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98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믿기 힘들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일일이 한 자리씩 세어 봤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의자에 몸을 묻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장중 폭락은 틀림없고 풋옵션으로 큰 수익이 생긴다는 건 짐작했다.
지금 모니터에 보이는 숫자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단 하나 틀린 점이 있다면 수익률이다.
상상을, 예측을 초월한 수익률.
현황을 파악하기 전에 일본 주식 현황으로 재접속했다.
또 한 번 확인한 빼곡히 적힌 숫자와 그 숫자 사이에 찍힌 콤마. 우리나라 증시보다 더 큰 숫자.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주식시장에서 내가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건 누군가 엄청난 돈을 잃었다는 뜻이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오늘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을 확인했다.
9.11 테러 여파로 개장시간이 3시간 늦추었으나 종합 주가지수 12% 급락, 하한가 종목이 621개에 이르렀고 코스피 200지수 역시 7.96포인트 하락했다.
코스닥 역시 11.59% 급락. 지금의 가격변동제한폭이 12%인 걸 생각하면 전 종목이 하한가를 찍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양대 시장 주가폭락으로 이날 하루만 거래소에서 23조4천억 원, 코스닥시장에서 4조3천억 원 등 모두 27조7천억 원의 시가총액이 날아갔다.
오늘 쪽박 찬 개미 투자자들의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 가장 큰 곡소리가 울리는 곳은 다름 아닌 증권사들이었다. 개인과는 달리 매도포지션으로 수익을 올리던 증권사들이 풋옵션으로 엄청난 손실을 본 것이 확실했다.
내가 거래를 막은 순양증권은 예외지만.
순양증권 사장은 지금쯤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게 감사하는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 중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풋옵션으로 오늘 큰돈을 번 극소수의 사람이 나타났고 내일의 증시 또한 폭락이 예상되니 투자자들은 풋옵션 매수에 나섰다. 12일 하루 동안 무려 21만 건이 넘는 엄청난 규모였다.
하지만 막차를 타거나 뒤차를 탄 사람은 늘 그렇듯 쪽박이다.
앞으로 2, 3일간 큰돈을 날리고 우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도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 * *
나흘간 폐장했던 미국 증시가 다시 열렸을 때 뉴욕의 레이첼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분히 잘 대응하리라 믿었기에 투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설사 좀 실수하면 어떠랴?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 아닌가?
미국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니 당사국인 만큼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그녀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 다음 전화한 목적을 꺼냈다.
“레이첼, 거기 내 계좌에서 1억 달러를 꺼내 기부하세요. 뉴욕 미라클 인베스트먼트 이름으로요.”
– 뭐? 1억 달러나?
“네. 돈은 충분하잖아요. 구호작업도 좋고 메모리얼 사업에 기부해도 좋겠죠. 어디에 기부할지는 레이첼이 판단하고요.”
비극을 돈으로 되돌릴 수는 없으나 치유에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기적이기는 하지만 마음의 짐을 조금 더는 방법이기도 했다.
2001년은 IT 붐 붕괴 후였었기에 그 이전부터 금리 인하는 지속하였지만, 911사태의 충격을 완하기 위해 미국 FRB의 그린스펀은 금리 인하를 더욱더 빠르게 진행했다.
결국, 지속적인 금리 인하는 기준금리 6.5%에서 1년 만에 1.75%까지 떨어졌고 추가로 하락시키면서 1%대에 완전히 굳어졌다.
낮은 금리는 다시 주식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폭락했던 시장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번 일로 두 개의 큰 변화가 찾아왔다.
첫 번째는 미라클 내에서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엄연히 대표이사인 오세현이 있음에도 마치 명예 회장인 듯 대했고, 오세현 역시 웬만하면 업무지시를 거의 내리지 않았다.
대신 나만 바빠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있을 때는 수시로 직원들이 몰려들었고 외부에 있을 때 휴대전화는 불이 났다.
“왜 안 하세요? 이렇게 두 손 놓고 계실 겁니까?”
“왜? 나한테 대표이사 월급 주는 게 아깝냐?”
“수상해서 그럽니다.”
“뭐가 수상해?”
“설마 벌써부터 은퇴 준비하시는 건 아니죠?”
“이놈아. 은퇴 준비는 벌써 시작했다. 타이밍만 보는 거야.”
“삼촌, 이제 겨우 오십 대 중반 아닙니까? 남들은 일 못해서 안달인데….”
“그건 남들이고! 난 다르잖냐. 누구 덕분에 떼돈을 모아뒀는데 늙어서까지 일하는 건 억울하지.”
“은퇴하기에는 아직 젊으십니다.”
“일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아. 흐흐.”
낄낄대며 웃는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는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사실 미라클은 오세현이 없어도 문제없다. 지금껏 오세현이 해왔던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HW 그룹의 관리다.
아직 은퇴를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은 이 일을 내가 맡을 시기를 조율한다는 뜻일 게다.
그 시기가 최대한 늦기만을 바랄 뿐이다.
두 번째 변화는 10월 7일 시작되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이라는 이름의 전쟁을 시작했다.
파키스탄의 수도 카불을 비롯한 주요 군사거점 및 대도시들에 대규모 총 공습을 시작했고 단 하루 만에 아프간의 방공망과 통신망, 공군세력은 소멸했다.
21세기 최초의 전쟁이며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 언론은 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기사를 일제히 쏟아냈고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면 전쟁 기사 다음이 문제였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지 한 달, 승자는 순양증권?」
「모든 증권사가 엄청난 손실에 허덕일 때 순양증권만이 고공 행진. 주가 폭등.」
「순양 금융 그룹의 젊은 지휘자, 능력을 검증받다.」
「2세를 제친 3세, 진양철 회장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다.」
또다시 내 사진이 언론을 도배해버렸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사람들은 그 급격한 변화를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할 정도다.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고 회사 로비에 기자들이 죽치기 시작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잠복하는 기자들까지 나타나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실장님. 인터뷰 좀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장도형 부사장은 은근히 재촉했다.
