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09
“내 손자에게 자네 인생을 걸겠다…? 이게 자네가 원하는 건가?”
“진도준 실장에게 제 인생을 의탁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분과 함께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왜?”
“네?”
“뭐냐고? 하나뿐인 목숨까지 걸어가며 우리 도준이와 함께하고 싶은 이유가 뭐냐는 말일세?”
노려보는 진 회장의 눈 속에는 불꽃이 튀었다.
그 위압감에 김윤석은 움찔했다.
실수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진 회장이 가장 아끼는 손자다. 자신을 손자의 목숨을 구해준 걸 가지고 평생 붙어먹을 생각이나 하는 놈으로 오해한 건 아닐까?
“저도 앞에 서고 싶습니다.”
“뭐라?”
“전 항상 그림자처럼 남의 눈에 띄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런 제 역할이 부끄럽습니다. 조금 전 제가 원하는 걸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저 자신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고 당당히 앞에 서고 싶습니다.”
“주제도 모르는 놈이 감히!”
앙다문 이 사이로 진 회장의 분노가 새어 나왔다.
김윤석은 설마 이런 반응이 나올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손자를 잘 보필하라는 말이라도 들을 줄 알았는데… 진 회장의 분노만 자아냈으니 모든 기회가 다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너 같은 놈은 우리 도준이의 발목만 잡을 뿐이다. 일 머리 하나 없는 놈이 그 알량한 몸 한번 던진 걸로 우리 손자에게 찰거머리같이 딱 붙어 피나 빨아먹을 생각부터 해?”
“회, 회장님. 그런 생각은 단 한시라도 해본 적 없습니다. 진도준 실장의 발목 잡을 일이 생긴다면 차라리 제 발목을 끊고 물러날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거동을 막는 깁스만 아니었다면 무릎이라도 꿇었을 것이다.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서 이런 결의를 말하는 처지가 억울할 뿐이었다.
“시끄럽다. 네놈은 지금 이 순간, 세 번째 기회마저 네 손을 걷어차 버렸다. 너 같은 놈은 늘 그렇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 하는 어리석은 놈.”
진 회장은 벌떡 일어났고 분노를 터트릴 데가 없어 애꿎은 의자를 걷어차 버렸다.
“이미 준 것은 다시 거두지 않으마. 네놈 몸뚱아리가 걸을 수 있게 되면 당장 쫓아버릴 것이야. 두 번 다시 도준이 주위를 알짱거린다면 알량한 네 목숨은 내가 뺏어버릴 것이다.”
협박에 가까운 경고도 잊지 않고 소리쳤다.
“회, 회장님.”
김윤석은 병실을 나가는 진 회장의 다리라도 붙잡고 진심을 보이고 싶었으나 꼼짝할 수 없으니 뒷모습만 보는 게 전부였다.
* * *
“병원에 들락거리지 말라고 말씀하신 게 어제였어요. 혹시 양념치킨 때문에 전화하신 거라면 절대 안 됩니다.”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전화해서 빨리 달려오라고 성화셨다.
– 시끄럽다. 오라면 냉큼 올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
수술한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렸다.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가니 굳은 표정의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준아.”
“네.”
“네 녀석의 개가 되고 싶어 하는 놈이 있던데, 너도 알고 있느냐?”
느닷없이 던지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누구를 말하는지는 알았다.
“김윤석 대리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놈.”
“어제 만나셨군요.”
“거금을 준다 해도 거절하더니 네 옆에 서고 싶다고 그러더구나. 혹시 너도 허락한 일이냐?”
실수한 걸까?
아직 새카맣게 어린놈이 벌써부터 사람이나 끌어모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건가?
“조건부로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말이 왔는지는 모르지만, 시치미 떼기에는 이미 늦었다.
“조건?”
“네. 그자가 내 일을 망치더라도 세 번은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세 번이 넘으면?”
“내쳐야죠. 제 목숨을 구했으니 세 번의 기회를 준 겁니다. 그 정도면 빚은 갚은 거 아닐까요?”
“음….”
한동안 말이 없던 할아버지가 다시 말문을 열었을 때는 완전히 엉뚱한 말씀을 하셨다.
“넌 개의 미덕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개요?”
“그래. 사람들이 좋아하는 개 말이다.”
“주인에게 충성하는 거 아닐까요? 충견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개 외에 충이라는 단어를 붙이지는 않으니까요.”
“틀렸다.”
틀렸다니? 충성이 개의 미덕이 아니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충성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충성은 조건이 붙는다. 바로 올바름이다. 주인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충성이다. 그래서 주인에게 쓴소리도 마다치 않는 것이다. 주인이 올바르지 않은 길로 갈 때 앞을 가로막는 것도 충이며 방향을 트는 것도 충이다.”
“올바르지 않아도 따르는 것, 그것도 충성 아닙니까? 맹목적인 충성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건 간신이고.”
어렵다. 충성이 아닌 개의 미덕이라…. 설마 사랑은 아니겠지?
“개의 미덕은 헌신이다.”
아…!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희생도 마다치 않는 것. 충성과 다른 점은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그놈이 네게 헌신하리라 보느냐?”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했을 때 할아버지는 가벼운 조소를 보였다.
“이유는?”
“자신의 진심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긴 설명은 필요 없다. 중요한 단어 한둘만으로도 대부분 꿰뚫어 보는 분 아닌가?
“하지만 그놈은 이미 실수를 저질렀다.”
“할아버지께요?”
머리를 끄덕인 할아버지가 말했다.
“너를 섬기고 싶다는 걸 내게 말했다. 개가 주인을 정할 때 다른 사람에게 허락을 구하느냐? 그놈은 너보다 내가 더 위에 있다는 걸 염두에 둔 것이다.”
