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52
초대받은 고객들은 줄 이어 나오는 코스요리를 즐겼다. 저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 사용하는 접시, 식기 그리고 테이블과 테이블 보.
이 모두가 전세기에 실려 프랑스에서 날아온 것임을 그들도 안다. 일 년에 딱 두 번 하는 행사이니 그들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모든 것을 유심히 살피며 긴 식사 시간을 가졌다.
“식기나 접시도 주문합니까?”
“당연하지. 마음에 드는 거 발견하면 우리 직원 호출해서 주문해.”
연회장을 둘러보니 이미 몇몇 직원이 고객 곁에서 뭔가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세상의 선택은 아닐지라도 순양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만 구매할 수 있는 명품들. 이 명품은 앞으로도 백화점 매장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초대받은 자신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걸칠 수 없다는 걸 안다.
이런 특별함 때문에 초대장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순양의 초대장을 받았다는 것은 한국 최상층이라는 증표나 다름없다. 이런 전략을 구사한 고모도 보통은 넘는다.
긴 만찬이 끝나자 연회장의 불은 꺼졌고 정면에 젊고 잘생긴 사내 한 명이 등장했다.
그는 오늘 이 연회장에 전시된 여러 브랜드의 특징과 장점 그리고 희소성을 설명할 것이고, 수많은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은 이유인 통합 컨셉을 알려줄 것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집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안에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순양의 방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정면 스크린에는 S/S 컬렉션의 런웨이를 편집한 영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빈티지한 감성의 와이드 라펠 하프 캔버스 헤리티지 라인부터 클래식한 핏과 어깨가 강조된 시뇨리아 라인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소재를 사용한 7가지 실루엣의 라인업을 선보입니다.”
여전히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단어로 나열한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모두 천천히 일어나 본격적인 쇼핑을 시작했다.
인사를 나누고 아는 사람끼리 어울려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 여인네들의 눈웃음과 미소 속에는 불꽃 튀는 눈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상대보다 자신이 우월한 존재라는 걸 과시하는 방법으로 돈을 쓰는 것이다.
깜깜이 쇼핑이다.
전시된 명품에는 가격표가 없다.
지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예약하는 블라우스가 수백만 원짜리일 수도 있고, 여름에 해변에서 쓸 슬리퍼가 백만 원을 훌쩍 넘을 수도 있다.
웬만큼 자신 없다면 쥬얼리는 건드리지도 못한다.
마음에 들어 사고 싶어도 가격을 물어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다.
“이거 얼마죠?”라고 묻는 순간 주변의 시선이 쏟아진다.
그 시선에는 명품을 돈으로 환산하는 천박함에 대한 경멸, 가격까지 물어봐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 왜 이곳에 왔냐는 듯 바라보는 무시가 담겨 있다.
이 속에는 고모의 또 다른 전략이 숨어 있었다.
이백여 개의 상품 중에 많게는 10%, 적게는 5%의 아주 값싼 상품이 섞여 있다.
몇만 원짜리 손지갑, 십여만 원에 불과한 하이힐….
순양의 컬렉션은 단지 비싼 상품만으로 구성한 게 아니다. 가격을 떠나 진정한 명품으로 구성한 것이라는 걸 드러낸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자리에서 가격을 물어본다는 것은 가치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천박한 행동이라고 여긴다.
고모는 연회장을 날카로운 눈으로 샅샅이 지켜보다 갑자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순히 눈인사만 주고받으며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연회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고모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이거 준비해줘요.”라며 예약 속도가 빨라졌다. 눈도장을 찍어둬야 F/W 시즌에도 초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엄청난 효과를 불러일으킨 고모는 내게 눈짓하며 재빨리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이 정도면 됐어. 자리를 더 지키면 값 떨어진다. 가자.”
신비주의 같은 전략인가?
이렇게 끝내버리면 좀 아쉽다. 백여 명의 고객 중 안면을 터놓으면 도움될 만한 집도 분명히 많을 텐데.
이런 내 생각을 눈치챈 고모가 말했다.
“저 사람들 인사는 나중으로 미뤄. 어차피 감사 인사드리기 위해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쓸 만한 집안은 내가 리스트 업 해줄게. 면세점 허가에 힘이 돼줄 거야.”
“저한테 인맥 넓힐 기회를 많이 주시는군요.”
