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48
역시 나이 든 사람들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색 바랜 추억일 뿐인가?
“많이 팔리지는 않아도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있는 갖고 싶은 차, 특색 있는 차. 그런 차도 만들어내는 기업입니다. 첫눈에 반할 사랑도 좋고, 천천히 달아오르는 사랑도 좋겠죠.”
“갖고 싶은 차라…….”
“96년이었던가요? 아진자동차는 영국 로터스의 생산 라인과 설계를 인수해서 2인승 오픈카를 판매했죠. 수제 소량 생산에 맞춰 설계되었기 때문에 대량 생산도 안 되는 차를 말입니다.”
내가 말하는 차를 떠올렸는지 조대호 사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연간 1만 대 생산 기준으로 생산 원가만 3천만 원이었다.
이익을 남기지 않고 팔아도 부가세, 특소세 등을 더하면 인수가격만 4천만 원짜리 차로 변한다.
풀옵션 중형차가 1천5백만 원이면 살 수 있고 심지어 플래그쉽 세단이 4천만 원대에 불과하다.
아진자동차 송 회장은 결국 세금 포함 2천만 원 후반대로 판매가를 정했고 팔면 팔수록 손해나는 엄청난 짓을 벌였다.
“잘 알아. 그 차, 내 손으로 단종시켰으니까.”
“네. 수익성을 생각하면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그런 스포츠카를 생산하자는 말이야?”
아직 한참 어린 내 나이를 생각하면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자동차 회사의 어린 오너가 스포츠카를 갖고 싶어 한다. 바로 자기 회사에서. 조대호 사장은 딱 그 정도로 내 의도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회사를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어린 오너의 특징 아닌가?
조 사장은 나도 아직 어리다는 생각부터 들었을 것이다.
“손해 보며 팔 차를 왜 만들겠습니까?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전 아직 면허증도 없습니다. 스포츠카 같은 건 관심도 없고요. 가장 좋아하는 차는 BMW 7시리즈입니다. 목숨을 구해준 차라서요.”
“그럼 특색 있는 차라는 게 뭘 말하는 거지?”
“직장 여성이 할부로 구입할 수 있는 경차, 30대 남자가 3년 할부로 지를 수 있는 쿠페. 중년 남자가 세컨 카로 사고 싶은 픽업트럭. 이런 걸 말합니다.”
조 사장은 여전히 찌푸린 미간을 펴지 않았다.
“경차도, 쿠페도 이미 많이 나왔어. 픽업은 우리나라에선 안 먹히고.”
“갖고 싶지 않은 차들이죠.”
“뭐?”
“빈티 나고 없어 보이는 경차, 예쁘고 폼도 나지 않은 쿠페. 영업용 화물차로 보이는 픽업트럭. 이런 차를 누가 사고 싶겠습니까?”
할아버지와 조 사장은 그제야 내 말뜻을 이해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걸 감추지 않았다.
“그런 차는 아무리 갖고 싶게 만들어도 몇 대 팔리지 않아. 어쨌든 팔리는 차는 패밀리 카야. 그 외의 차는 절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 너도 이젠 알잖아? 자동차는 대량 생산이 가능해야 하는 설비 산업이라는 걸.”
“생산 라인을 투 트랙으로 한다면 손익분기점까지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불가능합니까?”
“패밀리 카와 사랑받는 차? 이렇게?”
“네.”
“돈 벌 생각이 없구나.”
“앞으로 10년간 적자라도 좋습니다. 10년 뒤부터는 달라질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토요타와 폭스바겐, 두 회사의 판매량은 절대 앞지를 수 없다. 이 두 회사가 줄곧 패밀리 세단만 만들었다면 절대 왕좌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도전적인 차를 끝없이 개발하고 소수의 매니아를 외면하지 않는 기업 마인드가 그들의 주력 차종인 코롤라와 골프를 탑에 올려놓은 것이다.
대현자동차는 21세기 글로벌 탑5에 들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분명 달성할 것이다. 하지만 대현은 여전히 가성비 때문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미지 외에는 갖지 못한다.
자동차는 꿈을 꾸게 만들어야 한다.
그 차를 운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 사랑받는 것이다.
“으허허.”
