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56
“어땠어? 눈치 좀 봐?”
“센 척하는 게 그 사람들 특징 아닙니까? 삼촌은요?”
“형식적인 질문으로 끝내더라. 진영기 부회장 부탁이니 시늉만 내는 티가 팍 풍기더라고.”
“그럼 고모만 남았네요.”
오세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진서윤 부회장을 먹잇감으로 뜯는 척하는데…. 이거 아무래도 훼이크 같아.”
“훼이크라뇨?”
“진영기 부회장이 노리는 건 여동생이 아니라 조카다.”
“나?”
“그래. 배경인 미라클을 들여다보고 싶은 거지.”
“순양자동차와 유통 그룹의 진짜 주인이 난지 아닌지가 궁금한 거군요.”
“그렇지.”
“그렇다면 지금쯤 금감원이 바쁘게 움직일 것 같은데….”
“그건 내가 알아보마. 뉴욕에도 조심하라고 일러둘 테니 별일 없을 게다. 멀쩡한 회사를 증거도 없이 조사하지는 못해.”
걱정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표정이다. 공권력이 꼭 증거를 확보한 다음 움직이는 건 아니다. 의심과 정황만으로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
어차피 한 번은 거친 바람을 맞아야 할 것 같았다.
대신 큰아버지도 흙먼지 정도는 뒤집어써야 속이 풀릴 것 같다.
오세현도 조금의 위협을 느꼈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도준아. 네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안 됩니다. 할아버지가 실망하실 일을 제가 하면 안 되죠.”
“실망이라니?”
“싸우다 한 대 처맞고 집에 와서 큰형 데리고 나가는 꼴 아닙니까? 그런 부탁을 하는 순간, 할아버지는 눈을 내리깔고 절 쳐다보실걸요? 집안싸움 아닙니까? 할아버지는 결과만 보실 겁니다.”
오세현이라고 줄이 없겠는가?
아니, HW 그룹의 고위직들은 전부 나름대로 검찰 쪽에 줄을 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인맥 위에 군림하는 것이 바로 순양이다.
순양그룹의 장남, 진영기 부회장을 털어보자고 말하면 모두 몸을 사릴 것은 뻔하다.
주류를 쥐고 흔드는 힘 앞에 기대할 것은 비주류들의 단합된 힘뿐이다. 정면 승부는 어렵지만, 게릴라전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강식 검사라고 했던가?
악착같이 살아남아 서울에서 근무하는 걸 보면 근성은 있어 보였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내가 준 명함빨이 식기 전에 연락할 텐데…. 소심한 놈인가?
* * *
“일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진 실장님.”
“아닙니다. 공무 보시는데 실례라니요. 그리고 저도 무례했습니다. 그냥 서로 퉁 치는 거로 하고 잊읍시다.”
“그런데 여긴…?”
이강식 검사는 실내를 휘휘 둘러보며 소파에 걸터앉았다.
“아, 얼마 전에 구입했습니다. 주변의 눈을 피하고 싶을 때 마땅한 장소가 없더군요. 좀 좁죠? 불편해서 어떡하나 이거….”
“좁다뇨? 제 아파트보다 큰 거 같은데요.”
여의도에 있는 대형 평수 오피스텔은 여러모로 쓸모 있겠다 싶어 하나 장만했다.
철저한 보안과 완벽한 사생활 보호를 홍보했기에 내 눈에 띄었다. 어쩌면 여의도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지은 건물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침대나 생활 가구가 없는 걸 보니 여기서 생활하시는 건 아닌가 보군요.”
“네. 그냥 카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참, 커피 드릴까요?”
“아, 그럼 한 잔 부탁합니다.”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뽑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참 대단하시더군요. 아직 대학생 신분인데…. 재벌가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까? 어릴 때부터 경영 수업을 받아서 일찍 시작하는 건가요?”
“아닌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재벌 3세는 사고만 치지 않아도 효자 소리 듣습니다. 전 금수저치고는 좀 성실합니다. 좀 특이하죠?”
“많이 특이하시더군요. 큰아버지들이 한껏 경계할 만큼.”
