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41
“참으로 송구스럽지만… 주가를 예측한다는 건 이미 불가능합니다. 그냥 추이를 보며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면 빠져나오는 것, 이것이 최선입니다.”
“그렇습니다. 주가를 평가할 기업 데이터는 이미 무용지물입니다. 지금 주가는 오로지 미래에 대한 낙관을 베이스로 쌓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개미 투자자들의 욕망도 한몫하고요.”
얼떨결에 불려 온 사람들은 진서윤의 눈치를 살피며 보고했지만 뭐 하나 속 시원하거나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순양증권의 최고 인재들이라고 들었는데, 영 시원찮네.”
진서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무시하자 순양증권에서 내로라하는, 잘나가는 인재들은 발끈한 마음을 억눌렀다.
오너 일가의 사장 아닌가?
“죄송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국 증시가 시작된 뒤로 처음 보는 기현상이니까요.”
“그러니까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 맞죠?”
“그렇습니다.”
“순양전자 상황은 어때요? 200억 투자했으니 지금쯤 뭔가 액션이 나올 법한데…?”
“순양전자는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습니다. 어차피 IT 사업부에서 여기저기 투자한 곳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주가 상승으로 인한 매매 차익보다는 관계사로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음….”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 같은 답을 얻으려 했지만, 망망대해라는 말만 나오니 진서윤의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망망대해가 끝나면 엘도라도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은가?
“저기, 사장님. 혹시 얼마나 투자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건 알 거 없고. 지금은 주가 오르는 만큼 조금씩 더 매수하는 중이에요. 주가가 좀 빠지면 그만큼 매도하고.”
“기본에 충실하시네요.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증권사 매니저들의 긍정적인 평가가 조금은 불안을 없애준다.
“오늘 나와 만난 건 비밀로 해 주세요. 만약 그룹 내에 이 사실이 새어 나가면 여러분의 가벼운 입을 의심하겠습니다. 내가 마음먹으면 여러분이 이 땅에 발붙일 곳은 없습니다. 그 정도 힘은 있습니다. 아시겠죠?”
순양증권 매니저들은 입에 지퍼를 채웠다.
진 회장의 딸에게 그 정도 힘이 있다는 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녀가 순양증권의 매니저들을 은밀히 모은 건 투자 자문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줄 말이 듣고 싶어서였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
“저거 가져가서 안사람에게 줘요. 어떤 취향인지 몰라서 브랜드별로 준비했으니까 마음에 드는 거 서너 개씩 챙겨 가요.”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이 쇼핑백에 들어있었다.
분명 서너 개라고 했다. 증권사 매니저들은 한 번에 모두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이런 횡재는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 * *
가을바람이 겨울바람으로 변하기 시작할 때 고모는 조용히 나를 찾았다.
그녀의 첫마디를 듣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발을 담갔다는 것을 알았다.
“도준아. 오 대표에게 이자 지급 조금만 연기해 달라고 부탁 좀 해줄래? 경기가 엉망이라 백화점 매출이 확 줄었어. 식품관만 근근이 꾸려나가는 실정이야.”
“그 정도까지 나빠졌어요?”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는소리를 늘어놓았다.
“호텔 공실은 70%가 넘어. 사람들이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백화점에 장 보러 오는 거야. 백화점인지 시장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라고.”
그럴싸한 거짓말을 들으며 한번 확인해 볼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자칫 말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간다.
이미 이십만 원을 훌쩍 넘었다. 지금 고모가 주식을 몽땅 처분하면 떼돈을 만질 것이고 백화점 그룹은 내 손에서 멀어진다.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주식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죄송해요. 고모.”
“응? 뭐가?”
“고모가 그 주식을 사만 원에 팔지만 않았더라면 한꺼번에 문제가 잘 해결됐을 텐데 말이죠.”
“응? 아…! 그거. 뭐, 괜찮아. 어차피 나랑 주식은 어울리지 않는데 뭐. 그리고 네 배의 수익을 올렸잖아. 그 정도로 만족해야지.”
