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05
“회장님. 혹시 검사 결과를 못 들으셨습니까?”
“응? 들었지. 방금 왔다 갔어.”
“그런데…?”
뇌종양 수술이라는데 왜 웃으시냐고 물을 수는 없는 일, 말끝을 흐리는 게 전부였다.
“간단한 수술이라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 조기 발견이라고 하니 축하하는 게 맞지.”
“그, 그렇긴 하죠.”
“이 실장. 괜찮으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마. 자, 지금부터 대책을 세워보자고.”
할아버지는 아직 어벙벙한 표정의 이학재 실장을 가까이 앉혔다.
“여기 의사가 명인대학병원 장준혁 교수를 추천하더군. 만나서 수술 날짜 잡자.”
“네. 제가 직접 만나겠습니다.”
“그리고 밖에 있는 애들에게는 추가 수술하는 걸로 말해두고.”
“추가수술이라고 하면 많이 놀랄 텐데요?”
“놀라고 당황하면 실수가 나오는 법이지.”
할아버지가 말하는 실수라는 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허겁지겁 주식 매입을 서두르는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도준이 넌 예서 더 있도록 해라. 그래도 우리 은인인 김윤석이가 깨어나는 건 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죠. 알겠습니다.”
할아버지가 서울로 올라가면 큰아버지들은 함께 갈 테니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멀쩡한 내 상태에 대한 적절한 변명거리도 만들어야겠다.
* * *
강남 순양호텔 27층은 진서윤이 집보다 더 자주 잠을 자는 공간이다. 오세현은 구둣발 아래의 감촉부터 다른 두툼한 카페트의 쿠션을 느끼며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객실로 향했다.
밤늦은 시간에 만나자고 하는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당부할 말도 있어 순순히 호텔까지 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몇 번이나 탄성을 내질렀던 그런 로열 스위트와는 전혀 다른 인테리어에 깜짝 놀랐다.
보통의 로열 스위트보다 더 화려해서가 아니다. 얼핏 보면 소박하고 심플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술품의 경지에 오른 수억 원대의 가구와 소품들로 꽉 차있었다.
10억 원에 달하는 알리기에로 보에티의 작품이 정면에 걸려 있고 마리아 퍼게티의 2억 원대 탁자를 협탁으로 쓰고 있었다.
또한, 천장에 매달린 작은 모빌 장식품은 알렉산더 캘더의 30억 원대 예술품이었다. 이 객실을 장식하는 예술품 가치만 따져도 몇백억은 족히 나갈 것이다.
오세현이 입을 다물지 못할 때 원피스 차림의 진서윤이 침실에서 나오며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오셨어요? 늦은 시간인데…. 실례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아닙니다. 아직 자정 전인데요. 그런데 최 시장님은요? 당선 축하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데….”
“서울시 인선 구성하느라 당과 미팅 중이에요. 오 대표님 노고는 우리가 충분히 압니다. 제가 대신 감사드릴게요.”
오세현은 진서윤이 권하는 거실의 소파에 앉으려다 엉덩이를 주춤했다. 수억짜리 가죽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려니 부담감이 확 밀려왔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인데 어디 외출하십니까?”
그녀는 화장까지 했고 원피스는 집에서 걸치는 편한 옷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연락받았어요.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셨다는군요. 교통사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갑자기 전해 들은 소식이기도 하지만, 이런 사고 소식을 전하는 진서윤의 표정이 사소한 접촉사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회장님은 괜찮으신지…?”
“수술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했어요. 어차피 빨리 달려가도 만나지 못하는 걸요, 뭐.”
세상에.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떠오르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혼수상태라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이런 냉정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제가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요?”
오세현의 표정에서 그의 심정을 다 읽은 듯 진서윤이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호들갑이 회장님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슬픔보다 걱정이 앞서요. 전 아직 순양 지분 챙겨 놓은 게 거의 없거든요.”