듣고만 계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던 조대호 사장도 이마를 탁 치며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영문을 몰라 두 사람을 번갈아 볼 때 웃음을 그친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순양자동차를 시작할 때 했던 말을 너도 똑같이 하는구나. 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회장님께서도 그러셨죠. 10년은 돈 못 벌어도 좋다. 필요하다면 입던 빤스까지 팔아서라도 돈을 대주겠다.”
“아, 정말요?”
“그래. 그런데 딱 일 년 지나고 결산 나오자마자 내게 그러셨지. 이대로 가다간 내 목이 위험하다고. 빨리 적자 면하라고 말이다. 하하.”
젠장.
내 진심이 이렇게 왜곡되는구나.
“괜찮아. 도준이 넌 회장님과 다를 거라고 믿어주지. 흐흐.”
“이 친구가! 그건 농담이었어. 진심이었다면 내가 자네를 그 자리에 계속 앉혔겠나?”
두 어르신의 과거 회상을 계속 들을 수는 없는 일, 슬며시 끼어들었다.
“사장님. 제 의도는 아시겠죠?”
“너 돈 많다고 회장님께서 어마어마하게 자랑하시던데…. 감당할 수 있겠어? 사랑받는 자동차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디자인이다. 남자에게 차는 바로 여자와 똑같아. 예쁜 미인은 기본이다.”
“최고의 디자이너를 영입하겠습니다. 크리스 뱅글도 좋고 피터 슈라이어라도 데리고 올 수 있습니다. 원하는 디자이너 말씀만 하세요.”
BMW와 아우디의 디자이너 이름까지 거론하자 조 사장은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다시 미소 지었다.
“회장님.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은데요? 덕분에 전 10년간은 실적 걱정 없이 월급 챙겨 먹게 생겼습니다.”
“속지 마. 누구 핏줄인데? 흐흐.”
할아버지는 가볍게 웃은 뒤, 진지하게 물었다.
“자동차 회사가 돈 까먹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힘들다. 네가 투자로 모은 돈 다 날릴 수도 있어.”
“10년 정도 투자할 돈은 있습니다. 중국을 포함해서요.”
“뭐? 중국?”
두 분은 또 한 번 놀랐지만, 그 반응은 조금 달랐다.
특히 조 사장은 신기한 광경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현그룹에 스파이라도 심어 둔 거냐?”
“네?”
“대현이 슬슬 중국 쪽으로 눈을 돌린다고 들었다. 2005년 정도에 현지 생산을 목표로 한다고 했지만,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더라.”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우린 하루라도 서둘러야 합니다.”
폭스바겐은 이미 1984년부터 중국에 상륙했다. 상하이자동차와 합작으로 상하이 따쭝(上海大衆)을 설립했고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 남부지방을 집중 공략했다.
91년, 다시 중국 제일 기차와 합작하여 북부지방의 공략에 나섰고 99년, 중국 시장 점유율이 60%에 육박할 정도로 시장을 먹어버렸다.
“중국 시장은 1백5십만 대 수준이다. 중국 부자들의 럭셔리 자동차를 제외하면….”
서두르지 않았으면 하는 조 사장의 심정이 드러났다.
합작회사만 허가하는 중국이라 중국 진출은 기술 이전이 필수다. 가장 찜찜한 부분이다.
“폭발적인 성장세가 시작될 것이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자자, 그건 도준이 뜻에 따르는 게 좋을 듯해.”
갑자기 의견을 툭 던지는 할아버지 때문에 조대호 사장은 놀란 듯했다.
순양자동차와 아진이 합병한 뒤 단 한 번도 경영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또한, 갑자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조 사장 때문에 할아버지도 놀란 듯하다.
“어쭈? 이 친구 보게. 이젠 내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겠다는 겐가?”
“이 자리에서 회장님은 어드바이저시니까요. 꼭 따라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훌륭한 조언이라면 따를 생각입니다만.”
“봤지? 이 친구가 이래. 지금 도준이 네게 시위하는 거다. 사랑받는 회사든, 중국 진출이든 스스로 납득할 수 없다면 시작도 하지 않을 위인이라고.”
할아버지 뭔가 즐거운 재미를 발견한 어린애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잘 보라고. 전 세계의 돈이 중국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어. 세계의 공장? 이 말 진짜 무서운 거다. 인건비 싸다고 우리 순양 공장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갔잖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건 바로 노동이다. 그 노동의 장소가 공장이고.”
