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01
꺼져가는 의식의 끝자락을 잡을 때 머릿속은 억울함만 가득했다.
진짜 진도준이 죽은 해를 정확히 기억 못 한 것, 스무 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그리고 두 번째 생을 사는 기적을 겨우 십 년으로 끝내버리는 신의 계획에 화가 났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또 있었다.
이제 겨우 긴 싸움 시작할 채비를 갖추었는데 시작도 하지 못했고, 계좌에 쌓여 있는 내 돈을 생각하니 더 억울해서 죽을 것 같다. 아니, 이미 죽어가고 있나?
마지막으로 진 씨 일가를 내 앞에 무릎 꿇리지 못한 것이 가장 분했다.
젠장.
어떻게 생겨 먹은 인생이 이따위냐?
두 번의 죽음 모두가 객사인 것도 모자라 억울하고 분한 기억만 안고 가야 한다니.
# # #
“정신이 듭니까?”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는 밝은 빛.
귓가에서 들리는 손가락 튕김이 만들어내는 딱딱거리는 소리.
안 죽고 살았나? 아니면 큰 수술이라도 끝내고 아직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걸까?
하지만 몸이 덜컹거리는 걸 느꼈다. 게다가 뿌연 시야에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바로 TV나 영화에서 보던 모습이었다.
구급차인가?
“하… 할아….”
알려야 했다. 순양그룹 회장의 정체를 밝히면 조금이라도 더 신경 쓰지 않을까?
“아… 말씀 마…세요. …괜찮….”
귓가에서 윙윙대기만 할 뿐 명확히 들리지 않았다. 괜찮다는 뜻일까?
“수… 순양… 그룹…….”
“네? 순양그룹요?”
“회, 회장님… 입니다.”
다시 정신을 잃었다.
“야! 방금 순양그룹 회장이라고 말한 거 맞지?”
“네. 그 노인,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구급요원은 서로를 바라보다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거기 환자 상태 어때?”
– 한가하다, 너! 끊어, 새끼야.“
“그 노인네 순양그룹 회장님 같아. 잘 확인해봐.”
-헉!
전화기에서 숨 멎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짜증이 터져 나왔다.
– 맞다. TV에서 봤던 그 얼굴이다. 젠장.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내가 병원에 연락 때릴 테니까 상태 잘 살펴. 잘못되면 우리 인생도 조지는 거야.”
안타까움, 불안, 걱정, 두려움이 가득한 구급차들이 충남 공주의료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 밖에서 대기하던 의료진들은 구급차에 실려 온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자 모두 낭패의 기색이 역력했다.
“호흡도 희미하고 출혈이 심합니다. 가슴 아래가 다 으스러진 것 같습니다. 골반도….”
“알았어요. 자, 빨리 뛰어.”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의료진들은 수술실로 사력을 다해 뛰었다.
수술실로 달려가지 않은 병원 직원은 구급대원에게 말했다.
“뒤따라오는 환자들 상태는요?”
“두 명은 양호하고 두 명은 그보다는 나쁩니다. 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요.”
“알았어요. 고생했습니다.”
방금 수술실로 들어간 중상자만 구하면 된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부터 나왔다.
* *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눈부신 형광등 불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안 죽었다.
아니, 의외로 멀쩡한 듯 느껴졌다. 어찌 된 일일까?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느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교통사고라는 것밖에는.
형광등의 밝은 불빛이 익숙해졌을 때 가장 먼저 내 몸을 훑었다. 링거 하나가 대롱거리며 걸려 있는 게 전부다.
몸 곳곳이 쓰라렸는데 파스처럼 큰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아, 정신 들었어요?”
호감을 잔뜩 드러내는 환한 미소의 간호사가 이마와 팔목, 목덜미를 만졌다.
곧이어 흰 가운의 의사가 나타나 손전등을 눈에 대며 말했다.
“제 손가락만 보며 눈동자를 움직이세요.”
움직이는 의사의 손가락을 손으로 툭 쳐냈다.
“할아버지는요? 많이 다치셨습니까? 상태는요?”
