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36
“그 애는 어려움 없이 나이만 먹었어. 힘들지 않을 때야 그럭저럭 해내겠지만, 회사가 위기에 내몰리면 우왕좌왕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신경질 내는 게 그 애가 할 수 있는 전부야.”
이렇게 부정적이면서 왜?
이학재는 진 회장의 의도를 짐작했다.
“혹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만드신 겁니까?”
“그래. 휘청거리면 누군가 뺏어갈 거 아냐. 그때 괜찮은 사내놈 하나 물색해서 평범한 주부로 만들 생각이었어. 재혼이 싫다면 장학 재단 하나 주고 바깥일 계속하도록 하던지.”
“그 누군가가 어처구니없게도 오세현이군요.”
이학재는 진 회장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 아주 작은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 보자 진도준이 차지하는 걸 기뻐한다고 확신했다.
“오세현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다시 돈 주고 사 오면 돼. 명동 사채시장으로 넘기지 않은 게 어디야?”
진 회장이 흐뭇한 미소를 숨기며 안심하고 있을 때 두 명의 부회장은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보고에 망연자실했다.
* * *
“어서 와. 차나 한잔하자.”
“차는 됐고. 서윤이 때문에?”
“그래. 너도 들었구나.”
순양그룹 본관 27층은 진영기, 진동기 두 명의 부회장과 그룹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그룹전략본부가 차지하고 있다.
진동기가 부회장으로 승진할 때 한 층을 완전히 갈아엎고 만든 것이다. 중앙에 회장실도 있지만 진 회장이 출근을 거의 하지 않으니 두 사람을 위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진동기는 형의 호출에 진영기 부회장실을 찾은 것이다. 바로 그 일 때문에.
“형만 그쪽에 사람 심어둔 거 아냐. 나도 그 정도 정보는 전해줄 사람 있어.”
“그럼 오세현이라는 것도 알겠네.”
“물론.”
“그 멍청한 년이 결국 사고 쳤어. 돈은 들어왔어?”
“형이랑 다를 바 없어. 대부분 갚았어.”
“고년이 대형 마트 공사 계약도 파기하자고 했다면서?”
“정식 공문은 아직. 통화만 했어.”
상황을 확인한 두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동시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주식을 팔아치운 게 아니다.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배 지분을 담보로 맡기는 바보 같은 짓은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오세현과의 특별한 관계를 믿었을 것이다.
동생 진윤기의 절친이니 부채와 이자만 갚아나간다면 회사를 뺏기지는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담배 연기만 들이켜며 말을 못 하는 것은 자신들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나눠줬다고 하더라도 계열 분리를 보고만 있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기회가 오고, 때가 오면 곧바로 원상복귀 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철새가 날아가 버리듯 기회와 때가 사라졌다.
“동기야.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오세현이 말이다.”
“듣고 있어. 말해.”
“그놈 아무래도 아버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 않냐?”
“오세현이가 아버지와?”
“그래. 미라클에 순양자동차 넘긴 거 봐. 아무리 IMF 때문에 달러가 급하다 해도 너무 많이 줬어. 자동차와 그룹 지분 17%까지. 이건 좀 과해.”
“아버지의 지시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도준이 몫으로 하나씩 넘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 백화점도 그렇고. 오세현이가 제정신이라면 있지도 않은 주식을 담보로 맡을까? 아버지가 안 주면? 담보고 뭐고 없이 사천억만 날린 거잖아.”
“아버지에게 유통 주식을 전부 넘긴다는 확답이라도 받았다?”
“그래. 그리고 아버지는 유통 전부를 도준이에게 줄 생각인 거지. 나중에 금융 부분까지 포함해서.”
진동기는 형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계획이라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오세현과 아버지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건 무의미할 뿐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쩌려고? 아버지 뜻인데 방법 있어? 도준이 손에 들어가는 걸 우린 멍하니 보고 있는 게 전부야.”