“오해하지 마. 널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니까.”
“오빠보다는 조카가 더 편하다는 계산입니까?”
“아니, 넌 오빠들보다 더 여유가 있어.”
“여유?”
“그래. 자신감이라고나 할까? 만약 큰오빠나 작은오빠였다면 이미 날 지방 골프장으로 쫓아냈을 거야. 경영에는 아예 손도 못 담그게 했겠지.”
고모는 날 보며 빙긋 웃었다.
“하지만 넌 자리를 계속 지키게 해줬고 네가 경쟁자를 다 물리치는 동안 내가 와신상담해도 좋다고까지 했어. 난 그럴 생각이고.”
“내 인맥을 넓히는 게 큰아버지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할 거라는 생각이시군요.”
“당연하지. 너도 큰아버지들을 조심해. 살아온 세월만큼 인맥도 쌓이는 법이야. 할아버지가 지금은 네 방어막을 해주지만…. 두고 봐.”
고모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경고하듯 말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날부터 국세청, 금감원이 미라클을 덮칠 거다. 물론 미국 본사까지 털어 먹으려고 온갖 연줄을 다 동원할걸?”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방어막이 돼줄 만한 사람을 알아둬야 한다?”
“그래. 네가 무너지면 나도 귀양 신세를 면치 못할 테니까 말이야. 그래서 이건 날 위한 거라는 거다.”
희망은 좋은 것이다.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희망보다는 계획이 더 좋다.
* * *
“1억 이하는 다음 시즌부터 초대장 돌리지 마.”
“네.”
예약 현황을 보고받은 고모는 칼같이 잘라버렸다. 1억 이하라는 것은 쥬얼리 종류에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는 뜻이다.
패션의 마지막은 보석이다.
천만 원짜리 드레스를 걸쳤으면 몸에 걸친 보석은 1억은 훌쩍 넘겨야 구색이 맞다. 보석을 구매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돈이 부족하다는 걸 알려주는 셈이다.
앞으로 VVIP로 대접할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니 초대장 명단에서 빼버리는 것이다.
“잠깐만, 그 리스트 잠시 줘봐요.”
밖으로 나가려던 직원은 황급히 명단을 내밀었다.
난 1억 이하의 고객 리스트를 찬찬히 보며 그들의 예약 구매 내역과 남편의 직업, 그 집안 사람들의 인적 사항까지 꼼꼼히 살피며 필요한 내용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거기 적힌 대로 준비해주고 방문 가능한 일자 스케줄 잡아서 내게 알려줘요.”
내가 전한 리스트를 쥔 직원이 고모의 눈치를 슬쩍 볼 때 소리쳤다.
“내 지시를 부회장님 지시처럼 생각해야 직장 생활 계속할 수 있습니다. 아직 그 정도 눈치도 없습니까?”
“아, 네.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허리 숙인 직원이 나가려 할 때 고모는 손을 들어 그를 세웠다. 그리고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내게 물었다.
“이제 직원들 군기도 잡는 거야? 하긴… 그럴 때가 됐지. 그런데 뭘 전해준 거야? 이 메모는?”
“다음에도 계속 초대장을 줘야 할 사람들 체크해서 준 겁니다. 구매 수준보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죠.”
“그래서 메모는 뭔데?”
“제가 직접 찾아갈 때 전달할 선물 목록입니다.”
고모는 리스트의 메모를 찬찬히 살피며 펜을 들어 뭔가 덧붙이거나, 찍찍 그어버리고 다시 끄적이기도 했다.
“이거 수정한 대로 준비해요. 그리고 진도준 실장 말대로 스케줄 확실하게 픽스하고. 진 실장 괜한 헛걸음하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또 한 번 허리 숙인 직원이 나가자 고모는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 도준이는 배우는 것도 빠르네. 선물 리스트가 꽤 적절해.”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여성 옷에는 목걸이, 남성 옷에는 시계. 필요한 걸 주는 거죠. 그런데 뭘 고친 겁니까?”
“목걸이와 시계 브랜드만 수정했어. 구매한 옷과 어울릴 만한 걸로.”
나보다 더 나은 점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걸까? 아니면 좀 더 싼 걸로 바꾸기 위한 변명일까?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 챙겨주려는 거지? 그렇게 힘쓸 만한 사람들은 아닌데?”
