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19
취미 생활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나 보다.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다시 비즈니스로 돌아와야 했다.
“드라마나 게임은 나중 일이고, 우선은 말씀드렸다시피 영화입니다. 무료는 물론 유료 영화 채널도 확보할 생각입니다. 그다음 점차 늘려 가야죠.”
“케이블 방송이라….”
아버지는 아직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없으니 찬성도, 반대도 못 한다.
“아버지, 케이블 채널이 공중파의 영역을 뺏어오는 건 먼 미래가 아닙니다. 미국을 보세요.”
USA, TNT, FX, MTV, Syfy 같은 베이직 케이블은 물론 유료 케이블 채널의 대명사인 HBO를 필두로 Showtime, Starz같은 유료 채널도 성행이다.
특히 미국은 공중파 프로그램의 재방송 외에도 오리지널 시리즈를 자체 제작한다.
이 시리즈는 2000년 이후 골든 글로브와 에미상을 휩쓸기 시작할 것이다. 케이블 채널이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주도해 나가는 곳이 미국이다.
“글쎄다. 과연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될까? 공중파 세 곳에서 쏟아내는 컨텐츠만 해도 넘쳐나는데?”
“특색 있는 프로그램, 웰메이드 드라마로 승부해야죠. 맛집은 위치가 후미진 곳에 있어도 손님이 알아서 찾아옵니다. 채널 사업의 관건은 결국 양질의 컨텐츠 아니겠습니까?”
“이론적으로야 그렇지만….”
“이제 열리기 시작하는 시장입니다. 우리가 의존하고 따라야 하는 것은 결국 이론뿐입니다.”
아버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눈치 없는 분이지만 이 정도까지 입 아프게 말했다면 누구를 생각하는지 알아챌 법도 하다.
하지만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대답이 들려왔다.
“도준아. 네가 말한 그 계획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맡겨보라고, 잘해낼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놈이 없진 않을 게다. 하지만 그런 놈 대부분이 사기꾼이다. 이 바닥은 사기꾼이 넘쳐 나니까 말이야.”
“그럼 적당한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웬만한 사업가 아니면 조직 구성하는 것도 벅차. 최소 10년 잡고 적자 폭을 줄이며 버틸 만한 사람이 나와야 해. 처음부터 떼돈 버니 뭐니 하는 놈 역시 사기꾼이다.”
어쩌면 좋을까?
사기꾼이 아니면서,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10년 만에 충무로 파워맨 순위 1위에 오른 사람이지만 아들의 속셈도 읽지 못한다.
“역시 믿을 만한 분은 제가 생각했던 그분밖에 없군요.”
“뭐야? 이미 생각해 둔 사람이 있으면서 내게 물은 거냐?”
“네. 아무리 생각해도 전 1순위 후보로 그분밖에 생각 안 나서요. 혹시 아버지가 다른 분 있으신가 해서 여쭤본 겁니다.”
“그 사람이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냐? 설마, 오세현이는 아니겠지?”
“세현 삼촌은 지금 일만으로도 벅차요. 제가 생각한 분은 영국에서 제대로 경영, 경제를 배웠고 미디어 분야에 10년 일했으며 지금 충무로를 꽉 잡고 계시죠.”
이 정도면 알아채야 정상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정상이었다.
크게 뜬 눈을 깜빡거리지도 못하고 굳어버렸다.
“정확히 앞으로 10년 동안 돈을 쏟아부을 생각입니다. 적자는 이미 각오했고요. 10년 뒤에 완성할 미디어 제국만 생각합니다. 충분히 뿌리고 10년 뒤부터 거둘 겁니다. 참, DCN은 멀티플렉스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인수하면 그것도 시작할 겁니다.”
양질의 컨텐츠를 생산하고 그 컨텐츠를 소비할 공간과 채널을 확보한다. 퍼즐 그림은 단순하지만 크기가 크다.
그리고 퍼즐은 그림이 단순할수록 맞추기 힘들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표정도, 대답도 미묘하다.
