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199
유럽연합에서 유로화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2002년, 나의 첫 행보는 아진자동차와 순양자동차의 연구소를 하나로 합친 HW 자동차 연구소였다.
내 뜻이 반영된 첫차의 프로토타입을 보기 위해 송현창 회장과 조대호 자동차 사장, 오세현 대표와 함께 아침 일찍 방문했다.
연구소 전시장에는 디자인센터장과 디자이너들, 그리고 연구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렸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아담한 자동차 한 대도 반짝이는 광택을 자랑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M21-1
미니 21세기의 첫 미니 자동차라는 의미의 프로젝트명이 적힌 이름표까지 달고 있었다.
신차를 보는 순간 내 머리에서 85점이라는 점수가 매겨졌다.
이 숫자가 얼굴에 드러났는지 디자인센터장과 수석 연구원 두 사람은 경영진 곁에 착 달라붙어 설명을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둥근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경차다 보니 안정감을 주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뒤쪽으로 갈수록 실루엣과 캐릭터라인이 치켜 올라가는 공격적인 디자인입니다. 긴장감이 있고, 역동적인 형상입니다.”
“낮은 포지션을 선택함으로써 노면에 밀착되어 달리는 듯 한 느낌의 순수한 드라이빙의 즐거움도 추구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사이즈의 귀여운 차가 예상외로 짜릿하게 달리니 그 격차에서 오는 즐거움도 클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난 그들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자동차를 살피기 시작했다.
배기량 796cc, 자동 4단, 2인승 쿠페.
첫눈에 반할만한 디자인, 이것이 내가 요구했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자동차는 첫눈에 반할 만큼은 아니지만 귀엽고 예쁘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충분했다.
실내까지 꼼꼼히 확인했을 때 개발진들의 설명은 끝났고 다른 이들도 차를 살피기 시작했다.
“컨버터블 버전은 도저히 안 되겠습니까?”
수석 연구원 곁에서 조용히 물었을 때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유럽 안정성 기준을 통과하려면 제조원가의 압박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도저히 채산성이 나오지 않아 설계단계에서 제외했습니다.”
채산성 따위는 생각하지도 말고 멋진 신차를 만들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지만, 뼛속까지 박혀있는 실적에 대한 압박을 피하지 못했나 보다. 아쉬워서 가벼운 한숨만 나왔다.
모두 자동차를 살피고 나자 개발진들은 한층 더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제 회사의 경영자들이 평가를 내릴 차례다. 이들의 입에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말이 나오는 순간 지금까지 고생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악몽 같은 시간이 기다린다.
가을에 출고할 수 있도록 타임라인이 짜여있다. 오늘 엎고 다시라는 말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살인적인 일정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모두의 시선에 송현창 회장에게 꽂혔다. 누가 뭐래도 아진자동차를 국내 2위까지 끌어올린 자동차의 산증인 아닌가?
또한, 혁신적인 자동차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사람이다. 한국 최초로 엄청난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2인승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출시할 정도로 앞서나간 사람이기도 하다. 비록 조립이 전부였지만.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뽑았네. 모두 고생했어.”
송현창 회장은 긴장이 탁 풀린 개발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들의 고생을 위로했다.
“모두 수고했어. 오늘은 개발진 전부 지금 퇴근해서 식구들 얼굴이라도 보라고. 내일부터 어떤 고생이 기다릴지 모르니까.”
조대호 사장은 평가를 아꼈지만, 그 역시 이들의 노력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자, 우리는 차나 한잔 하면서 이야기 좀 하시죠.”
조 사장은 송 회장을 포함한 우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연구소 내의 접견실에서 찻잔을 앞에 두고 모두 말을 아꼈다.
특히 송현창 회장이 아무 말 없이 차만 홀짝이자 조 사장은 다급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회장님. 솔직한 의견 듣고 싶습니다만….”
“응? 아까 했던 말 진심인데?”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지자 조 사장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렇습니까?”