얼버무리는 모습이 어색하지만 모른 체하며 말을 이었다.
“삼십만 원은 족히 넘어갈 것 같던데…. 정말 어마어마하죠?”
“뭐? 삼십만 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 미묘하다.
입꼬리에 아주 잠깐 머문 미소, 그 미소가 모든 걸 말해준다. 아무쪼록 백화점 그룹이 휘청할 정도로 질렀기를….
“네. 하지만 비행기 추락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자세히 말 좀 해봐.”
“에이, 남의 집 파티나 다름없는데 이야기하면 뭐 해요? 우린 주식 하나 없는데….”
“그, 그렇지만…. 그냥 궁금하잖니. 나도 한때는 대주주였는데.”
지금도 대주주임이 분명하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이 말해준다.
“그러니까 삼십만 원 정도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게 여의도의 평가래요. 그런데 뭔가 이상 있는 비행기가 고도만 올리는 형국이랄까? 위태로우니 언제 추락할지 모르잖아요.”
“위험하다는 말이구나.”
“하지만 마지막 타이밍만 잘 잡는다면 그야말로 떼돈이 굴러 들어오니까 사람들이 버티는 거라고 하더군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잘 아시죠?”
“물론이야.”
“고모.”
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응.”
“혹시라도 지금 들어가는 짓은 하지 마세요. 아시죠? 비행기 추락.”
손을 들어 추락하는 비행기 모습을 보여주자 고모는 웃음을 터트렸다.
“얘가 날 뭘로 보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럼 돌아가서 오 대표에게 말씀드려 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정 무시하고 돈만 밝히는 분은 아니니까요.”
내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자 고모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잘 부탁해, 우리 조카. 이 고모가 신세 진 건 확실하게 갚는다. 알지?”
“신세랄 게 뭐 있나요? 우린 가족인데.”
좋은 말만 하고 돌아섰다.
우린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은 늘 문젯거리를 만든다.
고모가 사무실로 쓰는 객실을 나오자 문 앞에서 기다리던 중년의 사내가 다가왔다. 어딘지 낯이 익은데….
“저기… 진 실장님. 혹시 저 기억나십니까?”
아, 이 양반…. 미라클이 고모에게 돈을 빌려줄 때 함께 있었던 그 사람 아닌가? 자금담당 상무던가?
“혹시 임 상무님?”
“네. 맞습니다. 기억하시는군요.”
그가 머리를 꾸벅 숙였다.
“진 사장님 뵙고 나오는 길이십니까?”
“네.”
임 상무의 초조한 표정을 보자 이 사람이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 상무님. 커피 한 잔 주시겠습니까? 고모는 뭐가 그리 바쁜지 할 말만 하고 내쫓더라고요.”
“아, 그러시죠. 제 방으로 가실까요?”
그는 기쁜 듯이 날 데리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임 상무가 주는 커피를 홀짝거릴 때 그는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사장님과 무슨 말씀 나누셨는지… 제가 알면 안 되는 내용입니까?”
“아뇨. 임 상무님은 자금담당 임원이시니 상관없습니다. 고모는 미라클에 지급할 이자와 상환금을 한두 달 정도 사정 봐달라고 하시더군요. 불경기라 백화점과 호텔 상황이 영 좋지 않다면서요.”
“그렇군요. 그 정도만 해도 숨통이 좀 틔겠는데….”
길게 한숨까지 내쉬었다. 얼마나 돈에 쪼들리는지 낯빛이 시커멓다.
“그 정도로 어렵습니까?”
“그게…….”
흙빛의 얼굴과 말을 잇지 못하는 걸 보니 주식에 묶인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짐작했다.
이쯤에서 도박 한번 해볼까?
“주식에 얼마나 꼬라박았어요? 상무님 표정 보니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아닙니까?”