“진 씨 가문에 태어난 것 자체가 보통의 생활이나 감정은 지워야 하겠죠. 이해합니다.”
“역시, 말이 잘 통하시네요.”
진서윤은 와인 한 모금으로 입을 축일 때 오세현이 말했다.
“평상시 모습이시니 이런 말씀드리는 게 좀 편하군요. 진 회장님께서 마포의 DMC 프로젝트를 욕심내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양보하라고 하시더군요.”
“아버지가요?”
진서윤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네. 도준이에게 그런 의사를 전달하셨습니다.”
“큭큭.”
진서윤은 웃음을 참느라 애썼지만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왜 웃으시는지? 이미 짐작하신 겁니까?”
“아, 아뇨. 죄송해요. 호호.”
그녀는 마침내 웃음을 참지 못했고 한동안 깔깔대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오 대표님이 쓸데없는 걱정 하신 걸 생각하니 재미있어서요.”
“쓸데없는 걱정이라니요?”
“아버지는 그럴 생각 없으세요. 손자를 후계자로 만들 생각까지 하시는데 그 애 손에 쥔 걸 빼앗겠어요? 걱정 마세요.”
이 객실 곳곳에 걸린 엄청난 예술품에 놀랐고, 혼수상태의 아버지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 딸에게 놀랐지만, 도준이를 후계자로 만든다는 말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오세현은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 난 곳이 충남 공주에요. 물론 도준이도 함께요.”
“네? 도준이요? 그럼 도준이도 많이 다쳤습니까?”
깜짝 놀란 오세현이 벌떡 일어서자 진서윤은 얼굴을 찌푸렸다.
“오 대표님. 그런 인간적인 모습은 나중에 보이세요. 지금은 이야기 나눌 시간도 부족해요.”
그녀는 오세현이 진정하기를 기다리지 못했다.
“아버지와 도준이가 이대로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면 오 대표님은 어떡하시겠어요?”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보자 보자 하니까….”
“흥분하지 마세요. 전 지금 제안을 드리려는 겁니다.”
“지금 그런 말이 나오세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도준이지만 많이 다쳤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 아닌가?
아버지가 다쳤다는데 딸이라는 년은 제안이니 뭐니 하며 엉뚱한 소리를 해대니 밀려드는 짜증을 참을 수 없었다.
“선장 잃은 순양 호라는 거대한 범선의 새 선장 자리를 나누자는 제안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진서윤은 오세현의 인간적인 반응에는 관심 없는지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그룹 지분 승계 작업 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저와 윤기가 각각 11%의 지분을 물려받아요. 합해서 22%죠. 물론 전체 지배 지분으로 계산하면 15%? 어쩌면 그 아래일 수도 있죠. 이미 큰오빠 둘이 조금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이 와중에 지분 계산이라니. 도준이 말대로 이 여인이 알맹이고 남편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런데 순양자동차, 이젠 HW 자동차죠. 그 회사에는 지배 지분 17%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 합치면 적어도 30%는 되죠. 30%면 그룹 회장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은 가졌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요? 계속해 보세요.”
지분에 관심 생긴 건 아니다. 이 여인이 어디까지 가는지 두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절 도와주시고 제가 순양 호의 선장이 되면 괜찮은 계열사 10개 이상 드리겠습니다. 그 회사를 HW 그룹에 붙이면 오 대표님은 우리나라 재계 서열 20위 안에 드는 대기업 총수가 되시는 겁니다.”
“맞장구 쳐 드리죠. 계산 잘못하셨습니다.”
“네? 무슨 뜻인가요?”
갑자기 확 변한 오세현의 태도에 진서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기는 제 친굽니다. 혈육의 정도 별로 없는 누나보다는 저랑 더 가깝죠. 우리 둘이 손잡으면 진 사장님 지분은 하잘것없는 수준이에요. 반대가 돼야죠. 저나 윤기가 순양호의 선장이 되는 걸 도우세요. 괜찮은 계열사 10개, 아니 15개 드리죠. 이게 정확한 계산입니다.”
