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16
하지만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순탄할 리가 있나?
수색동 땅 매입이 한창일 때, 진영준은 아버지 진영기 부회장의 호출에 마시던 술잔을 던지고 집으로 달려갔다.
얼음장처럼 냉랭한 아버지의 표정을 보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을 만큼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 최근에 실수한 게 없는지 되새겼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불길한 징조는 거실에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있는 마누라였다.
설마 아버지에게 잦은 외박을 하소연한 건 아니겠지?
그 정도 철딱서니 없는 마누라는 아니다.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사생활 터치는 절대 없을 거라고 말이다.
“너 요즘 뭐 하고 다니냐?”
착 가라앉은 목소리, 이건 좀 심각하다. 화나시면 큰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분인데….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왜 그러시는지…?”
“네가 땅 사러 돌아다닌다는 말이 들리던데, 맞아?”
순간 진영준의 머릿속에는 이 일과 관련된 놈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떤 새끼가 입을 나불댔을까?
“왜 대답 못 해? 맞아? 아니면 헛소문이냐?”
“아, 아버지. 일단 제가 설명부터 하겠습니다.”
“설명? 오호라. 그러니까 근거 없는 헛소문은 아니라는 이야기지?”
진영준은 결혼한 것을 지금 이 순간만큼 축복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결혼 전이었다면 일단 싸대기 한 방 날리고 대화를 시작했을 것이다. 며느리가 지켜보니 부르르 떨리는 아버지의 손은 날아오지 않았다.
“좋다. 설명부터 해봐라. 그럴싸한지는 들어보고 이 애비가 판단하마.”
“제가 도준이 만나서 이야기를 잘 풀었다고 말씀드렸죠?”
“그래. 그놈이 너한테 호감을 잔뜩 드러냈다고? 의기투합도 했고.”
“네. 거기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진영준은 그날 밤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소상히 되풀이했다. 지난번에는 쏙 빼먹었던 디지털미디어시티와 땅 이야기를 덧붙인 게 차이였다.
설명이 모두 끝나자 진영기 부회장의 표정은 더욱 차갑게 보였다.
“그러니까 네 설명대로라면 도준이가 지껄인 것만 믿고 땅에다 돈을 붓고 있다는 말인데, 맞아?”
“아닙니다. 저도 확인하고 움직였습니다. 고모부가 취임 때 했던 말, 그리고 도준이가 다시 한 번 알려줬고요. 마지막으로 서울시 공무원에게 재차 확인했습니다. 개발은 확실하다고요”
진영기 부회장은 갑자기 며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새아가, 넌 이 사실을 언제 알았어?”
“네?
홍소영은 시아버지의 이렇게 화난 표정은 처음이다. 몰랐다고 시치미를 떼기에는 이미 늦었다. 자신의 안색이 이미 창백하다는 건 거울이 없어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도 돈 마련해서 땅 샀어?”
“…네.”
“저놈 말 믿고?”
시아버지가 가리키는 손끝에 남편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네. 그렇지만 저도 확인했어요, 아버님.”
“친정 기자들 돌렸냐? 기자들이 확인해줬어?”
“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마포 상암동, 은평구 수색동. 이 두 곳으로 확정 났데요. 조금씩 땅값이 오르고 있어요.”
“넌 돈이 어디서 났어? 친정집에서 빌렸니?”
“…네.”
그냥 받았지 빌린 건 아니지만,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 친정도 알겠구나. 그럼 사돈댁에서도 땅을 엄청나게 사들였을 테고.”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시아버지의 말이 틀림없다는 것쯤 모를 리 없으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시댁에서 돈 빼돌려 친정에 갖다 바친 것과 뭐가 다를까?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시대니까 말이다.
“너희 둘, 참… 천생연분이다. 쯧쯧.”
진영준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버지의 한심한 눈길을 느끼자 억눌렀던 반발심이 튀어나왔다.
“아버지. 정확한 정보 맞습니다. 그리고… 개발 정보로 돈 버는 일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왜 역정 내시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이놈이…. 그래도!”
짝―!
참았던 진영기 부회장의 손이 올라갔다. 결혼까지 한 어른이기에 손찌검만은 말아야지 하는 결심도 멍청한 아들놈에게는 소용없었다.
