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10
“자네가 아무리 열심히 살겠다고 외쳐봐야 들어주는 사람은 없어. 세상에는 열심히 살지만 먹고사는데 빠듯한 사람이 천지야. 그렇게 고생만 하며 인생을 낭비하고 싶나?”
“고생이라도 하는 게 놀고먹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돈을 받지 않겠다는 말의 진심이 느껴졌다.
“도준이는 네게 세 번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들었다. 오죽 못났으면 그랬겠냐?”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뿐입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진 회장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조금 전 왜 내게 부탁하지 않았느냐? 내 말 한마디면 넌 도준이의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넌 그 기회마저 차버렸어.”
“회장님 말씀 중에 틀린 게 없었습니다. 전 진도준 실장의 발목만 잡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발목만 잡는 놈을 데리고 있다면 그건 동정심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런 신세는 그만하고 싶습니다.”
“주제 파악을 빨리하는 거로 봐서는 제법 쓸만하구나. 좋다. 내 너를 내치지는 않으마. 어디 적당한 자리 알아봐 줄 테니 회사에서 계속 일하거라.”
온정을 베푸는 말이었음에도 김윤석은 쓴웃음만 지었다.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동정은 그만두십시오.”
“평안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지. 알겠다.”
인사치레라도 한 번 더 제안할 법도 하건만, 진 회장은 냉정히 돌아섰다.
“아 참, 내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딴 이야기만 했구먼.”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자네가 막아 낸 트럭, 사고라고 생각하는가?”
김윤석은 조금도 지체 없이 답했다.
“그건 이미 진도준 실장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진 회장은 김윤석의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손자에게 말했으니 그쪽에서 들어라. 이 뜻 아닌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 병실 문을 열었다.
“뒤끝 있는 놈이로고. 허허.”
* * *
VIP 병실은 방음도 좋다.
병실 밖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가나 엿들었지만 웅얼거리는 소리만 낮게 흘러나왔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고는 다시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대화 나누셨습니까?”
“넌 알 거 없다. 참…!”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할아버지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저놈에 네게 사고에 대해 말했다는데 뭐라 하더냐?”
사고라…….
김 대리가 할아버지께는 입을 닫았다. 이 또한 좋은 태도다.
은밀한 비밀과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권하는 내게 있다는 뜻이며 김 대리 자신은 입을 닫는다는 의미 아닌가?
“스스로 확신하기 어려워서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사고가 아닐 가능성을 말하더군요.”
“사고가 아니다?”
“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트럭이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할아버지의 미간이 좁혀졌다.
“음….”
“기억일뿐입니다. 확실한 건 아닙니다.”
“됐다. 내가 알아서 하마.”
더 깊은 이야기는 꺼리시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사고가 아니라면 가족이 관계된 것이 유력하니까 말이다. 어색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보다 김윤석 대리는요? 그냥 이대로 끝내야 합니까?”
“그것도 내가 알아서 하마. 내가 저놈 사람 구실 하도록 만들어 볼 테니까 기다려. 가능성이 안 보이면 어차피 네 곁에서 민폐만 끼칠 거다.”
“할아버지께서요?”
“그래. 하나는 쓸 만 하더구나.”
“그게 뭐죠?”
“존경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따르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저놈은 널 존경한다.”
할아버지는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필요한 기본은 얼추 갖춘 것 같으니까 일을 배워야지. 만약 일 머리가 없다면 기본이 된 놈이든, 조건을 충족한 놈이든 말짱 황이다.”
김윤석은 운 좋은 사람이다.
순양그룹 회장님이 직접 낙점한 이상 단기간에 훌쩍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
몸과 정신은 많이 고달프겠지만.
* * *
일요일 이른 아침, 진영기 부회장의 별장으로 속속 고급 세단이 들어왔다.
승용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골프 칠 옷차림이었지만 이곳은 골프장이 아닌 별장이다.
서로 악수를 나누며 별장으로 사라질 때 그들의 표정은 화창한 날씨에 걸맞지 않게 굳어있었다.
손님과 다르게 진영기 부회장만은 환히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요즘 워낙 보는 눈이 많아서 말이죠. 하하.”
한 명씩 일일이 손을 꼭 잡은 뒤 널찍한 식탁으로 안내했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식탁을 꽉 채우자 진영기 부회장은 수저를 들었다.
“이곳은 물이 좋아서 그런지 밥맛이 다릅니다. 자, 듭시다.”
천천히 아침을 먹으며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말씀드린 건 확인하셨습니까?”
진영기는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그릇만 내려다보고 말했지만 누가 대답해야 하는지는 명확했다.
“명인대 병원 여기저기 쑤셨습니다. 수술은 성공했고 퇴원하셔도 될 만큼 건강하시다고 합니다.”
“수술이 뭐였죠?”
“악성 뇌종양 제거 수술이었습니다.”
악성 뇌종양이라는 말이 나오자 식탁은 달그락거리는 소리마저 멈췄다.
진영기 부회장도 손발이 많다. 수술이 끝났을 때 가장 먼저 결과를 들은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가 이 식탁에서 수술 이야기를 다시 꺼낸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병원장님.”
“네.”
“악성 뇌종양이 재발할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순양의료원 원장은 혀로 입술을 훔쳤다.
“뇌라는 곳은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그리고 악성 종양은 늘 재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악성이라고 하죠.”
