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72
“우리 가족은 이제 새해 첫날에 모이기도 어렵네요.”
“가족보다 일 때문에 모이는 게 우선이 돼버렸어.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지. 윤기 너도 마찬가지잖아.”
“형님께 드리는 새해 첫인사를 집이 아닌 사무실에서 해야 하다니.”
떡국 대신 커피와 치즈 케익을 앞에 둔 형제는 눈을 마주치며 씁쓸하게 웃었다.
“윤기야, 미안한데 내가 커피와 치즈 케익 사 들고 네 사무실로 온 건 새해 인사나 나누려는 게 아니다. 이것도 일 때문에 왔어. 일이 없었다면 너랑 나 언제 얼굴 볼지 몰랐을 거야.”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해야지. 명절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뵙는 게 예의잖아. 나도 이제 인사받는다고 첫날 다 보내고 보시다시피….”
진윤기는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넌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이런 네 모습이 보기 좋다. 형제가 너무 바빠 자주 못 보면 어때? 이렇게 일 때문에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럼 그 일이 뭔지 이야기해볼까? 나보다 훨씬 바쁜 부회장님이잖아. 흐흐.”
진윤기는 형님이 사온 케익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너 요즘 도준이와 자주 대화 나누니?”
“그 일이 혹시 도준이 문제야?”
“그래.”
진윤기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날 메신저로 쓸 생각 하지 마. 난 도준이가 내게 도움을 청할 때까지는 절대 끼어들지 않을 거니까.”
“내 말을 전하라는 게 아냐. 도준이가 내게 할 말이 있을 거다. 그걸 전해달라는 거야.”
“도준이가?”
“그래. 그룹에서 들리는 말로 도준이가 좀 힘겨워한다고 해.”
“뭐?”
“아버지가 도준이에게 억지로 회사를 떠맡겼다는 생각은 안 해봤지?”
진윤기의 주름진 이마가 펴졌다. 이젠 미소까지 보인다.
“형님도 이젠 눈치챘잖아. 도준이 욕심이 어마어마하다는걸. 아냐? 그런 애가 회사를 버거워해? 어림없지.”
“욕심 많다고 해서 불필요한 것까지 가지고 싶진 않아. 도준이는 순양그룹의 지분을 원했지 회사를 원한 건 아닐걸? 회사에 앉아 있는 노친네들을 매일 봐야 하는 건 고역이다. 나도 힘든데.”
부인하기 힘든 말이다.
공짜로 굴러 들어온 회사를 가지는 건 쉽고 즐겁지만, 그 회사를 경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도준이가 그래? 힘들다고?”
“글쎄, 그걸 확인해보라고. 나도 몇 다리 건너 들은 말이니까.”
“힘들다고 하면? 형이 가져가려고?”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네가 그랬어. 도준이를 위해 비싸게 팔겠다고. 난 그 약속 지킬 용의가 있어.”
진동기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은 채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비싸게 사줄 건데?”
“물건 보고 이야기해야겠지?”
“확인해볼게. 괜히 떠보는 게 아니길 빌어. 그랬다가는 앞으로 협상 대상에서 제외할 거니까.”
“이런 이야기 하는 거 많이 망설였다. 조카가 가진 걸 눈독 들이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그러니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라. 금융 계열사는 나도 꼭 필요해서 어렵게 말 꺼내는 거다.”
목돈이 뭉텅이로 움직이는 중공업 계열이니 간간이 유동성 자금 문제가 발생한다. 이럴 때 캐시를 채워줄 은행 같은 금융사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다.
“좋아. 불순한 의도가 없는 비즈니스. 그렇게 생각할게.”
볼일 끝낸 진동기가 케익을 집으며 웃었다.
“형제끼리 일 때문에 만나는 거, 나쁘지 않네. 흐흐.”
“일 끝내고 소주 한잔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진윤기도 형을 향해 환히 미소 지었다.
* * *
“큰아버지가요?”
“그래. 날 찾아왔더라. 무슨 일 있는 게야?”
