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13
“고모부는 서울시장의 첫 사업으로 디지털 미디어시티를 발표할 겁니다. 아시겠지만….”
“발표만으로 땅값 폭등이지.”
진영준은 이미 욕심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했다.
“발표, 허가, 사업자 선정 등등. 단계별로 껑충 뛰니까….”
“여윳돈 묻어 두기 딱이죠. ”
“어디냐? 거기가?”
“마포 상암동 일대입니다.”
“상암동?”
진영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포는 알아도 상암동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네. 그런데 상암동은 국유지 아니면 시유지(市有地)가 대부분입니다.”
“뭐야? 그럼 허당이잖아.”
“아뇨. 상암동에서 좁은 길 하나만 건너면 은평구 수색동입니다.”
“수색동이면…?”
“네. 거저주워 올 수 있습니다. 엄청 싸요. 동심원효과 아시죠?”
“야! 내가 그걸 모르겠냐? 명색이 건설사 임원인데. 중심 지역 땅값 오르면 주변 지역도 덩달아 오르는 거잖아.”
“네. 그런데 제가 본 서류에는 상암동과 그 일대라고 했으니 수색 지역도 포함될 겁니다. 고모부는 시장이니까 마포구, 은평구 두 지역의 지지를 얻을 기횐데 놓칠 리가 없죠. 분명 미디어시티는 상암동과 수색동을 걸칠 겁니다.”
“길 하나를 두고….”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입니다. 그냥 한 덩어리죠.”
더 말하는 건 입만 아프다.
이미 진영준은 돈다발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상상에 잠겼다.
“수색 쪽 땅 조금만 매입하면 되겠네. 용돈은 건지겠지?”
“그럼요. 그런데 형님. 너무 무리하지 말고 여윳돈만 던지세요. 수색동 어디까지 프로젝트에 포함될지 모르니까요.”
나중을 대비해서 조금 발을 뺐다. 어차피 이놈에게는 들리지 않을 테지만.
“도준아. 불확실할 때는 확률을 확 높이는 거다.”
그렇지. 기다리던 반응이다.
“최소한 동심원효과는 보니까 왕창 사 두면 돼. 그럼 큰돈, 어중간한 돈, 손해 보는 돈도 생기지만 결과는 이득이다. 그러니까 최대한 많이 사 둬야 해.”
“그래도 리스크도 커지잖습니까?”
“그걸 감수할 돈이 있으면 질러도 돼. 총알이 많으면 절대 안 지는 게임이야. 흐흐.”
한 수 가르치는 듯한 말투.
이럴 땐 감탄 정도는 해주는 게 예의다.
서로 달콤한 말을 주고받으며 머리와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으니 남은 건 하나다.
진영준은 방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불러내 간단한 안주를 준비시켰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이 밤을 즐겁게 해줄 사람도 불렀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고 진영준은 재빨리 달려가 문을 열었다.
“오빠―!”
비명에 가까운 애교 섞인 소리를 지르며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아, 저 애들을 보니 떠오르는 얼굴과 이름이 있었다.
서민영.
언제 봤더라? 한… 삼 개월 정도 지났나?
따로 만나 밥 한 번 먹은 게 전부였나?
이거, 연락 좀 해야겠다. 보기보다 한 성격 하던데….
역시 연애는 힘들고 피곤하다. 이렇게 뜨문뜨문 연락하는데도 신경 쓰이다니 말이다.
* * *
“너도 이젠 알겠지? 아버지가 어떤 생각인지?”
진윤기는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형 진동기 때문에 놀랐다. 하지만 그가 조심스레 끄집어낸 문제는 집으로 직접 찾아올 만큼 민감하기도 했다.
“형님.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도 이제 늙으신 겁니다. 그러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한테 선물 주는 기분으로 군산행을 결정하셨을 테고요.”
진윤기는 사고 이후, 형제들의 달라진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자기 생각이 옳다고 확신했다. 이것은 변덕스러운 아버지의 유희일 뿐이다.
그룹 후계자를 지명하는 유희라니. 기가 차다.
하지만 두 번째 지명자였던 진동기의 생각은 달랐다.