“됐네. 멀쩡한 것 같은데?”
의사는 손전등을 끄고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함께 실려 오신 분이 자네 할아버지신가?”
“네.”
“그분도 괜찮으시다네. 곧 깨어나실 것 같긴 해. 이 사고 당사자 다섯 분 중에 한 명만 수술 중이야. 너무 염려 말아요.”
다섯? 도대체 몇 대가 사고 난 걸까?
궁금증은 뒤로하고 해야 할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
“선생님, 우리 할아버지, 순양그룹 회장님입니다. 병원이 시끄러워지기 전에 조치부터 부탁합니다.”
“조치?”
“네.”
의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순양그룹 회장이면? 어쩌라고? 경미한 교통사고 난 게 뭐 대단한 거라고 특별대우 받으려고 해? 경찰도 불러야 하고 사고 경위도 파악해야 해. 여긴 지방 국립의료원이라 VIP 특실 같은 것도 없어.”
의사는 내 말을 오해한 것 같다. 사회 특권층이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VIP 대접 바라는 게 아닙니다. 깨어나시면 저부터 찾으실 테니 제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 아닙니다. 어차피 막을 수 없을 테니까…. 아무튼 감사합니다. 선생님.”
의사가 간호사에게 눈짓하자 간호사들은 커튼을 걷고 침대를 움직였다.
“일단 검사부터 할게요.”
“보호자 연락처 좀 주세요. 사고 사실을 알려야….”
간호사들이 연이어 입을 열었다.
“그건 지금 곤란합니다. 일단 할아버지부터 좀 만납시다.”
교통사고 사실을 집안에 알리는 건 할아버지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보통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할아버지의 교통사고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출렁이게 하는 영향력이 있다.
공식적인 발표가 아니면 새어 나가면 안 된다.
“고집도 참…. 알았어요. 검사 끝나면 바로 같은 병실에 보내드리죠.”
* * *
진 회장은 정신이 들자마자 자신의 팔에 꽂힌 수액을 만지작거리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아, 아가씨 전화기 좀….”
“어머, 할아버지. 깨어나셨네. 잠깐만요. 선생님 불러….”
“앵앵대지 말고 빨리 핸드폰 좀 줘. 어서!”
하지만 간호사는 진 회장의 말을 무시하고 방긋 웃었다.
“지금은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CT 찍었는데 괜찮으시다니까 조금 쉬시면….”
“거 참, 어서!”
벼락같은 호통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뒷주머니에 꽂아 두었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순양그룹 회장님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 회장은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는지 한참을 끙끙대다 버튼을 눌렀고 잘못 걸렸다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몇 번 듣고 나서야 원하는 사람과 연결되었다.
# # #
“네. 회장님.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아침 일찍 걸려온 전화가 회장님일 줄 몰랐다. 게다가 교통사고라니. 식은땀이 쫙 흘렀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진 회장과 통화를 끝낸 이학재 실장은 곧바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순양 시큐리티 직원 중에 최고 베테랑 스무 명 뽑아서 지금 당장 충남 공주의료원으로 보내. 내가 먼저 가 있을 테니 내 지시 따르라고 말해놓고!”
“공주의료원 원장 찾아서 내 핸드폰으로 전화 연결해, 빨리!”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지시 사항도 처리했다.
“청장님. 순양 이학재 실장입니다.”
경찰청장에게 몇 가지 부탁을 끝내고 대기 중인 차에 올랐다.
“지금 공주의료원으로 빨리 가야 해. 한강 다리 건너기 전에 경찰 호위 붙을 거야. 최대한 속도 올려.”
한남동을 빠져나와 반포대교 진입로가 보일 때 네 대의 오토바이가 앞장서며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했다.
* * *
공주의료원의 유 원장은 아침도 거른 채 병원으로 달려갔다.
한평생 지방에서 조용히 살던 그에게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를 정도의 유별난 아침이다.
순양그룹 실세라는 사람과 통화할 날이 올 줄이야!
