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86
탕-!
“이, 이봐! 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주광식 회장은 잔이 깨질 만큼 세차게 내려놓으며 소리를 질렀다.
“순양전자 주식 2%? 주가 차이가 얼만지 모르고 하는 소리야? 아니, 가격은 둘째치고 2%나 되는 주식을 내가 어떻게 긁어모아?”
“순양전자의 어제 종가가 22만7천 원, 대현자동차 2만1천 원인 건 압니다. ”
“알면서 그따위 헛소리야? 무려 10배의 차이라고!”
이 아저씨, 아직 멀었다.
물건의 가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다수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기꺼이 거래하는 가격을 우리는 흔히 ‘시중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더해진 물건이라면, 시중가로 가격을 매기는 건 멍청한 짓이다.
시중가 5백만 원에 불과한, 그리 귀하지 않은 도자기를 10배의 돈을 주고 사들인 사람도 있다. 단지 그의 선조가 남긴 유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주가라는 것은 시중가일 뿐이다.
내가 순양그룹을 차지할 수 있다면 거래가의 10배, 아니 100배라도 순양전자의 주식을 사들일 용의가 있다.
“숙부님. 하나만 묻겠습니다.”
그는 말없이 거친 숨을 진정시켰다.
“순양전자와 대현자동차, 어느 회사를 원하십니까?”
“…….”
아무 말 못 하는 걸 보니 단번에 알아들었다.
대현그룹을 차지하려는 그에게 대현자동차의 주식은 내가 순양그룹을 차지하는데 필요한 순양전자 주식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
일반인에게는 스무 배의 차이가 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에게 주력 회사의 주식이란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기 위한 계단이다.
“조카님. 내가 순양카드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큰 도움이 됐을 텐데?”
할 말이 없으니 생색내겠다는 건가?
“숙부님께서 위장 전술로 쓰신 거죠.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겁니다.”
“퉁 치자는 말이구먼, 좋아. 하지만 스무 배는 너무했어.”
“형님이신 주태식 회장님은 어떨까요? 스무 배가 비싸다고 하실까요?”
생각할 필요도 없다. 경영권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가격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주광식이 더 잘 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순양전자 지분 2%를 구하려면 증권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주식 전부를 싹쓸이해야 해. 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바는 아니겠지?”
이런, 예상보다 쪼잔하다.
이럴 때는 방법이 어떻든 간에 구해주겠다고 먼저 대답하는 게 맞다. 그런 다음 구할 방법을 함께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주광식 회장은 계속해서 부정적인 말만 쏟아 놓는다.
어쩔 수 없이 내가 해결 방법을 제시해야 하나?
“급할 필요 있습니까?”
“응? 무슨 뜻이지?”
“2%의 대현자동차 주식은 제가 잘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당장 필요하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굳었던 얼굴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필요할 때 넘기겠다?”
“역습을 하시려면 많은 준비를 하셔야 할 테고, 무기는 숨길수록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군. 서두를 필요가 없어.”
“마찬가지로 순양전자 주식도 천천히 모으세요. 서로 필요할 때 바꾸면 됩니다.”
“우리 조카, 장사 잘하네. 스무 배나 남겨 먹다니!”
“귀한 무기를 돈으로 바꿀 생각은 없으니 그리 남는 장사는 아닙니다. 하하.”
우리는 와인잔을 살짝 부딪치며 거래 성사를 축하했다.
“그런데 우리 조카님은 순양그룹을 차지할 자신은 있어?”
“일단은 목표입니다. 자신?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그 가능성이 굉장히 낮죠.”
“대범하다고 해야 하나? 그 욕망을 이렇게 막 드러내도 돼?”
“다른 분들은 욕망이 아니라 과욕쯤으로 여기니까 괜찮습니다.”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능력이 받쳐주면 욕심은 목표가 되는 건데….”
“과찬이십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나는 어때?”
“네?”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조카님이 보기에 말일세. 내가 대현의 주인이 될 것 같은가?”
언감생심, 미안하지만 당신은 변방으로 쫓겨나.
장남인 주태식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대현자동차를 글로벌 탑5까지 키우는 사람이다.