“공무원들이니까요. 공무원은 큰 실수만 없다면 올라갈 일만 남았습니다. 5년, 10년 뒤를 생각하면 괜찮은 장기 투자 종목이죠.”
초대장을 받을 정도라면 단순한 고위 공무원이라서가 아니다. 깜깜이 쇼핑을 즐길 만한 재력이 뒷받침하는 집안이다.
배경과 능력 있는 공무원은 최소한 정상 근처까지는 간다.
“이런 투자가 아니더라도 공무원은 순양 말을 잘 듣는 고양이야. 불필요한 데 돈 쓰는 거다. 오늘 추가한 선물만 해도 3억이야.”
“참, 그 돈은 제가 채워 넣죠. 앞으로 회사 돈 펑크 나는 건 절대 안 되니까요.”
“괜찮아. 이 정도는….”
“고모가 말했죠? 언제든 국세청이나 금감원이 덮칠지 모른다고요. 그 대상이 우리 순양유통일 수도 있습니다. 조심해야죠.”
“미리 준비한다…?”
“네. 지금 중앙 고위 관료들이 큰아버지들과 좋은 관계라면 5년 뒤는 우리와 좋은 관계의 사람들로 채워야죠.”
고모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빠가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생각은 아직 못 한 것 같다.
“고모. 큰아버지들은 저보다 더 가까운 관계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순양 이름을 단 유통 관련 계열사가 다 빠져나갔습니다. 유산 배분이니 포기하고 넘어가실 분들입니까?”
고모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이걸 다시 뺏으려고 작업 들어올 겁니다. 조심하지 않고 방심하면 한 방에 당해요. 고모가 왜 유통을 제 손에 고스란히 넘겼는지 생각해보세요. 몇천억 때문에 놓친 겁니다.”
“야! 그만해. 속 쓰리다.”
웃으며 말하지만 웃음은 길지 않았다.
“두 번 속 쓰릴 수는 없는 일이죠. 미리미리 우리를 지켜줄 방어막을 준비해야죠.”
아마 이번 F/W 시즌의 초대장은 두 번에 걸쳐 발송될 것이다. 전통적인 고객들 그리고 우리에게 방어막을 자처할 사람들, 이렇게 나눠서 말이다.
* * *
“혹시 진도준 실장님?”
“네, 사모님. 그날 인사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아니에요. 그 복잡한 연회장에서 어떻게 일일이 인사하나요. 마음 쓰지 않아도 돼요.”
사람 좋아 보이는 아줌마가 웃으며 반겼다. 이미 내가 누군지 아는 눈치다.
땅 투기로 일약 갑부가 된 아버지를 둔 이 아줌마는 현재 정책국장이라는 자리에 오른, 쓸모가 많은 남자를 남편으로 두었다.
직원들은 몇 개의 상자를 조심스레 거실에 내려놓은 후 멋들어진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예약하신 것과 맞는지 확인 부탁합니다.”
재빨리 청구서를 살펴보는 아줌마의 눈이 조금 커졌다. 오늘에야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알았고, 그녀의 계획보다 훨씬 많이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표정이다.
땅 투기로 재벌 못지않은 부자 아버지를 둔 그녀지만 뱁새는 뱁새일 뿐 황새는 되지 못했다. 속이 쓰릴 것이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작은 상자 두 개를 내밀었다.
“이건…?”
“부군 되시는 분의 정장을 구매하셨죠? 이건 그 정장에 어울릴 만한 시계입니다. 작은 성의니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공짜라면 뭐든 기분이 좋다. 특히 그 공짜 선물이 그녀가 구매한 옷보다 두 배 정도 비쌀 경우 그 기분은 수십 배 좋아진다.
“어머, 이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그녀는 이미 이 시계의 가격이 얼마인지 안다. 살짝 찌푸렸던 미간이 확 펴지며 입이 귀에 걸렸다.
“나랏일 보시는 분이니 주변에 눈이 많으실 테고… 가끔 기분 전환하실 때 쓰시라고 가져왔습니다.”
상자 안에는 가격표와 품질보증서 그리고 영수증까지 들어 있다. 영수증의 의미도 알 것이다. 뇌물이 아니라 구매한 것으로 둔갑시켰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뜻이다.
이 아줌마의 만족스러운 웃음은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나 다름없다.
이런 계약을 수십 명과 하느라 바쁜 날을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