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20
서울시청사 브리핑룸은 카메라와 기자들로 득실거렸다.
이미 소문이 한 바퀴 돌았다. 서울시장이 중대 발표를 할 것이며 그 내용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기자들이 정보를 주고받느라 웅성거릴 때 최창제 시장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원고 몇 장을 들고 단상에 올랐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 최 시장은 마이크 높이를 맞추고 입을 열었다.
“전 오늘 서울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사죄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비록 제 자신이 몰랐다고 하더라도 제 가족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한 걸음 옆으로 나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기자들은 오늘 회견이 최고의 특종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최 시장의 가족이야 그냥저냥 한 법무법인이지만 처가는 바로 순양그룹 아닌가? 최 시장이 기자회견까지 열 정도면 순양그룹 문제가 틀림없다.
“며칠 전, 과열된 부동산 투기를 막고자 바로 이 자리에서 수정 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그 시각 이후, 부동산 취득 과정에 불법적인 정황이 있다는 수많은 제보가 잇따랐고 서울시는 그 모든 제보 자료를 검찰로 넘겼습니다.”
최 시장은 카메라를 향해 조금 더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껏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그 어떤 징후도 없었으며 오히려 수상한 사람들이 수색동으로 몰려들어 거래 내역 삭제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두 손 놓은 검찰, 증거를 인멸하는….”
말끝을 흐리며 머리를 푹 숙이자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한참을 그 상태로 가만히 있던 최 시장은 머리를 들었다.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가족은 두 곳입니다. 처음 공직에 몸담았던 검찰, 그리고 처가인 순양그룹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 곳은 처가이며 그 사실을 알고도 방조한 곳은 바로 검찰입니다. 서울시장으로서 더는 묵과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전 국회에 요구합니다. 검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국회가 움직여주십시오.”
기자들의 표정이 안 좋아지며 웅성거렸다.
“뭐야? 여기서 국회가 왜 나와?”
“특검이라도 하자는 거야? 부동산 투기로? 오버 아냐?”
“선수 치는 거지. 행여나 자기가 정보를 흘린 게 아니냐는 오해를 피하려고.”
“선 긋기야. 순양그룹과 자신은 별개의 존재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야.”
“니기미, 최 시장 쇼하는데 우리가 들러리 서는구먼.”
“기삿거리는 되잖아. 순양그룹과 검찰, 뭔가 있어 보이지 않아? 장단 좀 맞춰주자고. 흐흐.”
기자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눈으로 확인한 최 시장은 재빨리 회견을 끝마쳤다. 자신의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했고 만족할 만하다.
* * *
“저 새끼가 돌았나…!”
TV를 보던 진영기 부회장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하지만 그가 전화를 한 곳은 최 시장이 아니었다.
“서윤아. 너 지금 당장 회사로 와.”
― 오빠. 다짜고짜 왜 그래? 나도 바빠. 그냥 전화로 이야기하면 안 돼?
“너 지금 최 서방 이 자식이 무슨 짓을 한 줄이나 알고 있어?”
― 말조심하자. 이 자식이 뭐야? 오빠 매제야.
“시끄럿! 네가 시킨 거지? 야! 내 아들 엿 먹였으면 됐지, 그걸 끄집어내서 일을 크게 만들어? 감당할 수 있어?”
― 뭐야? 유치하게. 지금 협박하는 거야?
앙칼진 여동생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협박? 아니. 경고하는 거다. 여기서 멈춰.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네 서방도 성치 않을 거다.”
거칠게 전화를 끊은 진영기 부회장은 또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난데, 오늘 서울시장 관련 기사… 후속보도는 꼭 막아. 일회성 기사로 끝내지 않으면 순양과 등진다는 걸 확실하게 못 박아.”
매일같이 터져 나오는 사건 사고가 어디 한둘인가? 이삼 일만 지나면 서울시장의 회견 따위야 먼 과거의 잊힌 일이 될 것이다.
이제 한 군데만 더 전화하면 급한 불은 끈다. 그런데 그쪽이 더 급한 것 같다. 진영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 지검장.”