분명 하고 싶은 욕심은 보이는데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는 건가? 아니면 아들의 돈을, 그것도 엄청난 돈을 날려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까?
나 역시 성공하리라는 자신은 없다. 한국을 지배하는 미디어 그룹을 만드는데 내가 가진 돈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또한, 아버지의 역량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돈은 또 벌면 되고 실패는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어차피 미디어 제국은 나의 첫 번째 목표가 아니다. 이것은 순양가의 큰아버지들이나 사촌들은 절대 경험하지 못하는, 우리 가족만의 기쁨을 위한 것이다.
할아버지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서 허덕이는 건 나 혼자면 충분하다.
우리 가족은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는 기쁨을 만끽하게 하고 싶다.
아무튼, 아버지의 부족한 자신감을 채워줄 동기를 만들어야겠다.
“아버지가 못 하시겠다면 할 수 없죠. 전 딴 사람을 물색해볼게요. 어떤 일이 있어도,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이 계획은 꼭 시작할 겁니다.”
아들이 딴 놈에게 뻔히 사기당하는 꼴을 지켜볼 아버지가 있을까?
“도, 도준아. 서둘지는 말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할 사람이 있는지, 재능 있는 사람들이 동참할지도 알아봐야 해. 누가 뭐래도 미디어는 재기 넘치는 사람들이 돈보다 더 중요하거든.”
“네. 상암동에 첫 삽 뜨는 건 아직 멀었습니다. 공사 시작할 때 DCN 인수하고 시작할 거니까 천천히 그리고 신중히 생각하세요.”
붉게 상기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도 하다. 나보다 더 열정 넘치는 젊은 사람처럼 보인다.
* * *
“영준이가 계열사 돈을 좀 끌어다 썼습니다.”
“그건 나도 들어서 알고…. 그 돈을 다 날렸나 보지?”
“죄송합니다. 제가 아이를 잘못 가르쳤습니다.”
진 회장은 고개 숙인 장남을 못마땅하게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뿜었다.
“부전자전인 게지.”
진영기는 치욕스럽기까지 했지만 진 회장은 전혀 다른 뜻이었다.
“자식 교육 엉망인 건 네가 날 닮아서 그런 거 아니겠느냐?”
어떻게 말하든 질책하는 건 맞다.
“그런데 말이다. 영준이 그놈이 돈벌이에 혈안인 놈은 아니지 않느냐? 왜 갑자기 부동산을 질렀을까?”
진영기가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진 회장이 말했다.
“내가 그 개발 지역을 몰라서 가만있었겠느냐? 나라도 어수선하고 최 서방이 벌이는 첫 사업인데 괜한 구설에 오르내릴까 봐 조심했던 게야. 그런데 난데없이 영준이가 왜?”
“사실은 개발 정보를 먼저 입수했습니다.”
“그래? 혹시 최 서방이 알려준 게냐? 아니면 서윤이가?”
진영기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여동생이 도준이를 통해 영준이를 꼬드긴 게 확실하다. 그리고 최 서방이 뒤통수를 쳤고.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 여동생에게 당했다는 소리를 할 수 없지 않은가?
“아닙니다. 도준이가 우연히 개발 계획서를 본 모양인데…. 둘이서 술 한잔하다 그 이야기가 나왔나 봅니다. 영준이는 도준이 말을 단서로 삼아 이리저리 알아봤고요.”
“도준이가?”
진 회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진영기는 아차 싶었다.
마치 아끼는 손자를 모함하는 모양새가 나와버렸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을 겁니다. 원인은 영준이 욕심 때문입니다.”
황급히 변명하자 진 회장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지나간 일, 따져서 뭐하겠느냐? 앞으로가 문제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진 회장은 또 자신감을 드러내는 장남이 못 미더웠다. 이건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영기야.”
“네.”
“여동생한테 당하는 장남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진영기는 자신이 우려했던 바로 그 말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제가 잘 처리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래. 나가봐라.”
진영기는 별다른 질책 없이 잘 끝냈다는 안도감에 밝은 표정으로 서재를 나갔다.