단순하고 무식하다는 세간의 평가가 맞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장점이 있다. 수만 명 대현자동차 직원들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여 마침내 생산량 기준 세계 5위의 기업을 만들 사람이다.
그런 대현자동차를 등에 업고 결국 쪼개진 대현을 전부 되찾는다.
난 내 앞에서 밝게 웃는 주광식을 위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미래가 조금이라도 변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어째서? 가망이 없어 보이나?”
“정확히 아는 게 없으니까요. 숙부님 그리고 형제분들이 어떤 사람인지, 현재의 지분구조는 어떤지, 레이스에 참여한 분들의 의지는 어느 정도인지…. 데이터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투자한 경험 때문인가? 참 이성적이구먼.”
주광식은 바닥이 보이는 와인을 말끔히 비웠다.
“하나는 명확하지? 나와 조카님은 서로를 돕는 관계라는 것. 아닌가?”
“돕기보다는 우호적이라는 게 더 적합하지 않나요?”
“끝까지 냉정하군. 조부님을 많이 닮았어. 좋아, 적이 아닌 것만 해도 큰 수확이지. 하하.”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는 그를 보자 조금은 안쓰럽다.
정확한 시점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수백억 원대의 횡령 사실을 주태식 회장이 까발렸고 그 때문에 몇 년 옥살이한다.
그리고 계열사 하나 정도를 건졌는지, 무일푼으로 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목표가 있고 욕망을 불태우는 주광식 회장의 절정기는 안타깝게도 짧다.
* * *
“명분을 주십시오.”
“명분?”
“네. 제가 경매 붙여 가격이나 올리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남도 아니고…. 인수금액은 적정 기업가치 정도면 만족합니다.”
분명히 반가운 말일 텐데 진동기 부회장은 표정의 변화가 없다.
세상에 공짜 밥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다.
“왜? 입찰가가 높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자신 있으십니까?”
“뭐?”
“순양전자의 사내 유보금은 어마어마합니다. 제가 장담하지만, 큰아버지는 순양카드의 가치보다 훨씬 높은 돈을 제시할 겁니다. 절대 못 이기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순양카드를 내게 넘기겠다는 생각을 굳힌 거지?”
“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무서워서요.”
“무서워? 뭐가?”
뜻밖의 대답에 진동기의 눈빛이 달라졌다.
“장남이니까 순양그룹은 당신 것이라고 늘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카드사를 가져가면 그 생각은 더욱 굳어질 테고, 종국에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제가 물려받은 회사 전부를 가져가실 겁니다.”
“형님께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 두렵다?”
“네.”
진동기 부회장은 내 모습을 유심히 살피다 슬쩍 미소 지었다.
“나는? 순양 가의 두 아들이 그룹을 놓고 크게 한판 벌일 것이라는 걸 세상 사람들도 다 알아.”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지만, 차이가 있더군요. 한 분은 순양그룹을 소유하려 들고, 한 분은 경영하려는 의지가 보입니다. 전 안전한 쪽을 선택하는 것뿐입니다.”
“경영이라….”
“아닙니까?”
“잘 못 봤다. 나도 순양그룹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형님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솔직하시네요.”
“하지만 다른 점도 있어. 적어도 난 대기업 총수라는 자리를 아주 무겁게 생각하니까. 고작 중공업 계열만 짊어진 지금도 두렵다.”
이 사람이 순양그룹을 차지했다면 내 과거가 달라졌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보며 쓴웃음이 날뻔했다.
오십보백보다.
명심하자. 이들에게 조금의 호감도 품어서는 안된다.
언젠가 전부 축출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키워서 잡아먹을 돼지에게 정을 주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렇다고 다 내려놓으실 건 아니잖습니까?”
“당연해. 그럴 수는 없지.”
“그럼 결론 났군요. 제가 카드사를 넘길 만한 명분만 주시면 힘을 실어드리겠습니다. 만약 명분이 약하다면 두 분 큰아버지가 아닌 제삼자에게 아주 비싸게 팔겠습니다. 이미 선수도 등장했으니 말입니다.”
“대현 말이냐?”
“네.”