“막아야지 왜 보고만 있어? 난 그 애새끼가 순양을 야금야금 파먹는 꼴 못 본다.”
“막아? 어떻게? 지난번처럼 차로 확 밀어버리게? 이번엔 트럭 한 대로는 안 될걸?”
진동기는 형을 슬쩍 도발했다. 아니… 어쩌면 희망 사항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다르게 진영기는 아주 침착한 모습으로 진동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난 너라고 생각했는데, 아냐? 가장 초조한 사람은 1등이 아니라 2등이거든. 따라잡기도 버거운데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야.”
진영기는 동생보다 한술 더 떴다.
“널 따라잡기 전에 다시 트라이해봐. 아버지든, 도준이든.”
“나, 가도 되지?”
진동기는 피식 비웃으며 일어섰다.
“너 회사 여유 자금 얼마나 있어?”
진동기는 종잡을 수 없는 형의 질문에 얼굴을 찌푸렸다.
“오세현이는 여의도 맨이다. 서윤이가 맡긴 담보 우리가 사자. 사천억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오천억 부르면 되지 않겠어? 천억 더 주고 가져오는 거다. 만약 그 자식이 안 넘긴다면…. 그놈은 아버지 지시대로 움직이는 거다.”
간만에 형이 괜찮은 생각을 짜냈다. 오백억 정도는 충분히 융통할 수 있다.
“형이 던져 봐. 오세현이 받으면 오백억 준비하지.”
“우리 오랜만에 의기투합하는 것 같다?”
진영기가 동생을 향해 웃었지만, 동생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형이 생각 못 한 것도 있어.”
“잘난 우리 동생,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오세현이가 도준이 대리인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뭐?”
진영기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어쩌면 미라클이 도준이 회사일 수도 있어. 오세현이는 전문경영인이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나도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요즘 들어 자꾸 이 생각이 들어. 형도 곰곰이 생각해봐. 도준이가 미라클의 실질적인 주인이라면 웬만한 건 다 맞아 떨어져. 아버지가 그놈에게 순양을 물려주지 못해 안달인 이유부터 말이야.”
“설마…. 진담이냐? 지나치다.”
“나도 믿고 싶지 않지만, 아귀가 맞아떨어져. 10억 달러 수혈하면서 자동차만 넘기면 될 일 아냐? 오세현이 외국 자본 들고 들어왔다면 주식까지 왜 줬겠어? 그것도 환전이 전부였는데.”
진영기도 그 부분이 가장 이상했다. 아무리 급해도 주식까지는….
“금융계열을 도준이에게 준다는 것도 그래. 이제 겨우 스물둘이야. 도대체 도준이가 뭘 보여 줬길래?”
황당한 소리로 들었지만, 자꾸 그럴싸해진다.
“가능성을 열어 두자고. 먼저 백화점부터 찾아오고 나서.”
공통이 적이 나타나면 원수도 힘을 합친다.
어쩌면 어린 조카 때문에 으르렁대던 형제가 손을 잡을 수도 있다.
* * *
봄을 알리는 3월, 하나로통신이 국내 최초 상용 ADSL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하자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PC방이 동네 오락실을 압사시킬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제 동전 넣고 버튼을 눌러대는 것 대신,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리며 스타크래프트와 MMORPG라는 온라인 세상으로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마침내 소규모 오프라인 대회 중 하나인 ‘한국프로게임리그’가 시작되었고, 아버지가 제공한 DCN 스튜디오에서 세계 최초의 게임 중계방송이 케이블을 타고 흘렀다.
아버지는 이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어 혀를 찼지만, 시청률을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영화보다 더 높은 시청률이 나온 것이다.
이 시청률을 주의 깊게 본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게임은 하는 것이지만 보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높은 시청률은 돈이 된다.
아버지 주변에 게임 관련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고속 인터넷 서비스는 벤처 기업에도 불을 붙였다.