“아버님의 경우 재발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나이 많은 노인의 경우 항상 50% 이상 재발했습니다. 확률이 절반밖에 안 되는 이유는… 재발전 노환으로 사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식탁의 사람들 중, 진 부회장과 병원장이 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지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순양의 창업주 진양철 회장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원장님께서 계속 신경 써야겠군요. 회장님, 오래 사셔야 합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대답을 들었을 때 진영기는 머리를 들었다.
“원장님의 건강 비결은 소식(小食)이군요. 벌써 다 드셨습니까?”
“네? 아….”
병원장은 수저를 내려놓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확 구겨졌지만 어쩌겠는가?
준비한 쇼의 오프닝 담당일 뿐이니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를 내려가는 게 당연하다.
병원장이 사라지자 진영기 부회장은 젓가락을 깨작거리며 말했다.
“군산의 조선미곡창 박물관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 순양의 사장님들이야 다 아시겠죠?”
계열사 사장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얼마 전, 우리 회장님께서는 손자까지 그곳에 데리고 가셨답니다. 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요.”
조용하던 식탁에 탄성 소리까지 들렸다. 진영기가 말한 손자가 누군지 모두 짐작할 수 있었고 그 의미까지 알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후계자가 등장했다.
두 아들의 팽팽한 구도가 깨지고 세 조각으로 나뉜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회장님…. 그런데 그룹은 더 짙은 안개만 자욱합니다. 가뜩이나 경영상태도 악화 일로에 있는데 말입니다.”
계열사 대표이사들은 오늘의 아침 식사 초대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듣게 될 것 같았다.
“제가 여러분을 모신 건 짙은 안개를 싹 걷어내고 불확실한 미래를 좀더 명확하게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저기, 부회장님. 혹시 후계 구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라면 우리들은 회장님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가장 겁 많은 자의 말이다. 혹시라도 이 모임이 새 나가면 진 회장의 눈 밖에 나기 때문이다.
“후계 구도를 말할 겁니다.”
진영기는 겁에 질린 사장을 노려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이제 겨우 스물하나인 애가 그룹의 1/3을, 어쩌면 절반을. 아니 전부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의 빗나간 애정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 위험을 사장단과 논의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부회장님. 우리야 그룹 전반에 대해 논의를 하기에는 부족한…. 주력 계열사도 아니고….”
“계열사마다 매출도 다르고 규모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잖습니까? 모든 계열사는 그룹 지분을 골고루 쥐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맡고 계신 회사도 다른 회사의 주식이 꽤 있을 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순양전기 사장님?”
계열사들은 서로의 주식을 쥐고 있다. 진양철 회장이 그룹 전체 지분의 1.65%로 그룹을 지배하는 마법의 이름, 순환출자다.
“회사의 경영자는 대표이사입니다. 공식적인 회사 서류의 최종 결재는 대표이사입니다. 법률상 회장, 부회장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아닙니까?”
“법률보다는 실질적인 권한이 더 중요합니다. 비공개 서류에는 회장님의 결재를 받지 않습니까?”
순양전기 사장은 당치도 않다는 듯 손을 저었지만, 진영기 부회장은 싱긋 웃을 뿐이었다.
“그 권한이 여러분께 있다는 걸 실감 나게 해드릴까요?”
부회장은 식탁 근처에 서 있던 사내에게 눈짓했다.
그 사내는 서류 파일을 꺼내 각 계열사 사장들에게 한 장씩 돌리기 시작했다.
“그 서류에는 여러분이 맡은 회사가 보유한 주식 현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알려주지 않아도 잘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서류는 단순히 주식 현황만 나와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서류는 바로 계약서였다.
“여러분의 법인 인감만 찍으면 됩니다. 그럼 여러분 회사가 보유한 주식이 전부 순양정밀기계로 모입니다. 순양정밀기계가 모두 사들일 겁니다.”
당연히 순양정밀기계의 최대 주주는 진영기 부회장이다. 비 상장 기업이며 규모도 크지 않은 회사다.
“어떻습니까?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매각하는 것은 대표이사의 권한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가진 권한을 실감하십니까?”
몇 숟가락 뜨지 않은 아침밥이 체하는 것 같았다. 에어컨은 끊임없이 찬 바람을 내뿜었지만, 식은땀까지 흘리는 사장도 있다.
여기 모인 십여 명의 계열사가 가진 그룹 주식을 전부 한곳으로 모아버리면?
모두 바쁘게 머리를 굴렸지만 복합한 지배 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순양정밀기계 주식회사가 그룹을 뒤흔들 만큼 힘을 가진다는 것쯤은 안다.
“부, 부회장님. 이 계약서에 결재하는 건 월권입니다. 우리 목이 서너 개가 있어도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비주류 계열사 사장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룹 간판인 순양전자 사장이라도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사장들의 떨리는 시선이 진영기 부회장의 얼굴에 꽂혔을 때,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이거 참. 벌써부터 그런 눈으로 보면 어떡합니까? 전 여러분이 가진 힘만 알려드린 겁니다. 지금 당장 넘기라는 게 아니에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회장 놀이한답시고 깝죽댈 때, 그룹을 쪼개서 들고 나가겠다고 앙탈을 부릴 때, 여러분이 가진 합법적인 힘을 쓰시라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모두 한숨을 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군림하는 회장에게 반기 드는 미친 짓은 미래의 일이 되었다.
“이거 제 말이 길어지는 바람에 찌개와 국이 다 식었습니다. 다시 준비할 테니 맛있게 드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진영기는 사람들이 뭐라 말하기 전에 재빨리 일어나 식탁을 벗어났다.
고민은 저들의 몫이다. 고민이 길어지면 당근과 채찍으로 결정을 강요하면 될 일이다.
계열사 사장은 달리는 말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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