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17
주 회장은 최 시장의 맞은편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밤낮없이 공무 수행하느라 끼니도 못 챙길 텐데, 오늘은 제대로 된 거 한번 먹어봅시다.”
끼니라는 단어에 유난히 힘주어 말하자 최 시장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비꼬는 것이거나, 도발하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다.
“회덮밥이면 족합니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요.”
“아이고, 이런! 내가 큰 결례를 범했구려.”
내숭 떠는 주 회장의 모습도 께름칙하다. 최 시장은 예의를 던져버렸다.
“회장님. 외람되지만 제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하십시오.”
“이런, 오해는 마시게. 당선 축하 인사차 만나자고 한 게 전부요.”
주 회장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럼 축하 인사 받은 걸로 하겠습니다만, 상암동은 포기하십시오. 이미 장인어른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순양과 대현 같은 대기업 배제 원칙은 꼭 지킬 겁니다.”
최 시장은 옆방에서 나눴던 대화를 이미 다 들었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주 회장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아닐세. 위태로운 건설사들 되살리자는 좋은 정책인데 따라야지. 내 뜻을 곡해하지 마시게. 이건 진심이라오.”
“그럼 회장님 진심만 받겠습니다. 식사는 다음으로 미루죠. 전 이만….”
최 시장이 엉덩이를 일으키자 주 회장이 손을 뻗어 다시 앉혔다.
“이 사람아. 큰일 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급해서야 되겠나? 잠시 앉게.”
‘큰일’이라는 말이 최 시장의 발목을 잡았다. 다시 엉거주춤 궁둥이를 붙였다.
“최 시장도 이미 알겠지만, 처가살이 그거 보통 힘든 일이 아니네. 마누라 눈치 보는 거야 우리나라 남자들 전부가 겪는 거지만 장인, 장모 눈치까지 보며…. 심지어 조카 눈치까지 보며 살아야 하잖나.”
“회장님. 제 자존심 긁어서 좋을 게 없습니다. 서울시 인허가 문제 하나만으로도 대현그룹 발목 잡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이쿠, 무서워라. 처가에서는 눈치만 보고 밖에 나오면 큰소리치는 것 또한 처가살이하는 남정네들의 공통점이지. 허허.”
“주 회장님!”
최 시장은 마치 약 올리는 듯한 웃음에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내가 처가살이 면하도록 도와줌세. 우리 최 시장, 청와대 가는 길에 꽃가마까지 대령하지. 어떤가?”
난데없는 주 회장의 제안에 최 시장은 말문이 막혔다.
청와대라니?
주 회장은 멍한 최 시장을 앞에 두고 말을 이었다.
“이미 최 시장 장인은 선을 그었어. 아시지 않는가? 청와대 가는 꽃길은커녕 재 뿌리고 돌이라도 쌓아 막을 인간 아닌가?”
주 회장은 미소를 슬쩍 지었다.
“자기 핏줄에게도 가진 것 주기 싫어서 미적대는 양반 아닌가? 하물며 사위…? 잘되는 꼴을 못 볼 사람이지.”
“회장님께서 왜 제게 이런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을 가다듬은 최 시장이 가까스로 입을 뗐다.
“나야 늘 사람에게 투자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 정권이 끝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봐야 해. 민주화니 독재니, 양 김 시대니 하는 거 없이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겠지. 어쩌면 서울시장이 가장 선두일지도 모르고.”
“회장님 넷째 아드님도 정치가 아닙니까? 3선 의원.”
“그놈은 안 돼. 우리 자동차 공장 지역에서 깃발 꽂고 선거하는 놈이야. 그 지역구에서라면 5선, 10선도 무난하지만, 그게 끝이야. 더 큰 정치인은 불가능하지.”
주 회장의 아들은 의원 배지 달고 거수기 노릇이나 하며 지낸다. 같은 당 식구로서 주 회장의 말이 한 치도 틀림이 없음을 잘 안다.
“전 순양그룹 사람입니다.”
“정치하는 사람이 뿌리가 어디 있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거지. 누구라도 밀어주고, 끌어주고, 품어주면 그곳이 뿌리 아니겠나.”
“…….”
“그리고 서울시장도, 대통령도 큰 가슴이야. 순양도, 대현도 한꺼번에 품을 수 있네.”
