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6
축하연은 성대하게 열렸다.
일개 초선의원의 당선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니라 바로 총수인 진 회장에게 얼굴도장을 찍고 싶은 인간들로 득실거렸다.
연회장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입구에서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는 고모 진서윤에게 먼저 인사를 드렸다.
“누나. 축하해. 또 한 걸음 더 올라섰네.”
아버지의 뼈있는 인사말에도 고모는 마냥 기쁜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또, 또. 넌 왜 그리 삐딱해?”
가볍게 등을 한번 툭 치고 눈짓을 보낸다.
“네 매형 계시니까 인사드리고. 얌전하게 있다가 불편하면 슬쩍 빠져.”
“국회의원 부인이 되더니 아량도 넓어지셨어. 하하.”
웃음을 터트리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와 형 상준은 여전히 긴장한 얼굴이었다.
“축하드려요. 형님.”
“안녕하세요.”
어머니와 우리 형제의 인사를 받아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아, 상준 엄마. 나 하나만 부탁하자.”
“네. 말씀하세요.”
“당 지도부 중에 아주 중요한 분이 오셨는데 직접 인사 한 번만 드려줘.”
이때 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나,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웃음이라도 팔라는 거야?”
“여보!”
어머니가 아버지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괜한 분란의 피해는 언제나 어머니 몫이었기에 피하고 싶은 것이다.
“야! 그냥 그분이 상준 엄마 팬이었데. 그래서 아는 체 한번 하라는 거야.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 형님. 염려 마세요. 따로 인사드릴게요.”
어머니는 고모의 역정을 뒤로한 채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급히 연회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보. 별거 아닌 일에 욱하지 말아요.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한 줄 알아요?”
애처가인지 공처가인지 분간하기 힘든 아버지는 씩 웃으며 팔짱 낀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았다.
“알았어. 얼른 한 바퀴 돌고 우린 빠져나가자고.”
어머니의 당부 때문인지, 아버지는 계속 웃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파티의 주인공인 고모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당선 축하합니다, 매형. 어떻습니까? 검사보다 의원이 더 좋습니까? 하하.”
“고마워, 처남. 아직 알 수가 있나? 그리고 부장 검사에서 초선의원으로 강등된 거지. 이제 고생길이 훤해. 하하.”
나와 상준 형이 인사하자 고모부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이거, 주변이 환해지는 이유가 바로 처남댁 때문이군요. 어떻게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다워지십니까?”
“축하드려요, 고모부.”
나는 재빨리 어머니의 전신을 훑는 고모부의 눈길을 놓치지 않았다.
음침한 새끼.
써먹을 곳이 있을 것 같아 좀 친해지려 마음먹었는데 이 새끼는 당최 정이 안 간다.
“아 참, 처남. 잠깐 인사 좀 할 사람이 있는데 도와줘.”
“그렇지 않아도 누나한테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구길래 형님이 이렇게 눈치 봅니까?”
“6공의 실세야.”
“네? 6공 출범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실세가 나와요?”
“노태우 대통령의 오른팔이야. 이미 황태자에 등극한 분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목소리는 낮췄다.
“상준아, 도준아. 너희들은 맛난 거 좀 먹으며 여기 잠깐 있어.”
고모부는 부모님을 데리고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들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인파에 가려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이름이라도 들으려 했지만, 그것마저 방해꾼이 나타나 불가능했다.
“어? 강준이 형.”
낯익은 이름에 돌아서니 이제 중학생이 된 삼남의 아들 진강준과 그 여동생인 진영경이 서 있었다.
진영경은 나보다 딱 한 살 많은 누나다.
나는 웃으며 손을 들었다.
“누나 안녕.”
하지만 두 사람은 인사를 받지 못했다. 둘 다 나 때문에 부러진 다리가 떠올랐을 것이다.
“강준이 형. 다리는 괜찮아? 목발 짚고 다녔다면서?”
