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38
“너 뉴스 봤어?”
“네. 우성그룹 말이죠?”
“그래. 주 채권단이 연락 왔다. 혹시 인수할 의향 있는지….”
오세현에게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하는 와중에 이런 말이 먼저 나오다니! 설마?
“아니. 계열사 중에서 고르라고 하더라. 지금 자금 여력이 있는 곳은 외국계 투자사뿐이니까.”
“업계 평판은 어떻습니까? 쓸 만한 계열사가 있기나 한 겁니까? 분식회계니 뭐니 해서 전부 부실 덩어리라고 하던데요.”
짐짓 모르는 척 부정적인 의견부터 말하자 오세현도 머리를 끄덕였다.
“드러난 부채만 3조야. 모든 계열사가 빚더미라는 뜻이지. 인수할 만한 건 없어.”
“단 하나도?”
“우성해양조선은 이미 수주한 양이 상당하다고 들었어. 그나마 가장 나은 거 같은데….”
“삼촌. 혹시 채권단에서 뭔가 달콤한 제안을 던졌습니까?”
“너 어떻게 알았어? 귀신이 따로 없구먼.”
놀라는 오세현을 보자 할아버지의 치밀함이 더 돋보였다.
이미 채권단에 언질을 줬고 우리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부채탕감을 약속했어. 우리가 관심 있으면 만나서 협상 좀 하자더라고. 절대 손해 볼 일 없도록 해줄 테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나와 달래.”
“맞습니다. 손해 볼 일 없을 겁니다.”
“뭔 일 있었구먼.”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아챈 오세현은 짧은 한숨을 쉬며 내 입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실….”
할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를 빠짐없이 들려주자 오세현도 눈치챘다.
“네 고모와의 계약서를 들이밀어? 햐! 진짜 무서운 양반이네.”
“더 깊은 뜻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우리가 나서서 총대 메고 가져와야 합니다.”
“그냥 해보는 위협 아냐? 한번 개겨볼까?”
“할아버지는 그 계약서 보고도 아무 말씀 없으셨어요. 여차하면 백화점 그룹이 우리 손에 들어온다는 걸 모를 리 없으신 분이…. 개겨도 별일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계약서 툭 던진 건 완전한 협박이잖아.”
협박 맞다. 백화점 그룹을 우리 손에 넣으려면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할아버지가 모든 지분을 순양유통에 올려서 고모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만약 이 지분 승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미라클은 무담보로 사천억을 빌려줬고, 전액 후불로 대형 마트 공사까지 해주는, 아주 멍청한 호구 짓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애교 같은 협박일 뿐이다.
“할아버지는 부탁을 그런 방식으로 하신 겁니다. 우리가 백화점 그룹을 차지하는 걸 모른 척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받은 게 있으니까 부탁은 들어드려야죠.”
“우리가 아니라 너다. 말은 똑바로 하자, 인마.”
“그럼 말을 바꾸겠습니다. 백화점은 제가 차지할게요. 삼촌은 우성해양건설을 인수한 다음 순양그룹에 팔 때 엄청난 매매이익을 남기시면 되잖습니까?”
“그 이익을 전부 나 주려고?”
농담인 걸 알지만 진지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대표이사 특별 보너스로 전부 가져가십시오.”
절대 농담이 아니라는 걸 내 표정을 보면 알 것이다. 이미 오세현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오세현이 딱 5년만 일하고 은퇴한다고 선언한 것이 언제였던가? 이 일을 마무리하려면 은퇴 시점을 뒤로 미뤄야 한다.
조금이라도 오세현을 더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돈이 아깝지 않다.
“자자, 그만 감동하시고 더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죠. 뉴 데이터 테크놀러지 상장이 일주일도 안 남았습니다. 그쵸?”
“아, 그…. 그래. 그건 이미 준비 끝마쳤어. 선수들 대기하고 있다. 거래 첫날부터 조금씩 사들일 거다. 열흘 안에 우리 자금만큼 주식 들어온다.”
“작전 세력은 언제 들어올까요?”
