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35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길을 받으며 재빨리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이미 정해진 미래를 추측하듯 말하는 게 가장 그럴듯할 것 같다.
“삼촌. 가만히 생각해보면 피할 수 없는 일 아니에요?”
“어째서?”
“정치권 놈들이 붙어 작전 들어가면 낮게 잡아도 백 배는 뛸 거 아닙니까?”
“백 배까지? 너무 높게 잡았다.”
아니, 낮게 불렀다. 그럼에도 믿지 못한다.
하긴 500원짜리가 30만 원까지 오른다는 걸 상식적으로 이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반년 만에.
“지금 열 배 오십 배까지 오른 벤처 회사도 많습니다. 막차일 수도 있는데 한몫 땡겨야죠. 백 배가 무리한 예측은 아닐 겁니다.”
“좋아. 그렇다 치고, 그래서?”
“주가가 오른다고 돈을 버는 건 아니죠. 팔아서 통장에 돈 들어와야 버는 거 아닙니까? 그럼 누가 살까요? 백 배나 오른 주식을?”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테고.”
“네. 뭔지도 모르고 덩달아 달리기 시작하는 개미들이겠죠. 그리고 많은 사람이 대박은커녕 쪽박 찰 테고요.”
“주식 하다 쪽박 찬 사람들이 한둘이야? 그게 상수가 감옥 갈 이유라도 돼?”
“네.”
“뭐야?”
개인의 투자 실패 때문에 대표이사가 감옥 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한다.
“선거철 아닙니까? 성난 사람들을 달래야죠. 하지만 화살이 향해야 할 과녁이 없어요. 그럼 만들어서라도 쏘게 합니다. IT 기업 활성화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건 현 정부가 견인한 겁니다.”
“이, 이런…….”
오세현도 내가 말하는 시나리오의 끝을 알아챘다.
“작전 세력을 건드려 봐야 모르고 따라간 개미들 잘못도 탓해야 할 테고…. 만만한 놈 하나를 아주 개쌍놈으로 만들어서 씹어야죠.”
“돈 잃은 개미들의 분노가 이상수를 향하겠구만.”
“이미 회사 돈 횡령한 증거 확보한 것부터 수상하지 않아요? 아주 보기 좋게 만들 겁니다. 성실한 사람들의 피와 땀을 끌어모아 흥청망청 놀아난 비도덕한 대표이사. 이 사람의 구속으로 상황 종료.”
설명을 끝내고 오세현의 표정을 살폈다.
조금의 의심도 없다. 앞으로 일어날 현실이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라는 내 생각이 맞았다.
물론 상상할 수도 없는 비현실적인 일도 일어나지만.
여기서 비현실적인 것은 딱 하나, 주가의 폭등뿐이다.
돈 해먹으려고 작정한 놈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한다.
그들은 무자비하며 끝없는 욕심을 숨기지 않고 분출한다.
직원 45명의 IT 기업일 뿐이다.
이런 회사를 재계서열 6위인 한진그룹의 8개 상장사 시가총액 합친 것보다 3,000억 원이 더 많고, 16위 동부그룹의 6개 상장사 시가총액을 합친 것의 4배로 만들었다.
상식 밖의 일.
이것이 큰 도둑놈들이 저지르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을 상상조차 못 하니 사기인지, 사실인지 판단조차 못 한다.
아무 말 못 하는 오세현에게 슬쩍 물었다.
“어떡하실래요? 도와주실 겁니까? 아니면 관심 끊어버리실 겁니까?”
“모르겠다. 젠장.”
오세현은 소파 깊숙이 상체를 묻었다.
한동안 침묵만 흘렀다.
오세현과 이상수의 친분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에게 관심 없다. 그가 감옥에 가든, 떼돈을 벌든….
어차피 내게는 푼돈 들고 장난치는 놈들일 뿐이다.
가만, 조 단위의 돈이 움직이니 푼돈은 아니구나.
갑자기 흥미가 솟는다.
돈 때문은 아니고…. 어떤 놈들이길래 조 단위의 시나리오를 짰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때, 잠자코 있던 오세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도 들어갈까? 판돈 크게 해서 한번 흔들어?”