“동시에 두 그룹의 힘이 될 수도 있다?”
주 회장은 최 시장의 의문에 정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를 보고 싱긋 웃으며 엉뚱한 소리를 시작했다.
“내가 조언 하나만 해도 되겠나?”
“귀담아듣겠습니다.”
“내가 마누라만 셋이야. 둘은 호적에 올렸고 한 명은 못 올렸지.”
“공공연한 비밀 아닙니까? 그리고 회장님 세대야 이 처, 삼 첩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하는 말일세. 지금도 옛날과 다를 바 없으이. 이혼하고 재혼하는 게 흠이 아닐세. 호적에 여편네 이름 두셋 정도 올리는 게 뭐 대수라고!”
최 시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친정 믿고 큰소리치는 진서윤이 몸서리쳐질 때도 가끔 있었지만,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
더구나 자식 셋이 다 장성했다. 힘든 시절 다 지났는데 결혼 생활을 깰 이유가 없다.
“이런, 그건 너무 나가셨어요. 전 제 아내와 헤어질 생각이 없습니다.”
“누가 지금 당장 헤어지랬나? 필요한 만큼 같이 살다가 큰소리칠 만한 때가 오면 기회를 줘보라고. 고분고분 말 잘 들으면 계속 살아도 나쁠 건 없지. 사실 자네가 서울시장이 된 그 순간부터 이미 칼자루는 자네 손에 있다고 봐야지.”
마누라에게 눈치 없다고 워낙 구박받다 보니 느는 건 눈치였다.
주 회장이 어떤 길을 제시하는지 확실하게 알아버렸다.
진서윤은 자신이 아니면 순양그룹은커녕 백화점 하나 손에 넣기 힘들다.
마누라가 아무리 뒤에서 컨트롤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서울시장이며, 대권을 꿈꿀 수 있다.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마누라가 자신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마누라를 이용해서 순양을 뺏으라는 말이다.
그리고 대현그룹과 손을 잡자는 의미도 있다.
두 그룹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한국에서 두 그룹 동시에 여러 특혜를 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이라면 말이다.
주 회장의 스폰서 제의가 싫지만은 않았다. 장인어른이 아른거렸지만 마치 바람피우는 것같이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회덮밥 나오려면 아직 멀었습니까? 갑자기 시장기가 확 도는군요.”
최 시장은 주 회장을 향해 환히 웃었다.
* * *
“지금까지 얼마나 끌어모았어요?”
“글쎄, 개발구상 공표 후 투기꾼들이 미친 듯이 모여드니 영준이 것만 딱 골라내기 힘들어.”
남편이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진서윤은 눈꼬리가 올라갔지만 크게 숨 한 번 쉬고 참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천만 시민의 수장이 되고 나서 예전처럼 고분고분한 맛이 사라졌다.
그만큼 함부로 대하기 어려워진 남편이었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어쩐지 진짜 남자가 된 것 같기도 했다.
“고모. 얼마나 사 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한테 투덜거렸어요. 시세의 두 배까지만 매입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급등하는 바람에 네 배, 다섯 배까지 줬다고 말이죠. 다 쏟아부은 건 확실합니다.”
“그럼 지금 취소해버리면…?”
“타격이 엄청날 겁니다. 회복하기 어렵죠.”
잠자코 듣고 있던 고모부는 탁자를 툭 쳤다.
“좋아. 이제 터트리자.”
“여보. 가만있어 보세요. 전체 규모를 파악한 뒤에….”
“아냐. 내가 생각해 둔 게 있어. 처음부터 영준이를 두들기면 당신이나 나나 많이 곤란해져.”
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내 목표는 진영준이 완전히 할아버지의 눈 밖에 나는 것이다. 그런데 목표를 바꿔버리다니.
“여보! 당신이 직접 진영준을 거론해야 재벌가의 사위라는 꼬리표를 떼요.”
“당연히 그렇게 할 거야. 하지만 처음부터 그럴 필요는 없어. 처음 총질은 다른 곳에서 하고 난 총 맞고 쓰러진 영준이를 한 번 밟아주면 되는 거야.”
갈수록 태산이다.
고모가 시키는 대로만 하던 돌쇠 같았던 사람이 스스로 계략을 세우다니.
갑자기 변한 게 서울시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일까?