이강식은 나와 함께하는 것이 진심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배후를 슬쩍 털어놓았다.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슬슬 닫아야 할 것 같은데….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게 없죠?”
“실장님과 오세현 대표님은 현황 파악만으로 끝내라는 지시가 떨어졌어요. 남은 건 진서윤 부회장님뿐입니다.”
그 정도로 멈추는 걸 보면 검찰은 훼이크라는 게 확실하다.
“우리 고모, 참고인 출석 요구하셨습니까?”
“아직입니다. 페이퍼 컴퍼니의 자금 입출 내역을 조사하고 있는데, 제 소관이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머리를 슬쩍 긁는 거로 봐서는 지금은 자신이 그다지 쓸모없다는 걸 아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든 도구든 쓰는 사람 손에 달린 것 아니겠는가?
“이강식 검사님.”
“네.”
“남부지검에서 이 검사님과 아주 친한 분은 몇이나 될까요?”
“친한 사람이라….”
함께 나를 도와줄 검사가 몇이냐는 질문이다. 찰떡같이 알아들은 것 같다.
“몇 있습니다.”
“이 검사님과 그분들의 목표는 검찰총장입니까? 아니면 큰 사건 터트리고 여의도로 점프하는 겁니까?”
“목표라….”
이강식 검사는 쓴웃음만 보였다. 저 웃음의 의미도 안다.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연수원을 거쳐 검사가 됐을 때, 출세를 생각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하지만 이리저리 치이며 살다 보면 꿈은 사라지고 현실만 바라본다. 부장검사라도 거쳐 연고지에 변호사 개업이 가장 현실적인 목표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목표 바꾸면 안 되겠습니까?”
“목표를 바꾸라니요?”
“이건 어떻습니까? 거액 연봉의 변호사.”
이 검사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거액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재벌 3세는 단위가 다를 것 같습니다만.”
“검사장이나 고검장을 지낸 분이 변호사를 시작할 때, 첫해의 수임료. 이 정도면 거액 아닙니까?”
전관예우를 생각하면 최소 50억이 넘는다. 그의 눈이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사람은 내 계좌를 탈탈 털었다.
뉴 데이터 테크놀러지 주식으로 번 돈만 8백억이 넘는다. 그 돈은 아직 입출금 통장에 들어 있으니 돈에 대한 의심은 없을 것이다.
“그 정도 연봉을 받으려면 험한 일도 마다치 않아야겠군요.”
“험하고 위험한 일을 할수록 승진도 빠릅니다. 칼잡이는 칼을 휘둘러야 빛이 나고, 사냥개는 거칠게 물어뜯어야 함부로 대하지 못하거든요. 고분고분하면 호구 됩니다. 지금의 이 검사님처럼.”
자존심을 슬쩍 긁었지만, 입술만 깨물 뿐 화를 내지 않는다. 용기가 없어 고분고분했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안락한 미래만 보장된다면 찌르고 물어뜯는 것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검사 아닌가?
“칼을 써야 할 대상이 누굽니까?”
“아실 텐데요?”
“순양의 진영기 부회장. 맞습니까?”
“네. 하지만 물어뜯지는 않아도 됩니다. 그분도 주머니 속에 페이퍼 컴퍼니가 몇 개 들어 있습니다. 그거 조사하는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해요.”
“가능하면 은밀하게?”
“쓸 만한 자료 몇 개면 됩니다. 찌르는 건 제가 하죠.”
이강식 검사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전 한 달 뒤 청주로 내려갑니다.”
인사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소리다. 내게 부탁한다는 건 내 요구를 들어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달이면 아직 시간 많이 남았군요. 그 안에 쓸 만한 자료 찾아서 주세요. 그럼 남부지검에 남을 겁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기한은 한 달.
이강식 검사는 남은 커피를 쭉 마시고 일어섰다.
“시간이 촉박하니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참, 저와 함께 움직일 동료들을 데리고 일간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그때는 여기가 아니라 분위기 좋은 곳에서 술이라도 하죠.”
아직은 설익었지만, 사냥에 필요한 기본은 갖췄다.
남부지검에 비주류가 몇이나 되려나?
그리고 그중에 쓸 만한 칼잡이는 몇이나 될까?