― 부회장님. 오늘 최 시장 회견 뭡니까? 애들이 보다가 황당해서 달려왔는데….
“신경 끄세요. 언론 한번 타려고 그러는 겁니다. 정치인들이야 다 그렇지 뭐.”
― 그게 좀 어렵습니다. 민정수석이 방금 연락했습니다. 문화 강국이라는 정부 시책과 관련 있는 사업인데 잡음 섞이면 곤란하다고 말입니다. 한 줌의 의혹도 없이 말끔하게 정리해달라고 합니다.
전화기를 든 진영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일이 커진 것 같다. 청와대까지….
“참 내, 다들 왜 이래? 땅 좀 산 거 가지고 호들갑은! 그리고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손해가 막심해. 적당히 좀 합시다.”
― 부회장님. 우리 처지도 좀….
“아, 알았데도요. 청와대와 이야기할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요.”
통화를 끝낸 진영기 부회장은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민정수석이라….
자신의 말빨이 먹히지 않고, 다이렉트가 아니라 몇 다리 건너야 통하는 곳이다. 특히 정권이 바뀐 뒤는 더욱 그렇다.
아버지라면 단번에 연결하겠지만, 이번 일은 아버지께 쪼르르 달려가서는 절대 안 된다. 정말 일이 커져버린다. 안 좋은 쪽으로.
* * *
“잘하는 짓이다. 이젠 조카까지 팔아먹어?”
할아버지는 화난 표정이 아니었다. 한심한 표정으로 고모를 노려본다.
“아버지.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고요. 영준이가 사들인 땅이 무려 수만 평이에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그이가 위험하다고요. 개발 계획을 빼돌려 부동산 투기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어요. 이거야말로 청문회, 특검감이라고요. 그이를 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발끈한 고모가 합당한 이유를 들어 변명했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게 아니지. 영준이 꼬드겨서 땅 사게 만들고, 최 서방은 그걸 터트려서 정의로운 서울시장 흉내 낸 것 아니냐?”
“아버지!”
“시끄럽다. 너도 멍청한 건 마찬가지야. 최 서방은 너도 속였어. 그놈 목표는 영준이가 아니라 검찰이란 걸 아직도 모르겠느냐?”
나도 몰랐다. 고모부가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는.
설마 검찰을 물고 늘어질 줄이야…. 생각보다 훨씬 음흉한 양반이었다.
“그럼 어떡해요? 개발 시작 전에 다 털고 가려면 검찰 수사 종결이라는 확답을 받아 둬야 하잖아요.”
“꼴에 서방이라고 편들기는…. 쯧쯧.”
입술을 깨물고 있는 고모를 보니 알 것 같다. 고모도 남편의 뒤통수에 얼얼하다는 것을.
“그리고 도준이 너!”
“네. 할아버지.”
“내가 널 잘못 본 것 같다.”
아직 할아버지의 속내를 모르니 장단을 맞추든, 춤을 추든 해야 한다.
일단 고개를 팍 숙였다.
“알량한 정보 좀 미리 안다고 그걸 자랑질해? 중요한 정보는 부모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는 것이야. 그거 자랑질해서 네가 얻는 게 뭐 있다고!”
“죄송합니다.”
한바탕 호통을 친 할아버지는 다시 고모를 향해 말했다.
“최 서방이 검찰을 도발했으니 그쪽에서도 가만있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네 오빠도 이를 갈고 덤빌 테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했어야지.”
고모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진영준을 고발하는 것까지만 했어야 했다. 집안의 장조카에게 상처 입히는 정도면 순양이라는 이름을 벗을 수 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고모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난감할 것이다.
고모가 할아버지의 눈치를 슬쩍 보다 짧은 한숨을 쉰다. 할아버지가 고모의 눈길을 외면하고 있었다.
“다 큰 자식들이 싸우는 거, 오랜만에 구경하는구나. 너희들끼리 싸우는 거야 상관하지 않겠다만은 만약 회사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면 누구라도 요절을 낼 것이다. 명심해.”