좀 더 간절한 건 진동기 부회장인가?
아니면 전해 들은 말을 믿지 않기에 직접 확인하려는 것일까?
역시, 좀 더 신중한 분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까지 이용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있기는 한데, 그냥 모른 척하세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내게 말하기로 약속한 것 같은데?”
“어려움이 아니니까요. 큰아버지께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가 봅니다.”
“아니라던데? 그룹 내에 네가 힘들어한다는 소문이 들린다고 하더라.”
“소문이 사실일 때가 몇 번이나 있었습니까? 온갖 소문이 난무하는 곳이니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버지는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더니 슬쩍 웃음을 보였다.
“소문 퍼지기를 원한 것 같구먼. 알았다. 모른 척하마.”
이번 일은 장도형 전무가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순양카드라는 양질의 상품을 싸게 처분하는 거다.
이런 손쉬운 일도 버벅댄다면 그가 순양 금융 그룹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증거일 뿐이다.
* * *
“카드를 넘긴다고?”
“네. 대신 뭘 가져오는 게 HW 그룹에 도움 될까요?”
“순양전자.”
오세현은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삼촌. 설마 나 웃으라고 하는 말이에요?”
“HW에 도움 되는 건 그것뿐이다.”
“카드 주고 받아 오는 겁니다. 우리 큰아버지가 바보예요? 전자를 주게?”
“카드를 던지는 넌? 바보 아냐?”
어마어마한 수수료와 이자 놀이하는 회사를 던지는 것도 멍청한 짓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그 정도로 잔소리는 끝내실 거죠?”
“어쩌겠냐? 또 믿어보는 수밖에.”
오세현은 짧은 한숨 한 번 내뱉는 것으로 더는 말하지 않았다.
“양쪽에 오퍼를 냈으면 경매 붙여. 만 원 한 장이라도 더 쳐주는 쪽에 넘겨.”
“회사 하나 챙겨 오려고 했는데 급한 건 없나 보죠?”
“필요한 게 있으면 우리가 만드는 게 낫겠지. 차라리 순양그룹 지분은 어때?”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지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받아들일 리가 없다.
이때 벼락처럼 무언가가 내 머리를 때렸다.
왜 이리 안일한가?
무조건 내가 이기는 싸움이라고 해서 절박함마저 잊고 있다니?
진짜 필요한 건 순양그룹 지배지분이다. 계열사 한두 개 뺏는 게 내 목적이 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카드를 미끼로 지배지분을 가져와야 한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고 머리를 쥐어짜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네요. 카드 주고 지분 챙겨야겠어요.”
갑자기 달라진 말에 오세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너 진짜 네 큰아버지들을 바보로 보는 거냐? 가뜩이나 간당간당한 지분 구조인 거 몰라? 단 한 주도 내놓지 않는다고.”
“아뇨. 궁지에 몰리면 주식을 내놓습니다. 고모 보세요. 천사백억에 백화점 그룹을 내놓았어요.”
“그건 특수한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으로 만들어야죠. 내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했습니다.”
누가 더 욕심 많은지 확인해야겠다.
드러내놓고 순양그룹의 주인 행세를 하는 장남인지, 차분하고 신중하지만, 순양그룹을 이끌어 나갈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차남인지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어쨌든 욕심 많은 사람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 * *
“네? 교환이 아니고 팔아버린다고요?”
“그렇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만 원 한 장이라도 더 주는 쪽에 넘기라고요.”
“돈이 급한 건 아니라고 말씀하신 분은 바로 실장님이십니다.”
화폐를 찍어내듯 돈을 벌어들이는 곳이 카드사다.
미래가치를 생각한다면 인수자금은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이다. 순양그룹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해도 그 정도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거래 자체가 불발될 가능성이 더 크다.
“한번 말했다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건 어리석은 고집일 뿐입니다. 생각과 계획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대체 얼마에 넘기시려고 그러십니까?”
