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97
뜨거운 여름이 한풀 꺾이던 8월 23일, 정부가 IMF 구제금융 195억 달러를 전액 상환하면서 IMF 관리 체제가 종료되었다.
정부는 한국의 위기는 완전히 끝났다며 그간 국민이 겪은 고통과 노고를 다시 한 번 위로했고 정부의 자축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는 끝났지만, 한국은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졌고 삶은 돈의 무게로 바뀌었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고 소비는 생활이 아니라 부의 과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사치품이라는 단어보다는 어느새 명품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구조조정이 고용 불안정, 비정규직, 소득 불평등을 증가시켜 노동소득은 급격히 위축됐다.
부의 불평등도가 높아짐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시작되었다.
빈자들의 소비 위축으로 내수가 부진하게 된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대규모 유동자본이 형성됐다. 수백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유동자본은 IT 붐의 붕괴 이후 주식시장에서 부동산으로 이동해 전국적 차원의 부동산 투기 광풍을 불렀다.
물론 현재의 부동산 광풍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다.
미국발 초저금리 정책은 시장에 유동성을 과다 공급하였고, 이러한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에 흘러 들어가 거품이 발생한 것도 그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과는 참혹하다.
이제 집 한 채 갖는 것조차 포기해야 하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니까 말이다.
사실 방송에서 떠들어 대는 IMF 극복 특집프로그램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앞으로 정확히 19일 뒤에 벌어질 일 때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모니터를 가득 메운 미국, 일본, 한국의 주식 차트와 현황판도 다 부질없어 보였고 끝없는 망설임과 갈팡질팡하는 마음만이 전부였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은 내 손이 주저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타인의 비극이 주는 기회를 이용하는 것은 정당한가?
어차피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는 타인의 비극이다. 누군가는…. 아니, 투자라는 세계에 몸을 담근 수십, 수백만의 인간들 중 누군가는 이 비극 때문에 돈을 벌 것이며 더 많은 누군가는 돈을 잃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세계에 몸을 담고 있다.
둘 중 어느 한쪽에는 서야 한다. 그렇다고 잃는 쪽에 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내가 돈을 잃는다는 건 일부러 잃는 쪽에 걸어 들어가는 짓 아닌가?
이미 어느 쪽에 서야 할지 결정을 내렸지만, 타인의 비극을 이용하여 떼돈을 버는 파렴치한은 피하고 싶었다.
결국, 얼마의 돈을 버느냐 하는 문제다.
내가 나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수준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씨발, 이럴 때 두 눈 질끈 감고 확 지르는 게 할아버지 스타일인데…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마음을 다잡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풋 옵션의 행사 가격올 확인한 뒤, 키보드의 숫자를 눌렀다.
엄청난 금액을 찍어봤자 노름판의 배율만 흩트린다. 누구도 주의 깊게 보지 않을 적당한 금액을 선택하고 주문을 넣었다.
이 숫자가 어떻게 변할까?
과거의 나는 주식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2001년 9월 12일의 주가조차 모른다. 아는 거라고는 큰 폭락이 있다는 것뿐. 그저 평범한 상식이 전부다. 열 배? 스무 배? 몇 배나 될까?
머리를 흔들었다. 벌써 들어올 돈을 생각하다니….
컴퓨터를 리셋한 후 해외 투자 모드로 로그인했다.
일본을 선택한 후 조금 전보다는 더 높은 숫자를 입력했다.
다시 리셋했다.
미국 증시와 금융상품, 파생상품이 반짝이며 나를 반겼지만, 망설임은 더욱 커졌다.
그냥 컴퓨터를 꼈다.
여긴 방어만 하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 * *
9월 11일 화요일.
S.E.S와 신화가 차례로 인기 가요의 정상을 밟았을 때 비극이 일어났다.
한국 시각 저녁 9시, 하루 일과를 끝낸 샐러리맨들이 삼겹살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거나, 마른오징어를 씹고 맥주를 들이켜며 피로를 푸는 시간이었다.
같은 날 아침 미국, 7시 59분에 아메리칸 항공 11편은 탑승자 92명을 태우고 평소와 다름없이 이륙했다.
단지 15분이 지난 뒤 보스턴의 관제소에서는 아메리칸 항공 11편 (AA11)과 교신을 시도하지만, AA11 편은 10분이 넘도록 응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관제사는 “우리는 비행기들을 납치했다. 가만히 있으면 무사할 것이다. 공항으로 회항하고 있다.”는 교신을 듣는다.
그리고 AA11 편은 뉴욕 상공의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오전 8시 13분, 로건 국제공항 동부 관제탑은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의 이륙을 허가했다. 그리고 30분 후, 납치범들은 기장과 부기장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조종간을 잡았다.
출근을 서두르는 뉴요커들의 발길이 분주한 아침 8시 46분, 갑자기 한 대의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에 충돌했다.
레이더에서 사라진 아메리칸 항공 11편이었다.
북쪽 건물이 불타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서 전 세계에 거의 생방송으로 중계되던 중인 9시 3분,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방송 카메라가 전부 건물을 향해 있는 상태에서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은 시속 872킬로미터의 속도로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에 충돌했다.
* * *
이날 난 하루 종일 사무실을 지켰다. 모두가 퇴근한 뒤에도 TV를 켜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결국, 역사는 흐트러짐 없이 똑바로 흘러갔고 밤 10시가 넘자 모든 방송사에서 긴급 속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속보를 보자 마음이 쓰라렸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서 편히 TV를 보며 쉬던 사람도, 여의도 술집에서 한잔하던 사람도 모두 회사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컴퓨터를 스위치를 눌렀고 모니터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물론 CNN 속보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각 미라클의 매니저 이상은 모두 출근한 것이 틀림없다.
인터폰을 눌렀다.