“그쪽으로 넘기면 할아버지께서 널 미워하실지도 몰라.”
“아주 잠깐입니다. 전 할아버지 마음 돌리는 법을 잘 압니다.”
“진즉에 알았다. 네가 가장 위험한 놈이라는걸.”
진동기 부회장은 허탈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뭘 해도 명분은 없어. 가장 좋은 명분은 이 집안의 장남에게 계열사를 넘기는 거지. 차라리 돈으로 하자.”
“돈으로 안 되실 겁니다.”
“아니, 돼.”
“어떻게 말입니까?”
진짜 궁금하다. 중공업 계열의 유동성 자금이 취약해서 카드사를 원하는 게 아닌가? 현금 동원력은 순양전자가 월등하다. 절대 이길 수 없다.
“적정가가 1조4천억이라고 했지?”
“네.”
“3년 만기 채권이고?”
“두 번 확인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한번 뱉은 말은 꼭 지킵니다.”
“거기에 1천억을 더 얹어주마. 그건 외상이 아니라 인수 조인식 하는 날 바로 현금으로 주마. 어떠냐?”
이 양반, 머리가 둔한가? 아니면 진정한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둔한 걸까?
동생이 현금 1천억을 제시했다면 형님은 곧바로 2천억을 배팅할 사람이다. 진영기 부회장은 절대 돈으로 밀리지 않는다.
“정확히 말씀해 주십시오. 1천억은 뭡니까?”
“오, 역시 우리 도준이다. 평범한 1천억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어? 하하.”
큰아버지는 한바탕 시원하게 웃은 뒤에 설명했다.
“꼬리표도 없고 출처도 없는 돈. 어디에 쓰더라도 절대 탈이 안 나는 돈.”
비자금이구나.
탈이 안 난다는 건 말끔하게 세탁한 돈이라는 뜻 아닌가?
뇌물로 쓰더라도 계좌 역추적이 불가능해서 딱 잡아떼기만 하면 되는 돈이다.
“형님은 절대 개인 재산을 내놓지 않아. 순양카드를 인수하기 위해 2조 원을 쓰더라도 회삿돈이지. 너도 네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오든 함부로 쓰기 힘들어. 국세청 애들…. 무섭다.”
“이런 차이가 있군요.”
“응?”
“두 분 큰아버지 사이에 말입니다. 1천억을 모으려면 수조 원의 회사 자금을 굴리고 또 굴려서 아주 힘들게 장만하셨을 텐데…. 그걸 턱 하니 내놓으시다니.”
“내가 상대적으로 욕심은 좀 덜해.”
욕심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급하냐의 문제다.
쌈짓돈까지 꺼내야 할 만큼 급하다는 말인데…. 진동기 부회장이 맡은 중공업 계열의 경영 상황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겠다.
“아무튼…. 앞으로 너도 태그 뗀 돈이 필요할 때가 올 거다. 그때는 미라클에 묻어둔 네 돈은 무용지물이야. 완벽하게 세탁한 돈이라야만 돼.”
그런 돈이라면 차고 넘친다.
미국 미라클에 묻어둔 내 돈을 네덜란드 시골에 존재하는 수많은 페이퍼 컴퍼니에 투자한 다음 손실처리 해버리고, 다시 스위스 어느 곳에다 묻어두면 비자금이 완성된다.
하지만 무시하고 뿌리치기 힘든 제안이었다.
카드 대란으로 현금이 씨가 마르면 내게 준 비자금 천억 원이 아쉬워 발을 동동 굴릴 테니까 말이다.
“큰아버지. 생각할 시간을 조금 주시겠어요? 사나흘 정도만요.”
“물론이다. 오세현에게 비자금 천억 원의 가치를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지. 그자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거다.”
진동기 부회장은 자신만만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자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웃음이 났다.
일타삼피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걸까?
폭탄도 터트리고 쌈짓돈도 뺏았는다. 마지막으로 그가 넘길 비자금 천억 원을 역추적하면 그의 비리 장부까지 내 손에 쥐게 되니 일타삼피가 확실하다.
진영기 부회장도 동시에 엿 먹여야 하는데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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