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15
“뭐? 그게 무슨 뜻이야? 진짜 방법이 있어?”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습니다만 쉽지는 않죠. 손에 피를 묻혀야 하니까요.”
피라는 단어에 고모부는 아주 자신만만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검찰청 칼잡이 출신 아니냐. 피 묻히는 걸 두려워할 사람이 아니다.”
“도준아. 괜히 이상한 생각이라면 그만둬.”
오세현이 불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저었다. 내 장단을 맞추려는지 아니면 진심인지 분간하기 힘들지만 무시했다.
지금은 고모와 고모부를 슬슬 부추겨야 한다.
욕심에 눈먼 놈이야말로 이용해먹기 딱 좋지 않은가?
“할아버지가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 상처 좀 입어도 순양그룹에 피해가 없는 사람, 평소의 행실을 생각하면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한 명 골라보세요.”
순양그룹이 입을 데미지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2세는 피해야 한다. 남은 것은 3세.
사회적 인식도 손가락질하는 재벌 3세 아닌가?
“그 조건이라면 영준이뿐이다. 요즘이야 결혼하고 조심하지만, 그동안 가장 집안 망신시킨 놈이잖아. 연예인 스캔들에, 음주운전, 폭행…. 사고란 사고는 다쳤으니, 원.”
“그럼 영준이 형이 피 흘리면 되겠네요. 순양그룹의 장손이자 서울시장의 조카지만 정의로운 서울, 공정한 서울을 세우기 위해서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뭐 이런 식이겠죠?”
고모부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차라리 친조카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었다면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처가 식구를 건드리는 건, 잘못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매일같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아닌가?
이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건 고모부가 아니라 고모다.
“그, 그런데 괜찮을까? 아니, 방법이 있을까? 요즘 영준이는 별다른 사고도 안 치고 착실하잖아. 그렇다고 사생활을 건들 수도 없고 말이야. 그놈이 연예인 끼고 음주운전 하다가 폭행 사고를 쳐도 서울시장이 뭐라 말할 수는 없어.”
“방법은 고모부님이 생각해보셔야죠. 전 고모부님께서 가족 중 한 명의 목을 벤다면, 재벌가의 사위라는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핸디캡 극복을 넘어 칭송받을 일이지만 여전히 말을 못 한다.
이 양반과 더는 할 이야기가 없다. 계략을 논의할 사람은 역시 고모다.
고모부는 한참 뒤에나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내가 좀 더 생각해보마. 그보다 오 대표. 어떻습니까? 제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오세현은 최 사장의 기대에 찬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몇 번 헛기침했다.
“아시다시피 전 투자자입니다. 투자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예요. 바로 숨은 가치를 찾아내는 겁니다. 4년 뒤, 제가 최 시장님의 가치를 발견하면 말씀하지 않아도 투자합니다.”
“그때쯤이면 늦을 수도 있어요.”
오세현은 4년 뒤에나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던졌고, 고모부는 선점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내 생각은?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고모부 수준의 사람이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 정도다.
* * *
“어서 와, 우리 조카. 어째 넌 클수록 엄마 닮아 가? 귀여워 죽겠어.”
고모는 내 엉덩이를 툭 건드리더니 술잔을 내밀었다.
“마실래?”
내가 머리를 젓자 고모는 피식 웃었다.
“몸 상한 데는 없다고 들었는데, 아냐?”
“아뇨. 술맛도 모르는데 비싼 술 마시면 아깝잖아요.”
“별걸 다 따져. 아무튼 앉자.”
여전히 호텔에서 생활하지만, 남편이 시장이니 이 생활도 끝이다. 기자들 눈에라도 띄면 입방아에 오르니 이젠 집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너 고모부에게 재미있는 소리를 했더구나.”
“아, 그거요? 고모부가 재벌 사위 딱지를 떼고 싶어 하시길래 그냥 말씀드린 건데요?”
“너, 은근히 음흉하다? 네 고모부 귀 얇은 거 알고 그랬니?”
“무슨 말씀이세요?”
“시치미 떼기는. 왜? 아빠가, 아니 아버지가 널 3번 타자로 지명하니까 너도 욕심이 생겨?”
