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06
“도준아!”
멀쩡한 아들내미가 크게 다친 거로 알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버지는 이미 눈물까지 글썽였다.
혹시라도 내 몸에 이상이 있을까 싶어 끌어안지도 못하고 손만 덥석 잡는다.
아, 참으로 난감하다.
내가 먼저 확 끌어안아야 하나?
쑥스러워서 차마 그러진 못했다.
“아버지. 괜찮습니다. 찰과상과 타박상이 전부에요.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정말이지? 어디 심하게 다친 데는 없지?”
“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검사했는데 아무 이상 없답니다. 그러니 걱정은 그만 하세요.”
이상 없다는 소리에 아버지는 나를 끌어안았다.
쑥스럽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아버지 등을 살짝 두드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의심스러운 정황은 싹 빼고 그간 벌어졌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단순한 교통사고. 그리고 수행하던 김윤석 대리가 하필 할아버지 차 옆에 있다가 변고를 당했다고만 말했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조선 시대에나 있을법한 충성 미담은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관계의 포장일 뿐이다.
시답잖은 돈으로 사람 위에 군림하는 부모 형제의 행태에 질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김윤석 씨는? 괜찮으시냐?”
“네.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나고 회복도 빠르다고 합니다. 그분도 걱정 마세요.”
한 명을 달래놓으니까 또 한 명이 달려왔다.
“도준아!”
오세현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을 때, 내 몸이 멀쩡하다는 걸 또 재방송해야 하는 게 더 힘들 것 같다.
힘든 재방송이 끝나자 오세현은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보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들은 게 있는데…. 윤기 너도 알아야 할 것 같다.”
“뭔데?”
“도대체 공주는 왜 온 거냐, 도준아?”
“이 자식아, 차근차근 말해.”
아버지는 나와 아버지 사이에서 두서없이 말하는 오세현에게 눈을 흘겼다.
“군산 가는 길이었습니다. 군산의 조선미곡창에….”
새벽부터 움직인 이유와 조선미곡창이 가진 의미를 말하자 오세현이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군. 그 같잖은 의식이라는 것이 바로 조선미곡창이었구먼.”
“야! 넌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
“어이구, 아버지 눈 밖에 난 아들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 잘 들어. 회장님은 네 아들 도준이를 순양그룹 후계자로 생각하신다고. 단독 후보는 아니지만 말이다.”
“뭐?”
아버지는 여전히 영문을 몰라 소리쳤지만, 난 모든 퍼즐을 맞췄다.
역시! 단순한 박물관도 아니었고 그냥 바람 쐬는 것도 아니었다. 난 세 번째 후계자다. 두 큰아버지 다음이 바로 나다.
별로 놀라지 않은 나를 보며 오세현은 미소 지었다.
“이 음흉한 자식 좀 보게. 기다렸던 소식을 듣는 놈 같지 않아? 아니, 이미 예상한 것 같기도 해. 하하하.”
오세현의 웃음도 놀란 아버지를 진정시키는 데는 효과가 없었다. 아버지가 우리 대화에 참여하는 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삼촌,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 고모가 좀 보자고 하더구나. 나도 DMC 건을 이야기하려고 겸사겸사 만났는데… 사고 지점이 충남 공주라는 데서 이미 무슨 일인지 아는 것 같았어.”
오세현은 아버지를 힐끗 보고 웃었다.
“네 아버지는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는가 보다. 흐흐.”
“나도 알아.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
“뭐?”
“네?”
역전이었다.
아버지는 얼굴을 조금 찌푸리며 말했고 우리는 놀란 채 입만 벌렸다.
“영기 형, 동기 형 둘은 그곳에서 후계자에 임명됐어. 말 그대로 유치한 의식이지. 순양그룹의 역사, 당신의 역사를 보며 아버지는 말씀하시지. 이 역사를 네가 이어가라. 하하.”
“너, 넌 어떻게 알아? 설마 너도…?”