“이 자식아. 네가 무슨 돈으로 땅을 샀어? 사재를 담보로 대출받은 거야 네놈 거니까 다 날리든 말든 상관 않겠다. 이 정도 선에서 끝냈다면 모른 체 지나갔을 거야.”
진영준은 눈을 감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 다 들켰구만.’
“넌 회사 돈까지… 계열사 수십 군데에서 골고루 빼먹었지? 건설에서는 아예 선금으로 땡겼고? 그게 제정신으로 할 짓이냐!”
진영기 부회장은 목소리는 차마 높이지 못했다.
이 집안 사람들 전부 회사 돈을 쌈짓돈처럼 꺼내 쓴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만 해도 수십, 수백 번 그 짓을 했고 지금도 반복한다.
하지만 아들놈의 경우는 다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빼먹어야 하는데 파악한 돈만 해도 수백억이다.
자칫 잘못되어 그 돈이 날아가면, 최악의 경우 횡령이다.
하지만 고개 숙인 아들의 표정은 진영기 부회장을 속을 뒤집어버렸다. 삐죽이 튀어나온 주둥아리가 이놈의 심정을 말해준다.
땅값은 오르고 있고 매매 차익으로 메꾸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이다.
“잘 들어. 내가 아는 걸 네 할아버지가 모르겠어? 그런데 왜 아무 말 없으신지, 넌 모르지?”
“하, 할아버지도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더 무서워하는 아들을 보자 자존심이 상했지만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권을 쥔 자를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끝이 좋으면 문제 삼지 않으시는 분이다. 과정이 지저분한 것쯤 눈감아주시는 분 아니냐?”
아들놈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니 투기는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가득해 보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더는 말 않겠다. 하지만 끝이 좋지 않을 때 내게 와서 살려달라고 빌지 마라. 네가 책임져야 한다.”
“염려 마십시오. 화려한 엔딩이 틀림없으니까요.”
가슴을 탕 치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아들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 * *
‘새서울타운발전구상’ 일명 디지털미디어시티 프로젝트는 서울시에서 조용하게 발표했지만, 건설업계의 반응은 더할 수 없이 시끄럽고 뜨거웠다.
무려 17만 평의 대지 위에 빼곡히 들어설 대형 빌딩을 세우는 일이다. 향후 10년 이상 멈추지 않을 건설 현장.
공교롭게도 순양의 회장님 사위가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건설업계는 함부로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그나마 대현건설 정도가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며 여론전을 펼쳤을 뿐이다.
“내가 뇌수술까지 했는데 병문안 한 번 오지 않더니 돈 되는 일이라니까 밥 먹자고 연락해?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닌가?”
“영감탱이가 명줄도 길어. 수술실에서 콱 뒈져야 했는데, 아쉽구먼. 허허.”
“나 먼저 가면? 혼자 남은 세월을 외로워서 어찌 견디려고? 나라도 있어야 심심치 않지. 허허.”
진 회장이 잔을 내밀자 대현그룹 주영일 회장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술 마셔도 되나?”
“주 회장 마시는 거 구경하는 거로 만족해야지. 이 꼴이잖나?”
“그냥 쓰고 계시게. 흉한 거 보면 술맛 떨어져.”
진 회장이 모자를 벗으며 수술 자국을 보여주려 하자 주 회장은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그나저나 그 교통사고 말일세. 진범은 잡았나?”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주 회장이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귀도 밝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나?”
진 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경찰까지 입을 막았지만, 대현의 정보력은 피하지 못했다.
“그냥 뚝 떼서 골고루 나눠주게. 그게 속 편하이.”
주 회장은 못 들은 척하며 엉뚱한 소리를 했지만, 못 알아들을 리 없는 진 회장이다. 자신이 자식을 의심하듯 주 회장은 이미 그 사고의 원인을 짐작한 듯 보였다.
“그래서 전부 쪼개버렸나?”
주영일 회장은 이미 대현그룹 상속 절차를 거의 끝마쳤다. 자식들의 태어난 순서와 능력을 고려해서 큰 무리 없이 계열 분리를 한 것이다. 물론 대현이라는 이름은 유지하지만.
