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89
“생각하시는 그거 맞습니다. 급하지도 않은 돈 천억을 굴리는 것과 언젠가 확실한 무기가 되는 해외 계좌. 길게 생각할 것도 없죠. 쥐고 있는 게 맞습니다.”
“그게 무기가 될까?”
“네. 큰아버지 말씀으로는 돈을 인출하거나 옮기는 순간 구 계좌는 삭제된다고 하더군요. 남겨 둬야 필요할 때 써먹습니다.”
“단지 계좌만으로는 무기로 써먹지 못할 텐데?”
“조치해 뒀습니다. 나중에 말씀드리죠.”
오세현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말로는 이자 운운했지만 천억을 증시에 굴린다면 얼마나 큰 수익을 거둘지 계산하기 때문이다.
“삼촌. 곧 어마어마한 기회가 옵니다. 천억 정도는 푼돈으로 여겨질 만큼 말이죠.”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그러니 천억 묻어두는 걸 아쉬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하.”
이런 일을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닌 오세현이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그래. 그 어마어마한 기회를 기다려 볼게. 참, 내일 몇 시 비행기냐?”
“아무 때나 가면 됩니다. 항공기 하나 빌렸거든요.”
“뭐?”
“뭘 그리 놀라세요? 나한테는 택시비 수준 아닙니까? 이왕 쉬러 가는 거 궁상떨지 않을 겁니다.”
* * *
항상 과묵하게 조용히 내 곁을 지키던 순양시큐리티 직원들도 유명한 해외 휴양지와 전세기라는 것에 들떠 보였다.
내색하지 않고 참으려 무던히 애를 쓰지만, 그들은 눈은 계속 웃었고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영종도 신공항은 아직 제1, 2 활주로와 여객터미널 그리고 화물터미널이 전부였지만, 김포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깔끔한 청사가 이용객을 반겼다.
이미 연락받은 항공사 직원이 우리 짐을 모두 챙겼고 전세기 고객 전용 게이트로 안내했지만 난 일반 게이트를 이용하겠다고 고집부렸다.
“볼일이 있어 그러는 거니 신경 쓰지 마세요. 볼일 끝나고 전화하겠습니다. 그때 오세요.”
여기까지 와서 사업장을 둘러보지 않는다는 건 직무유기다.
당황한 항공사 직원을 돌려보내고 천천히 출국장으로 나갔다.
처음으로 VVIP의 호사를 누려보나 기대했던 경호팀의 얼굴에 실망이 스쳤지만, 조용히 내 뒤를 따르며 좌우를 살폈다.
나, 젠장, 조금 쪽팔린다.
경호팀 복장을 미리 말하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관광객 차림으로 오라고 해야 했는데….
나 혼자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쳤는데 내 주위를 시커먼 정장 차림 사내 여섯이 둘러싸고 있으니 공항의 모든 시선이 쏠렸다.
출국 심사를 끝내고 그들을 불러모았다.
“이러면 내가 볼일을 못 보니까 좀 떨어집시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만일의….”
“출국 심사까지 끝냈습니다. 국가 기관에서 소지품 검사 다 했고 몸에 붙은 쇠붙이까지 체크했어요. 아무 일 없을 테니까 내 말대로 해요.”
총구를 바닥으로 향한 국제공항경찰대 요원들이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들의 모습을 본 경호팀은 헛기침하며 물러섰다.
“자자, 흩어져서 쇼핑이라도 해요. 여기 널린 게 면세점입니다. 제가 다 처리해줄 테니까 카드로 막 긁으세요. 명품 시계든 핸드백이든 마음 놓고 질러요.”
“아,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이들의 급여가 평범한 순양그룹 직원의 몇 배가 넘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기백짜리 명품을 카드로 긁기에는 부담스럽다는 것도 안다.
“특별 인센티브라고 생각하고 쓰세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경호팀을 떼놓고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향한 곳은 바로 순양백화점에서 운영하는 순양면세점이었다.
값비싼 명품관은 찾을 필요가 없다.
그 화려하고 럭셔리한 매장은 카드 한도나 잔고가 빵빵하지 않는다면 발을 디디기도 부담스럽다. 그러니 명품 매장을 자연스럽게 둘러보는 고객은 언제라도 카드 긁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원단과 재봉질 값이라고 해봤자 만원이면 뒤집어쓸 손가방 하나를 기십만 원, 심지어 기백만 원에 파는 곳이니 당연히 친절하다.