오세현이 더듬거리며 물었을 때 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큰형이 다녀와서 자랑스럽게 말하더라. 오늘부로 내가 아버지의 후계가 됐다면서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근데? 왜 기대하지 말라는 거야? 도준이도 상속자라는 뜻이잖아. 어쩌면 순양의 1/3을 받을지도….”
자신 없는 오세현의 말에 아버지는 머리를 저었다.
“지금 순양의 지분을 봐. 큰형님이나 작은 형님 둘 다 10% 미만의 지분을 물려받았어. 후계자로 임명한 지 거의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모르겠어?”
아버지의 질문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도준아. 네 할아버지는 말이다. 어마어마한 욕심을 가졌어. 보통의 인간은 상상도 못 할 크기의 욕심이야. 당신이 가진 걸 남에게 주는 일은 끔찍이도 싫어하시는 거야. 자식이라고 예외는 아냐.”
일견 수긍할 면도 있지만, 꼭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내가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다르다.
상속자는 정했으나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믿음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이 순양의 역사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불안한 것이다.
할아버지의 욕심은 아버지 말대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 욕심보다 더 큰 바람도 있다. 바로 순양의 번영이다.
큰아버지 두 분이 왜 20년 가까이 겨우 10% 미만에 불과한 상속자가 됐을까?
바로 순양의 번영을 기대하기에는 10% 미만의 기대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이유라고 믿는다.
“아버지. 기대가 없으면 뭐든 감사하기 마련입니다.”
“무슨 뜻이지?”
“제가 순양의 후계자 운명은 아닌가 보죠. 보세요. 하늘이 거부하는 것처럼 사고 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상속 지분이 쥐꼬리만 하더라도 고마울 뿐이죠.”
웃으며 말하는 내 모습을 보며 두 분은 완전히 다른 표정을 보였다.
순양을 노리는 내 본 모습을 잘 아는 오세현은 겸손한 척 내숭을 떠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고, 욕심내지 않은 나는 보는 아버지는 기특한 듯 머리를 끄덕였다.
* * *
명인대학 병원 VIP 병실은 호텔을 연상할 만큼 호화롭다.
비록 사립대지만 의대만큼은 명문이라고 알려진 대학이니 돈 많은 환자들이 줄을 이었고, 그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VIP 병실은 그에 걸맞은 모습이며 호텔 특실보다 더 비싼 요금을 받는다.
진 회장은 비밀리에 이 병실로 들어왔고 병원장이 그를 직접 맞이했다.
“원장 우용길입니다.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회장님.”
“영광은 무슨…. 내 머릿속을 들여다볼 사람인데 잘 봐주시오.”
“회장님 머릿속은 제가 아니고 우리 장 교수가 자세히 볼 겁니다. 기업 정보는 보지 못하지만, 종양은 그 뿌리까지 확인하고 깔끔하게 제거할 겁니다. 하하.”
우용길 원장 곁에 서 있던 장준혁 교수는 허리를 숙였다.
“공주의료원에서 보낸 CT는 다 확인했습니다. 발견하기 어려운 건데 그쪽에 굉장한 분이 계셨네요. 운이 좋으셨습니다.”
“내가 원래 운이 좋다오. 그런데 하나만 물어봄세.”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그 몹쓸 종양이 언제부터 내 머리에 자리 잡았다고 보는가?”
“조직 검사하기 전에는 뭐라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기에 단지 크기만으로 짐작하는 건….”
“장 교수 짐작이나 생각만 말하면 돼. 따지자고 하는 말은 아니니까 말일세.”
곤란한 듯 잠깐 주저했지만, 조심스레 말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질문이지 않은가?
“한 달은 넘었고 두 달은 지나지 않았습니다.”
“….”
진 회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학재 실장이 입을 열었다.
“수술 후 재발은 없겠죠?”
“책임지고 깔끔하게 제거하겠습니다. 수술 후유증도 최소한으로 해서 회장님께서 빠른 시일 내 집무실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우이. 혹시 순양 의료원도 싫지 않다면 원장 없을 때 내게 슬쩍 알려주게. 외과 과장으로 모시지. 으허허.”
