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40
주가가 육천 원까지 빠지자 진서윤은 입술이 타들어 갔다. 그녀는 불안과 초조를 전부 임 상무에게 퍼부었다.
“사장님, 틀림없습니다. 이미 투자는 손훈재 전자 사장의 결재까지 떨어졌어요. 지분참여 시 주당 가격을 조율 중이라고 합니다. 이제 주가는 다시 오릅니다. 조금만 진득하게 기다려보시지요.”
이 상무의 장담대로 육천 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갑자기 반등하여 순식간에 다시 일만 원을 찍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치 터보 엔진의 추진력을 얻은 듯 연일 상한가를 때리며 마침내 이만 원 고지를 넘었다.
하지만 주가가 이만 원을 찍자 기다렸다는 듯이 매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며 사흘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출렁이는 주가에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과 탄식을 내뱉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99년 하반기의 증시는 오로지 뉴 데이터 테크놀러지의 출렁이는 주가가 태풍의 눈이었다.
때마침 이상수 대표이사의 긴급 기자회견도 열렸다.
며칠 전부터 증권 관련 사이트에는 ‘손정의의 소프트뱅크가 뉴 데이터 테크놀러지에 투자한다.’ ‘야후와 손잡고 나스닥에 상장한다.’는 등의 루머가 떠다녔기 때문에 중대 발표가 분명했다.
이상수 대표이사는 기자들의 플래시 빛을 피해 눈을 천장으로 향했다. 회견장이 잠잠해지자 마이크 앞에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현안 문제점의 타개책과 향후 비전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가 계속되자 기자들은 점점 인상을 찌푸렸다.
긴급 기자회견이라는 이름이 부끄럽게 평범한 내용만 계속될 뿐이니 제대로 된 기삿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상수 대표이사는 계속 시계를 힐끔힐끔 쳐다보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프레젠테이션을 끝마쳤다.
“지겨운 시간은 끝났습니다. 지금쯤은 발표해도 되겠네요.”
그가 화제를 돌리자 기자들은 다시 집중했다.
“뉴 데이터 테크놀러지는 글로벌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 순양그룹과 제휴하기로 했습니다….”
순양전자가 아니라 그룹이라는 이름을 썼다. 발표의 파괴력을 한층 더 키우기 위해서였다.
순양전자의 지분참여 형태의 제휴 계약은 이날 11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 안전한 시간대까지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고 기자들도 일일이 신원을 확인한 후에 간담회장에 입장시켰다.
오늘 아침 증시가 열리자마자 쏟아진 매물은 작전 세력이 쓸어 담았을 것이다.
단 몇 시간 만에 주가는 다시 폭등했고 오전 거래에서 주식을 내다 판 개미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기자회견 뉴스를 들어야만 했다.
순양의 지분참여 발표가 끝나자마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 사장은 난처한 질문에 대해서는 말끝을 흐리거나 비보도를 전제로 답했다.
이 회견을 뉴스 속보로 확인한 오세현은 급히 몇 군데 전화를 돌리더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상수 사장 도망칠 궁리를 하다 악수를 뒀어. 저러면 안 되는데… 허, 참.”
“왜 그러세요?”
“자신의 주식 100만 주를 순양전자에 넘겼어. 이제 이 사장 지분은 10% 정도야. 순양전자가 2대 주주가 됐고.”
창업자이며 대표이사가 주식을 팔았다. 여전히 최대주주이긴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이것이 빌미를 제공할 것이다. 현금 챙기고 빠져나갈 계획을 미리 세웠다는 의심을 피할 길이 없다.
“200억이라는 현금이 생겼으니 유상증자라도 하지 않을까요? 자본금 늘리려면 그 수밖에 없는데?”
“그렇겠지. 아마도 100억 정도는 유상증자에 넣을 거야. 그래도 100억은 챙긴 거지.”
오세현은 후배를 걱정하고 나는 고모를 걱정했다.
이제 폭증하는 주가에 취해 우리의 당부를 잊을지도 모른다. 사만 원일 때 팔아서 네 배의 이익을 꼭 남겨야 한다. 그래야 도박의 짜릿함을 맛볼 것이고 승리에 취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다.