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강준의 다리를 이리저리 살폈다.
이런 내 모습에 치가 떨리는 듯 진강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남은 다리도 한번 부러져야 균형이 맞을 텐데…. 언제가 좋을까?”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내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잡아먹을 듯 노려보니 몇 초 견디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자리까지 피해버렸다.
역시, 겁 많은 놈이다. 오냐오냐 키운 부잣집 아들놈이 깡다구가 있을 리 만무하다.
“도준아. 너 왜 자꾸 강준이 형 건드려?”
두 사람이 도망치듯 사라지자 상준 형이 잔뜩 겁먹고 긴장한 채 말했다.
“형. 저 새끼한테 쫄지 마. 저 새끼 싸움 못 해. 깡도 없고. 앞으로 형도 저놈 밟아버려.”
나의 거친 말투에 상준 형은 눈만 껌뻑거렸다.
첫 번째 동맹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심지가 약하다. 이제 국민학교 6학년이니 조금 더 기다려 줘도 될성싶다.
중학생이 된 후, 혹독하게 단련시키면 되겠지, 뭐.
“뭐 좀 먹었니?”
누군가에게 인사를 끝내고 돌아온 부모님은 우리 손을 꼭 잡았다.
“어차피 눈도장 찍었으니 우린 가는 게 어때? 여긴 애들 먹기에는 적당한 게 없잖아.”
“아버님께 인사는 드리고 가야죠.”
“우린 아버지 못 봐.”
“네?”
뜻 모를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축하연을 핑계로 찾아온 정치인들과 밀담을 나누시고 계실걸? 이 호텔 특실에서 말이야. 아버진 이 파티에 참석 안 하셔. 어머니가 안 오신 것만 봐도 뻔하잖아.”
누가 뭐래도 이 연회의 주인은 국회의원 당선자다. 그룹 총수는 장인일 뿐이니 연회에 얼굴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그럴까요, 그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더없이 밝은 표정의 어머니가 다시 아버지의 팔짱을 꼈다.
두 분의 환한 표정에 상준 형도 팔짝 뛰었다.
“아빠! 맥도날드. 맥도날드 가요!”
이런 젠장. 나는 순양 호텔 중식당의 딤섬을 먹고 싶었지만, 한발 늦었다. 어린애를 형으로 데리고 있으니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80년대부터 치킨과 호프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1984년 KFC가 등장했다. 그리고 패스트푸드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올해 3월,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편에 1호점 문을 열었다.
서울에 딱 하나밖에 없다 보니 압구정동에 사는 애가 아니면 접근이 어려웠다.
이미 운전기사가 몇 번 달려가서 사 왔기 때문에 그 맛을 알아버린 상준이는 틈만 나면 노래를 불렀다.
“그럴까?”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며 확인했고 나도 애써 기쁜 표정을 지었다. 햄버거와 콜라를 싫어하는 어린이는 없어야 하니까 말이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연회장을 슬며시 빠져나올 때였다.
갑자기 아버지 앞을 가로막은 사내가 머리를 살짝 숙였다.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사내의 시선이 나를 가리키자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도준이?”
“네.”
“아예 애를 잡는구만. 그냥 못 찾았다고 말씀드려도 되지 않을까?”
“죄송합니다. 보는 눈이 많아서 거짓 보고는 좀 곤란합니다.”
사내는 다시 머리를 꾸벅 숙였다.
“아버지, 괜찮아요. 금방 다녀올게요.”
“아, 이야기가 길어지실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집에 데려다주신다고… 먼저 돌아가셔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숫제 나만 남기고 먼저 돌아가라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할아버지께 달려가 한소리 할 것 같았다.
“아버지. 맥도날드 가셔서 형이랑 맛있게 드세요. 전 여기서 저녁 먹을게요. 할아버지께 수제 햄버거 사달라고 할게요.”
내 말이 끝나자 아버지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아차 싶었다. 오해했음이 틀림없다.