느닷없는 진 회장의 인재 헌팅에 원장과 장 교수는 당황해서 입을 열지 못했다.
“우리 장 교수가 최고의 외과의라고 소문났더구먼. 알다시피 난 1등 주의자야. 최고 외과의가 대학병원에 있으면 안 되지. 내가 국내 최고의 대우를 해 줌세. 물론 명인 의대에는 기부금도 주고. 사람 뺏어 오면서 입 싹 닦는 그런 철면피는 아니라오.”
감정을 감추려 해도 힘든 게 좋은 소식이나 나쁜 소식이다.
장준혁 교수는 외과 과장, 최고의 대우라는 말에 터지려는 미소를 막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고, 우용길 원장은 스타급 외과의인 장 교수가 병원을 옮기면 VIP 고객들이 전부 빠져나갈 것을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진 회장의 기부금으로는 빠져나가는 돈은 메꿀 수 있겠지만, 무너지는 명성은 바로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뭐, 천천히 생각하시게.”
미소 띤 진 회장에게 두 사람은 허리를 숙이고 병실을 나갔다.
단둘만 남자 이학재가 입을 열었다.
“회장님.”
“그래.”
“사장들과 임원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벌써 소문났어?”
“아닙니다. 외부에 교통사고가 알려진 건 아니고….”
“자식놈들이 들쑤셨구만.”
“네. 각 회사가 보유한 다른 계열사의 주식 현황을 파악하느라 모두 미친 듯이 날뜁니다.”
“이번 기회에 정확히 알 수 있겠네. 두 아들놈 뒤에 줄 선 사장들이 누구누군지 말이야.”
진 회장의 수술이 끝나면 한바탕 피바람이 불 것 같았다. 진 회장이 원하는 것은 후계자인 두 아들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사장이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충성해야 앞으로 진 회장이 지명하는 후계자에게도 그 충성이 전달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혹시 외부 투자자에게도 손을 뻗친 놈이 있나?”
“아직은 없습니다. 외부에 알려지는 건 아무래도 조심하기 마련이죠.”
이학재는 또 한 번 진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두 아드님은 이번 사고와 무관한 것 같습니다.”
“어째서?”
“두 분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뭐라고 하디? 내가 빨리 죽기를 바라던가?”
“아닙니다. 적어도 회장님께서 이 상태로 돌아가시면 후계 구도가 흔들린다는 걸 두 분 다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룹 지배구조가 살얼음판이라는 걸 아는 걸 보면 아예 돌대가리는 아니네. 그건 다행이다. 흐흐.”
“의심스러운 상황이긴 하나, 우연한 사고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건 좀 더 확인해 보면 될 테고, 그보다 이 실장.”
“네.”
“저 장준혁 교수라는 자의 뒤를 좀 캐봐.”
이학재는 진 회장의 생각을 금방 알아챘다.
조금 전 장준혁 교수의 스카우트 제의는 농담이 아닌 것이다.
“뒷조사해서 약한 고리가 뭔지 알아봐. 돈으로 움직이지 않을 정도의 의리 있는 놈이라면 약점이라도 찔러서라도 데리고 와서 순양 의료원에 앉혀.”
“표정을 보아하니 돈과 자리라면 잽싸게 우리 순양 품으로 올 것 같은데요?”
“그렇게 보이긴 해. 하지만 저런 놈은 다른 곳에서 더 큰돈과 더 높은 자리를 주면 우리 품으로 달려온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날아가 버릴 놈이야. 품고 있으려면 빠져나갈 수 없게 칼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지.”
“네. 싹 뒤져서 먼지 좀 찾아내겠습니다.”
이학재 실장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리고 저녁에 순양 의료원 원장 좀 데리고 와.”
“원장을요?”
“그래. 확인할 게 있어.”
“혹시 종양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래. 지방 의료원에서도 찾아낸 종양을 순양 의료원에서 발견 못 했다면 전부 모가지 날려야지.”
“네, 회장님. 조용히 불러오겠습니다.”
진 회장의 딱딱한 표정은 그뿐만이 아닌 것 같았지만, 이학재 실장은 군말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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