“우리나라에 경차가 몇 대나 있나? 저 정도면 훌륭하지 않나?”
“2인승이라는 게 약점이 될듯한데….”
“약점 없는 차가 어디 있어? 그리고 4인 가족은 경차를 좀 멀리하잖나? 애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니 말이야. 경차는 서브카면서 어차피 2인용이야.”
송 회장은 진심으로 만족한 듯 보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말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제 내 의견 따위는 생각하지 마. 난 이미 저물어가는 석양 아닌가? 진즉에 자리를 털고 나갔어야 하는 늙은이야.”
“아닙니다. 아직….”
송현창 회장은 손을 저어 조 사장의 말을 막았다.
“재계 공식 모임에서 그나마 얼굴마담이라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 자리를 지켰네. 하지만 대현 주 회장님도 세상을 떠나시고, 순양의 진 회장님도 이선으로 물러나지 않았나? 내 역할이 끝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송현창 회장은 갑자기 찻잔을 싹 비우고 벌떡 일어섰다.
“내 의견 무시하고 자네들 생각이나 정리하게. 난 먼저 올라가겠네.”
“회, 회장님.”
송 회장의 돌발 행동에 우리 모두가 당황했다.
“괜찮아. 앉아서 마저 이야기 나누게. 늙은이는 자리를 피해줘야 할 때를 알아야 어른 대접 받는다네. 난 자네들에게 어른 대접 받고 싶으이. 허허.”
송현창 회장은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기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구소를 떠나 버렸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모두 놀랐지만 이대로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남은 자들은 일을 해야 한다.
“자. 이제 솔직하게 의견을 나눠볼까요?”
조 사장은 오세현을 먼저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받은 오세현은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제가 뭐 압니까? 난 크고 널찍하고 트렁크에 골프백만 넉넉히 들어가면 좋은 차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중년입니다. 경차의 평가는 전문가이신 조 사장님 의견이 제일 중요하죠.”
한 발 빼는 오세현 대신 내 의견을 물었다.
“도준이 넌 어떻게 생각해?”
“제가 원하던 바로 그 차입니다. 100%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저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디자인 잘 빠지고, 적당한 안정성을 갖춘 저렴한 차?”
“네. 중산층 부모가 대학 졸업반 자녀에게 사줄 수 있는 차. 사회초년생이 3년 할부로 충분히 유지할 수 있는 차. 타고 다닐 때 좀 세련돼 보일 뿐, 없어 보이지 않는 차. 이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 신차는 어느 정도 제 생각에 부합하고요.”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 난 그 수준에서 의견을 내놓았다.
“자동차를 성능 따져가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출력, 파워, 제로백, 밸런스…. 까다롭게 차를 고르는 매니아들보다 출퇴근과 주말 나들이 정도가 대부분 아닙니까?”
“차만 보면 그렇지. 나도 네 생각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뭔가 다른 생각을 하시는군요.”
“그래. 정보에 의하면 일본 다이하츠에서 600cc급 경차가 나온다. 2인승 컨버터블이야.”
다이하츠 코펜? 그게 올해 나오던가?
“국내는 그렇다 치더라도 해외에서는 그런 차와 경쟁해야 한다. 부끄럽지만 아직 우리 한국 차는 싼 맛에 사는 차야. 그런데 방금 본 저 신차는 가격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져. 국내 경차 시장만 생각하고 양산에 돌입할 수는 없잖냐?”
“HW 자동차 전체 순익률을 제로로 맞추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경쟁력이 떨어질까요?”
“뭐?”
“M21-1이죠? 프로젝트명이?”
“그래.”
“그러니까 M21-1은 손해 보면서 팔아도 됩니다. 다른 차종에서 이익이 나니까요. 즉, 돈 벌 생각 포기하고 생산 대수를 늘리는 것에만 집중해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까요?”
조대호 사장은 잠시 생각하며 뜸을 들였다.
“생산 규모 확대에 따르는 이익만 생각하자?”