“부사장님. 밖에 죽치고 있는 기자들 중에 경제 용어 훤히 꿰는 기자가 있겠어요? 전부 독자들 호기심을 긁어 돈 벌려는 속셈입니다.”
“누가 모릅니까? 그런데 지금 순양증권이 견인차 역할을 합니다. 금융뿐만이 아니라 다른 계열사 주가까지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때 결정타 한번 때려주면 좋지 않습니까?”
“제가 인터뷰한다고 주가가 오르겠어요?”
“오릅니다. 이미 홍보실에서 기사표제까지 생각해뒀습니다. 한국의 조지 소로스, 이십 대의 신화.”
젠장, 닭살이 확 돋는다.
“지금도 우리 증권사를 이용하는 고객이 몰려듭니다. 이 기사가 나가면 몇 배 늘어나는 건 일도 아니죠. 올해는 최고의 경영실적이 나올 겁니다.”
주가와 영업에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장도형 부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종이 한 장을 쓱 내밀었다.
“인터뷰 스케줄입니다. 일간지, 경제지, 주간잡지 그리고 월간지 하나. 딱 네 군데만 선정했습니다.”
“네? 네 군데나요?”
일정표를 보니 월간지는 시사도 경제도 아닌 미용실에서나 볼법한 잡지였다.
“이건 뭡니까? 아줌마 잡지가 왜 여기에…?”
“홍보실에서 꼭 해야 한다고 끼워 넣었습니다. 알고 보니 중요한 잡지더군요. 저도 놀랐습니다.”
장도형은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강남에 돈푼깨나 있는 아줌마들이 꼭 챙겨보는 잡지랍니다. 보통 몇억에서 많게는 몇십억까지 돈을 주식에 묻어두는 부류라 인터뷰 기사만 잘 나오면 전부 순양증권으로 갈아탈 거라면서….”
얕보던 여성 잡지가 이런 막강한 힘을 가졌다니! 새삼 놀랐다.
“알겠습니다. 이왕 하는 거 잘해야겠네요.”
허락이 떨어지자 홍보팀 직원이 몰려왔다. 그들은 인터뷰 언론사에 배포할 사진부터 찍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잠시만. 사진 여기서 찍을 거죠?”
“네. 집무실을 배경으로 쓸 겁니다.”
“그럼 여기 치장 좀 합시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죠.”
난 곧바로 백화점에 연락했다.
고모가 보내준 인테리어 전문가와 코디네이터들은 중앙지와 경제지에 어울릴법한 컨셉과 여성지에 어울릴 컨셉, 두 개로 나눠 집무실을 꾸몄고 각각에 어울리는 정장으로 코디했다.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최종 결과물인 사진을 보자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진을 쫙 깔아 놓으니 화보집이나 다름없다.
연이은 인터뷰는 역시나였다.
경제지마저 내 개인적인 모습을 긁어가려고 신변잡기에 불과한 질문을 던져댔고 네 곳의 인터뷰 중 쓸만한 질문은 딱 하나였다.
“911테러가 터진 뒤, 순양증권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상시와 다름없었습니다. 주가가 폭락하니 우량주를 중심으로 매입했어요. 그 덕분에 엄청난 수익을 올렸죠.”
이 질문은 경제지 기자가 아니라 중앙일간지 기자가 던진 것이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주가가 끝없이 폭락하면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을 텐데 말입니다.”
“과한 욕심을 버렸기에 가능했습니다.”
“네? 욕심을 버려요? 그럼 다른 증권사들은 욕심을 부렸다는 뜻입니까?”
“원래 출렁이는 장에서 큰돈이 오고 가는 법입니다. 당연히 ‘실적’에 대한 욕심이 앞서겠죠. 우리 순양증권은 그 욕심을 버렸습니다. 워낙 큰 사건이라 고객의 돈을 지키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고객의 돈을 지킨다는 회사의 뜻은 원금 손실을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돈의 주인은 고객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립서비스가 됐으려나?
* * *
1998년 20조 원을 넘긴 순양전자 매출은 불과 2년만인 2000년 34조 원대로 급격히 불어났으나 IT 버블이 꺼진 올해는 32조 원대로 감소했다.
영업 이익은 2조 원대로, 7조 원대였던 작년의 30%미만으로 줄었으나 여전히 국내 최고 기업의 위용을 자랑했다.
내가 가진 금융그룹이 아무리 좋은 실적을 내도 진영기 부회장의 전자 하나에도 못 미친다.
911테러 때문에 내 개인 재산은 또 한 번 크게 뻥튀기가 일어났지만, 돈은 직접적인 화력이 아니라 보조 수단일 뿐이다.
계열사를 흔들어 핵심 자산을 내놓게 만들어야 하는데 순양전자는 철옹성을 보였다.
저 철옹성을 직접 공략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성안의 위태로운 의자에 앉아있는 왕을 흔들어서 굴러떨어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의자를 흔드는 역할은 내가 아니라 바로 왕의 동생인 진동기 부회장이 맡아야 한다.
한 해가 저물어가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일주일 뒤면 새해가 밝아온다.
지자체장 선거가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이 나라를 뒤흔들 월드컵도 있다. 그리고 제16대 대통령 선거도 치러진다.
셋 다 나와 큰 상관이다.
내가 HW 그룹의 핵심 경영진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 2002년의 큰 숙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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