진가는 바로 몇만 원 혹은 십여만 원의 적은 돈으로 쇼핑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잡화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가격도 물어보고 제품을 착용하기도 하며 뭔가 고쳐야 할 점을 찾아봤지만, 드라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나같이 친절했고 부담스러울 만큼 자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아무래도 불시 점검이라는 것을 하기에는 시기가 맞지 않은 듯하다.
신공항을 오픈한 지 겨우 석 달, 소위 군기가 바짝 든 상태 아닌가? 흠이라면 과잉친절? 이 정도가 전부였다.
면세점을 나오니 경호원 둘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쇼핑하시라니까. 왜 지켜보고 있어요?”
“번갈아 가며 쇼핑하면 됩니다. 실장님을 혼자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럼 전 공항 라운지에 가 있을 테니 두 분도 쇼핑 실컷 하고 오세요. 다 모이면 출발합시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경호원의 급한 연락에 달려온 항공사 직원은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로 안내했다.
“죄송합니다. 전세기 이용 고객님을 위한 별도의 라운지는 준비 못 했습니다.”
“괜찮아요. 전세기 타는 사람이 공항에서 시간 때우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 네. 바로 그렇습니다. 보통은 출국 심사 끝나면 곧바로 탑승하시니까 라운지가 필요 없거든요. 아무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공사 라운지에서 잡지를 뒤적거리며 시간을 때우는데 몇몇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주영일 회장의 장례 이후, 언론에 얼굴이 팔려서인지 날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는 것 같다.
아버지 말로는 인터뷰를 연결해 달라는 잡지사가 꽤 많이 있다고 들었다. 팔릴만한 상품성을 몽땅 가진 사람이라나?
오죽하면 영화사에서 톱 여배우 섭외할 때 영화사 사장 아들이 진도준이라는 것을 은근히 팔고 다닌다고 했다.
호기심과 기대를 자극하니 꽤 먹힌다는 말까지 들었다.
다행히 경호팀의 눈치 하나는 비상했다. 내가 오래 기다리는 일 없도록 십여 분만에 쇼핑백 몇 개를 들고 나타났다.
그들과 함께 리무진을 타고 활주로에 도착하니 28인승 글로벌 익스프레스 XRS 기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걸프스트림 G550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개인 제트기종이다.
개인이 주문할 때는 보통 15인승 이하로 만들고 각종 편의시설을 집어넣는 게 상식이지만 이 항공기는 그야말로 비즈니스를 위한 공용이다 보니 특기할 만한 편의시설은 없었다.
전용기 하나를 사? 말어? 이런 고민을 했고 산다면 어떻게 인테리어를 꾸밀까 상상했다.
경호팀 요원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전용기에 당구대를 설치하면 당구를 칠 수 있다, 없다로 계속 논쟁을 벌였다. 그러는 사이 전세기는 빠르게 말레이시아로 날아갔다.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건설한 군사 공항이었다. 세계대전이 끝나갈 때쯤 연합군의 포격으로 엉망이 됐지만, 민간 항공사들이 인수하여 1957년 말레이시아 제2 공항으로 우뚝 섰다.
그래 봤자 3.7Km 활주로의 작은 공항이지만.
공항에는 이미 예약한 리조트 직원들이 리무진을 대기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룻밤 숙박비가 8천 달러가 넘는 프라이빗 빌라를 세 채나 예약한 특급 고객이니 이 정도 서비스는 당연했다.
비행기 안에서는 긴장을 풀고 조잘대던 경호팀은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태도가 변했다. 본래의 과묵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여기선 좀 풀어져도 됩니다. 쉬러 온 거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 숙소는 외곽에 경비까지 서는 안전한 장소예요. 이번 일주일은 넥타이 풀고 푹 쉬다 간다고 생각해요.”
“이 정도면 긴장 많이 푼 겁니다. 너무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장님,”
항상 내가 타는 차의 보조석을 차지하는 요원. 문성훈 과장이던가? 내 경호팀의 책임자인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해 못 하신 것 같은데….”
“네?”