전부 난리구나.
내 손에 단 10%의 그룹 지분만 들어와도 든든한 지원자가 될 테니까 모두 날 끌어들이려 두 눈이 시뻘겋다.
“고모도 날 그렇게 보세요?”
“고모도? 이런, 오빠들이 벌써 다녀갔구나.”
고모는 입술을 한 번 씹었다.
“네.”
“뭐라고 했는지 말해볼래?”
“다른 사람 말은 중요한 게 아니고 고모 생각이 궁금한데요?”
“난 아직 가진 게 없거든. 그래서 생각도 없어. 오 대표가 그러더라고. 쥐뿔도 가진 게 없으면 판에 끼어들지도 못한다고.”
“그럼 왜 보자고 하셨어요? 전 큰아버지들처럼 고모도 제게 뭔가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나도 귀가 좀 얇아. 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을 메웠다.
“우리 3번 타자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내가 판돈 마련하고 나서 말이야. 그보다 읍참마속은 가능해?”
“감당할 수 있어요? 그럼 아이디어를 짜내볼게요.”
“영준이?”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너 영준이 싫어하는구나. 왜지?”
“그냥 잘난 척하는 게 꼴 보기 싫어서요. 단지 먼저 태어난 게 전분데 자기가 잘난 줄 알잖아요. 그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사람을 아래에 두려고 해서….”
“그 애가 그렇긴 하지.”
고모는 잠깐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영준이가 혼이 좀 나도 아버지는 크게 노여워하지는 않으실 거야. 내가 감당할게.”
어떤 일을 저질러도 단지 혼나는 것으로 끝난다고 믿는다.
이 집안 사람들은 준엄한 법의 심판을 걱정하지 않는다. 다 피해 갈 수 있으니까. 대신 할아버지의 심판을 두려워할 뿐이다.
고모는 진영준이 손자니까, 장손이니까 꾸중 듣고 혼나는 정도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과연 그 정도로 마무리가 될까?
“그럼 전 고모만 믿고 시작합니다.”
“뭘?”
“고모부께 말씀드리세요. 디지털 미디어시티 사업 공고할 때 지역 단어 하나만 추가하라고요.”
“단어?”
“네. 상암동만 알리지 마시고 상암동 그리고 수색동 일부라고요.”
“수색동?”
“네. 그다음은 제가 생각해 놓은 게 있으니까 염려 마시고요.”
고모는 내 얼굴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생각을 짜내는 게 아니라 이미 생각해뒀구나.”
“전부는 아니고요. 대충 얼개만.”
“이러니 아버지가 네게 푹 빠졌지.”
“그냥 막내라 그러시는 거죠.”
겸손을 떨어봤지만 소용없었다. 고모도 큰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은 눈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도준아.”
“네.”
“내가 힘이 생겼을 때, 네가 가지게 될 걸 내게 보태면 절반을 주마. 잘 생각해보렴. 아마 오빠들은 절반의 절반도 안 줄 거야.”
“고모의 힘은 뭐죠?”
“네 고모부가 봉황이 새겨진 의자에 앉는 거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순양그룹을 어찌할 수는 없을 텐데요?”
“국세청, 국정원, 검찰,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이런 힘 있는 기관을 손에 쥐는 거야. 네 말대로 순양그룹은 어찌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사람은 어찌할 수 있단다.”
“사람이라고 하면 큰아버지들이겠네요.”
“오빠들 손에 묻은 먼지, 진흙을 전부 털면 나만 남을걸? 주주들도 나 외에 선택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 거야.”
고모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도 주주로서 내 편을 들어줘. 그럼 절반을 줄게.”
한 명은 이인자로 만들어주겠다. 또 한 명은 비싸게 사겠다. 마지막 한 명은 절반을 주겠다…….
참 다양한 제안이다.
가만, 한 명이 더 있는데?
아, 셋째인 진상기는 맏형의 따까리지.
“고모. 10년 뒤의 일이 될 것 같은데 천천히 하시죠. 그리고 할아버지가 변덕 한 번 부리면 난 그냥 막내로 끝날지도 몰라요.”