우리 삼촌, 무슨 생각일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 오세현이 하나하나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넌 예상 주가가 얼마야?”
“공모가는 주당 1,500원. 삼촌 말대로 액면가 500원의 백 배면 오만 원이죠.”
“작전 들어간다면 단기로 치고 빠질 테니까 길게 잡고 육 개월. 천오백에 사서 오만에 판다. 반년 만에 서른 배가 넘는다면 해볼 만하지. 다만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고. 그래도 이만한 종목 구하기 쉽지 않다.”
너무도 진지하게 말해서 오히려 내가 주저하게 된다.
“그런데 삼촌. 왜 갑자기 들어갈 생각 하신 겁니까? 아끼는 후배를 위해 판을 흔드시려고요?”
“응? 뭐가?”
“판돈 크게 해서 흔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러니까. 크게 들어가서 크게 먹고 나오는 거지. 주식판에서 작전주를 미리 알아낸다는 건 상대방 패를 보며 고스톱 치는 거야. 상수 회사가 작전주라는 걸 알았잖아. 이젠 식은 죽 먹기지.”
이거 뭔가 이상하다.
“단순히 투자 수익이 크니까 들어간다는 뜻입니까?”
“응. 다른 게 있어야 해?”
오히려 반문하는 오세현에게 말문이 막혔다.
사색이 되어서 도와달라는 후배를 보고도 투자 이익만 생각하다니.
“그런 게 아니라요. 이 사장이 삼촌께 도움을 청했으니까….”
“이미 말했잖아. 우리가 대주주가 되어서 상장을 연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도와줄 방법이 없어.”
오세현은 머리를 슬쩍 긁었다.
“그렇다고 남의 잔칫상이니 보고만 있기에는 아깝잖아. 잔칫날 미리 알려줬고, 높은 담장 안으로 들어갈 방법까지 알고 있는데?”
“깔아놓은 판이니까 들어가자?”
“이건 대단한 정보야. 정보 쥔 놈이 투기판에 안 들어가면 여의도 떠나야지.”
할 말을 잃었다.
타고난 건지, 습관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완벽한 투기꾼이다.
또 한 번 놀랐다.
프로는 정상(頂上)이 없다.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더 높은 곳만 바라본다.
“제가 말려도 삼촌은 들어가겠군요.”
“당연! 개인으로 들어간다. 싫으면 넌 빠지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후배인 이상수 문제는 개입할 여지가 없으니 싹 잊어버리고 중요한 정보를 얻은 꾼의 모습만 살짝 비쳤다.
나도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단순히 짧은 시간에 돈을 버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게 삼촌과 다른 점이다.
* * *
“사천억이면 어느 정도 숨통은 트겠죠?”
“아슬아슬하군요. 하지만 말씀대로 간신히 숨은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계산한 내용을 들이밀자 순양유통의 자금 담당 상무는 엄살을 부렸지만, 그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환해졌다.
“역시…. 지금 우리나라 돈줄은 오로지 미라클이라는 말을 명동에서 심심치 않게 들었습니다. 다 이유가 있군요. 당사자인 우리보다 더 치밀하게 계산하시니… 이거 부끄럽습니다.”
겸손이지만 무능하다는 말처럼 들리자 고모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겠죠?”
고모의 바짝 마른 입술을 보니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지 알 것 같다.
단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백화점과 호텔이 벌어들인 수익을 전부 다 가져갔다. 입점한 업체들에게 줘야 할 돈도 미뤄가면서 말이다.
“물론입니다. 계약서에 유통, 호텔, 백화점의 법인 인감과 진서윤 사장님의 인감만 찍으면 사천억은 즉시 계열사로 쫙 뿌려질 겁니다.”
오세현의 미소에 고모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달 전 사천억의 담보로 요구한 주식을 확인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화를 냈지만, 자금 압박에 시달리자 서둘러 다시 찾았다.
회사를 맡자마자 이자도 못 낸다는 소리가 진 회장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정말 날강도가 따로 없군요. 어떻게 고작 사천억으로 순양유통 주식의 30%를 가져갈 수가 있죠?”