할아버지의 엄한 눈길 한 번에 고모는 조용히 일어섰다. 나도 엉덩이를 일으켰지만 다시 주저앉아야 했다.
“도준이 넌 남아!”
서재를 나가는 고모는 내게 간절한 눈길을 보냈다.
잘 해결해달라는 부탁일 것이다.
“무슨 짓이냐?”
“네?”
“검찰을 왜 건드려?”
“아, 아닙니다.”
이런, 오해하고 계신다. 보아하니 내가 양쪽 다 물 먹이려는 수작을 부린 걸로 생각하시는 게 분명하다.
“전 고모부가 순양의 사위라는 딱지를 떼고 싶어 하시길래 적당히 흠집 내는 선에서 끝내는 방법만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영준이고?”
“네. 그냥 은평구 수색지구를 개발에서 제외해버리면 마무리됐을 텐데…. 검찰에 총질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얼씨구. 이젠 내게 감추지도 않는구나.”
할아버지는 어이가 없는지 가벼운 헛웃음까지 보였다.
“다 꿰뚫으신 거 아닙니까? 숨겨서 뭐 하게요?”
이럴 땐 당당하게 나가는 게 맞다. 내 계략이었다는 걸 숨기면 오히려 섭섭해하실 것이다.
친한 사람끼리는 비밀이 없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이젠 어찌할 셈이냐?”
“제가 끼어들 틈이 있겠습니까? 서로 알아서 하시겠죠. 드잡이질을 하던, 악수하고 화해하든 말입니다.”
할아버지의 눈빛이 변했다. 미묘한 변화였지만 분명 실망의 눈빛이었다.
“넌 네 고모부가 네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하겠지? 400억 선거 자금 지원에 대한 계약서가 있으니 말이다.”
“곡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건 보험 같은 거죠.”
“뭐가 됐든, 고삐를 쥐고 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한 거 아니냐?”
“어느 정도는요.”
“안됐구나. 고삐 쥔 망아지 새끼가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으니. 흐흐.”
즐거운 웃음이 아니다. 비웃음이다.
그런데…. 죽다니? 설마 할아버지가 선수를 치시는 걸까?
“하, 할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 좀….”
난 처음으로 굽신대기 시작했다. 앞으로 고모부를 잘 키워서 쓸모 있는 종마로 만들어야 하는데 할아버지가 훼방을 놓으면 불가능하다.
“네 고모부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있어.”
“검찰 말입니까? 그쪽 출신이라 만만하게 본 걸까요?”
“아니다. 사돈댁이야.”
“네? 사돈…?”
“영준이 처 말이다. 네 사촌 형수.”
“아…!”
잊고 있었다. 한국 언론 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한성일보가 홍소영의 친정이지.
“들리는 소문에 네 형수도 꽤 질렀고 사돈댁도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서 땅에다 묻었다고 하더구나. 사돈댁 손해는 이만저만한 게 아닐 게다. 그 원인 제공자는 바로 네 고모부고.”
아차차!
생각도 못 했다. 최대 언론사가 이를 갈며 4년간 서울시장을 물어뜯기 시작하면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죽을 지경에 빠진다.
대권은커녕 시장 재선에 나와도 떨어질 판이다.
“신문쟁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우리 같은 기업이다. 돈줄 아니냐.”
“하지만 절대 밀리면 안 되는 곳이 정치죠.”
“그렇지. 제대로 갑질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야. 정치인이 무서워하는 언론사니까 기업이 광고를 주는 게다. 한성일보가 서울시장한테 물 먹었다는 소문이 나면? 힘없는 신문사라는 낙인이 찍히는 게지. 그런 망신이 어디 있겠어?”
할아버지는 난처해하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으허허. 아이고, 우리 막둥이. 혼자 똑똑한 척은 다 하다가 된통 당했구나. 이 일을 어이할꼬! 고모부마저 마부로 부리려다 돈만 날리게 생겼으니. 허허.”
날 놀려먹는 할아버지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한성일보가 작정하고 미디어시티를 씹기 시작하면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눈치를 보니 할아버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실 게 뻔하고….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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