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71
“장도형 전무가 그러더군요. 숫자만 보던 사람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고. 도준이는 논리적 사고에 트레이닝 된 아이 아닙니까? 법대, 주식 차트, 금융 투자. 당연히 채권으로 굴러가는 카드사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겁니다.”
“채권 자체가 불확실하긴 하지. 더욱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사업일 때 더!”
진영기 부회장은 이민섭 사장을 유심히 보며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
“앞으로 험난하겠구먼.”
“부회장님. 이대로 보고만 있으실….”
“그만.”
진영기는 이민섭 사장의 입을 막았다.
“아버님 뜻입니다. 그분의 뜻으로 이렇게 나눈 지 겨우 두어 달 지났어요. 벌써부터 잡음이 나면 안 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뜻.
이민섭 사장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현업에 있다 보니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그룹 후계 구도 완성했지만, 언론부터 막은 아버님입니다.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하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순양그룹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는 걸 피해야 합니다.”
“네.”
이민섭 사장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같은 빌딩에 있는데 종종 놀러 오세요. 차나 한잔하며 세상 사는 이야기나 나눕시다. 지분 쪼갰다고 관계까지 쪼개서야 되겠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부회장님께서 내치는 게 아니라면 우리들이야 언제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민섭은 우리라는 단어에 더욱 힘주어 말했다.
이 의미를 눈치채지 못할 진영기도 아니었다.
이민섭 사장이 연신 허리를 숙이고 떠나자, 진영기는 즉시 비서실장을 호출했다.
그는 이민섭이 했던 말을 간추렸고 비서실장 백준혁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어떻게 생각해?”
“장도형 전무부터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요?”
“장도형이를? 왜?”
“그자가 했던 말입니다. 도준이의 뜻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죠. 장 전무도 야심 많은 자 아닙니까? 뭔가 꿍꿍이가 있어 이민섭 사장에게 흘린 걸 수도 있습니다.”
“장 전무 그놈이 왜 이런 짓을 하지?”
“일을 너무 잘하거든요. 하하.”
“뭐?”
“장도형 전무는 그 자리가 끝입니다. 절대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지 못해요. 순양생명의 모든 금융상품전략은 장도형의 머리에서 나옵니다. 그런 자를 승진시키면 실무에서 손을 떼게 되는데….”
“에이스 투수는 어깨가 망가질 때까지 마운드에 올려야지.”
“그렇습니다. 장도형은 순양생명의 제1선발이니까요.”
진영기는 순양생명과 장도형 그리고 순양카드에 대해 생각했지만, 곧 생각을 멈추고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을 선택했다.
지시.
머리 잘 굴리고 깊은 생각을 잘하는 아랫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지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진영기가 해야 할 일이다.
“장도형이를 한번 만나봐. 그놈이 뭘 원하는지 확인하고 내 손에 뭘 안겨줄 수 있는지도 확인해.”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 * *
“이민섭 사장이?”
“네. 새해 첫날인 어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진영기 부회장님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준이는?”
“장도형 전무만 만났습니다.”
“장도형이면 생명?”
“네.”
“노친네들이 저항을 시작한 건가? 새해가 되자마자?”
“현실적으로 다가왔겠죠. 새해 인사를 아들, 아니 손자뻘에게 가야 하니까요.”
“영감님들의 자존심 굽힌 인사도 거절하고 가장 젊은 장도형이만 만났다? 우리 똘똘한 조카가 어른들 모시는 방법이 아직 서툴구만.”
진동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부회장님. 뭔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진동기 앞에 앉아 있는 세 명의 남자.
그들은 진동기가 중공업 부문을 승계받은 후 새롭게 구성한 비서진이었다.
한 명의 머리보다 여럿의 머리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는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서였다.
“뭐가 수상하지?”
“이민섭 사장 정도라면 불만이 있으면 회장님께 뛰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진영기 부회장이라니요?”
“아버님께 가서 뭐라고 하지? 애새끼랑 일 못 하겠다고 배라도 쨀까? 그 양반들도 기댈 데가 없어 그런 거야. 형님과 나를 두고 잠깐 고민했겠지. 결과는 형님이었고.”