계약서에 도장 찍고 끝내기 전에 꼭 한마디 더 보태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만큼 분한 마음이라는 걸 드러낸다.
“아직 진 사장님의 손에 들어오지도 않는 주식입니다. 미래의 재산을 담보로 돈 빌려주는 곳은 우리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천억이 전부는 아니죠. 제1호 대형 할인점 공사대금 천삼백억도 포함된 겁니다. 우린 모험을, 진 사장님은 조금 비싼 담보를 맡기는 거니까 공평합니다.”
그냥 한번 던져보는 고모의 불평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합리적이라는 것을 어필한다. 이래야 두 번 다시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회의실을 차지한 많은 임원들은 눈만 내리깔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무언의 동의다.
고모는 입술을 깨물고 임원들을 향해 눈짓했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두꺼운 서류에 빠짐없이 인감을 찍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이제 순양유통은 내 것이다!
유통과 연결된 백화점, 호텔, 콘도, 골프장까지.
이것들이 완전히 내 손에 들어오면 미라클 직원들에게 보너스로 회원권을 쫙 나눠줘야겠다.
너무 김칫국인가?
아니다. 정해진 수순이다.
2003년 카드 대란이 오고 소비가 꽁꽁 얼어붙었을 때 차지하려던 계획을 이상수 사장 때문에 훨씬 앞당기게 되었다.
새천년이 시작되기 전, 모두 내 것이 된다.
이 회의실에서 막힌 자금줄이 풀렸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임원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도 많은 임원들이 진서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고 좋아할 것이다.
* * *
“뭐라? 돈을 갚아?”
“네. 순양생명과 화재보험을 제외하고 두 부회장이 맡은 계열사 채권을 상당 부분 정리했습니다.”
“그 애가 돈이 어디서 나서? 회사 굴리기에도 버거울 텐데?”
“미라클에서 빌려줬답니다. 서윤이가 도준이에게 부탁했고 오 대표는 도준이의 말에 따랐다고 합니다.”
진 회장의 입에서 ‘그 돈은 바로 도준이 꺼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학재는 미라클이 바로 진도준의 소유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진 회장은 아직 이학재가 눈치챈 것을 모른다.
이학재는 진 회장이 가장 궁금해할 것을 말했다.
“담보는 주식입니다. 만약 서윤이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유통을 비롯한 계열사가 미라클로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설마? 전부 다 담보 잡았어?”
“아뇨. 일단은 30%입니다.”
“일단은? 무슨 뜻이야?”
“돈은 한번 빌리기 시작하면 계속 손을 내미는 법 아니겠습니까? 가장 손쉽게 회사를 굴리는 방법인데…. 한 번으로 끝낼까요? 서윤이는 자금이 막힐 때마다 곶감 빼 먹듯이 주식을 던져주고 돈을 빌릴 겁니다.”
“앞으로도 그럴까? 급한 불은 껐잖아. 그리고 순양경제연구소 보고서도 나쁘지 않던데?”
정확 예측으로 소문난 연구소에서 만든 극비 보고서는 1998년의 -6.9%라는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비웃기라도 하듯 +9.5% 성장이라는 극단적인 숫자를 내놓았다.
물론 외부 발표용 자료에는 여전히 마이너스지만.
“서윤이는 또 빌릴 겁니다. 회장님께서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걸 보고 싶으셨겠지만, 서윤이는 아주 쉬운 방법을 택했어요.”
이학재의 말에서 묻어나는 뉘앙스가 묘했다.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예상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누가 어려움을 극복해?”
“네?”
이학재는 진 회장의 비웃는 듯 바라보는 눈길을 마주 보지 못했다.
“서윤이와 극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나 해? 어림없는 소리.”
“그럼…?”
“경영 체질을 확 바꿔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상황으로 밀어 넣었어. 서윤이가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타개할 머리가 있었다면 콘도, 골프장부터 처분했을 거다. 물론 대형 마트는 뒤로 미뤘겠지.”
경영의 기본이다.
이 쉬운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딸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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