당황한 진서윤은 말을 못했다. 손에 쥔 지분으로 봐서는 오세현의 계산이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를 끄덕일 수는 없는 일!
“역시 보통이 아니시네. 그렇게 나오시니 제가 숨겨둔 히든을 까야겠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우리 엄마도 꽤 많은 지분을 상속받아요. 그걸 윤기에게 보탤 리는 없죠. 지금도 얼굴 쳐다보는 것조차 꺼리시니까요.”
막내를 없는 아들로 취급하던 진 회장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건 알고 있다. 그 이유가 진도준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진 회장의 자리가 워낙 커서 잊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직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가?’
오세현은 머리를 흔들었다.
현실성 없는 남의 집안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진도준을 이야기해야 한다.
“아까 하던 말씀이나 마저 하세요. 도준이가 후계자라니요?”
“그런 게 있어요. 아마도 교통사고 때문에 그 같잖은 의식은 진행하지 않았겠지만, 아버지는 도준이를 유일한 후계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후계자 중의 한 명으로 인정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진서윤은 눈꼬리를 치켜들었다. 경멸의 느낌마저 드는 모습이다.
“도준이가 후계자 중의 한 명이 되면 더 강력해요. 도준이도 최소 1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도준이, 저 그리고 오 대표님이 손을 잡고 순양을 차지할 수 있어요. 전리품을 나눠 갖는 건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요.”
“도준이가 후계자 중의 한 명이 된다면 더더욱 진 사장님과 손잡을 필요 없는데요? 지분이 없잖습니까?”
“이제 겨우 이십 대인 도준이가 순양을 물려받아요? 받아도 못 지킵니다. 왜냐하면 순양의 진짜 힘을 가지지 못하니까요.”
진정한 힘. 그게 뭔지 오세현도 잘 안다. 바로 나라를 주무르는 힘의 원동력이다.
“순양의 엄청난 인맥 말이군요.”
“눈치도 빠르셔. 맞아요. 아버지 전화 한 통이면 총리가 달려옵니다. 그 전화, 이십 대가 하면 총리가 달려올까요?”
“회장님의 공식적인 발표나 인정이 없는 한, 진 사장님 전화에 달려올 총리도 없을 것 같은데요?”
오세현의 손은 그녀를 향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아직 이 나라는 여성에게 머리 숙이는 일은 드물다.
더는 밍기적거리기 힘든 오세현은 테이블을 가볍게 탕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관심사가 달라서 이야기를 더 할 수 없군요. 전 순양 호의 선장이 누군지 보다 도준이가 걱정되어서 빨리 가야겠습니다.”
“어차피 저도 내려가니까 함께 가시죠. 차 속에서 이야기를 더 해도 되잖아요?”
“아뇨. 전 따로 가겠습니다. 관심 없는 이야기를 계속 나누는 건 고역입니다.”
단호히 거절하는 오세현에게 조금은 화난 듯 진서윤의 표정이 일그러질 때 누군가 다가와 귓속말을 속삭였다.
“뭐? 서울?”
“네.”
진서윤은 눈을 크게 뜨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혼자 가셔야겠습니다. 아버지는 서울로 옮기신다는군요. 아, 도준이는 공주의료원에 있으니 빨리 가보세요.”
진 회장이 서울로 온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상태가 더 나빠져서 오는 걸까? 호전돼서 오는 걸까?
“오 대표님. 조만간 다시 만나고 싶어요. 마포 DMC는 이제 큰 이슈가 아닙니다. 순양그룹은 이제 태풍의 한가운데에 서 있어요. 제 말뜻 잘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진 회장이 위독하다는 뜻이다.
오세현은 도준이가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치느니 혼자만의 길을 가도록 설득하겠다는 생각도 굳혔다.
진도준은 순양그룹보다 더 큰 배의 선장이 될 자질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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