그보다 더한 것은 통화 내용이었다. 한국 제일의 부자라는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이 자신의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오다니.
유 원장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지금 수술실에 들어간 사람들을 빼고 오늘 아침 사고를 처리한 모든 의료진을 한자리에 소집했다.
“모두 입단속 철저히 해. 이 사실이 밖으로 나가면 병원은 아수라장이 된다. 기자들 몰려올 테고 방송국 카메라까지 등장할지 몰라. 순양그룹 측에서 절대 비밀 유지를 부탁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리 알고. 모두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직원들 입막음을 단단히 하고 곧바로 병실로 달려갔다.
“회장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요?”
진 회장은 깍듯이 인사하는 유 원장을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이거,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허이. 내 몸 상태야 의사 선생님들이 괜찮다고 하니 괜찮겠지. 그보다 부탁 좀 함세.”
“네. 말씀하십시오.”
“병원 식구들에게 입단속은 단단히 하셨고?”
“네. 철저히 함구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좀 있으면 우리 직원들과 내 자식놈들이 달려올 걸세.”
“벌써 연락하셨습니까? 저희가 연락드려야 하는데….”
“아니야. 손 멀쩡하고 입 멀쩡한데 누가 하던 무슨 상관인가?”
“네. 그리고 손자분도 크게 다친 데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몇 가지 검사 중인데 끝나고 바로 이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나도 들었네. 그보다 말이야, 무리한 부탁인 줄 알지만 나와 내 손자, 중환자실로 좀 보내주게.”
“네?”
“사정은 나중에 듣고 우리 두 사람도 크게 다친 걸로 하자고. 수술도 했고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뭐 그런 식으로.”
진 회장은 허허 웃으며 눈을 찡긋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아마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은 우리 이학재 실장일걸세.”
“아, 네. 저도 그분 전화 받았습니다.”
“그래. 자세한 사정은 그 친구가 잘 설명할 테니 내 말대로 좀 해 주게나. 내가 충분히 보답할 테니 부탁함세.”
“아닙니다. 보답이라니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마우이. 참, 이 실장 오면 그 친구만 몰래 병실로 들여보내 주게나.”
“네. 회장님.”
유 원장은 왜 이러한 부탁을 하는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이 난리가 조용하고 원만하게 끝나고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기만을 빌 뿐이다.
* * *
“할아버지!”
“아이구, 내 새끼. 괜찮으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좀 긁힌 게 전부예요. 저보다 할아버지는 어떠세요?”
“의사가 괜찮다고 하더구나. 네 녀석 멀쩡한 거 보니 다행이다 싶다. 허허.”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았고, 내 볼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여긴 중환자실인데 왜…?”
“며칠만이라도 조용히 좀 지내자꾸나. 그리고 내가 따로 조치해 놨으니 사고는 잊어라.”
“하지만 심한 중상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기사님이면 어떡하죠?”
“흥분하지 말아. 몸 상한다. 내가 다 알아서 하마. 수술 중이라고 하니 기다리자.”
“네.”
참으로 천만다행이다. 내가 살아남았고 할아버지도 멀쩡하시다. 신은 내게 준 기회를 거두어 가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눈빛만 주고받았다.
사고 때 내가 할아버지를 보호하려 감쌌던 게 기억났다. 그 행동은 조금도 계산하지 않은 본능이었다. 난 순양을 차지하기 위해 기특한 손자 행세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끝냈다는 걸 깨달았다.
이 분은 나의 친할아버지이며 나는 친손자다.
그 이상은 없다.
지금에야 내 마음을 알았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참을 때 병실 노크 소리가 들리며 병원장이 들어왔다.
“쉬시는 데 방해가 됐는지요?”
“아닐세. 들어오게.”
병원장은 우리 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피 묻은 신분증과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지금 수술 중인 분의 지갑을 찾았습니다. 그 속에 있던 건데…. 혹시 아시나 해서 가져왔습니다.”
나는 피 묻은 명함에 적힌 이름을 보고 얼어붙었다. 사고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순양그룹 전략실 대리 김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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