“네. 삼촌, 대주주로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익 없는 회사 경영을?”
슬쩍 오세현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는 재빨리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상관없다. 하지만 이익이 안 나면 주가는 계속 떨어진다는 것은 염두에 둬.”
“중장기 전략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자동차 주가를 지탱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와 오세현의 의견이 일치했음에도 조대호 사장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기업 경영의 지표는 주가다. 주가가 떨어지면 좋은 경영이라고 볼 수 없고 그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대표이사가 져야 한다.
회사의 주인인 대주주가 문제없다고 말해도 떨어지는 주가를 보고 있으면 금방 마음이 바뀌는 게 바로 주주들 아닌가?
“조 사장님.”
“어? 응….”
딴생각에 빠져 있는 그에게 내 목표를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천천히, 제대로 된 자동차 기업을 만드는데 십 년, 이십 년이면 어떤가?
“우리와 대현자동차의 격차가 얼마나 됩니까?”
“출고 대수 기준으로는 65%지만 매출로 따지면 대현의 절반에도 못 미쳐. 49%….”
이익률 높은 고급 차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대로 된 방향이라면 이쁘장한 경차 생산보다는 럭셔리한 중형 세단으로 가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미 고백했듯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위치는 값싼 자동차다. 중형 세단으로 방향을 잡으면 글로벌은 물론이고 대현을 이길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이익 포기하고 격차를 줄이는 데만 치중해도 저 신차가 가격 경쟁력이 없습니까?”
“진심이냐?”
“네.”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내 의중을 확인하는 조대호 사장을 향해 오세현이 말했다.
“조 사장님. 한번 해 봅시다. 자동차로 돈 못 벌면 어떻습니까? 이놈이 순양 금융그룹에서 돈 벌어다가 우리한테 갖다 주겠죠. 임직원들 월급 안 밀리고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생산 라인 증설할 정도의 수준으로 맞춰보자고요. 그럼 대현을 누를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역시 눈치 빠른 삼촌이다.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면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대주주는 흑자보다 규모를 목표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주가가 아무리 떨어져도 목표를 향해 한발씩 나가면 경영진의 교체는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올해 나온다는 그 다이하츠 경차보다 좋은 평가를 못 받아도 괜찮습니다만, 최소한 그 차 다음의 대안이 될 수는 있겠습니까?”
“아니.”
조 사장은 잠깐의 생각도 없이 곧바로 머리를 흔들었다.
“대현과의 기술 격차도 한참이야. 하물며 일본? 어림없어. 아마 마지막 선택지로 고를 거야. 미안하지만 그게 우리 위치다.”
혹독한 자기 평가가 온몸을 찔렀다. 다시 현실에 맞춰 물었다.
“그럼 우리나라 경차 시장에서는 어떨까요?”
“경차 시장 점유율 50% 이상. 이건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이지. 맡겨둬. 내년까지 달성한다. 원가에 팔면서 이 정도도 못한다면 대표이사 경질 감이야. 내 자리를 걸고 약속하마.”
이번엔 대단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니 믿음직하다.
“그럼 10월에 출시, 6월에 신차 발표를 목표로 서둘러 주십시오.”
“6월? 왜 하필 6월이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5월, 파리는 10월이야. 난 파리 모터쇼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씀하셨다시피 글로벌 시장보다 내수 공략이 우선 아닙니까? 6월에는 월드컵이 열립니다. 절호의 찬스죠.”
월드컵이란 말에 조 사장은 물론이고 오세현마저 얼굴을 찌푸렸다.
“야! 우리나라에서 열려도 어차피 남의 잔치야. 예선 토너먼트가 끝인데 왜 하필 월드컵이냐?”
오세현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이번에는 다를 것 같던데요? 홈그라운드 이점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좋은 성적 내면 축제 분위기일 테고, 그 분위기에 편승하면 효과는 말할 것도 없죠.”
이거 참….
아무도 믿지 못할 말이니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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