* * *
“감사합니다, 아버지.”
“고생했다.”
진영기 부회장은 얼굴이 많이 그을린 아들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작은아버지께 인사는 드렸고?”
“네. 서울 도착하자마자 찾아뵀습니다.”
“잘했다. 이삿짐은 옮겼고?”
“필요한 것만 챙기고 가구는 직원들 나눠 줬습니다. 거제도 내려갈 때 산 거라 두 번 다시 쳐다보기도 싫더군요.”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거라. 전자 전략실에 자리 마련해 뒀다. 휴대전화 Brand Identity 구축이 지상과제니까 많이 배우고 제대로 준비해.”
진영기가 아들의 밝은 표정을 보며 덩달아 마음이 풀렸을 때 비서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부회장님, 손님 찾아오셨는데요.”
“기다리라고 해!”
진영기는 표정을 구기며 소리쳤다. 오랜만에 아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니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미리 당부까지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기다리지도 않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남자는 다름 아닌 진윤기였다.
“아, 작은아버지.”
진영준이 벌떡 일어나 머리를 숙였지만, 진윤기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랜만의 부자 상봉을 방해해서 미안한데, 좀 나가 있을래?”
“야! 너 왜 그래?”
진영기는 동생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지만, 진윤기는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다. 너도 들어 두면 나쁘지 않겠다. 앉자.”
진윤기는 소파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며 진영준을 향해 손을 까닥거렸다.
“큰형. 내가 왜 왔는지는 잘 알 테고, 여기서 멈추자. 남부지검이든 대검이든 지금 당장 연락해서 전부 덮으라고 해.”
진영준만 영문을 몰라 두 어른의 눈치를 보며 몸을 움츠렸다.
“우리 막내, 많이 컸네. 자세부터 달라. 이제 사장님 태가 물씬 풍기는구나.”
진영기 부회장은 시건방진 막냇동생의 태도에 울화가 치밀었지만, 아들 앞이라 최대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사돈댁이 언론사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걸 가족에게 써먹는 건 좀 비겁하지 않아? 검찰도 그래.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나뿐일걸? 누가 먼지 많은지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너도 보통은 아니던데? 연예계 가십거리로 싹 막았잖아. 좀 놀랬다. 흐흐.”
“그거? 시작일 뿐이야. 다시 말하지만 지금 멈추지 않으면 우리 큰형,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어주지. 이거 괜히 해보는 소리 아니야.”
동생의 경고에 진영기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나를? 가능하다고 생각해? 영화사 나부랭이 좀 만지며 사장 소리 들으니까 마치 거물이라도 된 거 같아? 까부는 건 여기까지다.”
“삼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좀 진정하시고….”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할 진영준이 끼어들자 진윤기는 조카를 노려보며 말했다.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하얏트 특실을 빌렸더구나. 무려 6개월간 장기 투숙으로 예약했던데, 그 방에는 누가 묵게 되지? 아나운서? 걸그룹? 아니면…? 아. 요즘 네가 푹 빠져 지내는 이경희?”
순간 진영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그 애 조심해야 할 거다. 차세대 청순가련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고등학교 때 가출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닳고 닳은 애야. 그 애 데리고 있는 매니지먼트사도 위험해. 조폭 출신이 사장이거든. 아 참, 그 애 마약에도 손댄 적 있는데 아는지 모르겠다. 혹시 너도 같이하니?”
진윤기의 입에서 엄청난 소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조심해라. 어쩌면 호텔 방에 몰카 설치해 놓고 너랑 떡 치는 거 전부 촬영해 놨을 수도 있어.”
“사…. 삼촌.”
진영준은 아버지가 들어서는 안 될 말까지 나오자 안절부절못하며 더듬기 시작했다.
“신인 여배우에게서 뽑을 수 있는 돈은 얼마 안 돼. 지금쯤 그 조폭 사장은 너한테서 어느 정도 거금을 뽑아낼지 상상하며 웃고 있을 거다.”
“그만해! 이 새끼야!”
참다못한 진영기가 소리쳤지만, 이미 전쟁을 시작한 동생은 거칠 것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