“글쎄요. 그 판단은 전무님께서 해보세요. 전 전무님의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또 테스트인가 싶어 장도형의 얼굴이 굳어졌다.
“판매가를 정하라는 게 아닙니다. 경매 시작가를 정하는 겁니다.”
“경매요?”
“네. 두 부회장님께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줄 생각입니다. 경매만큼 남자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게 드물지 않습니까? 게다가 경매 진행자가 어린 조카라면 아랫도리가 불끈 솟아오를 겁니다.”
“직접 나서시게요?”
장도형은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내 모습에 많이 놀란 것 같다.
“저도 곧 졸업입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기념으로 두 부회장님과 팽팽한 기 싸움 한번 해보고 싶군요. 두 분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하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장도형 앞에서 큰 웃음을 터트렸다.
“자, 경매는 시끌벅적해야 맛 아니겠습니까? 전무님은 언론에 슬쩍 흘리십시오. 순양그룹은 신용카드 사업에서 철수한다, 순양그룹에서 완전히 계열 분리를 한 다음 공개 입찰을 통해 회사를 팔아버릴 것 같다고 말입니다.”
일을 너무 크게 벌인다는 생각 때문에 이미 장도형은 사색이 되었다.
“뭘 그리 놀라세요? 아직 절 믿지 않는 겁니까? 이미 말했을 텐데요? 전 제 손에 들어온 걸 절대 남에게 뺏기지 않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잠시 맡겨 두는 것뿐입니다.”
하긴, 십 년 이상 곁에서 지켜본 오세현도 항상 불안에 떠는데 겨우 두어 달 나를 지켜본 장도형은 오죽할까?
거품 물고 쓰러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 * *
『순양그룹이 신용카드 사업에서 철수할 조짐이다. 익명의 관계자는 순양카드를 계열 분리하고 공개적인 매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까지 불리는 카드 사업의 철수가 어떤 전략의 일환인지 밝히지는 않았으나, 아직 신용카드 사업에 진출하지 못한 대현그룹이 인수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이, 이런 미친 새끼가…!”
이민섭 사장은 조간 경제면에 난 기사를 읽다 분통을 터트렸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죄 없는 신문만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진영기 부회장님께 지금 즉시 내가 만나잖다고 전해. 모든 스케줄 취소하더라도 날 만나야 한다고 말해. 긴급 상황이다.”
이민섭은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회신을 기다릴 여유도 없었다.
진영기 부회장의 집무실 문을 열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 사장 출근이 제일 늦네. 당사자 주제에 말이야.”
이민섭 사장은 자신을 노려보는 진영기 부회장의 눈길에 움찔하며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기사 보고 너무 놀라 정신을 가다듬느라….”
“뭘 그리 놀라요? 농담이요, 농담. 얼른 이리 와 앉아요.”
엉거주춤 자리 잡고 나서야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진동기 부회장과 백준혁 실장, 양우찬 생명 사장과 고인규 증권 사장까지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자, 모두 신문은 읽었을 테고….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 한번 논의해봅시다.”
진영기 부회장이 운을 뗐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양우찬 사장이 수습책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했을 뿐이다.
“이 기사, 사실일까요? 기자 놈이 어디서 헛소리를 주워들은 게 아닌지부터 확인해야….”
“양 사장님 감이 많이 죽으셨네. 이건 우리 쪽에서 흘린 겁니다. 목표물도 정확해요. 바로 나와 형님에게 던지는 제안서라고요.”
진동기 부회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제안서라니요?”
양우찬 사장은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순양카드를 비싸게 사라. 아니면 대현그룹에 팔아버리겠다…. 아시겠어요? 우리 똘똘한 조카가 무슨 생각인지?”
진동기가 소리치자 양우찬 사장은 얼굴을 붉힌 채 머리를 숙였다. 설마 그 꼬맹이가 이런 짓을 할 줄이야….
“이민섭 사장님. 어떻게 생각합니까?”
“네?”
진영기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민섭은 화들짝 놀랐다. 그 모습을 본 진영기는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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