“처음엔 들어오지 않아. 어차피 상장빨이라는 게 있어서 놔둬도 주가는 오르거든. 빨리 들어와도 3주 뒤야. 우린 그 전에 주식 확보하고 있다가 매도 시점만 결정하면 돼.”
오세현은 내 표정을 보며 슬며시 말했다. 어느새 놀란 표정은 사라졌다.
“너 정말 인수 건 내게 맡길 거냐?”
“네. 어차피 우리 둘째 큰아버지와 협상해야 합니다. 중공업 부문은 그분 소관이니까요. 껄끄러운 상대 아닙니까?”
“흠….”
뭔가 숨기는 게 있는지 확인하는 눈빛을 피하며 일어섰다.
“전 할아버지 뵈러 갑니다. 우성 인수를 진행하겠다는 말씀은 드려야죠.”
“야! 어딜 가? 내 이야기 안 끝났다.”
소리치는 오세현을 남겨두고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 *
“왜? 싫어? 내키지 않아?”
“아, 아닙니다. 단지 좀 의외라서요.”
“의외? 싸고 좋은 물건 나왔을 땐 재빨리 낚아채는 게 의외야? 당연한 거지.”
진동기는 아버지 진 회장의 호출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우성해양조선을 챙기라는 말을 듣자 더할 수 없이 기뻤다.
중공업 건설 부분을 맡기고 승계작업을 진행하는 것까지 확인했다. 이번엔 떠보기도 아니고 간 보기도 아니다.
그런데 조선을 두 배로 키워주겠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그만큼 자신을 믿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 지금 우리 처지에 우성조선을 인수한다면 지금 진행 중인 구조조정의 진의를 의심할 겁니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목하에 승계작업을 진행 중이다. 눈엣가시 같은 노조도 이 기회에 박살 낼 참이다. 그룹 전체가 어려우니 사람 자르는 것은 당연했고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었다.
이 절호의 찬스를 우성조선 인수로 날려버릴 수는 없다. 그룹 사정 어렵다면서 엄청난 돈이 필요한 인수를 진행하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타를 내세울 거다. 대타가 인수하고 세상이 잠잠해지면 받아 오면 돼.”
진동기는 불현듯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 대타가 혹시 미라클입니까?”
“잘 아는구나. 지금 그 정도 자금을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외국계 투자사뿐이다. 미라클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도 있으니 적당하지 않겠냐?”
진짜 묻고 싶었다, 그리고 확인하고 싶었다. 그 밀접한 관계가 어떤 것인지?
하지만 섣불리 물었다가는 호통만 돌아올 게 뻔했다.
“그쪽에서 협조해준다고 했습니까?”
“그래. 괜찮은 회사 싸게 인수하고 몇 년 뒤 비싸게 팔아먹는 게 오세현이 같은 친구 특기 아니냐? 거절 못 한다. 인수도 내가 적극 도와줄 테니까 말이다.”
“그럼 제가 오세현을 만나겠습니다. 이름만 빌리는 일이니 인수부터 직접 챙기겠습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다.”
“네?”
“오세현이 말이다. 네가 직접 나서서 챙기는 걸 고맙습니다, 잘해봅시다, 할 놈이 아니라고.”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말씀이신지 충분히 알아들은 진동기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그 밀접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기 때문에 모른척하며 아버지 눈치를 살폈다.
“대타를 해 주겠다고 했지 심부름하겠다고 한 건 아니다. 대타가 타석에서 홈런 치는 일도 왕왕 있지 않아? 순순히 네 말 들을 놈이 아냐.”
“우성조선을 인수하고 돈 냄새를 맡으면 순순히 넘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진동기는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잘못 생각한 건가? 미라클은 아버지의 회사가 아닌가?
아버지의 숨은 회사라면 심부름만으로 만족하지, 홈런을 노리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해야 할 대답은 하나다.
“문제 생기지 않도록, 오세현이 딴생각을 못 하도록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믿어도 되겠지? LNG선을 선도해 가려면 우성해양조선은 꼭 필요한 회사다. 절대 놓치면 안 돼.”
“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당당한 둘째 아들을 보며 진 회장은 잔잔한 웃음을 띠었다.