문 닫는 소리가 나자마자 진 회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쩌면 좋을까. 저 나이가 되도록 누가 화살을 겨누고 있는지 짐작도 못 하다니. 어이그.”
진 회장은 도준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누가 시나리오를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손자가 슬슬 발톱까지 드러내는 것 같아 놀랍기도 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도준이가 시나리오를 썼다면 이 정도에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아직 클라이맥스는 나오지 않은 게 분명했다.
진 회장 자신도 이 시나리오 끝을 모르니 불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 * *
“형님, 아니 선배…. 아, 시장님.”
“됐다.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 새삼스럽게….”
서울시장실을 찾은 사내들은 조금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래, 좀 알아봤어?”
“네. 형님 기자회견 하시자마자 지검에서 땅 매입자 파악하느라 난리였습니다.”
“진영준이 그 새끼 맞지?”
“네. 역시 재벌 3세는 다르더군요. 이건 그냥 싹쓸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개인 명의는 아니고 진영준이 대주주로 있는 법인 두 곳입니다.”
“자금 출처는?”
“당연히 순양그룹이죠.”
최 시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걸렸어. 그렇지?”
“그런데 지검에서는 쉬쉬합니다. 더 파면 분명 배임이나 횡령 혐의 걸 수 있는데 순양 이름이 나오자마자 덮었어요.”
“그 새끼들이야 전부 순양 장학생이니까. 떡값 받은 거 보답해야지.”
떡값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사내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형님. 우리도 형님 통해서 순양 돈 받아 썼어요. 우리 손으로 깔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까는 건 내가 한다. 너희들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거야. 그리고 걱정은 접어 둬. 우리 장인어른, 절대 떡값 준 거 떠벌릴 사람 아니다. 너희들 떡값을 끊어버리는 선으로 정리할 거야. 잘 알잖아. 순양 돈 받아서 탈 난 사람 없다는 거.”
안심시켜도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다. 끊어질 떡값 때문이다.
“이 자식들아! 내가 다 채워줄 테니까 표정 풀어.”
“감사합니다. 형님.”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으며 머리를 꾸벅 숙였다.
“이번에 둘 다 잡는다. 진영준이를 잡고 그놈을 덮어준 놈도 잡아야지. 그리고 그 자리에 너희들이 들어가라.”
“형님이 말씀하시는 그놈은 바로 검사장입니다. 힘들어요. 그냥 진영준으로 끝내시는 게….”
“너, 서울시장을 물로 보냐?”
“아니, 그게 아니고요.”
“잘 들어. 시장이 마이크 잡으면 전 언론, 방송이 스피커 역할을 해줘. 지금 검찰, 법무부는 여당 쪽 라인이잖아. 내가 우리 야당과 발맞춰서 철저한 수사, 특검을 요구할 거다. 내 조카 놈은 변호사 사서 횡령이 아니라 업무용 토지 매입으로 빠져나갈 거야.”
“그럼 딱히 시끄럽게 할 의미가….”
“목표는 은폐, 부실 수사를 일삼은 검찰, 바로 여당 라인을 걷어내는 거다. 시장 임기 끝나고 다음 대선 때 검찰이 전적으로 날 서포트할 기반을 만드는 게 핵심이야.”
“아…!”
“그 기반이 바로 너희들 아니냐? 대검, 중앙지검은 너희들 라인으로 확실히 장악해야지. 흐흐.”
“역시. 대권 도전입니까?”
최 시장의 검찰 후배들은 은근히 떠도는 소문을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자 화색이 돌았다.
최초의 검찰 출신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기도 하다. 가능성이 낮은 것도 아니다.
“그래. 나의 대권 도전 첫발은 바로 처갓집을 밟고 검찰 애들 쳐내는 것부터야. 기대하라고.”
“그 첫발은 언제가 될지 기대됩니다.”
“기대하라고. 다음 주에 터트릴 테니까.”
최 시장은 등받이에 몸을 한껏 기댔다.
그 모습은 눈치 보는 처가살이 사위가 아니라 거만한 검사, 당당한 남편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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