“전 휴일도 없고 휴가도 없어요. 이미 겪어봤지 않습니까? 제 경호팀을 맡은 후로 쉬는 날 있었어요? 중간중간 교대로 하루씩 쉬는 게 전부 아니었나요?”
“괜찮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앞으로 몇 년을 휴가 못 갈지 모릅니다. 특히 문 과장님은 더 그렇죠?”
“…….”
다른 이는 교대근무라도 하지만 문 과장은 책임자라 그럴 수도 없었다.
“여기 리조트에 머무는 일주일을 마지막 휴가라 생각하고 쉬세요. 술 마셔도 괜찮으니까…. 아니 꼭 취하도록 마시고 쓰러져 자도록 해요. 하하.”
내 말이 진심이라는 걸 느낀 그들은 꼿꼿이 세웠던 등을 리무진 시트에 슬며시 기댔다.
전용 비치를 보유한 리조트에서 바라보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속이 뻥 뚫릴 만큼 절경이었다.
경호 팀원들도 굽이굽이 도는 해안도로를 따라 프라이빗 빌라로 가는 길에 모두 탄성을 계속 지르며 소풍 나온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 * *
“문 과장님부터 말해봐요. 뭐하시던 분이었어요? 순양 입사 전에요?”
전용 풀사이드에서 호텔 직원들은 열심히 고기를 굽고 우린 맥주를 마시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술도 한잔 했겠다, 평소 궁금했던 이들의 과거를 슬쩍 묻자 서로 눈치만 보며 주저하기만 했다.
“실장님. 좀 난처한데….”
“왜요? 부하직원들이 다 듣고 있어서요?”
“아닙니다. 우린 서로를 잘 압니다. 물론 이놈들도 꼭 숨겨야 할 이야기는 털어놓지 않았겠지만요.”
“아이고, 과장님. 우린 숨긴 거 없습니다.”
젊은 경호원이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기록으로 남은 건 말했겠지. 흐흐.”
문 과장은 맥주를 입에 탁 털어 넣고 가벼운 헛기침을 했다.
“실장님. 이 애들은 모두 운동한 놈들입니다. 체육 특기생이나 국가대표가 꿈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꿈을 접고 직업군인이나 경찰 특채를 노리던 애들이죠.”
“그럼 경호 업무는…?”
“순양시큐리티에서 배운 겁니다. 2년 정도 교육받죠.”
“문 과장님도 운동…?”
“네. 전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습니다. 2군이죠. 1군으로 올라갈 기회를 잡지 못해 관뒀고요.”
난 이 친구들이 조폭 출신이 아니었나 늘 궁금했었지만, 혹시나 하고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다르다.
“그럼 우병준 상무도 같은 길을 걸었던 분입니까?”
“아뇨.”
문 과장은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 우리도 상무님이 무슨 일을 하신 분인지 모릅니다. 그냥 소문이 전부죠.”
“어떤 소문입니까?”
“안기부 출신이라는 둥, 해외 용병생활 오래 했다는 둥…. 심지어 미국 FBI 출신이라는 소문도 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더군요. 영어 발음이 그냥 콩글리시예요. 하하.”
이들은 리조트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과거를 이야기한다. 우병준 상무는 어떤 상황이 되어야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이야, 저거 정말 끝내주네!”
“뭐?”
“저기 배 말이야. 요트.”
“저런 데서 낚시하면 끝내주는데….”
“야! 저게 고깃배냐? 호화 요트라고. 저런 곳에서는 파티하는 거다.”
“파티도 하고 낚시도 하면 되지 뭐.”
어둠이 내린 바다에는 요트 한 척이 샹들리에 불빛처럼 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메가 요트네.”
“네?”
이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전체 선박 길이가 24m가 넘는 대형요트를 메가 요트라고 해요.”
“혹시 요트도 가지고 계십니까? 잘 아시네요.”
“아뇨. 요트 산업은 이탈리아가 강한데, 그쪽에도 투자했거든요. 전 보고서 보고 알았죠. 세상은 슈퍼리치가 더욱 늘어나니 요트 수요도 늘거든요. 전망이 밝은 사업분야죠.”
몇몇이 실망한 눈빛이다. 재벌 3세쯤 되면 요트 하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우리 내일 저거 빌릴까? 이왕 노는 거 낚시도 하고, 파티도 하고. 괜찮죠?”
나이와 상관없이 여섯의 사내는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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