“부회장님. 이민섭 사장이 단지 불만만 털어놓았겠습니까?”
비서진들은 앞다퉈 질문과 의견을 쏟아냈다. 새롭게 시작한 만큼 자기가 더 똑똑하다는 걸 드러내고 싶어 안달인 모습이다.
사람이 평등할 수 없다. 세 명은 같은 직급, 같은 연봉을 받지만, 누군가는 떨어져 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앞서갈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불만 외에 뭐가 있지?”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손길을 내밀어달라고 요청하며 뭔가 제안했겠죠. 마냥 매달리는 것만 할 만큼 아마추어는 아니니까요.”
“흥미 있는 건 카드사 사장이 나섰다는 겁니다. 금융 계열사의 수장은 누가 뭐래도 순양생명 아니겠습니까?”
그룹 사옥에는 수많은 눈이 있다. 그 눈들은 누군가를 대신해서 관찰하고 즉각 알려주는 눈들이다.
새해 첫 출근에서 두 사람이 만난 건 이미 빌딩 전체에 퍼질 것이며 곧바로 후계자 문제로 수군댈 것이 뻔하다.
“의문만 제시하려고 모인 건 아니겠지? 그래서 결론은?”
세 사내는 눈빛을 교환했다. 합의를 보는 건지 눈치를 보는 건지 알기 힘든 눈빛이었다.
“장도형 전무를 만나보겠습니다.”
“장 전무를?”
“네. 장 전무도 순양생명입니다. 그가 이민섭 사장을 만난 게 자연스럽지는 않죠.”
“유일하게 도준이의 생각을 엿본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가 도준이에게 카드사에 대한 계획을 뭔가 들었으니 곧바로 이민섭 사장에게 달려갔겠죠.”
“장 전무가 아는 게 뭔지 확인하겠다?”
“네. 진영기 부회장님이 아는 건 우리도 알아야 하니까요.”
진동기는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는 건 예견했지만, 너무 빨리 와버려 입안이 쓰다.
두 어른이 어린 조카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한다니….
“그래. 조용히 접촉해봐. 소문 안 나게 조심하고.”
“네. 주의하겠습니다.”
진동기는 비서진이 빠져나간 다음 고민에 빠졌다.
동생인 윤기를 한번 만나봐야 하나? 아니면 조카를?
* * *
“두 형제분의 눈치 싸움이 참…. 이민섭 사장은 진영기 부회장만 만났는데 진동기 부회장 측이 먼저 접근하더군요.”
“같은 빌딩 안에서 얼굴도 안 마주치며 지내는데, 심어놓은 눈들이 얼마나 많길래…. 흐흐.”
“눈이라니요?”
“장 전무님. 순양 본사 임원 층에 여직원이 몇인지 아시죠? 그 여직원들 월급이 얼만지는 모르겠지만, 통장에 꽂히는 돈은 월급의 열 배는 될 겁니다.”
“그럼 제 비서도…?”
“장 전무님께서 따로 챙겨 주는 건 없죠?”
“가끔 야근할 때 택시비 정도는 쥐여주죠.”
“그런데 그 여비서 핸드백이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관심이 없어서….”
“그룹 핵심 임원들이 모여 있는 본관 20층 이상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을 유심히 한번 보십시오. 그녀들의 핸드백, 옷, 액세서리 같은 거요. 한 달 월급을 훌쩍 넘는 걸 가진 애들은 조심하시고요.”
퇴근 후 항상 자신의 책상을 정리한 여직원이다. 그간 자신이 남긴 메모, 업무 관련 서류 등을 전부 누군가에게 보고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자, 그건 이 정도로 넘어가고…. 우리 둘째 큰아버지 쪽에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처음엔 근황만 묻더군요. 대수롭지 않은 안부처럼. 그러다 결국 실장님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좀 버거워하신다고요. 흐흐.”
장도형 전무는 이런 음모의 짜릿한 맛을 느꼈는지 연신 재미있다는 미소를 보였다.
“딱 카드사 하나만 언급하기에는 뭔가 앞뒤 안 맞는 것 같아 증권사 외에는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눈빛이 달라지더군요.”