그때부터는 내버려 두기만 하면 저절로 무너진다.
과연 얼마나 큰 돈을 잃고 쓰러질까?
* * *
“도준아. 정말 팔아야 해? 바보짓 아냐?”
“파세요. 오 대표의 감각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니까요.”
“계속 오르잖아.”
고모는 못 미더운 눈으로 신문을 내 눈앞에 내밀었다.
“주가가 떨어질 때는 한순간에 매도 물량이 쏟아집니다. 잘 아시잖아요. 아차 하는 순간에 타이밍 놓치면 되돌릴 수 없어요. 충분히 벌었잖아요.”
고모는 조용히 나만 불러냈다. 오세현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내 입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나오자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너도 팔았어? 전부?”
대답을 잘해야 한다. 자고로 사람이란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픈 족속이 아닌가?
“우린 이미 다 처분했어요. 3만8천 원쯤에서요. 25배 남겼으니 충분하죠, 뭐.”
물론 아직 쥐고 있다.
“뭐? 스, 스물다섯 배?”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더듬는 고모에게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네. 우린 상장 시점에 샀으니까요. 천오백 원이었나?”
“야! 왜 나한테는 미리 말 안 했어?”
“회사가 진행하는 일이니까 저도 몰랐어요. 투자회사야 늘 주식 시장만 보니까 상장 시점을 놓치지 않은 거죠.”
“회사가 샀다고 해도 네 투자금도 포함되어 있을 거 아냐?”
“저 이제 얼마 없어요. 고모부 선거자금으로 다 들어갔고 그 대가로 받은 상암동 땅은 아직 그대로니까요. 한 5억 정도 들어간 걸로 알고 있어요.”
어차피 아무 말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고모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25배라는 숫자만 남은 것이 뻔하다.
“고모. 용돈 벌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어요. 지금은 미련 두지 말고 다 파세요.”
지금 내가 하는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욕을 먹을지 짐작도 못 하겠다. 고모의 불같은 성격을 생각하면 멱살 잡히는 건 각오해야 한다.
고모는 회사 돈을 임시로 ‘유용’하는 처지라 더는 모험할 수 없었다.
결국, 사만 원이 조금 넘었을 때 모두 팔아치웠다는 연락만 받았다. 얼마나 투자했는지, 수익은 얼마인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고모는 설득했지만, 더 힘든 산이 앞을 버틴다.
오세현은 어이가 없는지 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십오만 원? 그게 네 예측이야?”
“황당하죠?”
“아는구나. 다행이다. 난 네가 미친 줄 알았거든.”
“그런데 삼촌. 잘 생각해 보세요.”
“뭘?”
“내가 미친 것 같은 소리를 할 때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죠?”
“그래서 내가 가만히 있는 거야. 아니었다면 널 병원으로 데리고 갔던지 아니면 누가 네게 그런 헛소리를 했는지 잡으러 다녔을 거다.”
어차피 내 고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테고, 미친 소리 같지만 어쩌면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난 정리할 거야. 내 개인으로 투자한 거 말이야.”
예상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오세현에게 웃으며 말했다.
“후회하실 텐데요? 흐흐.”
* * *
만약 뉴 데이터 테크놀러지에 평범한 투자자들이나 그 어떤 작전 세력도 붙지 않았다면 주가는 어땠을까?
벤처 광풍이긴 했지만, 어차피 끝물이라는 것은 여의도 사람이면 누구나 감지하고 있었다.
이만 원? 사만 원? 어쩌면 이 정도가 최대치 아니었을까?
주가가 오만 원의 고지를 간당간당하며 넘지 못할 때 추진력에 불을 지필 호재가 나왔다.
미국 상장을 목표로 추진 중인 새로운 사업모델을 이상수 대표가 직접 발표한 것이다.
언론 역시 한 패거리였다.
이상수 대표가 발표한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라는 기술을 실용화한 상품 ‘다이얼패드’를 띄우느라 엄청난 지면을 할애했다.
그저 코스닥 열풍에 편승해 까닭도 없이 주가가 치솟는 ‘무늬만 벤처’들에 비하면 월등히 차이 나는 기술력이라며 치켜세우기 바빴다.