사소하다면 한없이 사소한 것이다. 내 할아버지며 그룹 회장님이니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정도 사소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 철저함이 심하다 싶었지만, 다시 생각했다.
그냥 직원 하나 뽑는 게 아니다. 수족이 될 사람이다. 한치의 부족함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실수한 게 있습니까?”
“개가 되겠다는 놈이 스스로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개가 자존감이 있더냐? 두들겨 패는 주인이라 할지라도 손만 내밀면 마냥 꼬리를 흔드는 짐승이 개 아니더냐?”
두 번째 실수다.
이번에는 무슨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옆에 서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
“세 번째도 있습니까?”
할아버지는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버렸다.
“넌 아직도 기회를 주고 싶은 게야?”
“약속했으니까요. 아랫사람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아랫사람의 미덕이 헌신이라면 윗사람의 미덕은 신의다.
내가 진영기나 진영준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놈은 많이 부족하다.”
“훈련이 부족할 뿐, 사람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부족함이 없는 인재가 널린 곳이 순양이다. 넌 거기서 고르기만 해도 돼.”
“인연이 없습니다. 그들은 출세를 보장하면 언제든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이 없잖습니까?”
내 고집을 본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따라오너라. 그놈이 순식간에 세 번째 실수하는 걸 보여주마.”
김윤석의 병실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할아버지는 확신에 차 있었다.
“똑똑히 봐둬. 그자가 누구를 더 두려워하고 누구의 눈치를 살피는지 말이다.”
지금 무엇을 확인하려는지 알겠다.
김윤석 대리가 내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내 옆의 할아버지 눈치는 보지 않아야 한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헌신하는 충견이라면 그 시선은 오로지 주인에게로만 향해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일까?
어쨌든 순양그룹 회장이다. 현재의 고용주이며 나보다 훨씬 어른이다. 나보다 더 눈길을 보내며 눈치 보는 건 당연하다.
병실 앞에서는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내가 아직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아니면 사람 고르는 기준이 할아버지와 다른 걸까?
할아버지는 쾅- 하고 문을 벌컥 열었다.
상체를 기댄 채 침대에 누워있던 김윤석 대리는 갑자기 나타난 우리 두 사람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난 그의 눈과 입만 바라보았다.
저 눈은 누구를 향하고 있으며, 누구에게 입을 열까?
일어설 수 없으니 허리를 숙일 수도 없고 목을 움직일 수 없으니 고개를 숙일 수도 없다.
그는 오로지 눈으로만 인사할 뿐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실장님. 죄송합니다.”
그가 입 밖으로 던진 첫마디 때문에 할아버지의 눈썹이 꿈틀했다.
“실장님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해서 실망만 안겨드렸습니다.”
할아버지를 흘낏 보니 놀란 것 같았다.
당연히 회장님, 회장님 하며 오해를 풀려고 변명을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깔끔하게 선을 그을 줄 예상 밖이었을 것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포기가 빠르군요.”
“제가 주제를 몰랐습니다. 그걸 깨달았을 뿐입니다. 우연히 몸을 써서 실장님을 구했지만, 그걸로 더 큰 걸 얻으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기회가 오면 잡는 거고, 잡은 기회를 이용해서 욕심도 채우는 거죠.”
“전 능력이 부족하고 실력도 바닥입니다. 단지 욕심만 앞섰던 것 같습니다.”
김윤석은 그제야 할아버지에게 눈길을 돌렸다.
“회장님께서 제 분수를 일깨워주셨습니다. 그 점은 감사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김윤석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뒷짐 진 채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눌지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도준아.”
“네.”
“넌 좀 나가 있거라.”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나뿐만 아니라 김윤석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내 긴히 이놈과 이야기 좀 해야겠다. 어서!”
* * *
“진심이냐?”
손자가 병실을 나가자마자 던진 진 회장의 질문이었다.
“네 목숨까지 던졌는데 건진 거라고는 아파트 한 채와 자식 교육 걱정을 덜어버리는 게 전부다. 억울하지 않느냐?”
“짧지만 화려한 꿈을 꾼 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김윤석은 진 회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진 회장은 그의 눈에서 한 조각의 사심은 없는지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좋다. 네가 순순히 포기하니 기특한 점도 없진 않구나. 네가 풍족하게 먹고사는 데 지장 없도록 충분한 돈을 주겠다. 생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게다.”
“아닙니다. 전 아직 젊습니다. 회장님이 주시는 돈으로 무위도식하며 인생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괜히 폼 잡지 말아. 주는 돈 받고 편히 살아. 인생을 날로 먹을 기회니까 말이야.”
김윤석은 진 회장의 말에 피식 웃음까지 보였다.
“제 꿈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인생을 날로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진도준 실장을 보며 내가 얼마나 멍청하고 덜떨어진 놈인지 깨달았습니다.”
“도준이가 왜?”
“제 소속이 전략실입니다. 진도준 실장의 사촌들이 어떤 생활 하는지 어렴풋이 듣습니다. 아무리 써제껴도 마르지 않는 돈, 결제 한계가 없는 카드. 누가 보더라도 화려하고 부러운 삶을 삽니다.”
“그런데?”
“진도준 실장도 같은 재벌 3세입니다만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헛되이 보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침 7시면 여의도로 출근합니다. 사무실 근처의 평범한 밥집에서 끼니를 대충 때우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갑니다.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요.”
김윤석은 한참 어린 진도준을 마치 존경하는 상사를 묘사하듯 말했다.
“회장님께서 제게 큰돈을 주신다면 전 진도준 실장처럼 살 자신이 없습니다. 펑펑 쓰면서 제 인생을 낭비하겠죠.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도준의 곁에 서고 싶다, 함께하고 싶다는 말은 인생을 치열하게 살겠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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