“그룹 지분을 순양생명이 잔뜩 쥐고 있으니 그런 거겠죠. 꼭 알려줘야 할 건…?”
“특히 원치도 않는 카드사 때문에 굉장히 고민한다고 넌지시 흘렸습니다. 차라리 중공업 계열사 한두 개 물려줬으면 미라클의 HW 그룹에 팔아먹을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더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장도형은 서류도 꺼냈다.
“이건 진동기 부회장님의 중공업 부문 계열사 목록입니다. 그중에 카드사와 교환할 만한 회사는 하이라이트 해놨어요. 기업가치만 따졌을 때 카드사와 동등하거나 조금 못 미치는 놈들입니다.”
오세현과 함께 이 목록을 놓고 논의해야겠다. HW 그룹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회사를 고르고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진영기 부회장 측은 잠잠합니까?”
“백준혁 실장이 다녀갔습니다.”
진영기 큰아버지의 오른팔, 백준혁 실장.
할아버지 댁에서 몇 번 얼굴만 스치고 지나간 인물.
뭐…. 천천히 알아 가면 되겠지.
“뭐라고 그럽디까?”
“꼬맹이 밑에서 재롱 피우지 말고 원하는 걸 말하라고 하더군요.”
에둘러 가는 사람이 아니었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찔러 대는 사람이 참모로 일한다는 건 좀 의외다.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백 실장은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했을까요?”
“제 욕심의 크기를 듣고 싶어 했겠죠. 거기에 맞춰 뭔가를 제안하려 했을 테니까요. 그 대신 실장님이 가진 걸 가장 손쉽게 뺏는 데 제가 앞장서야겠죠.”
나도 궁금하다. 이 사람의 욕심은 어느 정도일까?
“어떻게 대답하실 생각입니까?”
“그걸 실장님과 논의하고 싶습니다만….”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이 사람, 이제 실세로 보여지는 것 외에 내가 줄 수 있는 진짜를 듣고 싶어 한다.
아직 장도형 전무와 나는 계약서 초안만 있을 뿐 서로 웃으며 사인할 만한 최종 계약서가 나오지 않았다.
“순양 금융그룹 회장.”
“네?”
“장 전무님 명함에 찍힐 직책인데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부사장, 사장이 아니다. 회장이라는 건 아예 대형 계열사 전부를 맡긴다는 뜻 아닌가?
그는 당연히 내가 그 직책을 맡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말했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진심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을 것이다. 단지 어린 나이 때문에 한발 물러서 있을 뿐 언제라도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재벌가 중에 뒤로 물러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실장님. 진심이십니까?”
“그 정도 보상도 없이 어린 저와 함께할 생각이셨습니까? 그렇다면 저와 함께하겠다는 전무님의 마음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받는 것 없이 함께 어려움을 헤치고 걸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이미 순양그룹 최고 대우를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지금은 그 정도로 만족하시겠죠. 하지만 충분한 돈을 가지면 더 높은 것을 원하기 마련이죠. 권력이든, 이상이든 말입니다.”
장도형 전무는 신기한 생물을 보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뭡니까?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어서 말입니다.”
“제게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미라클 보이라고? 흐흐.”
여전히 놀란 장도형에게 경고의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 회장이라는 직책을 언제 얻게 될지, 또 얼마나 유지할지는 전적으로 전무님께 달려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 기준에 못 미친다면 회장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건 물론이고 임원 계약에 따라 즉시 해고합니다.”
“영원히 함께하자 같은 건 없군요.”
이젠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happily ever after를 원하세요? 그럼 당장 제주도 가셔서 전원주택 하나 사고 당근이나 키우며 사시는 게 나을 겁니다.”
“동화 같은 스토리는 꿈도 꾸지 마라…. 또 한 번 놀랍니다. 하하.”
“만족하셨습니까?”
“거절하면 제가 병신이죠.”
장도형은 벌떡 일어났다.
“백준혁 실장을 다시 만나겠습니다. 어떻게 말할지 방금 결론 내렸습니다.”
더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장도형 전무는 이제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