“내가 아들놈이 좀 많은가?”
“자랑이다! 한배만 탔어야지. 뭔 여자를 그리 밝혔나?”
주 회장은 아들이 일곱이었다. 그 일곱의 아들은 모두 세 여자에게서 얻은 것이기도 하다.
“없이 살다가 갑자기 돈이 생기니 여자도 생기더라고. 허허.”
주 회장은 겸연쩍은 웃음을 보였지만 부끄러운 기색은 아니다.
“한 놈에게 밀어주는 게 맞아. 나눠주면 당신이 저승으로 떠난 뒤에 결국 다 갖겠다고 싸울 게 뻔해. 아버지 마음 편하자고 자식들이 서로 칼질하게 만든 셈이야.”
진 회장이 못마땅한 듯 핀잔을 줬지만 주 회장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건 지들 문제지. 내가 저승에서 내려다볼 것도 아닌데 싸우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고약한 늙은이. 에잉.”
주 회장은 술을, 진 회장은 회를 집으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건 진 회장이었다.
“우리 사위가 진행하는 거, 눈독 들이지 말게. 그건 우리 몫이 아니야.”
“그럼? 자네도 빠진 겐가?”
“그래. 정권의 눈치도 봐야지. 이번엔 고만고만한 회사들 차례야. 우리야 그거 없어도 먹고살지만, 그 프로젝트로 기사회생할 회사들이 줄을 섰어. 그들이 가져갈 거야. 청와대도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러니 쉽게 허락이 떨어진 것이고.”
주 회장은 아쉬운 표정으로 술잔을 비웠다.
“이거 원,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주우려면 자네 허락을 받아야겠네그려.”
“알면 껄떡대지 말고 잠자코 기다려. 내가 적당히 챙겨줄 테니까 소란 떨지 말고.”
진 회장이 선심 쓰듯 말하자 주 회장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기분 좋은 미소를 보였다.
“오늘 술값은 내가 내지.”
“당연히 그래야지.”
주 회장은 진 회장의 표정을 살피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자네 사위 말일세. 서울시장 4년 하고 나서 대선 출마한다는 소문이 자자해. 자네가 밀어주는 건가?”
“대선은 무슨! 그놈은 제 마누라 꼭두각시야. 마누라 없으면 끼니도 못 챙겨 먹을 위인이 언감생심 청와대는!”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투표는 국민이 하는데. 언론 좀 타고 인기 올라가면 헛된 꿈도 아니야.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가능성이 꽤 높아.”
진 회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걸세. 시장놀이 4년으로 그놈 정치 인생은 끝낼 걸세. 그런데 우리 주 회장님이 왜 남의 집안일에 관심을 보이실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지. 순양그룹 사위가 대통령이 되면 큰일 아닌가? 우리 대현그룹 조지기 시작하면 아무 일도 못 하니까 말일세.”
“흐흐. 그놈이 대통령이 되면 대현은 두 번째야. 첫 번째는 바로 순양이 될 걸세.”
“역시 그렇구먼. 자네 딸도 욕심이 보통 아니네.”
“하나뿐인 딸이라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래. 욕심이 너무 커.”
“그러니까 얼른 쪼개서 나눠 주라니까!”
주 회장의 핀잔에 진 회장은 쓴웃음만 지었다.
“객쩍은 소리 그만하고 일어나세.”
“아이고. 몸도 성치 않은 노인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구만. 먼저 가시게. 난 여기서 만날 사람이 또 있어.”
“가진 거 자식들에게 다 줬으면 그냥 뒷방 늙은이로 지내. 나대지 말고.”
“살아 있으니 일은 해야 하지 않은가? 밥값은 해야지.”
주 회장은 방을 나서는 진 회장의 등을 한 번 쓸어내렸다.
“늙어서 아프면 서러워. 몸 잘 챙기게.”
진 회장은 덕담을 건네는 주 회장을 힐끗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진 회장이 떠난 것을 확인한 주영일 회장은 지금까지 진 회장과 식사했던 옆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고, 바쁘신 최 시장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소이다. 미안합니다.”
최창제 서울시장은 주 회장이 인사를 건넸음에도 굳은 얼굴을 한 채 꼼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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