엄살 한번 부려보니 고모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
“그럼 서둘러야겠네? 아버지 변덕 부리시기 전에.”
* * *
고모부는 취임식에서 대통령 흉내를 냈다.
현재의 경제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서울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며 재정 적자를 최소화하여 서울 시민들의 무거운 어깨를 가볍게 해주겠다며 큰소리쳤다.
그리고 사전에 약을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울시 소유의 공유지를 200% 활용하여 경제 활성화의 기초를 다지겠다고 공언했다.
이미 눈치 빠른 건설업자들은 지금의 불황을 깨트리는 신호탄이라는 걸 알아채고 문턱이 닳도록 시장실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회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 기회는 내가 쥐고 있다.
“이놈아. 절반도 안 준다고?”
“정말 너무하십니다. 절반이나 드리면 전 뭐 먹고 살라고요? 순양건설이야 이거 아니더라도 버티지만, 우리 대아건설은 이거 없으면 그냥 망해요. 이거 하나 보고 쏟아부은 돈이 얼만지 아시잖아요.”
이제 붕대를 풀고 군밤 장수나 쓸법한 비니를… 아니 지금 시대는 그냥 빵모자라고 부르지. 아무튼 할아버지는 촌스러운 모습으로 투덜거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대현그룹이 네 고모부를 푹 삶았다는 소문도 들려. 자칫 잘못하다가는 뒤통수 맞는다.”
“그거 막아주신다고 큰소리치셨으니 할아버지께서 해결해주셔야죠. 30% 드리겠습니다.”
“건설로 돈 버는 것만 말하지 마라. 네놈이나 오세현이가 그냥 있을 놈이 아니잖아? 솔직히 말해. 상암동과 그 주변 땅, 아도쳤지? 그것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벌 텐데?”
“아뇨. 땅 투기는 안 했습니다. 시장이 고모부 아닙니까? 오 대표가 아버지랑 친군데 개발 정보 미리 빼돌렸다는 오해는 없어야죠. 게다가 대아건설 인수하고 첫 사업인데…. 불미스러운 일은 애초에 막았습니다.”
“그건 잘했구나. 허허.”
할아버지는 무릎을 탁 치며 웃었다.
“좋다. 30%로 퉁 치자. 대신 넌 내게 빚 하나를 진 거다. 20%나 깎아줬으니까 말이다.”
이건 협상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머릿속에는 협상이 아니라 양보였고 빚진 것으로 각인되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재벌의 기본이다.
* * *
“다른 계열사에서는 얼마나 빌렸어?”
“200억 정도입니다.”
“그것밖에 안 줘?”
“계열사 사장들 모르게 처리하다 보니 모두 난처하답니다. 이 돈도 정말 목 내놓고 준 겁니다.”
“새끼들이…. 간덩이가 이렇게 잘아서야 어디에 쓸까? 내가 책임진다는데도 이 정도니. 쯧쯧.”
680억.
진영준은 목표액에 한참 모자라는 돈을 생각하니 짜증이 솟구쳤다.
큰 욕심 내지 않고 다섯 배만 튕기려고 생각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용역들 불러서 수색동 싹쓸이해. 소문 안 나게 조심하고. 소문나면 거지 같은 새끼들 집 안 판다고 개길 거다.”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단군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 아닙니까? 시세도 바닥이니 조금만 더 쳐준다면 팔 겁니다.”
“마지막까지 개기는 놈은 시세의 두 배까지는 줘. 시끄럽지 않게 진행하는 게 이 일의 핵심이다.”
“네. 상무님.”
진영준은 여전히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런 호재를 만나는 게 어디 쉬운가?
마음 같아서는 명동 사채시장에서 확 땡기고 싶을 정도였지만 참았다.
소문 빠른 바닥이라 여차하면 아버지나 할아버지 귀에 들어간다.
“삼천억이라…….”
곧 들어올 돈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돈.
아는 놈은 진도준이 유일하다. 그놈에게 한몫 떼어주면 좋아라 할 것이고 자신의 곁에 착 붙어 다니게 될 것이다.
돈도 벌고, 아버지가 우려하는 진도준도 손에 넣으니 꿩 먹고 알 먹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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