내 입장에서는 진 회장과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는 것이 중요했고 맥도날드 햄버거보다는 호텔 요리를 먹는 게 훨씬 더 낫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모르는 아버지에게는 부모님을 위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진 회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억지 노력하는 것으로 비쳐질 것이다.
지금의 이런 오해는 어쩔 수 없다. 내가 어린이라는 탈을 벗을 때쯤 이런 오해를 풀어주면 된다.
나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짓고 돌아섰다.
* * *
직원이 안내한 방은 상상했던 로열 스위트가 아니었다. 일반실 정도의 크기였고 침대도 없는 수수한 방. 28층은 분명 로열층인데 이런 객실이 있나?
크고 둥근 탁자 위에는 나를 위해 차려놓은 갖가지 음식이 먹음직스럽게 식욕을 자극했다.
“이 방에서 저녁 먹으며 잠깐 기다려. 회장님은 일 좀 보시고 부르실 거야.”
직원이 나가자 나는 방을 한번 쓱 둘러봤다.
“어라?”
꽉 막힌 줄 알았는데 한쪽 벽에 약간 열린 미닫이문이 있다.
열린 틈새로 보니 진짜 로열스위트 룸이다.
아하, 여긴 스위트룸에 딸린 별실이구만.
이미 그곳에는 의자에 앉아있는 진 회장의 뒷모습이 보였고, 그의 등에 가려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단 굶주린 배부터 채웠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먹으며 옆방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으려 귀를 세웠다.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 그리고 북방 정책. 각하의 취임사에도 나온 말입니다. 의지가 대단하세요.“
“네. 저도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북방 정책은 바로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특히 소련과 중국, 이 두 나라와 수교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누굴까?
대화 내용으로 보면 분명 대통령의 최측근임이 분명한데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사실 지금 이 시대는 내게 있어서 아주 오래된 과거일 뿐이며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대략적인 흐름이 전부다.
“물밑작업은 당연히 박 의원께서 진행하시겠군요.”
“그렇습니다. 1차는 소련입니다.”
“소련이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통령의 측근이 이런 계획을 재벌 총수에게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게 아니다.
분명 어떤 요구가 있을 것이고 그 대가를 준다는 뜻이다.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제 냉전 시대는 끝났습니다. 오늘날의 외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경제죠. 상호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게 바로 최상의 외교 아니겠습니까?”
“중국은 그렇다 쳐도 소련은 우리보다 경제 대국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물건을 팔아먹고 싶은 곳이 소련입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소련의 1인당 GNP는 9,300$로 5,800$에 불과한 우리나라를 압도한다. 물론 5년 뒤에는 1/10로 폭락하지만.
“각하께서 순양의 진 회장님께 모든 걸 일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단지 각하의 의중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던진다.
정부의 큰 그림에 무조건 협조하라.
단, 협조하는 방법은 원하는 대로 맡긴다.
우리 할아버지는 여기서 어떤 대답을 할까?
누구나 채찍은 피하고 싶고 당근만 빼먹기를 원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내 귀는 더욱 문 앞으로 다가갔다.
“이거…… 굉장한 배려에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려. 허허.”
즉답을 피하는 건가? 아니면?
“우리 순양이야 저잣거리 장사치 아닙니까? 나랏일의 큰 그림을 어찌 짐작하겠습니까? 그냥 박 의원께서 알려주시면 따를 뿐이지요.”
어라?
설마 항복?
이럴 리가 없는데?
이미 순양호(號)는 정부 권력으로 뒤집을 수 있는 배가 아니다.
1위 재벌이 정권에 무릎 꿇는다면 2위, 3위 재벌도 피할 길이 없다. 재벌은 그들을 위협하는 정권에 맞서 언제든 강력한 동맹군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집단이다.
재계 1위라는 그룹의 위상은 바로 재벌의 대표선수다.
대표선수가 쉽사리 기권할 리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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