최소 천억은 박은 것 같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진 사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그걸 말해야 압니까? 회사 주식까지 담보 잡은 곳에 이자를 못 줄 정도면 뻔하죠. 경영권이 흔들릴 지경 아닙니까?”
“역시 눈치 빠르시네요.”
“솔직히 말씀 좀 해보세요. 제가 비밀은 지켜 드리겠습니다. 제 입장도 정말 난처합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고모 사정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오세현 대표님은 친삼촌이나 다름없는데…. 이거 참.”
난처한 표정으로 슬쩍 던지자 임 상무는 다급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실장님. 지금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분은 회장님뿐입니다. 실장님은 진 회장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가셔서 말씀 좀 해 주세요. 불안해서 미쳐버릴 지경입니다.”
“정말 천억 넘습니까?”
“지금까지 들어간 자금이 천사백억입니다. 주가가 오만 원일 때부터 이십만 원 때까지…. 끊임없이 매입했어요.”
웃음이 터지려는 걸 겨우 참고 아주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요? 천사백억?”
“쉿. 소리 좀 낮추십시오.”
조심스러워 하는 임 상무에게 재빨리 되물었다.
“오만에서 이십만? 그럼 지금 팔면 손해는 안 보겠군요.”
“당연하죠. 적어도 세 배는 될 겁니다.”
“아니, 고모도 참 무모하네. 주식도 잘 모르면서 왜 뻐팅기고 쥐고 있답니까?”
“순양증권 사람들 때문이죠. 이 사람들이 매도 시점 알려 주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더 오를 것 같다면서 자꾸 부추기잖습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여기서 순양증권이 왜 나와?
의아한 내 표정을 보며 임 상무는 왜 순양증권 사람들이 등장했는지 그간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순양증권 사람들이 고모 옆에 붙어서 코치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 친구들, 베테랑이라고 하던데…. 무모하리만큼 공격적인 것 같아서 불안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었다. 고모가 정보를 알려주고 가이드를 제시하는 사람을 구했을 줄이야.
만약 이들이 적절한 매도 타이밍을 알려준다면 내 계획은 무너지고 고모는 큰돈을 쥐게 된다. 조바심이 난다.
“사실 제가 그 친구들을 따로 만나서 이야기했습니다. 진 사장님께 지금이 매도 타이밍이라고 강력히 권하라고요.”
“그런데요? 말을 안 듣습니까?”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 친구들도 난처해서 죽으려 하더군요. 만약 매도한 뒤에 주가가 계속 오르면….”
“고모가 가만있지 않겠군요.”
“그렇습니다. 그걸 두려워합니다.”
그냥 넘어갈 성격이 아니다. 심하면 강력한 인사 조처 같은 보복까지 할 여자다.
진짜 문제는 그들의 인생이 아니다. 그 정도로 신경 써서 고모를 관리한다면 고모가 큰돈을 만지고 게임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공든 탑이 무너질 것 같아 입술이 타들어 간다.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려주십시오. 제가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임 상무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제가 정리를 좀 해야겠어요. 여차하면 엄청난 손실을 볼 텐데…. 이거 원, 불안해서 가만있을 수 없군요.”
“제 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아니, 진 사장님도 마찬가지이실 겁니다. 얼굴 타들어 가는 거 보셨죠? 이러다 무슨 일 나겠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걱정하는 임 상무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혹시라도 회장님께 보고하고 도움 청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고모는 핏줄이라 별 탈 없이 넘어가겠지만, 백화점, 호텔 임원들은 전부 옷 벗어야 합니다.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임원은 용서치 않는 분입니다.”
임 상무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일입니다.”
걱정만 하는 임 상무를 뒤로하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순양증권의 훼방꾼 놈들.
참으로 운 좋은 훼방꾼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서 인생역전 할 테니 억세게 운도 좋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걸렸다.
이놈들 인생을 통째로 사서 고모를 벼랑으로 밀어버리는 일을 시켜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