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8
1980년부터 정부가 가정 연료의 고급화를 촉진하기 위한 가스 보급 확대계획을 수립하고 LNG 도입계획을 구체화하면서 수도권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다수의 민간 도시가스사업자들이 출현했다.
1986년 10월 31일, LNG 57,300톤을 실은 배가 처음으로 평택 인수기지에 도착하면서 도시가스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도시 가정의 에너지는 연탄과 석유에서 천연가스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소련은 유럽의 천연가스를 30%나 공급할 만큼 거대한 자원 강국이다. 오죽하면 외교의 필살기가 밸브 잠근다고 협박하는 것이겠는가?
이 황당한 협박은 효과도 엄청났다. 소련이 가스관 밸브를 닫으면 유럽은 추위와 암흑에 떨어야 한다.
이런 소련 정부가 자국 천연가스의 생산, 유통, 판매를 전담하는 ‘가즈프롬(Gazprom)’을 좌지우지한다.
가즈프롬은 이사회 임원 중 절반 이상이 러시아 정부의 장·차관 등 고위직을 겸하고 있는, 국영기업이기 때문이다.
순양이 소련의 천연가스 수입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가지고 민간 도시가스사업자들에게 공급한다면, 소련 가스관의 밸브를 손에 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독점권만으로 엄청난 돈을 이익을 뽑아낸다.
순양은 현 정부의 북방정책에서 얻어야 할 목표는 일찌감치 세워 놓았던 것이다.
“그래. 그 건은 알아서 처리하고… 그보다 학재야.”
“네. 회장님.”
“어떻게 생각해?”
회장의 눈짓이 별실을 슬쩍 가리켰다.
“도준이 말씀이십니까?”
진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학재 비서실장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떡잎은 좋습니다.”
“떡잎만?”
“판단은 10년 뒤에 하겠습니다. 훌륭한 떡잎이라도 태풍 한 번에 뿌리째 뽑히니까요.”
“도준이 애비 이야긴가?”
진 회장은 뿌리째 뽑혀 날아간 훌륭한 떡잎이 떠올랐다.
“하긴 윤기도 영국 유학 가서 변해버렸지. 꽤 쓸 만했는데 말이야.”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하지만 이학재 비서실장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더 나쁜 의견까지 말했다.
진 회장에게 어떠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측근이기 때문이다.
“예술가 기질이 넘치는 아버지와 여배우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도준이입니다. 어쩌면 급격하게 변해버릴 가능성이 가장 큰 조건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도준이 애미는 그냥 미인이야. 얼굴로 배우가 됐다고 봐야지. 딴따라 기질은 없어.”
어떤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멈췄다. 사람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은 회장이니 옳을지도 모른다.
이학재 비서실장은 다시 도준이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회장님의 지나친 총애가 일견 이해할 만하더군요. 영특합니다.”
“아까워. 너무 어려. 저놈이 장손이었다면 정말 든든했을 텐데.”
목소리에서 절절한 안타까움이 묻어날 정도였다.
“회장님께서 오랫동안 건강하시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도준이 위로 사촌만 몇 명이야? 그리고 큰아버지 셋에 큰고모까지. 무리야.”
가벼운 한숨과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말해준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시간을 앞당길 수단은 되지 못한다.
“지금처럼만 커 준다면 계열사 몇 개는 맡겨도 되지 않을까요? 맡은 회사를 크게 키운다면 그것도 복 아니겠습니까?”
“몇 개 던져주면? 자식놈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어. 늑대처럼 달려들어 발기발기 찢어 나눠 가질 거야.”
귀여운 강아지가 가진 맛있는 고깃덩이를 늑대들이 보고만 있을까? 귀여운 강아지를 지켜줄 아버지가 고깃덩이에 관심이 없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진 회장의 세 아들과 외동딸이 어떤 인간인지 아는 이학재는 자신의 생각이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자네는 어떤가?”
“네? 무슨 말씀이신지…?”
“만약 10년 뒤에도 도준이가 영특함을 유지한다면 자네는 누구 편을 들겠나? 장손인 영준이? 아니면 도준이?”
이학재 비서실장은 진 회장의 의도를 명백히 알아챘다. 막내 손자에게 부족하지 않을 만큼 회사를 물려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어린 막내 손자의 호위무사로 자신을 지명한 것이다.
“누가 되든 전 순양그룹 회장님 편을 들어야죠.”
이학재가 싱긋 미소 지으며 말하자 진 회장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태도가 좋았다.
생각과 행동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그 의지가 회장인 자신의 의자와 착착 맞아떨어졌기에 남들에게는 충성으로 보일 뿐이다.
“내 뒤를 이은 회장이라는 인간이 자네보다 멍청해도 지금 나를 대하듯 모실 수 있을까?”
“촉국의 제갈공명도 저능아 황제를 충심으로 모셨습니다.”
“저능아니까 모신 게지. 허수아비 하나를 앞에 두고 스스로 황제 노릇을 했으니까.”
“너무하신데요? 제갈공명의 충성심을 그렇게 깎아내리시다니. 하하.”
이학재가 웃음을 터트렸지만 진 회장은 웃지 않았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급히 웃음을 멈춘 이학재가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뭐가?”
“도준이를 그 정도까지 생각하고 계시는지 몰랐습니다.”