후계 지명은 알게 모르게 퍼져 나가고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특히 그룹 내 메인 스트림에 올라탔거나 올라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지명자 주변에 몰려든다.
진도준은 아직 어리다.
다루기 쉽다고 착각하는, 속이 시커먼 사람들이 몰려들면 내키지 않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바로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고 적들의 쳐내는 일 말이다.
“원인이 뭐가 됐든 결과가 중요한 게 회사잖아. 도준이는 어리니까, 대신 너한테 사람들이 몰려들 거다. 어떡할래?”
진동기는 차분하게 동생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한테 묻지 말고 형님 의견이나 들어봅시다. 어차피 내 생각 궁금한 것도 아니고 형님 계획 말하려고 온 것 아닙니까?”
눈치 빠른 동생을 보니 예전 한량 생활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어릴 때 똘똘하던 그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한 번 말한 적 있지? 그냥 내 동생 해라.”
“무조건 강요만 하지 말고 방법을 말하세요. 영원히 좋은 동생 되어줄 테니까요.”
“뭐?”
“만약 도준이 꿈이 순양그룹 회장이면 어떡하실 겁니까? 조카 상대로 싸울 거예요? 그럼 난 형님 동생 못 합니다. 내 아들 아버지 할랍니다.”
“헛된 꿈일 뿐이다. 그러니까 네가 나서서 말려야지.”
“아들 꿈 말리는 아버지 역할은 못 합니다.”
진동기는 동생의 확고한 결심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형님이 방법을 만드세요. 순양그룹 회장 자리는 하납니다. 싸움은 큰형님하고만 하세요. 도준이의 조건 없는 양보나, 힘으로 누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고요. 사업하시는 분 아닙니까? 서로 만족할 만한 방법을 가지고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동생의 마음이 고스란히 와 닿았다.
아들이 유산 싸움에 말려드는 꼴은 보기 싫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포기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이 둘을 만족하는 거래. 동생은 그것을 원한다.
자기 사업을 하더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지워야 하는 것이 첫 번째라는 것도 안다.
진동기 자신은 감정을 못 이겨 동생에게 달려왔는데 말이다.
사업가답게 풀자.
진동기는 마음을 다잡았다.
“좋다. 그럼 내가 도준이와 이야기하마. 그게 문제 해결의 첫 단추겠지?”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괜찮죠?”
“물론이다.”
진동기는 갑자기 넥타이를 풀었다.
“도준이 올 때까지 술이나 한잔할까?”
“아침부터?”
진윤기는 갑자기 태도를 확 바꾸는 형에게 놀랐으나 곧바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형제끼리 술잔을 나누는 것도 오랜만 아닌가?
“독한 거? 아니면 순한 거?”
“순한 거 하자. 이젠 몸이 못 견뎌. 그리고 도준이랑 이야기해야 하는데 맑은 정신 아니면 밀릴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흐흐.”
간단히 마시기로 했지만, 순식간에 와인 한 병을 다 비웠다.
* * *
간만의 숙취가 꽤 오래간다. 쿡쿡 쑤시는 머리를 문지르며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 큰아버지. 오셨어요?”
“이놈아. 어제 외박했다면서? 벌써부터 그러고 다니면 어쩌려고?”
순서대로 등장하는구나.
장남과 차남이 이렇게 나를 찾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술 깨지 않은 게 찝찝했지만, 테이블에 놓인 와인 병을 발견했다. 다행이다. 내 입에서 나는 술 냄새를 두 분은 눈치채지 못할 것 같다.
“외박이라고 해서 뻘짓하고 다니는 건 아니에요. 하하.”
“너도 여기 앉아. 큰아버지가 주는 술잔 받아라.”
좋은 일이 있을 리 없는 두 분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것이 의외였지만, 적어도 웃으며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웃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도 있다면 좋으련만.
“도준아.”
“네.”
큰아버지는 잔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너, 순양그룹의 회장이 되고 싶으냐? 대(代)를 건너뛰는 무리수도 감내할 만큼…?”
“형님!”
에둘러 말하지 않고 곧바로 껍질을 까버리는 큰아버지의 말에 아버지는 놀라 소리 질렀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다.