“부가 쌓이니 쓸 곳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중국에 굴뚝 올라가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그만큼 경제도 급성장하겠지? 그리고 쌓인 부를 과시하는 첫 번째 방법이 바로 자동차다.”
“통장에 돈이 쌓이면 자동차로 눈이 돌아가는 게 바로 남자의 습성이죠.”
조 사장이 머리를 끄덕이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돈이 많이 들 거다. 시간, 퀄리티, 돈. 이 세 가지는 항상 반대편에 서 있다. 시간을 줄이고 퀄리티를 높이려면 엄청난 초기 자금이 필요해. 괜찮으냐?”
“금액을 예측하실 수 있을까요? 지금?”
“중국은 무조건 5:5 투자 시스템이니…. 최소 2억5천 달러 이상? 그 정도면 초기 생산 규모가 10만 대 정도는 될 거다.”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네요. 이렇게 하죠. 초기 투자 5억 달러를 베이스로 사업 추진합시다. 서두르는 비용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곧바로 두 배의 숫자를 부르니 조대호 사장은 입을 떡 벌렸다.
“거봐. 이놈 이거, 돈 엄청 많다고 말했잖아.”
할아버지는 놀란 조 사장을 향해 즐거운 듯 손뼉까지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 * *
“이혼한… 아니, 아직은 아니네. 아무튼 몇 년 뒤에 이혼할 마누라가 만나자고 하니 기분이 묘하더라.”
“좋아 보이네.”
“당신도 여전히 관리 잘하는군. 누가 오십 넘은 아줌마라고 볼까?”
“그런 칭찬 자주 좀 하지. 왜? 당신 여자가 아니니까 색달라 보여?”
“여전히 따갑네. 그만두자. 용건은?”
최창제 시장은 진서윤의 차나 한잔하자는 연락에 내심 반가웠고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예정된 이혼을 취소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손잡자고.”
“진심이야?”
“오해는 마. 당신이랑 다시 한 침대 쓸 생각은 없으니까. 부부가 아닌 진짜 동업자. 어때?”
“뭐지? 날 떠난 대가는 충분히 받지 않았나? 나랑 손잡는 거 당신 아버지가 알면 도로 다 뺏길 텐데?”
“안 뺏겨. 아니 뺏을 수가 없어.”
“당신 아버지가 그 정도 안전장치 없이 당신에게 물려줬을까?”
“안전장치든 뭐든 다 소용없다니까. 내 손에 없는 걸 어떻게 뺏어 가?”
“뭐? 무슨 뜻이야?”
“말한 그대로야. 이제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게만 알아 둬.”
최창제 시장은 진서윤이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 걸 보며 짐작했다. 자존심이 강한 여자다. 진 회장에게 받은 건 전부 사라졌고 남은 건 순양 그룹의 딸이라는 간판만 남았다.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하기 싫으면 됐어. 그런데 나와 다시 손잡고 하고 싶은 게 뭐지? 여전해?”
“당연하지. 더 나이 먹고 할머니 되기 전에 평창동 서재에 앉아봐야겠어.”
“당신 손에 쥔 거 아무것도 없다면서? 평창동까지 어떻게 갈래?”
“집 앞까지는 누구 뒤만 따라가면 돼. 그런데 대문에서 서재까지 가는 길이 어렵네. 그때 당신이 그 누구를 정리해주면 쉬울 것 같은데.”
“당신 앞길 터주는 게 누구야?”
“당신도 잘 아는 사람. 당신 선거 자금 준비한 그 애.”
“도준이? 정말 도준이?”
진서윤은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대며 놀란 최 시장을 진정시켰다.
“도준이든 누구든, 당신이 마지막에 정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해. 서울 시장 정도로는 안 되니까 준비 잘해야 해. 내가 아직 개인 재산은 좀 있으니까 알거지가 되더라도 밀어줄게.”
“전처 쌈짓돈까지 손대긴 싫은데….”
괜한 너스레를 떠는 최 시장을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됐어. 당신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야. 내숭은 무슨….”
최창제는 진서윤 앞에 놓인 빈 잔에 물을 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