단기간 회원 50만 가입이라며 떠들어 댔지만,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수익은 점점 나빠진다는 건 철저히 숨겼다.
50만 가입자 상당수는 소비성향이 낮은 대학생이라 다이얼패드의 광고 프로모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주춤하던 주가도 단숨에 치고 올라가며 10만 원을 찍었을 때 오세현은 하얗게 질렸다.
“모두 미쳤어. 이제 시총이 조 단위야. 300억 매출에 적자 나는 회사의 주가가 이 정도라는 건 미쳐 돌아간다는 거 외엔 설명할 방법이 없어.”
“지금 주식 사 모으는 사람들 중에 그런 거 따지는 사람 있을까요? 이 광풍에 낙오하면 병신이라는 말이 파다합니다.”
“이건 한 번에 폭락해. 전부 휴지 쪼가리가 된다고. 당장 내일일 수도 있어.”
오세현은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불안에 떨며 주식을 빨리 처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촌. 제 예측이 틀렸다고 해도 회사 자금 30억. 내 개인 돈 5억 날리는 게 전부 아닙니까? 미라클이 30억 정도 날린다고 쳐도 티 안 나요. 내 돈도 마찬가지고요. 끝까지 한번 지켜보자고요.”
사실이었다.
만약 돌발 변수로 인해 지금 당장 꼬꾸라져도 아쉬울 것도 아까울 것도 없었다. 단지 내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 고모가 이 판에 다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네 배라는 돈맛을 봤는데 가만있기에는 돈이 너무 많다. 수백억 정도는 평범한 사람들의 지갑 속에 든 돈처럼 생각하는 특이한 부류 아닌가?
* * *
진도준의 말만 믿고 사만 원에 전부 팔아치우자 주가가 약 올리듯이 또 한 번 폭등했다. 진서윤은 분통이 터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주가는 계속 상승 국면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진서윤은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다. 자금을 조달하는 임 상무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말이다.
한 번의 선택과 결정으로 큰돈이 들어오는 맛을 알아버린 노름꾼은 마누라까지 잡히고 패를 돌린다. 진서윤도 예외는 아니었다.
네 배가 아니라 25배도 가능한 도박판.
그녀는 백화점에 입점한 업체들에게 결재해야 할 돈을 어음으로 막았다. 11개의 백화점과 호텔에서 들어오는 현금 중에 꼭 지급해야 할 돈을 제외하고 모두 뉴 데이터 테크놀러지에 쏟아부은 것이다. 길어봤자 두 달이면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게다가 명동 사채 시장의 선수들에게 많은 수수료를 지급하고 차명으로 거래를 텄다. 수익을 전부 비자금으로 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백억으로 꽤 많이 확보할 수 있었지만 십만 원이 넘어가자 손에 쥔 물량이 팍 줄었다.
물론 주가는 계속 뛰었지만, 너무 많은 돈을 ‘유용’하자 불안이 엄습했다. 곁에서 불안을 부추기는 임 상무의 걱정도 한몫했다.
“사장님. 이대로 가다가는 소문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경영악화로 어음이 부도날지도 모른다는 악소문까지 돕니다.”
“무시해요. 소문을 확인할 때쯤이면 끝나요.”
“그렇지만….”
진서윤은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지금 실업률이 얼만지 알아? 우리 백화점은 최소한의 구조조정으로 끝냈어. 순양의 다른 계열사처럼, 아니 대현 그룹이나 정일 그룹처럼 절반 이상 해고해야 정신 차릴 거야?”
“죄, 죄송합니다.”
“입단속 확실하게 해요. 만약 소문을 못 막으면 진짜 구조조정이 어떤 것인지 보게 될 겁니다. 입점 업체 절반 이상을 물갈이해 버리고 호텔 직원 중 매니저급부터 임시직으로 바꿔버릴 테니까. 알아들었어요?”
소리치며 윽박지르는 진서윤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이쯤에서 멈추고 싶었지만, 주가 변동차트만 보면 마음이 바뀐다. 꾸준히 오르는 그래프의 기울기를 보면 한 달 백화점 수익이 일주일 만에 나온다는 게 눈에 보였다.
불안한 그녀는 마음을 편히 해줄 사람들을 불렀다.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는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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