은 마치 뇌신이 강림한 듯했다.
“후우.”
적아도를 거둔 팽무성은 숨을 가다듬었다.
비정뇌우는 다수를 상대할 때를 위해 만든 초식인 만큼 위력은 물론이고 그 범위가 매우 넓었다.
앞에 있던 마형혼은 물론이고 그 너머 십 장의 공간이 벽력탄 여러 개가 터진 듯 쑥대밭이 되었다.
팽무성은 그 가운데 무언가를 발견하곤 걸음을 옮겼다.
움푹 파인 땅의 주변에는 피가 흩뿌려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 붕대에 감긴 팔이 있었다.
혼세마왕의 오른팔이었다.
혼세마왕의 오른팔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팽무성은 고개를 들었다.
검은 하늘이 본래의 색인 푸른 빛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환마계가 붕괴하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한창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지 팽무성이 있던 자리에서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혼세마왕을 쫓을지 고민하던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팽무성은 추종술에는 그리 재주가 없었다.
초월경의 기감이 있으나 혼세마왕도 마찬가지였고 환마종의 마공이 있으니 더욱 찾기는 어려울 터였다.
팽무성은 혼세마왕이 도망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을 잠시 보더니 등을 돌렸다.
이곳까지 들려오는 비명과 병장기 소리를 보면 아래쪽은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은 듯했다.
“이제 확실히 전생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전생에서는 혼세마왕과 싸우며 한 번도 우세를 점했지 못했었다.
비록 지금은 혼세마왕을 죽이지는 못했으나 팔을 잘라냈으니 커다란 성과였다.
“슬슬 도왕의 이름을 되찾아 볼까.”
* * *
우거진 나무 사이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질 때 그 사이에 사람의 소리가 섞여들었다.
“학… 학…”
이름 모를 숲속에서 나무에 등을 기대던 혼세마왕은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환환마공을 극성으로 펼쳐내서 간신히 도망친 혼세마왕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애송이 따위에게 이딴 치욕을…”
혼세마왕은 이제는 없는 자신의 오른팔을 보며 눈을 잘게 떨었다.
팽무성이 마지막에 펼쳐냈던 비정뇌우.
폭사하듯 사방으로 쏟아지는 도격에 혼세마왕도 피해낼 도리가 없었다.
오른팔은 물론이고 가슴, 허벅지, 쇄골 등에 무려 일곱 개의 도흔이 새겨져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혼세마왕의 붕대에 붉게 물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쯤 되면 비정뇌우를 맞고 살아남은 혼세마왕의 생명력과 집념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팽무성이 살생부에 왜 안 올라간 것이야. 이놈들이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건지.”
“내가 그렇게 만들었소.”
나무 뒤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푸른 장포의 미공자, 소교주를 본 혼세마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소교주? 소교주께서 어찌 이곳에 계시는 것이오.”
혼세마왕의 물음에 소교주는 그저 입꼬리를 올리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혼세마왕에게는 그 웃음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소교주, 본인이 불온한 상상을 하는 것이오?”
혼세마왕이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소교주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아니. 아주 정확하게 판단하신 거 같군.”
소교주의 몸에서 짙은 마기가 발밑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둠을 담아 낸듯한 칠흑의 마기는 혼세마왕을 옭아매려 하고 있었다.
만전의 상태여도 당해내기 힘들 소교주였다. 혼세마왕의 마기가 일어났으나 소교주의 마기에 턱없이 밀려나기만 했다.
이에 혼세마왕은 비정뇌우에 반으로 갈라진 맹귀곤을 들며 말했다.
그 모습에 소교주의 눈매가 기분나쁜 호선을 그렸다.
“상식적이라면 본인이 아닌 팽무성을 노리는 것이 천마신교 소교주로서의 올바른 처사가 아니겠소?”
혼세마왕의 말에 소교주의 얼굴에 조금씩 광기가 물들기 시작했다.
“크흐흐. 혼세마왕. 마도에 상식을 논하는가? 정말 죽을 때가 되었나 보군.”
천마지존수(天魔至尊手)를 펼쳐낸 소교주의 오른손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팽무성은 아직 여물지 않은 열매. 지금 따먹어도 신맛이 느껴질 뿐이지. 그러니 기다리는 동안 다른 열매를 따 먹어야 하지 않겠나.”
“감히!”