효율을 강조하는 합리적인 생각, 곁가지 많은 절차를 싫어하며 모든 걸 간소화하는, 건조한 성격으로 소문난 분 아닌가?
욕심만 많은 장남과의 승계 싸움에서 왜 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다.
“괜찮아. 도준이가 다른 조카 놈들처럼 철부지도 아니고, 어린애로 취급해서 윽박지르는 것도 아냐. 사회인이나 다름없는 도준이의 계획을 듣고 싶은 거다. 이놈의 생각을 모르면 이야기의 진전은 없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큰아버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은 어느새 웃음을 지웠고 취기까지 날려버린 듯 보였다.
이분의 기질과 성정을 잘 아니 나도 껍질은 벗겨버리고 알맹이만 전달했다.
“군산이 어떤 의미인지도 잘 압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잘 압니다.”
두 분의 대화를 막고 내 의견을 던지자 눈길이 꽂혔다.
“전 할아버지가 주시는 걸 모두 받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다시 되팔아야죠. 더 비싸게 사겠다는 분께 말입니다.”
“팔겠다? 네 목표는 돈이냐?”
“상품값을 꼭 돈으로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글쎄요. 아직 상품이 없으니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제 손에 물건이 들어왔을 때 결정해야겠죠.”
더는 질문이 이어지지 않았다.
이 정도 대답이면 충분히 내 생각을 알아챌 사람이다.
내 대답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모르겠지만.
대화가 끊어진 자리에 침묵이 자리 잡았다.
난 내 앞의 와인 잔만 바라봤고 두 분은 와인을 들이켰다.
다시 빈 병이 뒹굴 때 큰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신중하기도 하구나. 영리하기도 하고.”
아버지는 여전히 침묵만 지켰다.
“넌 저울 양쪽에 두 큰아버지를 올려놓고 무게를 맞춘다는 뜻이겠지? 팽팽한 긴장감을 이기지 못해 먼저 비명을 지르는 사람의 편에 서면 물건값은 폭등할 테고.”
“그 과정이 귀찮아서 처음부터 세일할 수도 있겠지요.”
“퍽이나 그리하겠다. 하하.”
이 아저씨, 안 속네.
큰아버지는 잔에 남은 술을 싹 비우고 일어섰다.
“우리 집안에서 제일 난놈은 도준이인 게 확실하구나. 가장 막내라는 핸디캡만 없었다면 3대 회장은 너였을 거다.”
2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차기 회장 자리를 절대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큰아버지가 벗어 두었던 상의를 걸치자 아버지가 말했다.
“가시게요?”
“알 거 다 알았으니 가야지. 도준이가 장사를 시작할 때, 내가 첫 손님이 되려면 어영부영할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큰아버지는 내 등을 쓰다듬었다.
“이대로만 커라. 재벌 흉내나 내는 네 사촌 형들 본받지 말고.”
칭찬을 들었으니 인사는 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큰아버지.”
술기운 때문에 얼굴은 붉었지만, 내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 눈은 반짝였다. 쉬운 상대는 되지 않을 만큼 훌륭하게 성장하겠다는 내 말뜻을.
큰아버지가 나가자 아버지는 날 다시 앉히고 말했다.
“순양의 회장 자리, 탐나지만 포기한 거야?”
“지금은요.”
“나중에는 변할 수도 있다는 거냐?”
“할아버지께서 내게 무엇을, 얼마나 주시느냐에 달렸겠죠.”
“음…….”
아버지는 새 술병을 따며 웃음을 흘렸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부모 노릇은 할 테니까.”
* * *
“또 어떤 놈이 내 욕을 하는 게야? 에잉.”
진 회장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투덜거렸다.
“그래, 두 아들놈이 껄떡거렸다고?”
“네.”
이학재 실장은 진 회장의 곁에 앉아 붕대 감은 머리를 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뭔 짓을 하디?”
“진영기 부회장은 마이너한 계열사 사장들과 조찬 모임을 가졌습니다.”
주력 계열사가 아니면 전부 공채 출신 사장들이다.
요놈들이 모여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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