“팀장 이상 모두 회의실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회의실로 갔다.
술 마시다 달려온 사람이 많은지 회의실은 비릿한 술 냄새가 진동했다.
“모두 속보를 확인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시간에 회사로 달려왔겠죠.”
이미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일 초가 아쉬운 순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한 나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룰 하나를 ‘지시’합니다. 만약 내 지시를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 해고합니다. 명심하세요.”
이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오세현이 뛰어 들어왔다.
“야! 뉴스 봤어?”
소리치던 오세현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회의실의 침묵이 대답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오 대표님.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아주 정중하고 사무적인 내 말투가 어떤 의미인지 눈치챌 사람이다.
“아니. 하던 이야기 계속해.”
“네. 그럼.”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 지시는 아주 단순합니다. 내일 아침 증시가 열리더라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행동하십시오. 다시 말해 조금 전 이 사태를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매도 주문은 없습니다.”
“헉! 실장님! 그게…!”
“안 됩니다. 증시 폭락은 뻔합니다. 최대한의 물량을 신속히 팔아치워야 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반발이 심했다.
실적으로 인센티브가 결정되는 사람들이다. 계약서에 적힌 연봉보다 몇 배의 인센티브를 가져가니 오늘 내 결정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모두 조용! 지금부터 진도준 실장의 말을 끊는 놈은 이 자리에서 잘라버릴 거야! 끝까지 듣고 진 실장의 지시를 무조건 따라!”
오세현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니 회의실은 냉랭한 기운만 감돌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한쪽 눈을 찡긋했다.
“만약 매도를 원하는 고객의 요청이 있을 때는 원하는 대로 해주십시오. 하지만 임의로 팔아치워서는 안됩니다. 특히 우리 자본이 보유한 주식은 꼭 쥐고 있어야 합니다.”
굳은 표정의 직원들은 머리를 숙인 채 불만을 속으로 삭이는 듯했다.
“특히 우량주의 경우, 장 마감 전에 계속 사들이십시오. 분명 하한가를 찍을 테니 망설이면 안 됩니다.”
더 이상 말하면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이며 잔소리가 될 뿐이다.
“뭘 염려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기 전에 증시는 원상태로 돌아옵니다. 남들이 들썩인다고 우리까지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어요. 이상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 제 자리로 달려갔다. 새로운 속보를 확인해야 한다. 이들은 내일까지 자리를 뜨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빠져나간 회의실에는 나와 오세현, 단둘만 남았다.
“너 미친 거 아니지?”
“아주 정상입니다.”
“그럼 됐다.”
오세현은 긴 하품을 하며 몸을 돌렸다.
“고생해. 난 퇴근한다. 내일 보자.”
“끝입니까? 더 하실 말씀은 없으세요?”
“네가 잘 판단했겠지. 난 미국에 전화할 데가 많아. 위로와 유감을 전해야지. 참, 너도 레이첼에게는 전화 한 통화 해줘라.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레이첼 지인이 많이 근무하잖아.”
“네. 전 이삼일 뒤에 할 생각입니다. 지금 제 위로가 들리겠어요?”
“그러든지. 아무튼, 고생했다.”
오세현이 사라진 텅 빈 회의실에서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시 일어섰다.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의도를 나와 순양증권으로 달려갔다.
* * *
미라클에서 했던 지시를 똑같이 말하자, 순양증권 대표이사와 장도형 부사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제 말을 따라주세요.”
“실장님. 뉴스 보셨겠지만 이건 테러입니다. 미국이 가만있겠어요? 전쟁이라도 불사할 겁니다.”
“어디랑요?”
“네?”
“어디와 전쟁한다는 말입니까?”
“그야… 테러 집단 아니겠어요?”
“일개 테러 집단과 전쟁을 벌이면 미국이 패배할 확률은?”
장도형은 대답을 못 했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 큰 파문이 일어나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냉정히 보십시오. 미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놔둘 미국 정부도 아니고요. 오히려 테러 집단 공격을 시작하면 주가는 금방 회복할 겁니다.”
“실장님. 미국 증시를 확인한 뒤 결정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듣고만 있던 순양증권 사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분간 미국 중시는 폐장입니다. 최소 4, 5일은 열리지 않을 테니 우리가 결정해야 합니다.”
“폐장…?”
“월가는 미국 경제의 기둥입니다. 폭풍우는 피하는 게 맞습니다.”
“흠…. 장 부사장.”
“네. 사장님.”
“실장님의 의견에 따르도록 하세나. 투자에 관한 한 자네나 나보다는 몇 단계 위의 고수 아닌가?”
사장은 역시 나이만큼 노련하다.
아주 짧게 의견을 냈지만 속으로는 만세 삼창이라도 하고 있을 것이다.
엄청난 충격파를 내가 앞장서서 막은 셈이다.
잘못될 가능성이 큰 시기에 오너 가족이자 대주주인 내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울까?
* * *
여의도로 돌아와서 밤을 꼬박 새우며 CNN 속보만 계속 확인했다. 나뿐만이 아니다. 어젯밤은 여의도뿐 만이 아니라 대형 빌딩의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이 사태가 어떻게 번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니 모두 사무실을 지키며 새로운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초조한 마음으로 증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12일 폐장 시간까지 전 세계 증시는 폭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하루였다.
직원들은 긴 한숨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 사우나로 달려갔다.
앞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전투를 위해 잠깐의 휴식은 필요하다.
난 오늘 증시의 마감을 확인하기에 앞서 며칠 전 나 혼자 벌였던 은밀한 작업의 결과부터 확인했다. 조금은 떨리는 손끝으로 오늘 행사한 풋 옵션의 결과를 모니터에 띄웠을 때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빼곡히 적힌 숫자와 그 숫자 사이에 찍힌 콤마.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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