“내가 검사 생활만 몇 년인데? 기획 수사할 때는 외곽부터 치는 거야. 대놓고 훅 들어가면 표적 수사라는 오해만 받아. 이건 내게 맡겨.”
자신감 넘치는 고모부를 보자 께름칙하다.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총잡이는 국세청이 될 테고 칼잡이는 검찰이야. 난 전리품만 주울 테니까 지켜보라고.”
* * *
“…이 참담한 심정과 마음 깊숙이 피어나는 분노를 참을 길 없습니다. 국난(國難)이나 다름없는 IMF를 극복하고자 서민들은 장롱 깊숙이 보관한 돌 반지까지 꺼냈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금값이 오르니까 금을 사 모으고, 값 떨어진 땅, 주식, 건물을 마치 쇼핑하듯 쓸어 담고 있습니다.”
고모부의 긴급 기자회견은 TV로 생중계 중이었다. 회견문을 끝까지 듣지 않아도 그 내용이 뭔지 알 것 같은 표정이다.
그의 얼굴은 분노 그 자체였다.
“건설 경기를 부양하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힘을 잃지 않도록 문화를 촉진하려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자산이나 다름없는 공유지까지 내놓았습니다. 더 이상 부당 이익이나 취하려는 부동산 투기는 절대 묵과할 수 없습니다.”
발표문을 내려놓은 고모부는 카메라를 응시했다. 방송사 역시 고모부의 얼굴을 확 끌어당겼다.
“서울시는 투기 현황을 조사했고 은평구 수색동에 엄청난 투기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또한 ‘새서울타운발전구상’ 안을 재검토했습니다.”
고모부는 물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이제 마지막 폭탄을 터트릴 것이다.
“재검토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새서울타운’ 선정 지역 중 은평구 수색동은 제외합니다. 마포구 상암동으로 한정할 것이며 그 규모도 축소합니다. 부동산 투기꾼에게는 단 십 원의 이익도 돌아가지 않도록 철저히 규제할 것입니다.”
수색동에 땅을 매입한 사람들은 큰 손해를 본다는 말이다. 초기에 싸게 매입한 사람들은 손해는 보지 않겠지만 되파는 일은 어려워졌다. 개발 제외 구역이니 사겠다는 사람이 자취를 감출 것이기 때문이다.
총잡이 칼잡이가 왜 등장할지도 알겠다.
서울시장이 나서서 투기 과열이라고 격분했으니 두 사정 기관에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나라에 돈이 없어 이 난리를 치는데 누구는 땅 투기를 일삼으니 국민 여론 등쌀에 못 이겨 곧바로 수사에 착수할 것이다.
“저 양반, 시장 되더니 포스 좔좔이네.”
“검사 출신이잖아요. 타겟 정하고 작살낼 때 고모부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거죠.”
뜻밖의 고모부 모습에 오세현은 짧은 휘파람까지 불었다.
“머리 좋아. 손에 피 안 묻히고 진영준이를 잡잖아. 진 회장도 괘씸하게 생각 못 할걸.”
“갑자기 확 변한 것 같죠?”
“저게 본모습일 수도….”
“그럴까요?”
오세현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저 친구 이제 질주할걸? 어쩌면 폭주로 보일 정도로 말이야.”
“마누라에게 주눅 들어 살던 게 터져 나오는 겁니까?”
“그렇지. 자기 생각, 소신, 의견은 입 밖에도 못 내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시장이 됐잖아. 이건 마누라가 아무리 지원했다 해도 최 시장의 능력이야. 그러니 자신감이 넘칠 테고.”
“이제 클났네. 흐흐.”
오세현은 내 웃음의 의미를 단번에 알았다.
“저 집, 이제 매일 부부 싸움이야. 참, 네 고모 호텔 생활 접고 집으로 들어갔지?”
“네. 싸움을 피하지도 못해요.”
서울시장 부부의 가정에 불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신혼부부가 먼저 시작하겠지만.
* * *
홍소영은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친정에서 준 50억을 전부 쏟아부었지만 최 시장의 발표 직후 반 토막 났다. 앞으로 더 떨어지면 얼마나 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친정이 쏟아부은 돈이다. 정확한 액수는 말하지 않았지만, 초상집 분위기라는 것만 전해 들었다.
그녀의 원망과 분노는 바로 시고모인 진서윤으로 향했다.
서울시장은 진서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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