인터넷 통신이 주종인 뉴 데이터 테크놀러지는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하며 또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전문가들은 이 회사를 띄우는 방법을 알았고 회사가 뜨는 만큼 주식도 띄울 것이다.
“얼마나 넣을 거야?”
“회사는 30억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회사 규모가 작으니 더 쏟아붓기에는 부담입니다. 티 나지 않을 정도만 하죠.”
오세현은 순식간에 계산을 마쳤다.
“상장가 1,500원이면 200만 주. 오만 원일 때 팔아치우면 천억을 쥐는 거네.”
“고모에게 빌려준 돈, 일부는 세이브하겠네요.”
일부가 아니다. 난 20만 원일 때 팔 생각이다. 그럼 정확히 사천억. 딱 맞아떨어진다.
오세현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넌 개인 투자는 할 생각이 없어?”
“티 안 나게 하죠. 3억?”
“5억 어때?”
“그러죠. 뭐.”
오세현이 5억이 얼마로 불어날지 행복한 고민할 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어? 큰아버지?”
“도준아. 잘 지내지?”
셋째인 진상기가 갑자기 찾아왔다. 재단이나 관리할 사람이 여긴 왜 왔을까? 이런 의문은 금방 사라졌다.
진영기 부회장의 메신저로 온 게 틀림없다.
“두 분은 처음이시죠? 셋째 큰아버지인 진상기 이사장님. 여긴 오세현 대표님.”
두 사람은 명함을 교환하며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어색함은 인사 후에도 계속되었다. 사무실을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진상기를 향해 오세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떤 용무로 오셨는지요?”
“아, 부탁드릴 일이 좀 있습니다.”
“큰아버지. 편히 말씀하세요.”
나까지 나서서 용건을 묻자 큰아버지는 헛기침부터 했다.
“흠, 흠. 오 대표. 내 동생 친구니까 편히 말하겠소.”
“네. 그러십시오.”
“딴 게 아니라 우리 여동생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들었는데 그걸 좀 바로잡아야겠어요.”
오세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 가족을 비웃는 듯해서 괜히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실수를 바로잡는다? 그건 개인적인 문제 같은데…. 제가 도움이 될까요?”
“오 대표만이 도와줄 수 있어요.”
진상기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본론을 꺼냈다.
“담보로 설정한 주식은 우리가 되사겠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애가 너무 성급하게 집안 재산을 넘긴 거요. 알다시피 돈 부족한 집안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야 장사꾼 아닙니까? 타당한 가격이라면 뭐든 못 팔겠습니까?”
긍정적인 답변으로 착각한 큰아버지는 표정이 환했다.
“역시 말이 통하는 분이시구나. 좋습니다, 좋아요. 그럼 가격을 말씀하세요. 허허.”
“먼저 사겠다고 하신 분은 이사장님 아닙니까?”
“아차차, 그렇지.”
진상기는 오세현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기 시작했다.
심부름 왔으면 심부름만 하면 된다. 아무런 재량이 없는 심부름꾼이 지금처럼 눈치 본다는 건 괜한 짓이다.
“우리 걸 되사는 거니 조금 더 얹어서… 사천오백억 드리리다.”
“제가 타당한 가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부족합니까?”
“네. 아주 많이요.”
오세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자 지금껏 한껏 여유를 부리던 큰아버지는 당황한 듯 보였다.
“이거, 아주 큰 장사를 하시려나 봅니다.”
“네. 우린 뭘 사든지 간에 최소 열 배는 남겨 먹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렇지 않다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뭐, 뭐요? 열 배?”
당황을 넘어 황당한 표정의 큰아버지에게 오세현은 쐐기를 박았다.
“네고할 생각은 마십시오. 열 배에서 단돈 일 원도 에누리 없습니다.”
이 정도면 눈치 없는 큰아버지도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 없다.
“그거 꿀꺽 삼켜봤자 소화 못 시켜요. 순양을 노리다가는 탈 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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