“동기야. 너도 불만이 없진 않겠지만, 이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
진동기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거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회사를 키워 나가다 보면 어느새 지금의 순양그룹만큼 커져 있을 게다. 난 너와 네 형이 가진 걸 두 배로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가 전에 없이 따뜻한 말씀을 꺼냈지만, 진동기는 절반 정도만 믿었다.
위로의 말이나 달래는 말이 나올 때면 항상 뭔가를 숨기고 있다.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아무리 나이 먹어도 절대 변하지 않을 아버지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항상 원하는 대답을 해야 하는 것도 잘 안다.
“네. 기대하시는 만큼 해내겠습니다.”
진동기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 서재를 나갔다.
“아이고, 힘들다. 다 큰 아들놈들 달래가며 일 시켜 먹으려니 죽겠구먼.”
* * *
“잘 부탁합니다, 오 대표님. 우리 순양그룹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건이라는 것은 이미 아시겠죠?”
“제가 뭐 할 게 있겠습니까? 이미 진 회장님께서 다 조율해 놓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율한 대로 쉽게 진행된다면 좋겠습니다만…. 어디 일이란 게 그렇습니까? 여기저기서 발목 잡는 놈들이 나오기 마련이죠.”
오세현은 스쳐 가듯 인사만 몇 번 나눈 진동기를 자세히 살폈다.
셋 중에 가장 낫다는 진도준의 평가를 확인하는 자리다.
거만하지 않은 첫인상부터 조용조용한 말투까지,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진중한 사람이라는 것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순양이 점찍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놈들이나 발목 잡겠다고 덤벼들겠죠. 아무튼, 부회장님께서 잘 이끌어주십시오.”
의외다.
건방이 하늘을 찌른다고 투덜대던 동생 진상기의 말과는 전혀 다른 겸손한 모습 아닌가?
각자의 첫인상을 확인하자 둘 사이의 기류는 한결 따뜻해졌다. 진동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 막내 조카를 데리고 다니며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어떻습니까? 우리 도준이.”
“음….”
오세현은 잠시 뜸을 들였다. 아무래도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타고난 겜블러죠. 아버지인 윤기와는 정반대라고나 할까요?”
“겜블러?”
“네. 촉 좋고, 과감하고, 배짱 두둑하고, 지를 때와 물러날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무엇보다도 판세를 읽는 능력이 뛰어나죠.”
“그러니까 여의도 증권맨이나 투자가로서 적격이라는 칭찬이군요.”
“정확합니다. 요즘은 아예 저보다 더 낫죠. 이젠 혼자 포커판에 들어갑니다.”
진동기는 슬쩍 웃었다.
“말씀하신 겜블러의 자질이 꼭 포커판에서만 유효한 게 아니죠.”
“네?”
“그런 자질은 경영자에게 요구하는 내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보통은 넘는다. 도준이는 투자회사 밖으로 나가지 않은 놈이라는 뜻이었는데…. 오세현의 의도는 어긋나 버렸다.
“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군요. 그런데 부회장님. 설마 어린 조카를 경계하는 건 아니시겠죠?”
자존심을 슬쩍 긁었지만 이마저도 먹히지 않았다. 진동기는 여전히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순양의 차기 회장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3대 회장은 도준이가 분명합니다. 저야 제 몫을 단단히 챙겨서 도준이가 넘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전부죠. 그래야 내 자식들도 밥은 굶지 않을 거 아닙니까? 하하.”
겸연쩍은 웃음까지 보이는 진동기를 보자 오세현은 도준이가 사람을 정확히 봤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이미 도준이를 자신의 경쟁 상대로 생각하며 움직인다는 것도 확신했다.
“자, 그럼 채권단의 제안서부터 확인할까요? 어떻게…? 부회장님이 직접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믿을 만한 임원에게 맡기실 겁니까?”
“함께 봅시다. 아버지께서 당부하신 만큼 직접 챙겨야죠. 조선업계의 판도를 바꾸는 일인데 직원에게 맡긴다는 건 안 되겠죠?”
탐색하며 오세현의 그릇을 가늠할 좋은 기회를 진동기가 놓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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