이학재는 냉담한 얼굴, 철면이 드러난 진 회장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 머리를 들지 못했다.
“도준이가 괜찮은 그릇으로 성장한다면 자네가 좀 돌봐줘. 회사 서너 개를 계열 분리해서 물려주면 내 자식놈들이 뺏으려 들 거야. 그것만 막아.”
“명심하겠습니다.”
그제야 진 회장이 굳을 얼굴을 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나보다 먼저 죽지 말라고! 술 담배 좀 줄이고, 휴가도 좀 챙겨 먹어.”
“회장님 모시고 해외 출장 가는 게 휴가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학재는 아직 긴장을 풀지 못했다.
오늘의 실수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 같은 불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 * *
아델 로리 블루 애드킨스(Adele Laurie Blue Adkins)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가 영국 런던 북부에 위치한 토트넘의 한부모 가정에서 태어난 1988년 5월 5일, 진양철 회장은 모든 핏줄과 수행원들에게 둘러싸여 아직 개장하지도 않은 서울랜드로 소풍을 갔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서울랜드의 정식 개장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다.
개장 준비 막바지 작업으로 한창 정신없을 시기인데 우리 일가를 위해 다수의 직원이 대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작 25명이지만 순양 그룹의 스탭진과 서울랜드의 직원을 합치면 백여 명이 넘는다.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들은 진짜 이기적이다. 일가 중에 그나마 인간미가 넘치는 나의 부모님도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아예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수많은 그룹 수행원들도 대부분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을 것이다. 연령대를 보면 분명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린 가정의 가장도 수두룩하다.
저들은 과연 어떤 심정일까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은 있을까?
오직 나만이 저들의 심정을 안다.
비록 회장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지만, 저들의 머릿속에는 엄마와 단둘이 보내는 자식들 생각만 꽉 차있을 것이다.
저들이 가족에게 느끼는 죄책감과 자식들의 상처.
그 대가로 우리가 이처럼 편히 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내 눈으로 직접 보자 도저히 즐거운척할 수 없었다.
“도준인 별로 재미 없나 보지?”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와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넨다.
누구지?
어디선가 본 듯, 낯이 익다.
“난 네 할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야.”
“계열사 사장님이신가요?”
“뭐? 하하. 이거… 어쩌지? 아직 사장님은 아냐. 비서실장이지. 한참 낮은 직책이야.”
비서실장? 설마 그 양반인가?
“혹시 성함이…?”
“오호! 예의 바르네. 성함이라는 말도 쓸 줄 알고. 그렇지, 내가 네 이름을 아니 너도 내 이름은 알아야지. 난 그룹 비서실 실장인 이학재라고 해. 도준이 아버지가 날 형님이라고 부르거든? 그러니 넌 날 백부님이라 불러. 이름 부르지 말고. 하하.”
천천히 옮기던 발걸음을 멈췄다.
진 회장이 장남인 진영기보다 더 장남처럼 대했다던 그 사람이다.
직책은 실장이었지만 직급은 사장이었고 순양의 핵심인 전자, 자동차 사장보다 한 등급 위라고 알려졌던 인물이다.
어떤 사안이든 이학재가 거부하면 진 회장도 무조건 거부했고, 진 회장이 승인한 사안이라도 이학재가 두세 시간 독대하면 회장이 승인을 철회한다고 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자였다.
2세 승계구도가 끝날 무렵, 그러니까 진영기가 회장에 취임하자 스스로 사직서를 던지고 은퇴해 버려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적다.
소문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첫째는 진영기 회장이 그를 붙잡았는데 구시대의 인물은 세상이 바뀌면 물러나는 게 순리라면 그룹 고문 자리까지 마다하며 스스로 그만뒀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두 번째는 많이 달랐다.
진영기가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학재의 뒤를 털었다는 것이다. 그가 진양철 회장의 차명 주식을 어마어마하게 쥐고 내놓지 않자 그의 비리를 까발릴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학재 역시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도 진 씨 일가의 불법, 탈법 증거를 한가득 양손에 쥐고 순양 그룹에 불 지를 수 있다고 큰소리치자 진영기가 백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이학재가 차명 주식을 쥐고 있는지는 영원히 알 길이 없게 되었고 공식적인 발표는 엄청난 퇴직금을 품속에 넣고 물러나는 것으로 끝났다.
바로 그 전설적인 인물이 내게 백부라고 부르라 한다.
“네. 백부님.”
한자한자 힘주어 백부라 불렀다.
세상이 두 쪽 나더라도 이 자를 강력한 나의 우군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넌 놀이 기구 안 타니? 어른들도 저렇게 좋아하는데 말이야.”
이학재가 가리키는 곳에 내 또래의 사촌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까지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백부님은 좋아하지 않는 다른 어른은 안 보이시나요?”
“다른 어른? 누구?”
나는 아무 말 없이 이학재가 가리킨 곳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이학재는 미간을 찌푸려가며 그곳을 한참보다 내게 시선을 돌렸다.
“누구? 아무도 없잖아.”
역시….
이 사람도 이미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자신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완벽한 집사로서 머슴과 하인을 발아래 두다 보니 자신을 주인의 신분까지 격상시켜 버린 듯 보인다.
“일하는 어른들 말이에요. 안보이세요?”
순간 이학재의 눈이 커졌다.
나 역시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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