혼세마왕은 마지막 여력을 쥐어짜 맹귀곤을 휘둘렀지만 소교주의 손에 가볍게 막혔다.
“컥.”
맹귀곤을 저 멀리 날려버린 소교주는 곧장 혼세마왕의 목을 잡아냈다.
소교주가 팔을 올리자 혼세마왕의 발은 땅에서 떨어진 채 버둥거렸다.
“본인이 없으면 본교의 마도천하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오.”
“네놈 따위가 없다고 본교의 마도천하에 차질이 생긴다면 애초에 성공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겠지.”
혼세마왕의 목을 잡고 있던 소교주의 장심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일전에 풍마군의 목을 잡았을 때와 똑같은 광경이었다.
“끄윽.”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소교주의 손목을 부여잡던 혼세마왕의 왼팔이 툭 떨어졌다.
식마종 탐정마공의 원류가 되는 천마신공 탐천마공(貪天魔功)이 펼쳐졌다.
소교주는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혼세마왕을 보며 싱긋 웃었다.
“억울해하지 마라. 혼세마왕이여. 이것이 그대가 걸어온 마도가 아닌가.”
탐천마공의 검은빛이 절정에 달했을 때.
모든 것을 빼앗긴 혼세마왕의 육체는 검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남은 것은 핏빛으로 물든 붕대뿐이었다.
“나쁘지 않아.”
전신에 올라오는 포만감과 쾌감에 몸을 자르르 떨던 소교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내보였다.
“혼세마왕은 팽무성에게 죽은 것으로 하자.”
“존명.”
모습을 드러낸 검마군이 고개를 숙이며 걸어왔다. 혼세마왕의 흔적을 지워낸 검마군은 소교주에게 물었다.
“소교주. 흑상의 일은 이대로 두어도 괜찮겠습니까. 본교의 계획이 틀어지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이 흐름이 더욱 나을 수도 있다. 본교도 언제까지 숨어서 우리에게만 일을 맡길 수 없겠지.”
소교주는 천마신교 본단에 있을 지휘부를 떠올리며 어금니를 드러냈다.
“뒷방의 늙은이들이 손 하나 꿈적하지 않고 마도천하를 이루게 둘 수는 없지.”
“물론입니다. 마도천하는 당연히 소교주께서 이루어야 할 일입니다.”
“그래. 마도천하는 종착지가 아닌 그저 중간에 지나갈 곳에 불과하지.”
얘기를 나누던 소교주와 검마군이 숲을 벗어나자 먹구름이 사라지고 다시 햇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던 소교주가 문득 검마군에게 물었다.
“검마야, 너의 적수는 누구냐? 광마? 아니면 한발 앞서 있는 권마냐?”
잠시 고민하던 검마군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광마군과 권마군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권마군에 비하면 모자라니 부끄럽습니다.”
“후후. 네가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면 그게 적수라 할 수 있겠느냐? 피를 끓게 하고 죽일 가치를 느끼게 하는 상대여야 적수라 할 수 있겠지.”
소교주의 곁을 언제나 가까이 지키는 검마군은 갑자기 이런 말을 왜 꺼내는지 알 것 같았다.
“팽무성을 떠올리는 것입니까.”
이에 걸음을 잠시 멈춘 소교주는 고개를 돌려 검마군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검마군은 급히 오체투지를 하며 머리를 박았다.
“속하가 실언을 했습니다.”
“아니다. 검마야. 너의 말이 옳다. 본교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적수라는 존재를 팽무성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소교주는 물기로 축축해진 풀밭을 걸으며 팽무성을 떠올렸다.
“팽무성을 처음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다. 천마지로(天魔之路)의 대미를 장식할 것은 그 사내가 될 것이다.”
소교주는 자신의 왼쪽 가슴으로 손을 올렸다. 팽무성을 생각하면 살기와 혈기가 끓어올라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지금 당장이라도 팽무성을 찾아가 팽무성의 피에 흠뻑 젖고 싶었으나 소교주는 마음을 다잡고 인내했다.
팽무성과 자신이 부딪칠 날은 아직 먼 미래. 운명의 격류는 아직 두 사람의 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과연 어떤 무대에서 마주하게 될 것인가.’
잠시 멈춰서서 팽무성과 같은 하늘을 바라보던 소교주, 천마휘는 다시 앞으로 향했다.
천살택문.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